영동은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매력 넘치는 곳이다.
영동의 슬로건은 ‘레인보우 영동’이다. 무지개 하면 일곱 가지 색이 우선 떠오르기 마련인데, 여기선 영동의 다양한 특산물과 깨끗한 자연이 무지개 색에 각각 대비되어 있다. 그리고 무지개는 유려한 곡선을 그리고 있는데, 이는 국악의 고장 영동을 상징한다. 영동이 자신 있게 자신을 국악의 고장이라 할 수 있는 이유는 이곳이 난계 박연의 고향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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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군에는 국악체험촌이 조성되어 있다.2
난계국악축제는 난계 박연을 기억하기 위한 축제이다.영동이 낳은 악성, 난계 박연을 만나는 시작점은 심천역이다. 이곳은 작은 간이역으로, 1905년 세워진 이래 100년이 넘는 세월을 견뎌와 현재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100년 전과 같을 풍경을 눈에 새기며 밖으로 나오면 난계국악박물관으로 향할 것을 추천한다. 한편,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난계 국악기제작촌에서는 50여 종의 국악기를 생산하고 있는데, 이를 구입하거나 재료비를 내고 직접 만들어볼 수 있다. 국악박물관 근처에는 난계사가 있다. 이곳은 난계를 기리기 위해 1973년에 세워진 사당이다. 이곳에 들어가는 길에는 세계 최대의 북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천고’가 있는데,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천막을 씌워 보호한다고 한다.
그리고 난계사에서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그의 생가가 있다. 난계는 생전에 대제학까지 올랐지만 정작 그의 생가는 질박하기 그지없어 자칫 놓치기 쉽다. 이곳에서 태어난 난계는 81세를 일기로 이곳에서 숨졌으니, 영동은 진정한 그의 고향이라 할 만하다. 난계의 흔적은 여기에서 끝난 게 아니다. 마지막으로 향할 곳은 바로 박연폭포다. 원래 이름은 옥계폭포였지만, 난계가 폭포 앞에서 피리를 즐겨 분 이후 박연폭포라는 이름이 더욱 유명해졌다고 전해진다.
월류봉은 영동에서 주목받는 관광지 중 하나이다.
산이 많은 영동을 본격적으로 느끼기 위해선 산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게 좋을 것이다. 산을 본격적으로 탈 생각이 없거나, 하룻밤 여독을 씻어내고 다음날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고 싶다면 민주지산 자연휴양림을 이용하면 된다. 소백산맥 줄기에 둘러싸인 이곳은 자체적으로 맨발 숲길이나 사방댐 분수, 산열매향수길 등을 운영하고 있어 이곳에 머무는 이를 즐겁게 하고 있다.
영동의 산은 그 수만큼 골라 가는 재미가 있다. 해발 640 미터의 마니산은 삼국시대에 쌓은 노고산성과 병을 치료하는 영천이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그리고 해발 585 미터의 갈기산은 말 그대로 말갈기와 흡사한 바위산으로, 인근의 금강과 어울려 멋진 풍경을 만들어낸다. 또 해발 933 미터의 백화산은 기암절벽이 많고 협곡이 숨어 있어 본격적인 등산을 즐기는 사람에게 적합하고, 해발 715 미터의 천태산은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영국사와 용추폭포 등을 품고 있어 가족 단위로 등반하기 적절하다. 또한 여름에도 추울 정도로 물이 차 이름 지어진 물한계곡은 매년 여름마다 많은 피서객이 찾고 있고, 영동에서 전북 무주로 넘어가는 고갯길인 도마령과 공중으로 솟은 절벽인 월류봉도 오늘날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영국사의 거대한 은행나무는 명물 중의 명물이다.
신라 문무왕 대에 창건된 영국사는 본래 국청사라는 이름이었다. 이것이 영국사로 바뀐 데는 사연이 있었다.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이 쳐들어오자 공민왕은 이 절에 피신해 나라의 평안을 빌었고, 홍건적을 물리친 후 부처에게 감사하며 영국사란 이름을 하사했다. 왕이 피신할 정도의 절이라 보물로 지정된 부도와 삼층석탑, 원각국사비 등의 문화재가 많다. 반야사는 그런 영국사만큼 오래된 영동의 터줏대감이다. 신라 성덕왕 때 지어진 천년고찰 반야사는 백화산과 석천계곡을 끼고 있는데, 이 풍광에 반한 세조가 이곳에 머무르다 문수보살을 만났다는 전설이 있다.
