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시끌시끌한 것이 오늘도 화개장터에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내다 팔 물건을 손질하느라 분주하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 주리라 하는 마음은 하동사람이나 구례사람이나 같은 마음이다. 섬진강 줄기를 따라 굽이굽이 내려오면 사람도 많고 이야기도 많은 화개장터가 나온다. 새벽부터 고소한 전 부치는 냄새와 사람들의 살 냄새가 섞여 구수함이 더한다.
그곳에 싱싱한 해산물을 내다 팔 준비를 하는 하동남자가 있고 그 바로 옆에는 은은하게 퍼지는 향이 구미를 당기는 산나물을 다듬는 구례남자가 있다.
화개장터에서 하동남자의 생선처럼 싱싱함을 따라올 자가 없었고 구례남자의 산나물처럼 향기롭고 그윽한 나물을 따라올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이 둘은 화개장터의 대들보로 통했다. 언제나 이 둘이 파는 물건이 가장 먼저 동이 났고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도 끊이질 않았다. 그래서인지 하동남자와 구례남자에게서 미묘한 신경전이 있었고 서로 더 먼저 물건을 팔고 더 많이 팔기위해 노력하였다.
그래서 하동남자는 구례남자보다 더 먼저 장터에 나와 물건을 손질하였고 구례남자는 하동남자보다 더 늦게까지 물건을 팔았다.
“오늘 고등어가 아주 물이 좋습니다! 어서 한 놈 데려가세요!”
하동남자가 큰 소리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자 구례남자가 이에 질세라 더 큰 목소리로 외친 것이지요.
“오늘 아주 향긋한 곤드레로 따뜻한 저녁밥 지어 드세요. 향기가 아주 그만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장터 상인들이 수군수군 하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무슨 이야기인가 들어보니 마을 장터 상인들 대상으로 요리경연대회가 열린다고 했다. 이번 요리경연대회에서 우승한 팀에게는 다음 달에 가장 장사목이 가장 좋은 곳에 선정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이번 요리경연대회에 많은 상인들이 열심을 다할 것이 분명하다.
하동남자와 구례남자도 빠질 수 없었다. 자리에 따라 장사수익이 판가름 나기도 한 중요한 대회기 때문이다.
하동남자는 구례남자가 어떤 요리를 내놓을지 신경이 쓰였고 당연히 구례남자도 하동남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동남자는 물 좋은 생선들과 수산물은 자신이 있었지만 미묘한 맛을 잡아내는 채소가 아쉬웠다. 구례남자는 파릇하고 향긋한 채소들로 만들 수 있는 요리가 있었지만 채소만으로는 역시 부족한 느낌이었다.
하동남자와 구례남자는 서로의 재료들이 필요했지만 자존심상 먼저 말을 걸지 못하고 괜한 헛기침만 연달아 내뱉을 뿐이었다. 드디어 경연을 하루 앞둔 날이다. 보다 못한 하동남자가 먼저 구례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흠. 저.. 내일 열릴 요리경연대회에 어떤 요리를 할 생각이오? 혹 혼자 나갈 것이 아니면 나와 함께 나가보는 것이 어떻겠소?”
구례남자도 하동남자에게 함께 나가보자고 말을 붙일 참이었는데 하동남자가 먼저 말을 걸어와 반가웠다.
“좋소! 사실 나도 같이 해보자고 말을 걸참이었소! 당신의 팔딱이는 수산물에 내 싱싱한 채소들이 우러나면 금상첨화가 아니겠소!”
드디어 경연대회가 열리기로 한 날이다. 장터는 여느 때보다 더 활기를 띤 모습이고 상인들의 얼굴은 약간 상기된 표정이 역력하다. 드디어 경연대회가 시작되고 하동남자와 구례남자는 하동남자의 해산물이 들어간 해물뚝배기에 구례남자의 채소들로 맛을 낸 반찬들이 어우러진 입이 떡 벌어지는 한상을 차려냈다.
장터를 찾는 사람들은 물론 심사위원들도 모두 흡족한 미소를 지은 요리는 바로 하동남자와 구례남자의 조화가 담긴 해물뚝배기정식이 당선되었다.
