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한 여행은 이런 것이었다. 친구와 도란도란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며 푹 쉬다 돌아가는 국내 여행. ‘레일바이크를 타고 섬진강변을 따라가며 자연을 만끽해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나 홀로 여행이 되고 말았다.
새벽 여섯 시쯤 되었나, 민정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 왜 벌써 전화했어. 일곱 시에 만나기로 했잖아.”
“우리 쁘띠가, 우리 쁘띠가! 흐윽윽윽!”
쁘띠는 민정이 키우는 개다. 나이가 열 살이 넘었으니 사람으로 치면 노인에 가깝다. 외동인 민정과는 형제처럼 지낸지라 쁘띠에 대한 민정의 사랑이 상당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쁘띠가 호흡곤란이 왔단다. 그래서 민정은 지금 24시간 동물병원에서 대기 중이다. 결국 민정은 여행 출발 한 시간 전, 펑크를 냈다.
그렇다고 여행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열차도 끊고, 숙소도 예매하고, 고대하던 레일바이크도 나를 기다린다. 혼자라고 못 탈쏘냐! 난 결국 혼자만의 여행을 감행했다.
그러나 애초에 시작이 꼬여서 그런 걸까? 벌써 레일바이크에서 발이 묶였다. 이인용이라도 혼자 페달을 밟아 갈 생각이었는데, 혼자서는 탈 수 없단다. 그리고 이건 몰랐던 사실인데, 증기기관차가 레일바이크와 같은 레일을 사용한단다.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운행하긴 하지만, 그래도 자칫 잘못하면 열차랑 같이 갈 수 있다고…….
직원들이 혼자 태울 수 없다고 말리는 바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혼자 침곡역에 멀뚱히 앉아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포기할 내가 아니었다. 나는 눈에 불을 켜고 나처럼 혼자온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어쨌든 둘이 타기만하면 되는 거 아닌가! 모르는 사람이라도 좋으니 어떻게든 레일바이크를 타고 싶었다. 그때, 침곡역 구석에 앉아있는 한 남자가 눈에 띄었다.
“저기, 혼자 오셨어요?”
“아, 네.”
“괜찮으시면 저랑 레일바이크 타실래요? 저도 혼자 왔거든요.”
“아, 그런데 어쩌죠. 저도 레일바이크 탈 생각으로 왔는데, 아까 곡성역에서 그만 다리를 삐끗했어요. 오기로 오긴 했는데, 아무래도 페달밟는건 무리 같네요. 죄송해요.”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내가 아니었다.
“일단 타세요! 페달을 저 혼자 밟을게요. 보시다시피 저 허벅지 끝내줘요.”
나는 막무가내로 남자의 승낙을 받아냈다. 그리고 절룩이는 그를 부축하여 레일바이크에 태웠다.
“여기 직원들 앞에서는 다리 안 아픈척 하세요. 잘못하면 또 저지당하니까.”
신호와 함께 꿈에 그리던 레일바이크 체험이 시작됐다.
“여러분! 앞사람과 간격 맞추시고, 뒤처지지 않게 페달 열심히 밟으세요!”
그러나 우리 앞에는 운 없게도 건장한 남자 둘이 타고 있었다. 그들을 태운 레일 바이크는 이미 저 멀리 사라진 후였다.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죄송해요! 한쪽다리로라도 페달 좀 밟아볼게요.”
남자는 미안해했다. 침곡역에서 가정역까지 레일바이크로 사십분 정도 걸린다는데, 십오 분 정도 왔을까? 벌써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분명 섬진강은 아름다웠고. 레일 위를 지나는 기분도 좋았다. 그렇지만 너무 힘들었고, 증기기관차가 언제 돌진할지 모른다는 이상한 공포가 밀려왔다. 아직 레일바이크 타다 증기기관차에 치여 죽었다는 얘기는 못들은 것 같긴 한데……. 도저히 기운이 나질 않았다. 젖 먹던 힘까지도 쥐어짤 수 있는 동기부여가 절실했다.
나는 페달을 밟으며 소리쳤다.
“저기요!”
“네?”
“제가 너무 기운이 없어서 그러는데요! 페달 빨리 밟게 힘 좀 북돋아주실래요?”
“어, 어떻게요? 음악 틀어드릴까요?”
“아뇨!”
