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수진이는 학교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했던 수진이는 병원에서 지내느라 친구들과 뛰어 놀지도 못하고 늘 집안이나 병실에서의 생활이 전부였습니다. 그래도 수진이는 늘 밝고 씩씩한 모습이었지요. 그렇게 매일 병원에서만 지내는 수진이가 안쓰러웠던 엄마는 수진이를 위해 가족여행계획을 세웠습니다. 얼마 전 수진이 친구에게서 가족들과 재미있는 여행을 다녀왔다는 편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수진이는 아직 한 번도 가족들과 제대로 된 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 의사선생님께서 멀리 외출을 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말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수진이의 간곡한 부탁에 못이긴 의사선생님께서도 여행을 허락하였답니다. 그렇게 수진이네 가족은 무주로 첫 가족여행을 떠났습니다. 신나는 마음으로 도착한 수진이는 아픔도 잠시 잊은 채 신나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신나고 재미있는 하루를 보낸 수진이는 기쁜 마음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때마침 환하게 떠오른 달빛은 수진이의 방 창가를 환하게 비추었습니다. 너무도 밝은 달빛에 수진이는 창가 쪽으로 다가갔지요.
그런데 그 때 수진이 눈앞으로 반짝하는 물체가 아른거렸습니다. 수진이는 눈을 비비고 다시금 불빛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가 아닌 두 개의 불빛이 눈앞에서 반짝였습니다. 수진이는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러자 하나에서 두 개, 그리고 수많은 별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수진이는 하늘에 떠있는 별이 자신에게 다가와 이야기를 건네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한참동안 불빛을 바라보던 수진이는 다음날 아침이 되자마자 엄마에게 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친구들에게도 편지로 별을 눈앞에서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하니 수진이의 말을 믿어주는 친구들이 하나도 없었지요.
시간이 흐르고 수진이는 그날의 별빛이 반딧불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지요.
수진이는 다시금 반딧불이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치료도 씩씩하게 받고 운동도 열심히 하였지요. 또다시 가족들과 반딧불을 보러 떠난 수진이는 밤이 되기를 기다리며 반딧불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밤하늘에 별만 가득할 뿐 반딧불은 좀처럼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엄마는 날씨가 너무 더워져 반딧불들이 모두 꽁꽁 숨어버린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반딧불을 보지 못해 속상해 하는 수진이에게 엄마는 반딧불을 꼭 닮은 풍등을 건네주었습니다. 풍등에 소원을 담아 하늘높이 띄우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였지요.
수진이는 자신이 씩씩하게 치료를 받아 건강을 되찾은 것처럼 반딧불들도 다시 무주의 밤하늘로 되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래서 풍등에 반딧불에게 보내는 편지도 적었지요.
‘반딧불아. 난 네가 창문에서 나에게 다가왔을 때를 잊을 수가 없어. 난 네가 정말 밤하늘의 별이라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 난 네가 그리울 뿐이야. 너를 다시 보기위해 나도 의사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치료도 열심히 받았어. 그래서 이렇게 건강해졌단다.
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해. 보고 싶어 반딧불아.’
수진이의 순수한 마음 때문이었을까요? 밤하늘에 높이 올라간 풍등을 멀리서 보니 반딧불이 다시 돌아온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늘 높이 떠오른 풍등을 닮은 수천 개의 별들이 반짝이기 시작했고 지금도 무주의 밤하늘에는 수진이와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눈 반딧불이 밝은 불빛을 반짝이며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눌 또 다른 친구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내 이름은 성춘향이다. 나이는 열 살이다. 나는 학교나 학원뿐만 아니라 어디를 가도 금세 주목받기 일쑤이다. 아마 이름 때문이겠지. 나는 한동안 누가 내 이름을 물어보는 것이 싫었다. 성춘향이라고 하면 무엇인지 나를 통해 춘향전의 춘향이를 떠올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아닌 소설속의 인물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은 데 말이다.
언젠가 할머니 댁에 친척들이 모두 모인 적이 있다. 나는 언니, 오빠들이 많이 신 나게 방방 뛰어다녔으나, 할머니께서는 춘향이가 단정하고 단아하지 못하고 그렇게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어다녀서야 되겠냐고 꾸짖으셨다. 난 춘향이라는 이름 때문에 늘 조심조심하여야 했고 상냥하게 웃어야 했다. 특히나 내가 남원사람이라서 더욱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가끔 잠자리에 들 때면 이런 생각을 한다. 정말 소설에 나오는 춘향이도 조신하고 얌전하며 단아했을까.