사람들은 음식도 사람처럼 조화가 필요한 것 같다고 하며 흡족해 했고 둘은 그동안의 지난 일은 잊고 새롭게 더 좋은 재료들로 장터에서 새로움을 꽃피울 것이다.
보기에는 그냥 시골 장터이지만 모이는 사람마다 이웃사촌이 되는 그런 정겨운 곳으로 말이다.
철썩철썩 파도가 몰아치는 밤이었어. 밤이면 밤마다 한 꼬마아이가 높이 뜬 달을 보고 기도를 하는 거야. 두 손을 꼭 마주 잡고 말이야. 무슨 소원을 그렇게 간절하게 빌고 있나 이야기를 들어보았지, 그랬더니 자기네 집이 이사를 하게 되었다는 거야. 그런데 동네가 철거되면서 마을 사람들 모두가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지 뭐야. 그래서 이사 가지 않게 해달라고, 친구들과 함께 학교도 가고 말뚝 박기도 하게 해달라고 벽에 기대어 달을 바라보고 기도를 하는 것이었지.사실 이 아이는 동피랑 마을이라는 벼랑 끝 동네에 살고 있어. 통영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아침이면 철썩이는 파도소리에 눈이 떠지는 마을이지. 그런데 안타깝게도 낡고 허름해진 벽과 지붕들로 재개발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어. 아이는 엄마, 아빠가 밤에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된 거지.
그때였어! 아이가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신기한 일이 벌어 진거야. 어디선가 작은 음성이 들려오더니 새끼 손톱만 한 다섯 명의 꼬마요정들이 나타난 거야. 그러고는 속닥속닥 무슨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어. 그러더니 아이의 집에 들어가 아이가 쓴 그림일기장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어. 고개를 끄덕이더니 밖으로 나와 아까 그 아이가 서 있던 벽을 한참 동안 바라보는 거야. 그리고는 엄지손가락만 한 붓을 꺼내어 벽에 대고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겠어?
손톱만 한 꼬마요정들의 움직임으로 저 커다란 벽에는 아이의 그림일기장에 그려진 그림으로 순식간에 가득 메우기 시작했지.
다음날 학교에 가려고 나온 꼬마와 마을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어. 누군가가 어두운 밤에 벽에 그림을 그리고 사라졌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이 아이는 자기의 그림일기장에 그려진 그림을 알아채고는 말했어.
“달님이 제 기도를 들어주시려나 봐요!”
신이 난 아이는 매일매일 일기장에 예쁜 그림들을 그려 넣었어. 예쁜 동백꽃, 고래, 친구와 말뚝 박기 하던 날, 재미있게 읽은 어린 왕자 등등 …….
그렇게 그림일기를 그려 넣고 자기 전에 똑같이 기도를 했지. 그러면 어김없이 요정들이 나타나 그 그림들을 동네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
그러자 마을 사람들에게도 이 이야기가 소문이 나기 시작 한 거야. 마을 사람들 모두 아이의 집 벽에 그려진 그림들이 너무 예쁘다고 부러워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철거하기로 한 날짜가 얼마 남지 않게 된 거야.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동피랑을 떠나기 전 자신의 추억들을 하나씩 남기기로 했지. 그래서 자신들의 집 벽마다 저마다의 소중한 추억들을 그려 넣기 시작했어. 각자 자신들의 추억들이 고스란히 남은 집을 떠나려니 더욱 마음이 아팠어.
그래서 이 아이는 다시금 두 손을 모아 쥐고 기도를 했어.
“달님. 우리 마을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게 해주세요.
마을 사람들 모두 흩어지지 않고 여기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말이어요.
그리고 우리 마을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이 그림처럼 행복한 표정을 지었으면 좋겠어요. 달님.”
그러자 꼬마요정들이 나타나 마을 골목골목에 비어있던 벽들을 향해 바람을 불어넣었어. 그랬더니 집 벽면에 그려진 그림처럼 골목마다 아름다운 그림들로 넘실거리는 거야.