현재 이곳은 산사체험이 가능해 체험과 휴양의 목적으로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그리고 금성사와 중화사 역시 신라 때 지어진 고찰이다. 이 둘은 특별한 문화재를 간직한 건 아니지만 그 고즈넉함과 주위의 풍광 덕분에 영동의 명물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위의 절보다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절로는 사군봉 기슭에 자리 잡아 영동의 산세를 내려다볼 수 있는 영천사, 지장산에 자리 잡은 지장보살 도량인 지장사, 신라 때 직지사와 더불어 창건되었다는 건천사의 명맥을 이어받은 영축선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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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사는 나라를 지켰다 전해지는 중요한 사찰이다.2
영국사 안에는 원각국사비가 전해지고 있다.한편, 영동의 오래된 건물 중에는 유독 교육의 목적으로 지어진 곳이 많다. 송시열이 학문을 연구했던 한천서원이 철거된 후 다시 지어진 한천정사, 선조를 제향하면서 그 후손이 학문을 연구하던 곳이었던 세천재, 매년 봄과 가을에 석전제를 지내고 있는 황간향교와 영동향교, 충주 박씨 종중에서 후손들의 강학을 위해 설립한 흥학당과 봉유재, 숙종 때 현감 박수근이 그의 아우 세 사람과 강학을 하던 곳인 사로당, 명종 때 김천 찰방을 지낸 삼괴당 남지언 선생이 세운 강학당인 삼괴당, 고성 남 씨 수일파 문중에서 후손에게 학문을 전수할 목적으로 세운 화수루 등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전통 온돌이 가장 잘 구현되었다는 평을 듣는 영모재, 전형적인 사대부의 집으로 건축의 의장기법이 매우 우수한 김참판 고택, 학이 바람을 타고 떠다니는 듯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가학루, 6대에 걸쳐 효자와 효부를 낸 덕수이씨 일가의 효행을 기리는 덕수이씨육세팔효정문,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장지현 장군을 기리는 장지현장군순절비 및 전적지 등의 사적이 남아 있어 영동의 역사를 한층 풍성하게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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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군에서는 영동을 알리기 위한 다양한 축제가 매년 열린다.영동군 향토민속자료전시관과 영동문화원은 영동의 향토문화를 지키는 든든한 보루라 할 수 있다. 먼저 영동군 향토민속자료전시관은 약 290여 점 가량의 민속유물과 각종 석조물을 갖추고 있어 사람들에게 영동의 문화를 지속적으로 알리고 있다. 그리고 영동문화원은 그렇게 보존된 영동의 문화를 발전시키고 영동의 이름을 널리 알리기 위해, 각종 문화강좌를 진행하는 한편 난계 국악 축제, 영동 곶감 축제, 영동 포도축제, 영동 와인축제, 추풍령가요제 등을 매년 기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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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은 본래 포도로 유명한 고장으로, 드라마 <포도밭 그 사나이>의 배경지이기도 하다.2
영동에 위치한 와인코리아는 영동의 포도 상품화에 큰 힘을 더해준다.3
영동 와인축제를 찾으면 다양한 와인들을 맛볼 수 있다.질에 비해 다소 유명세가 떨어졌던 영동 포도는 드라마 ‘포도밭 그 사나이’가 방영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지금도 촬영 세트장에 가면 드라마에서 나온 그대로 드넓은 포도밭이 펼쳐져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포도밭이 많았다는 이유로 이곳이 촬영지로 선정된 것은 아니었다. 일찍부터 영동 포도의 상품화에 골몰하고 있던 와인코리아의 협조도 중요한 요소였다. 영동 포도 생산 농가들이 출자해 만든 와인 제조회사인 와인코리아는 폐교를 활용해 와인 제조공장을 만들고 이를 숙성시켜 판매하고 있는데, 공장을 방문하면 지하 토굴에서 숙성 중인 와인을 시음해 볼 수 있다. 한편, 포도농사 외에도 영동의 다양한 농업활동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동 금강모치 마을에서는 포도와 블루베리를 생산하고 이를 이용한 상품을 만들어내고 있어 폭넓은 체험이 가능하다. 그리고 조동산촌마을에서는 산간 오지에서 생산된 버섯과 산채, 약초 등을 볼 수 있고, 마을 내에 있는 조동자연수련원을 거점 삼아 산림욕 등을 즐길 수 있다. 또한 영동 비단강숲마을에서는 계절에 따른 과일이나 농산물을 수확하는 체험을 할 수 있고, 복숭아 동산을 테마로 잡은 광운관광농원에서는 7월부터 10월 즈음까지 쭉 복숭아를 수확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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