나는 일기 속에 춘향이를 만나보고 싶다고 적었다. 춘향이를 만나면 꼭 한번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잠자리에 들면서 되뇌었다. 지금의 춘향이가 과거의 춘향이를 만나는 상상을 말이다. 생각만 해도 키득키득 웃음이 새어나왔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렸다. 춘향이의 꿈속이다. 그곳은 조선시대였다. 춘향이도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있었다. 춘향이는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춘향이의 이름을 불렀고 춘향이는 대답을 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뒤를 돌아본 것이 자신 하나가 아닌 또 다른 사람도 있었던 것.
그리고 춘향이를 부른 사람도 열 살 성춘향을 부른 것 같지 않았다.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나 하는 생각에 고개를 돌려보니 웬 도령이 한 처자에게 춘향이라고 부르며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순간 어린 춘향이는 자신이 정말 과거의 춘향이를 만나러 온 것임을 짐작했다. 놀랍고도 신기한 마음에 춘향이는 몰래 과거의 춘향이 뒤를 졸졸 따라갔다. 인기척을 느낀 과거의 춘향이는 어린 춘향이의 손을 탁 잡았다.
“얘! 너는 뉘 집 자제이기에 나를 이리도 졸졸 쫓아다니는 것이냐!”
“아... 그게.. 그게 아니라.”
놀란 춘향이는 쉽게 말을 잇지 못하다가 두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혹시 언니가 그 성춘향이에요? 내 이름도 성춘향이라고 해요. 나는 저 먼 미래에서 왔어요. 나이는 열 살이에요.”
“뭐? 언니? 그리고 먼 미래?”
과거의 춘향이는 이 꼬마 춘향이가 하는 말을 도통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고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미래에서 온 춘향이가 말을 이었다.
“믿을 수 없겠지만 사실이에요. 먼 미래의 이곳 남원 땅에서 왔다고요. 그리고 중요한 건 난 언니가 참 보고 싶었어요. 내 이름도 춘향이니까.”
과거의 춘향이는 이름이 같다는 것에서일까 여전히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미래에서 왔다는 춘향이가 궁금해졌다.
“그래? 미래에서 왔다고! 믿을 수 없지만 네 말이 사실이라고 치자꾸나. 그런데 왜 날 찾아온 거지?”
둘은 졸졸졸 흐르는 시냇가 앉아 어느덧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지요.
“난요. 누가 내 이름을 물어보는 것이 싫었어요. 이름을 말하면 먼저 웃음부터 터졌고 그다음으로는 내 얼굴을 보면서 언니를 떠올렸을 테니까요. 사람마다 자신의 머릿속엔 춘향이라는 사람이 다 다른 모습으로 있나봐요. 마치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첫사랑처럼요. 그리고 모두들 자신이 생각하는 언니의 모습을 나한테서 보길 바라는 것 같았어요. 얌전해야 하고 조신해야 하며 심지어는 이몽룡을 만나야 되겠다고 놀리기도 하였지요.”
과거의 춘향이는 미래에서 온 춘향이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 길이 없었으나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말했지요.
“그런 것 신경 쓰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그저 춘향이라는 이름의 너. 너 자신을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어. 그러다보면 사람들도 다른 사람이 아닌 너를 기억하게 될 거야. 춘향이라는 이름의 다른 너를 말이지. 새로운 춘향이를 네가 만들어 나가는 것 말이야.”
그렇게 말하고는 어린 춘향이의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따뜻하고 보드라운 손길에 어린 춘향이는 잠에서 깬 줄도 몰랐지요. 눈을 떠보니 옆에 자던 곰돌이의 손을 꼭 잡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춘향이의 학교에서 자신의 이름의 뜻과 자기소개로 발표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서둘러 학교에 간 춘향이는 꿈속에서 만난 과거의 춘향이의 말대로 자신의 이름을 사랑하게 되었고 당당하고 자신 있게 말했지요. 이제부터 과거의 춘향전을 이을 새로운 춘향전이 시작되었다고.
편안한 차림을 한 청년들이 모여 있고 그 속에는 유난히 흰 피부를 가진 민규가 눈에 띈다. 소풍이라도 가듯이 청년들은 삼삼오오 한껏 들뜬 표정을 하고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농활을 가는 길이다. 대학졸업을 위해 더 자세하게는 학점을 위해 떠나는 농촌봉사활동이다.