이웃마을에 점점 소문이 나고 점점 동피랑 벽화에 관한 이야기가 퍼져 나갔어. 그랬더니 전국 방방곡곡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림을 보고 웃으며 행복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겠어?
동피랑은 꽃이 피는 마을이라며 말이야. 마을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너무나 행복했어. 그리고는 마을 사람들과 이 꼬마아이의 간절한 바람이 마을을 지키게 되었던 거지.
아이는 너무 기뻤어. 마을 사람들도 모두 함께 기뻐했지.
지금도 동피랑에 가면 아름다운 벽화를 만날 수 있어. 그리고 마을 어딘가에서 지금도 꼬마 요정들이 마을 곳곳에 새로운 그림들을 그려 넣고 있다고 해!
언젠가 동피랑 마을을 찾아가게 된다면 꼬마요정들이 벽화에 남긴 숨은 메시지를 찾아봐도 좋아!
오랜만이네, 새댁!
반가운 말투로 인사를 하는 아주머니 말투에 아무런 반박도 없이 웃는 얼굴로 인사를 했다. 실제로 오랜만에 들른 것도 아니었고 새댁 꼬리표를 달만큼 풋풋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어시장으로 직접 올 때에는 시어머니의 부름을 받을 때이다. 결혼 준비 즈음 친구들은 시댁과의 거리는 최대한 먼 곳이 좋다고 했다. 없으면 더 좋고. 남자들이 생각하면 식겁할 이야기이지만 오죽하면 ‘시월드’라는 말이 나올까 한다. 거기에 시누이는 덤이다.
우리 어머님은 마산어시장에서 전어를 파신다. 우스갯소리로 너는 전어 때문에 절대로 집 나갈 일은 없겠다고 했지만 왜 없을까. 고부관계에서 기권을 들어버린 남편과 시누이가 무슨 벼슬인 줄 아는 시누이까지. 그렇다고 시어머니가 무작정 싫은 것은 아니었다.
새아가를 시장으로 불렀다. 며늘애는 웃으면서 알겠다고 했지만 전화기 너머로 또 시장으로 부른다며 투덜거리는 음성이 귓가에 맴맴 돈다. 친구들이 왜 며느리 눈칫밥 먹으며 사냐고 당당히 살라고 하지만 요새 어디 그런가 싶다. 비린내 나는 손으로 손주 새끼들 얼굴도 못 만지게 하는 며느리 때문에 손주들을 미술관 전시품마냥 ‘좋아라’ 보기만 해야 할 때도 있다. 며느리와의 사이가 소원해진 건 시장을 맡아서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부터였다.
요즘 누가 시장에서 장사하는 걸 환영하겠느냐마는 그렇게 남처럼 퉁명스럽게 피할 줄은 몰랐다. 하기야 요새는 집 비밀번호 물어보면 왜 빈집에 들어가려고 하는지 그냥 자기네들 있을 때 오라고 하라고들 한다더라.
“어머니, 저 왔어요. 그동안 별 일 없으셨죠?”
그동안 이라는 단어에서 어색함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남의 집에 오는 사람처럼 꼭 무엇을 들고 온다.
“뭘 이런걸 사와. 그냥 오지.”
“그래도요. 그런데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시장. 그만 두기로 했다고. 그 말 하려고 불렀다. 비린내도 지겹고 힘에 부치기도 하고. 그리고 너한테 이어받으라는 그런 말도 안하마. 그냥 팔기로 했어.”
“어머니.”
“아무 말 마라. 그렇게 하기로 했어. 아범도 그렇게 알고 있을 거고. 삼 대째 이어왔으면 그걸로 됐지. 언제까지 이어하겠니.”
시어머니의 눈에는 살짝 눈물이 맺혔으나 그것은 원망도 미움도 아닌 굳은 결심으로 인한 후련함 때문이었다. 진작 이렇게 결정했다면 며느리와도 소원해지지 않았을 테고 마음도 한결 편안했을 것이다.