민규에게 시골이라는 공간은 이국의 어떤 사원만큼이나 낯선 공간이었다.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댁 모두 서울이었다. 그래도 민규는 할머니댁 간다는 말을 시골에 간다는 표현으로 쓰곤 했다. 다른 애들처럼.
도시에서만 자란, 민규와 친구들에게 농활은 그저 졸업장을 받기 위한 수단이었고 친구들과 떠나는 2박 3일 MT쯤으로 여겼다. 그저 적당히 물이나 주고 돌멩이나 고르다 오면 그뿐, 맑은 공기 마시며 힐링이나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버스에 오른 민규였다.
뻥 뚫린 고속도로에는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원활한 소통을 보였다. 그래서일까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김제. 내리자마자 코끝에 불어오는 풀냄새와 꽃향기가 느껴졌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서 그들이 해야 할 일은 가을에 황금빛을 띠며 자랄 벼를 위해 논에 물을 대고 잡초들을 뽑는 일이었다.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농활이었다. 쪼그려 앉아 몇 시간씩 고된 농사일을 하다 보니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일은 해도 해도 끝날 줄을 몰랐다. 하하 호호 웃고 떠들던 청년들은 점점 말수가 줄었고 긴 한숨 소리만 정적을 메웠다.
때마침 반가운 새참시간. 학생들은 환호했고 민규도 뻣뻣해진 허리를 모처럼 폈다. 우두둑 소리가 났다. 새참은 파전에 막걸리였다. 민규가 무리의 끄트머리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파전을 먹었고 이제야 시골에 대한 환상과 현실의 중간을 만난 듯했다.
“힘들지?”
진 초록색 모자를 쓰신 할아버지께서 민규 옆자리에 앉으셨다. 아마 이장님 댁 할아버지이신 듯했다.
“아닙니다. 허허. 저희는 그래 봐야 이틀인데요. 뭐.”
민규는 저도 모르게 이틀이라는 시간을 단정 지었다. 이틀, 그 이상은 봉사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암묵적인 통보처럼 들리기도 했다.
“젊은이들은 모를 거야. 쌀이 어떻게 나오는지. 교과서에서 배웠을지 모르겠지만…. 쌀 한 톨 귀한 줄 알아야 해. 요즘은 산업이다 공업이다 성공의 잣대가 최첨단으로 흐르고 있지만 그 뿌리는 농사다 이거지. 허허”
할아버지는 젊은이들을 앉혀놓고 괜한 잔소리가 아닌가 싶어 끝에 웃음을 흘렸다.
쌀이 어떻게 출하되는지는 민규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할아버지 말대로 민규는 교과서에서 모내기부터 추수까지 나름대로 자세하게 쓰여 있었으니까.
그런데 교과서에는 벼가 쌀알이 되기까지 농민들의 이야기는 한 글자도 언급되지 않았음을 안다.
“우리나라가 농경사회가 아니겠어. 한국인은 밥심으로 사는 거지. 밥을 먹어야 힘이 나는 거야. 알지? 옛날에는 그저 한해 농사만 잘되게 해달라고 빌었으니까. 바랄 것이 그뿐이었던 시절이 다 있었으니까.”
할아버지의 말씀에는 앞뒤 문맥이 어지럽게 섞여 있었으나 이해를 못 할 만큼은 아니었다.
어느새 날이 저물었다. 해가 지니 금방 어두컴컴해졌다. 시골이라 그런지 8시만 되어도 새벽녘처럼 깜깜했다. 하늘에 떠 있는 별만이 환한 빛을 비출 뿐 서울에서 보던 화려한 불빛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오늘은 잠이 잘 올 것만 같았다. 피곤해서 그럴 것이다.
이틀뿐이라던 시간은 흘렀다.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에 오른 민규는 약간은 검게 그을었다. 건강해 보였다. 고속도로는 여전히 소통이 원활했다.
서울은 여전히 높고 화려한 건물들로 가득했고 번쩍이는 네온사인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8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민규는 갑자기 어지러웠다. 잠시 찾아온 현기증 정도로 여겼다.