“어머니, 죄송해요. 그래도요 어머니, 시장 오기 싫다고 하면서도, 비린내 맡기도 싫다고 하면서도요 어머니, 우리 환이 가졌을 때요. 어머님이 구워주셨던 전어가 그렇게 생각나더라고요. 그런데 그 말 한마디를 못하고…. 그런데 어머님 어떻게 알고 전어 보내주셨잖아요. 그때 저 솔직히 눈물 나더라고요.”
“왜 안 섭섭했겠니. 나도 처음에 우리 시어머니가 시장 도맡아 하라고 할 땐 벼락이라도 맞은 듯했는데. 그래도 이 전어 때문에 집 안 나가고 여기에 뿌리내리고 있던 거 아니겠냐.”
오랜만에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얼마 만인가 싶다. 시장의 비릿한 생선냄새 대신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적당히 기름기가 낀 전어의 고소한 냄새가 난다.
바람은 쉽게 그칠 줄 몰랐다. 딸애가 겨우내 입으라고 옷을 사왔다. 남편 것이랑 내 것 두 개다. 나는 받아들자마자 대뜸 ‘어디꺼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딸애는 비싼 거야, 됏수? 이런다. 비싼 거란다. 하기야 어디꺼냐고 묻는 말에 비싼 거라고 돌아온 대답이 썩 틀린 대답도 아니었다. 손주들을 마치 대단한 선물인양 품에 쥐어주고는 이제 틈만 나면 아이들을 맡기고 저들끼리 하하 호호다. 물론 손주 새끼들 안 예쁜 노인네야 없겠지만 저들 하는 짓이 얄미워 그런다.
남편과 나는 일찍이 정년퇴임을 마치고 그야말로 까마득할 줄 알았던 노년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조용한 걸음으로 가까운 예배당에 나가 자식들 안녕을 바라고 오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일도 없다. 손주들을 봐줄 때면 꼭 당부하는 말이 있다. 과자 사달라고 해도 사주지 말고 꼭 사달라고 떼쓰면 유기농과자 사 먹여라, 비디오테이프 틀어주지 말고 책 읽게 해라, 당근은 잘 안 먹으니 곱게 다져 티 안 나게 먹여라. 별 유난을 다 떤다고 비웃으며 나는 너 그렇게 안 키웠다고 하면 이를 바드득 갈며 그래서 자기가 이런 거라며 대든다. 그러면서 꼭 한마디를 덧붙인다. 염색 좀 하란다.
“엄마, 제발 염색 좀 할 수 없어? 진짜 할머니 같애.”
“그럼 내가 할머니지 아가씨게? 그리고 너도 곧 늙어 이것아.”
“누가 나는 안 늙는대? 그러니까 곱게 티 안 나게 최대한 안 늙어 보이게 살라는 거지.”
늙으면 늙는 거지 최대한 안 늙어 보이게 늙는 건 또 뭐람. 그리고 염색약 한 번 사다 준 적 없는 것이 매번 말로만이다.
아침부터 전화가 왔다. 딸애다. 딸애의 전화를 받으며 무심코 식탁에 놓인 달력을 보니 오늘이 5월 8일이다. 다른 때 같으면 나가서 밥한 끼 먹고 여느 때보다 두둑한 용돈이 담긴 흰 봉투 하나면 끝이더니 이번엔 무슨 일인지 가족야유회를 가잔다. 내가 억새 보러 가고 싶다고 했다나. 지나간 말로 흘린 적이 있었는데 김 서방이 잊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침부터 김밥이다 유부초밥이다 바리바리 싸왔는데 딸애 가족은 캐릭터 돗자리에 유기농 과자, 유기농 과일이다. 김 서방은 웃으면서 하나 드셔 보라고 권했지만 딸애의 찌릿한 눈총에 됐다고 했다. 어느새 자기 둥지를 틀어 자기 새끼들만 돌보는 자식들을 볼 때면 언제 저렇게 컸나 싶다가도 젊은이들 상대로 피어오르는 질투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산 정상에 끝없이 펼쳐진 억새가 바람에 따라 한들한들 춤을 춘다. 흰색으로 보였다가도 금세 은빛을 띤다. 부스스 소리를 내며 일렁이는 억새를 보니 벌써 가을인가 싶다. 내 나이도 어느새 가을을 맞이했다.