약간은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다. 큰기러기의 보드라운 깃털 사이사이로 차가운 공기가 스며들었다. 이제 가을도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강가는 아직 활기차다. 논병아리 가족들이 줄지어 쪼르르 헤엄치고 있고 청둥오리들도 무리지어 강가를 누볐다. 강가에서 유일하게 혼자인 희망이는 강가를 빙빙 돌며 헤엄쳤다. 가족들이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희망이는 날개를 괜히 접었다 폈다 하며 빨리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희망이는 큰기러기이다. 일찍이 가족들과 이별한 희망이는 강가에서 늘 외롭게 떠돌았다. 간혹 친구들을 사귀기 하였지만 그런 친구들은 금세 다른 곳으로 떠나버렸다. 그래서 희망이는 더욱 외로움에 자신을 가두기도 하였다.
별이 쏟아질 듯한 밤이 오자 희망이는 샛노란 달님을 보며 어김없이 가족들을 그리워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찬바람이 제법 쌀쌀해졌고 강가를 누비던 논병아리 가족들과 청둥오리도 서로 몸을 맞대며 추위를 견뎠다. 이제 겨울이 온 것이다. 외로운 희망이는 몸을 맞댈 가족도, 친구들도 없었다. 또 홀로 날개를 펄럭이며 강가를 빙빙 돌기만 할 뿐이다.
그런데 그때 한 무리의 오리 떼들이 날아왔다. 언뜻 봐도 어마어마한 수의 오리 떼들이 날개를 펼치며 강가로 내려왔다. 희망이도 오리 떼들을 보긴 했지만 이렇게 많은 수는 처음이었다. 큰 눈이 더욱 휘둥그레져 오리 떼들을 바라보았다.
그때 많은 오리의 무리에서 유난히 초록색의 멋진 머리를 가진 오리 한 마리가 희망이에게 다가왔다. 희망이는 자기도 모르게 한걸음 물러섰고 초록색의 머리를 가진 오리는 희망이에게 자신은 가창오리라고 소개를 했다. 희망이도 작은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고 가창오리는 잘 부탁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늘 홀로 강가를 헤엄치던 희망이는 무리지어 헤엄치는 가창오리가 부러웠다. 일제히 하늘을 검게 수놓는 모습도 부러웠다. 그렇지만 가창오리들은 봄이 지나면 다시 북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시 혼자가 될까 두려운 희망이는 가창오리와 친해지고 싶었지만, 또다시 상처를 받을까 봐 가창오리 주위만 맴돌 뿐 가까이 가지 못했다. 그렇게 선뜻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희망이를 위해 가창오리는 갈대를 꺾어 피리도 불어주고 예쁜 꽃을 날개에 달아주기도 하였다. 어느새 마음을 열게 된 희망이는 가창오리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멋지게 하늘을 날기도 하고 누가 더 빨리 헤엄칠 수 있는지 내기도 하였다. 붉은 노을이 스르르 하늘을 물들일 때 일제히 하늘을 수놓는 가창오리의 춤사위를 부러워하던 희망이도 파르르 날아올라 그 무리에 슬쩍 껴보기도 하였다. 시간이 흘러 못 보던 텃세들과 나그네새들이 날아와 친구가 되기도 하였다. 먼저 손을 내밀지 못하던 희망이었지만 가창오리와 함께 지내면서 먼저 친구가 되자고 손을 내밀기도 하였다.
그렇게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아니, 봄의 마지막이 왔다. 이제 가창오리들은 다시 머나먼 길을 떠나야 할 때였다. 희망이는 슬퍼졌다. 가창오리의 주변을 빙빙 맴돌 뿐이었다. 가창오리는 함께 떠나자고 했지만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희망이었다.
이제는 정말로 떠나야 할 때가 왔다. 코끝이 찡해지고 날개가 떨려왔지만 희망이는 입을 꾹 다물며 떨어지려는 눈물을 삼켰다. 어젯밤 달을 보며 가창오리가 떠날 때 울지 않겠다고 가족들에게 약속했기 때문이다. 웃으며 가장 멋진 모습으로 떠나보내 주겠노라고 다짐을 한 희망이는 가창오리에게 잎사귀로 만든 멋진 나비넥타이를 선물하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가창오리도 희망이와의 추억을 잊지 않겠다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라는 인사를 했다.
가창오리는 힘차게 날아올랐다. 가창오리가 날아오르자 나머지 오리들도 일제히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희망이를 위한 마지막 군무를 보였다. 붉게 물든 하늘위로 검은 가창오리 무리가 높게 날아올랐다가 아래로 내려오더니 희망이의 모습을 하늘에 수놓았다.