꼿꼿하던 몸과 마음으로 살았던 2, 30대를 지나 점점 세월이 지나고 보니 스쳐 가는 바람에도 몸을 눕히는 60대가 되어버렸다. 손주가 은빛 억새를 보고 할머니 머리랑 똑같다고 깔깔거린다. 딸애는 거보라며 ‘진작 염색 좀 하지’란다.
난 이렇게 흰 아니 은빛 내 머리가 좋다. 늙는다는 것은 서러운 것도 슬픈 것도 아니니까. 그저 지나온 세월에 대한 정당함이라고 생각하니까. 늙음을 애써 감출 필요 뭐가 있을까. 바람에 흔들리듯 세월에 몸을 맡겨 이리저리 몸을 눕힐 줄 아는 지금의 나이가 좋다. 아무렴 좋다.
붉은 입술, 검은 머리카락, 깊은 눈매를 가진 여인. 초연한 눈빛이 자못 경건하기까지 하다.
사각사각 꽃잎가루를 곱게 빻는다. 사각사각 더 곱게 갈아준다. 꽃잎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유난히 희고 맑은 피부에 분홍빛으로 분칠을 하며 단장을 한다. 붉은 입술은 꼭 다물어 더욱 붉어 보인다. 참빗을 이용하여 머리까지 곱게 빗으니 단장이 끝났다. 거울을 들여다본다. 굳게 다문 입술을 조금 더 꼭 다물어본다.
5세가 되던 해 아비는 죽었다. 아비가 죽고 난 뒤 고약한 집의 민며느리로 팔려갈 뻔하다 겨우 빠져나와 경상도 우병사가 된 최경희의 첩으로 살기까지. 수많은 전투 속에서 자결에 이른 최경희의 빈자리까지 논개는 수많은 눈물을 흘렸었다. 나라는 혼란스러웠고 피비린내는 상황 속에서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도 어려웠다.
닷새 전 집안일을 돌보는 곱단이를 불러 세웠다. 전에 곱단이가 가지고 싶다고 하던 비단 천을 내밀며 네 가락지와 맞바꾸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곱단이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바꾸어 주었다.
“얼마 전 저잣거리에서도 가락지 몇 개 사지 않으셨어요? 요새 왜 이렇게 가락지에 욕심을 내신다요?”
“가락지가 예쁘지 않니? 예쁘기도 하고 단단하기도 하고.”
“단단하다고요?”
“왜 혼례를 치를 때 가락지를 주고받는 줄 아니? 그게 바로 다 부부간에 단단한 믿음과 신뢰로 살아가자는 약속 때문에 그렇단다. 그래서 이 가락지는 단단한 거지. 끊어지지 않고.”
“그런 거래요? 그래도 전 요 부드럽고 고운 비단이 더 좋구먼요.”
가락지를 받아들던 논개의 얼굴빛은 한층 어두워졌다. 열 개의 가락지가 다 채워졌다. 바람이 더욱 쌀쌀하게 불었다.
눈물은 보이지 않기로 마음먹었기에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멀리서 풍악을 울리는 소리가 들렸고 역겨운 기름 냄새와 피비린내 비슷한 냄새가 섞여 속이 울렁거렸다. 방바닥을 짚고 일어서는데 다리가 후들거렸으나 내색하지 말아야 했다. 웃는 얼굴을 하고서 손에 가락지를 끼웠다. 열 손가락 마디마디에 치장을 마쳤다. 누가 봐도 어여쁜 기생처럼 보였다.
밖은 시끄러웠다. 촉석루에서는 이미 흥이 한 판 벌어졌고 기름진 고기를 입가에 묻히고 먹는 왜장들이 보였다. 큰소리로 웃으며 술을 부어 마시는 꼴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조용히 왜장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고고하게 한쪽 다리를 올리고 분위기를 살폈다. 누구하나 술에 취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으나 쉬이 행동을 취했다가는 일을 그르치기 쉬웠기 때문에 분위기를 잘 봐야했다.