“안녕! 희망아, 가을이 되면 다시 돌아올게. 그때까지 건강해야 해!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희망이도 하늘을 보며 있는 힘껏 손을 흔들었다. 가창오리 떼들이 먼 길을 떠나고 나서야 희망이는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잘 가! 가창오리야! 보고 싶을 거야….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희망이는 끝까지 울지 않았다. 가창오리와 다시 만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창오리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희망이의 아름다운 날들은 계속될 것이다.
오늘은 동호가 좋아하는 음악수업이 있는 날입니다. 특별히 음악실에서 수업을 하기 때문이지요. 동호는 특별히 음악수업을 좋아하였습니다.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아이들은 자리를 정돈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음악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수업을 시작하셨지요. 교과서를 보니 오늘은 판소리에 대해 배우는 날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대뜸 아이들에게 눈을 감으라고 하더니 카세트테이프를 틀었습니다. 그러자 테이프에서는 예전에 들어본 적 있는 판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소리가 흘러나오자마자 머리가 주뼛거리고 이상한 전율이 흐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모두 수업이 지루했다고 투덜거렸습니다. 재미도 없고 지루하기만 한 판소리보다 뮤지컬이나 오페라가 더 좋다고 삐죽거렸지요. 하지만 동호는 친구들의 의견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학교 수업이 끝날 때까지 판소리의 여운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동호는 가방도 푸르기 전에 판소리에 대해 검색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오늘 수업시간에 들었던 신재효 선생에 대해서도 상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밤이 되고 동호는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동호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의 주변은 온통 상투를 튼 사람들과 한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었지요. 그리고 한 고즈넉하게 자리한 초가집에서 낯익은 얼굴의 할아버지가 나왔습니다.
바로 동호가 오늘 공부한 판소리를 집대성한 신재효 선생이었지요. 반가운 마음에 동호는 선생께 알은체를 하였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을 이렇게 만나 뵙다니 정말 반갑습니다! 선생님께서 판소리 여섯 마당을 엮으신 분이시지 않습니까?”
“이놈, 네가 나를 어찌 아느냐. 소리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 것이냐.”
동호는 신이 나 신재효 선생 앞에서 그날 배운 판소리와 동호가 느낀 소리에 대한 마음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러자 신재효 선생도 그런 동호가 기특했는지 방으로 들어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동호는 꿈속인지 아닌지 신재효 선생 뒤를 따라 다니며 직접 소리에 대한 진심을 배우고 우리 소리에 대한 마음을 배웠습니다. 동호가 아는 단순한 판소리의 지식이 아니었지요.
따르릉 울리는 전화소리에 동호는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잠에서 깬 동호는 어리둥절하였습니다. 신재효 선생님을 만나 몇날 며칠 판소리를 배우던 것이 모두 꿈이었던 것이니까요. 하지만 꿈이라고 하기에 너무 생생하였던 동호는 당장 고창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신재효 선생이 머물던 고택에 도착하였지요.
꿈에서 보던 초가집이 그대로 있고 꿈속에서 선생과 함께 배우던 것들과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꿈속에서 선생과 함께한 집안 곳곳을 둘러보던 중 이상한 증표가 하나 보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동호가 꿈속에서 몰래 남긴 흔적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동호는 그것이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혼란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꿈이 아니었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리고 마음 한편에 찡한 무엇인가가 느껴졌지요. 그것은 음악수업시간에 판소리를 들었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였습니다.
동호는 신재효 선생이 밟았던 길을 밟고 싶어졌습니다. 한참을 고택에 머물던 동호는 감사의 인사를 전한 뒤 선생님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길을 나섰습니다.
우리의 소리를 찾기로 한 동호의 마음속에는 선생의 소리의 한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습니다.
아이를 잃은 지 벌써 닷새가 조금 넘었다. 집 앞 골목에서 놀던 아이는 이내 사라져버렸다. 달도 기울어진 밤. 어스름히 비추는 가로등이 자꾸만 깜박거린다.
아이를 찾으려 경찰, 미아신고센터 등 발을 넓혀 수소문해보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실마리는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유괴라면 협박을 하는 전화 한통쯤은 걸려왔을 법한데 이상하리만큼 잠잠했다. 그렇다면 아이의 실종일까. 일곱 살 난 아이가 혼자서 길을 잃었다면 누군가 보호를 하거나 신고를 했을 텐데 동네에 아이의 흔적은 토막 난 시간처럼 깨끗했다.
“생김새가 유사한 아이를 목격했다는 제보전화입니다. 사례금을 먼저 묻는 걸 보니 약간 의심스럽긴 한데 그래도 일단 만나보심이…….”
사람들은 남들의 아픔에 치명적인 순간을 노리곤 한다. 장난전화라는 무책임한 단어에 피가 마르고 심장이 덜컥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돈을 노린 하이에나들처럼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솟는다는 기분이 이럴까. 아내는 자신이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반 실성을 하며 통공했다. 식음을 전폐하고 결국 자리에 누웠다. 아이의 이름만 중얼거릴 뿐이었다. 경찰은 아직 일주일을 넘기지 않은 상황이니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노력을 해보자고 했다. 물론 그들도 달리 뾰족한 방법은 없는 듯했다.
아이가 어디로 사라진 걸까. 단순히 길을 잃은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 보호하고 있는데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 것일까. 그 다음의 최악의 상황은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왜 불길한 상황에서의 생각은 자꾸만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드는지 모르겠다. 아이가 ‘아빠’하며 찾을 것을 생각하니 밤이 깊어가도 좀처럼 자리에 누울 수 없었다. 아이가 어디에서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데 부모가 되어서 어떻게 발 뻗고 잠들 수 있을까.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났다. 경찰에서도 우리 쪽에서도 그렇게 발 빠르게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이제는 조금 느슨해졌다.
따르르르르릉. 전화 한 통이 울렸다.
화순의 한 절이라고 했다. 우연히 아이를 찾는 전단지를 보았는데 자신이 보호하고 있는 아이와 비슷한 것 같아 전화를 했다고 했다. 몇 차례 장난전화를 받았지만 매번 아이를 보호하고 있다는 전화가 걸려오면 심장이 심하게 요동쳤다. 그런데 아이를 보호하고 있는 곳이 절이라니. 장난일리는 없겠다고 생각이 되었지만 만약 정말 아이가 있다면 어떻게 그곳에서 보호하고 있을까 생각했다. 전화를 건 사람의 목소리에서는 장난기라고는 없었고 꽤나 진실했다. 우선 아이는 잘 있다는 말을 먼저 하는 걸 보니 안심이었다. 문제는 그곳까지 아이가 어떻게 갔을까이다. 차로 족히 10Km는 가야할 거리이다. 버스를 타고 간다고 해도 아이혼자 쉽지 않은 거리인데. 아이를 만나러 가는 길임에도 자꾸만 의심이 가슴 속에서 콕콕 솟아올랐다.
급하게 차를 세워두니 저 멀리서 아이가 뛰어왔다. 아이의 상태는 괜찮은 듯 했다. 눈으로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니 5일간의 마음고생이 사라지니 급하게 피곤이 몰려왔다. 아이를 어떻게 보호하게 되었는지 자초지종을 듣기위해 스님과 잠시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많이 놀라셨지요? 빨리 연락을 드리지 못하여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닙니다. 그래도 이렇게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아이도 잘 보살펴주시고.”
스님은 천천히 칠성바위 쪽으로 나를 안내했다. 며칠 째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여 몸이 천근만근이었으나 아이를 찾았다는 마음 하나만으로도 버틸 수 있었다.
“이것이 칠성바위입니다. 언뜻 보면 그냥 7개의 원반석으로 보이나 자세히 보면 북두칠성이 지상에 그림자를 드리운 듯한 모습을 하고 있지요.”
아이를 어떻게 보호하게 되었는지를 묻었는데 스님은 대뜸 북두칠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그렇다고 스님의 말을 자를 수 없었기에 말없이 예에. 하고 듣고만 있었다.
“북두칠성은 북극성과 같이 나그네의 길잡이가 되어준다지 않습니까. 아이가 저를 찾아오게 된 것도 다 그런 이치이지요.”
스님은 자꾸만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으셨다. 간절한 마음이 북두칠성의 밝은 빛을 받아 아이를 이쪽으로 움직이게 하였을까.
자꾸만 졸음이 쏟아져 스님의 이야기가 희미해진다. 이제 겨우 아이를 어떻게 발견하였는지 이야기를 하는데 정신이 희미해지고 몽롱해진다.
부스스 바람이 떨려옵니다. 바람이 떨리니 비자나무숲도 함께 떨립니다. 살림이 가지런히 정리되어있고 마당에는 은행나무 잎이 우수수 떨어져 손님들을 먼저 맞이합니다.