결심에 선 논개는 남강이 유유히 흐르는 낭떠러지에 요염한 얼굴을 하고 서있었다. 거나하게 술에 취한 장수들이었으나 아찔한 낭떠러지 앞이라 그런지 누구 하나 섣불리 논개 쪽으로 다가오는 이가 없었다. 그때 늠름한 체구를 가진 왜장 하나가 걸어왔다. 논개는 미소를 띠었다. 바람에 몸을 실어 왜 장수를 낚아채듯 힘껏 안았다. 술에 취한 장수는 덩치에 못 미치게 휘청거렸다. 논개는 찰나의 순간 만 길 낭떠러지 아래로 몸을 던졌다. 열 개의 가락지 사이로 손가락이 팽팽하게 늘어났다.
파도가 넘실거리는 강 속으로 두 눈을 질끈 감은 붉은 혼이 빨려 들어갔다.
‘그래서 가락지는 단단한 거지. 끊어지지 않고.’
유난히 지독한 악몽을 꾸었다. 여전히 꿈에서 깨면 식은땀이 베개에 흥건했고 꿈에서 깨면 얼마동안은 쉬이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이러한 지독한 악몽은 며칠 째 계속되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괴롭히는지 몰랐다. 꿈에서도 그를 쫒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저 두려움에 앞만 보고 달리다보면 어느새 헉 하는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깨곤 한다. 그가 이런 상황을 이야기하면 친구들은 뒤늦게 키가 크려나보지, 네가 애냐며 비웃음 섞인 조롱만 늘어놓았다. 그는 이러한 악몽의 끝에는 돈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항상 가난에 허덕였고 좀처럼 빈곤함은 나아지지 않았다.
깨어나고 싶어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처럼 답답하기만 했다. 누군가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불편한 것이라 했던가.
어렵사리 대학등록금을 마련하여 학교에 다니다보면 또 다시 돌아오는 등록금 납부기간. 도대체 한 학기는 왜 이렇게 빠른 것인지 몰랐다. 남자의 얼굴에는 늘 그늘이 져 있었고 빈곤의 주름이 깊게 패여 있었다.
대학입시와 함께 부모님께는 손을 벌리기 않기로 마음 먹은지 어언 삼년이 넘었다. 그동안에도 그는 풍족함 없이 지냈지만 이렇게 힘든 적도 없었다. 그는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 과수원을 하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과일, 채소를 팔아본 적도 있었고 고기 집에서 불판도 닦으며 중국집에서 배달하는 일도 했다. 사람들은 참 열심히 사는 청년이라며 칭찬을 늘어놓았지만 쉽게 그의 사정을 봐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그가 망설임 없이 구매하는 것. 복권이었다. 그의 친구들은 네가 일확천금을 노리기 때문에 안 되는 거라며 비아냥거렸지만 그는 이렇게 작은 희망이라도 품지 않으면 꼬여만 가는 가난의 실마리를 풀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되던 안 되던 추첨 시간이 되면 그의 답답한 가슴이 잠시나마 두근거리며 뚫리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제도 오늘도 꽝이었지만 그는 잠시 동안의 해방감을 즐겼다.
며칠째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또 다시 불면증과의 사투에 들어가야 하는 것인지 생각했다. 내일이면 아르바이트다 수업이다 해야 할 일이 태산 같은데 잠이 오지 않았다. 물론 잠이 든다고 해도 악몽 때문에 제대로 잔 것 같지도 않게 깨긴 했지만.
그러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잠 속에 빨려 들어갔다. 어딘지 모르는 낯선 곳이었다. 물이 흐르는 곳에 솥 모양의 바위가 있었고 그 곳에는 물안개가 피어나면서 어렴풋이 보아도 심상치 않은 곳이었다. 그는 무언가에 이끌리는 것처럼 바위 쪽으로 손을 뻗었다.