인기척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고택에서 마른기침 한번 나더니 새하얀 버선을 신은 고산 윤선도선생이 걸어 나왔습니다. 크게 한숨을 쉬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더니 몸종을 불러 앞 강가에 나가자고 말했습니다.
“바람이 잔잔히 부는구나. 고기를 잡을까. 그냥 낚싯대만 드리울까.”
한손에는 부채를 들고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봅니다. 숨 한번 쉬고 시조 한번 읊으며 한가로이 시상을 떠올리고 있었지요.
그 때 고산의 증손인 윤두서 선생이 멀찌감치 고산을 바라보았습니다. 윤두서 선생은 윤선도 선생께 가볍게 인사를 올린 뒤 가만히 윤선도 선생이 시조를 읊는 것을 듣고 있었지요. 그러다 어렵게 말 한마디를 붙였습니다.
“한양의 소식은 이제 궁금하시지 않으신가봅니다.”
“그래. 이렇게 강과 바람과 흙과 함께하는 데 한양인들 벼슬인들 그 무엇이 이보다 더 좋겠느냐.”
“예. 저도 외조부를 따라 여기서 시를 짓고 자연과 벗 삼아 지내는 삶이 더 좋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윤두서 선생은 자리에 앉아 오늘 강가에서 바라본 갈대와 물결 그리고 바람의 존재를 알려주는 작은 꽃들의 움직임을 시로 표현하기 위해 짧게 그림을 그려놓았습니다.
윤두서 선생은 즐겨 쓰던 붓이 닳아 새로운 붓을 사기위해 화방에 들렀다가 우연히 중국의 한 화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한순간 화책에 매료된 선생은 곧바로 화책을 사들고 집으로 왔지요. 한 장 한 장 넘기며 그림을 보는 순간 시조를 읊고 시를 완성해나가는 것만큼의 감동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윤두서 선생은 그 자리에서 자신이 바라본 강, 바람, 풍경들을 쉼 없이 그려나갔습니다. 날이 어두워지는 줄도 모른 채 붓을 계속 휘둘렀지요.
날이 밝았으나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는데 열중한 나머지 매일 문안인사를 드리는 시간을 놓쳐버렸습니다. 큰일이라도 난 줄 안 윤선도 선생이 윤두서 선생의 집에 찾아왔지요. 그런데 방안에는 수없이 그려놓은 그림들과 화선지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윤두서 선생은 조부인 윤선도 선생에게 어젯밤 있었던 일을 말했습니다.
“두서야.. 그렇게도 그림이 좋으냐.”
“예. 그림은 글로 표현하는 것보다 더 강한 인상을 주고 더 깊은 여운을 남기기에 좋습니다.”
“그래도 난 네가 나와 같은 길을 걸었으면 좋겠구나.”
할아버지 윤선도의 만류에도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은 윤두서 선생은 자연풍경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삶을 고스란히 담은 풍속화를 그리는 데 열심을 다했습니다. 비록 유배지에서의 생활이었지만 이로서 더욱 백성들의 삶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요.
윤두서 선생의 그림에 대한 열정을 본 윤선도 선생도 끝내 그 고집을 꺾을 순 없었습니다.
며칠 뒤 윤선도 선생과 윤두서 선생은 예전의 그 강가에서 다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윤선도 선생과 윤두서 선생은 각자 먹 그리고 화선지를 앞에 두고 말없이 붓을 들었습니다.
윤선도 선생은 해남의 물과 달, 바위와 소나무, 대나무의 덕성을 종이 한 장에 담았고 윤두서 선생은 화선지 한 장에 얇은 붓이지만 정확한 필치로 강하고 힘 있게 해남의 정경을 한 폭의 그림으로 담아내었습니다.
윤선도 선생의 한 장의 시조와 윤두서 선생의 한 장의 그림이 어우러져 초록비가 내리는 해남에 하얀 불꽃을 만들어냈습니다.
스러지는 노을이 기분 좋은 저녁이었다. 아내를 처음 만난 곳은 학교 잔디밭 나무그늘 아래였다. 수업이 없는 시간이었는지 말간 하늘을 바라보며 불어오는 바람을 만끽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때의 아내는 정말 예뻤다.
조용히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내가 옆에 앉은 줄도 모르고 한참을 하늘만 바라보았다. 그 와중에도 품속의 전공책은 꼭 껴안고 있다. 건축학개론 책인 것을 보니 건축과 학생인 듯했다. 그녀 옆에 앉아서 흠, 하고 마른기침을 한 번 하자 그녀는 그제야 자신의 옆에 누군가 앉아있음을 눈치 채었다.
“아, 1학년이신가 봐요.”
그녀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처음 본 사람이 뜬금없이 옆자리에 앉아 말을 건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아니, 하늘만 계속 쳐다보고 계시 길래요 하늘에 뭐가 있나 해서.”
그제야 그녀는 경계를 풀더니 다시금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 아까 나비가 한 마리 있었거든요. 굉장히 예쁜 나비였는데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사라져버렸어요. 어디로 간 건지 모르겠어요. 다시 올수도 있으니까……나비가요.”
그때의 아내는 나비를 기다린다고 했다. 긴 생머리가 찰랑일 때마다 옅은 비누냄새가 풍겼다. 그 비누냄새는 아내의 순수함과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나비를 기다리는 어린 소녀의 이미지랄까.
나는 아내가 건축학과 1학년임을 눈치 채고 몇 학기나 건축과 교양수업을 들었다. 전공수업은 지각을 할 지언정 건축과 교양수업은 한 번도 지각이나 결석을 한 적이 없을 정도로 그녀에게 열심이었다. 그런 그녀도 내 마음과 같았는지 졸업을 하고 그 다음 해 우리는 곧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다.
벌써 3년이 지났다. 집 앞 공원에서 달이 차오르는 저녁 바람을 만끽하며 앉아있다. 이따금씩 불어오는 바람이 기분 좋은 저녁이었다. 바람이 살랑일 때 아내의 옅은 비누냄새가 풍겼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내는 여전히 예뻤다.
“무슨 생각해?”
“우리, 결혼한 지 벌써 3년이나 지났잖아. 그런데 왜 아이가 안 생길까. 당신 닮은 사내아이면 참 좋겠는데.”
“또 그 걱정이야? 우리 아직 젊잖아. 다른 사람들은 신혼 즐기려고 잠시 미루기도 한다는데 무슨 걱정이야. 병원에서도 특별히 이상 없다고 했잖아.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려고 하지마. 다 잘 될 거야.”
“그렇게 태평한 소리 할 때가 아니야. 솔직히 당신도 기다리고 있잖아. 어머니 아버님도 기다리시는 거 알아. 그리고 요즘 불임이 얼마나 많은데, 난 솔직히 걱정돼. 정말 많이.”
아내는 요즘 들어 부쩍 아이에 대한 불안감을 들어냈다. 병원에도 한 차례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이 소식이 없자 영영 아이를 가지지 못할까 염려스러워했다.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것이 힘들었다. 아내가 힘들어 할 때마다 나도 같이 힘들었다.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힘들어 하는 아내의 손을 잡아주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아침부터 나를 깨우더니 전에 없던 호들갑까지 떨었다. 아내가 모처럼 기분이 좋아 보여 눈도 채 못 뜬 채 아내에게 빙긋 웃어보였다. 그러던 아내는 떨리는 목소리로 기분 좋은 꿈을 꾸었다고 했다.
“자기야. 내가 오늘 무슨 꿈을 꾸었는지 알아?”
돼지꿈이라도 꾸었기에 그러나, 생각하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아내의 말을 기다렸다.
“나비! 나비가 꿈에 나왔어. 나랑 자기랑 나비축제에 간 거야. 그런데 많고 많은 나비 중에서도 아주 크고 예쁜 날개를 가진 나비가 우리 쪽으로 막 날아오는 거야. 그래서 한참을 바라보다가 발길을 돌렸는데도 자꾸만 우리 쪽으로 따라오는 거 있지. 꿈에서 깨고 나서도 얼마나 신비로웠는지 자기도 같이 봤으면 좋았을걸 하고 아쉬울 정도였다니까.”
“나비? 그랬어? 난 또 돼지꿈이라도 꾼 줄 알았네.”
약간의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다시금 베개에 얼굴을 비볐다.
“나비가 꿈에 나오면 태몽이라는 거 몰라? 우리한테 아이가 온 것 같다니까!”
“태몽? 정말이야?”
아내가 너무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해서일까 정말 우리 둘을 똑 닮은 아이가 아내의 뱃속에 꿈틀하고 찾아온 것만 같았다. 서둘러 아내와 병원에 가봐야 했다.
그럼 정말 아름답고 예쁜 나비를 닮은 아이가 우리에게로 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