물에 비친 모습 때문이었을까? 손에 닿을 듯 말듯 애간장을 태웠다. 안간힘을 써 손을 뻗었다. 탁! 하고 바위를 치는 순간 잠에서 깨었다. 번쩍하는 느낌에 온 몸에 전율이 흘렀고 긴 악몽에서 깨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식은땀이 흘렀지만 분명히 그전까지 꾸던 악몽은 아니었다. 어딘지 모르는 곳에 있던 바위, 그리고 바위를 만지던 손의 느낌이 생생했다. 왠지 개운함까지 감돌았다.
남자는 예삿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분명히 길몽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꿈을 꾸고 난 뒤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여전히 자장면을 배달해야 했고 고기 집에서 불판을 닦아야 했다. 복권을 사도 꽝이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엔 더 이상 빈곤의 주름이 보이지 않았다.
물들다.
나는 너에게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언제나 너는 붉은색 입술을 오물거렸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듯이. 하지만 너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하얀 얼굴이 금세 붉게 물들곤 했다. 내가 기억하는 너는 그렇다. 너는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미일까.
나는 너에게 고백을 했지만 너는 말없이 싱긋 웃기만 했다. 좋다는 것인지 아니라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다시 묻지는 않았다. 네가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너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3년 전일 것이다.
“매화가 아직 피어있을까? 피어 있어야 할 텐데.”
“글쎄. 피어있겠지. 설마 지금 매화 보러 가자고 하는 건 아니지?”
“왜? 지금은 안 돼?”
“피곤해. 내일 프레젠테이션 준비도 해야 하고.”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오랜 침묵은 그동안의 관계에도 곰팡이처럼 번져나가 관계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나는 그깟 매화는 내년에도 후년에도 언제든지 보러 가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너는 그런 나를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오늘 피는 꽃과 내일 피는 꽃이 같아?”
“피곤해. 하루 종일 회사에서 그놈의 말장난 받아주느라 힘들었단 말이야. 꽃 타령 그만하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응?”
“꽃이 다 같은 꽃이라고? 그게 어떻게 같아? 그게 어떻게 같냐구. 아침과 저녁이 다르듯 어제와 오늘이 다른데 어떻게 꽃이 다 같아.”
우리의 관계가 위태롭다고 느껴지긴 했지만 매화 하나로 너와 나의 연결고리가 끊어져 버릴 줄은 몰랐다. 붉은 매화가 질 무렵 너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떠난다고 했다.
그동안의 침묵 그리고 공백이 익숙해져있었기 때문일까 나는 상관없다고 생각했고 무심하게 알겠다고 했다. 어디로 언제 떠나냐는 질문조차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았다.
그녀가 떠난 뒤 처음 맞는 주말이었다. 그녀와 함께 살던 집도 아닌데 유난히 텅 비어보였다. 너와 마지막으로 다투던 날 너는 흰색 소파와 어울리는 연분홍 원피스를 입고 있었지. 너는 우리 집에 올 때면 항상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았어. 그리고는 흰색 꽃을 식탁에 정성스레 꽂아 두었지.
나는 네가 떠나고 나서 유난히 너의 빈자리를 느꼈다. 마치 함께 하던 공간에 반이 딱 잘려 나간 것 같은. 늘 혼자 있던 공간에서 너를 찾고 너에 대한 연결고리를 찾았다. 네가 자주 듣던 노래를 틀어놓고 네가 좋아하던 꽃을 식탁에 꽂아 놓은 적도 있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다.
“매화가 아직 피어있을까? 피어 있어야 할 텐데.”
추운 겨울이 봄으로 물드는 시간. 네가 떠난 후 삼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너에게선 아직도 연락이 없다. 그때 언제 어디로 가냐고 물었다면 이렇게 마냥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을까? 아니면 네가 매화를 보러 가자고 할 때 피곤하다는 말 말고 차키를 집어 들었다면 되었을까?
문득 네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아침과 저녁이 다르듯 어제와 오늘이 다른데 어떻게 꽃이 다 같냐고. 네가 뭘 아냐고 소리를 질렀지.
물들다.
지나고 보니 너는 나에게 물들어 있었다. 아무리 지워보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연하지만 진하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너의 기억만으로도 봄을 되찾을 수 있을까?
또 한숨이다.
“내가 몇 번을 말해! 양말 거꾸로 벗어 놓지 말고, 한 번 입은 옷은 옷장에 넣어두지 말라고 한 말 또 까먹었어요?”
“그래. 그러니까 당신이 하라고 당신이.”
“내가 언제까지 당신 뒤치다꺼리나 하고 있어야 되는데. 당신 정말 나 없어도 이럴 거냐고요!”
아내는 눈물 섞인 소리를 내뱉었다.
“없긴 누가 없다 그래. 그런 쓸데없는 소리 마.”
아내에 비해 꽤 담담한 어투다. 남자의 목과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으나 아내가 눈치 채기엔 남자의 말투가 너무 무심했다.
남자의 사전엔 책임감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학교에서도 반장은커녕 기준도 제대로 외치지 못하던 남자였다. 심지어 그는 나라와 국민들의 안위조차 자신의 가녀린 두 어깨에 짊어지는 것이 무거워 군대도 가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도 아내와 노모가 있다. 말하자면 그는 가장인 셈이었다. 부양해야할 가족. 남자가 생각하는 그 책임감이라는 것이 남자의 어깨에 잔뜩 얹혀 있는 것이다. 그는 아내에게 나쁜 남편이었다. 아내가 아프기 전까지. 도무지 한 회사에 정착해서 다닐 생각도 못하던 남자를 아내는 조금도 채근하지 않았다. 그런 아내에게 남들은 저러다 화병에 걸려 제명에 못 죽을 거라고 했다. 말이 씨가 됐을까. 아내는 화병은 아니었지만 의사에게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죄가 있다면 무책임한 남편을 방관한 죄일 것이다.
아내는 병원에 다녀온 뒤부터 남편에게 평소에 하지 않던 잔소리를 해대기 시작했다. 아마 자기 없이 남편 혼자 스스로 살아가는 삶을 익혀두게 할 작정이었을 것이다. 남편은 그런 아내에게 신경질을 부렸고 심지어는 아내의 짐을 싸 내보내려고 아내의 서랍을 뒤졌다. 그러다 발견한 약봉지와 진단서. 남자는 그날로 집을 나갔다.
남자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남자가 집을 나간 후로부터 보름쯤 지난 후였다. 남자는 그저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을 할뿐 다른 말이 없었다.
남자는 전국 방방곡곡 아내의 병에 좋다는 약을 수소문하며 찾아 다녔다. 전국에 유명한 의원들을 찾아가 아내의 진단서를 보여주며 고칠 수 있겠냐고 따져 묻듯이 소리를 지르기도 벌써 보름하고도 닷새가 넘어섰다.
남자는 중얼거리듯 조금만 기다려 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남자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착한 곳은 산청. 남자는 어렴풋이 산청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아내가 드라마를 볼 때였나 그럴 것이다.
남자는 몸에 좋다는 약초들을 찾아다니느라 그동안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남자는 간만에 어느 선술집 자그마한 방에 몸을 뉘었다.
숨을 쉴 때마다 앙상한 갈비뼈 윤곽이 드러났다 사라지곤 했다. 아내에게 이렇게 신경을 써 본적이 있을까. 그동안 아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생각했다.
피곤한 몸이라 금세 잠이올 줄 알았는데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문득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내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뚜르르, 한참을 신호가 흐르고 딸깍 소리가 났다.
“여보세요.”
“나야. 별 일없지?”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 없으니까 편하지 뭐, 안 그래? 양말 뒤집어 놓는 사람도 없고.”
“당신도 참. 그나저나 어디서 뭐 하고 다니는 거예요?”
“내일 올라가. 그 때까지만 기다려. 꼭.”
남자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어디 아프지는 않냐고 물어보고 싶었으나 그럼 아내와 자신 모두가 말을 잇지 못할 것 같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아내의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소와 다름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아내혼자 이별을 준비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왜 내게 이야기 하지 않았냐고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으나 남자는 여전히 무심한 어조로 기다리라는 말뿐이다.
통화를 하는 남자의 손에는 아내에게 가져다 줄 한 아름의 약초와 한약재가 쥐어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