남자는 놀라 눈이 휘둥그레 졌다.
“그럼, 제가 불러야 돼요?”
“아뇨! 노래 말고 다른 거요.”
이 말을 할까 말까 할까 말까 하다가 그냥 뱉었다. 아, 내가 죽겠다는데! 우리 두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잖아!
“가정역 도착하면 저랑 맥주한잔 하실래요?”
내 말을 들은 남자의 얼굴에서 약간의 긴장이 사라졌다. 오호, 싫지는 않은가본데?
“하하. 네, 그래요. 신세도 졌으니 제가 살게요.”
하지만 나의 패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전화번호도 알려주세요.”
“네? 아, 알겠습니다. 밟으세요.”
아싸! 나는 신이 나서 전력을 다해 페달을 밟았다. 더욱 힘차게 밟았다.
안녕? 마일로. 나 동호야.
벌써 네가 우주로 간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어. 벌써 보고 싶다. 너와 처음 만난 날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거야. 쪼글쪼글한 얼굴에 귀여운 외모를 가진 너는 나보다 키가 훨씬 작아서 난 네가 개미인 줄 알았다니까.
고인돌 앞에서 우연히 널 처음 만났을 때 네가 하도 작아서 내가 널 밟을 뻔한 것도 기억이 생생해. 그땐 정말 아찔했는데 말이야. 그때 넌 머나먼 별에서 왔다고 하며 이곳이 어딘지 물었었지. 특히 넌 고인돌을 보고 이 큰 돌이 무엇이냐고 신기해했었지.
널 우리 집으로 몰래 들여보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것이 생각나. 넌 내가 사는 지구 그리고 우리 마을에 대해 궁금해 했고 난 네가 살고 있는 우주에 대해 궁금해 했었지. 그래서 우주에서 온 너를 위해 나로우주센터과학관에 널 데려갔었지. 그때 넌 정말 신기해하면서도 집에 가고 싶어 했던 것이 생각나. 그리고 난 과학자를 꿈꾸고 있기 때문에 널 만난 것을 참 행운이라고 생각했어. 너에게 직접 우주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우주과학센터에서 보는 것들에 대해 너와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어.
그리고 넌 우주로 오는 지구인들을 봤다는 이야기도 했었지. 그때 넌 정말 신기해했는데. 지구인들은 우주에 오면 신기한 옷을 입고 생활한다면서 말이야.
우리 고흥은 특히 과학의 도시야. 너도 알다시피 우리 고흥에서는 100kg급의 인공위성으로 지구 저궤도에 진입시킬 수 있는 한국 최초 우주발사체 나로호 발사 준비에 한창이었지. 사실 1차와 2차를 발사했었지만 아쉽게도 실패했었어.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3차 준비에 매진하던 시기였어. 그때 널 만난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고.
넌 왜 고흥에서 나로호를 발사하는 것이냐며 궁금해했었지? 그건 발사장 주변의 안전과 발사각도, 발사장의 여러 시설의 설치 등을 생각해서 발사해야 하기 때문이야. 특히 우리 고흥은 발사운용 각도가 15도로 넓고 발사체를 발사했을 때 발사체의 추락과 같은 국제적인 문제도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들었어. 나 꽤 똑똑하지? 네가 다시 우주로 돌아가고 더욱 우주와 과학에 대해 궁금해졌어.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
아참! 나 너와 약속했던 비밀 아직도 지키고 있어. 바로 3차로 발사될 나로호에 널 몰래 태운 말이야. 지금 생각해도 심장이 두근거린다니까. 나로우주과학관에서 나온 넌 네가 살던 별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보였었잖아. 그때 나도 무척이나 가슴이 아팠었어. 그래서 생각했지. 네가 우리 마을로 떨어진 날이 1월 28일이었잖아. 그런데 1월 30일에 나로호 3차 발사가 예정되어있었어. 그래서 널 몰래 나로호에 태웠었지.
그래서 나로호가 발사되는 것이 나에게는 더욱 뜻깊은 일이 되었어. 네가 나로호에 탄 것은 아마 우리나라 사람 아무도 모를 거야. 그리고 난 네가 나로호에 탔기 때문에 3차 발사에 성공하길 더욱더 간절하게 바랐어.
나로호 발사를 몇 분 남겨놓지 않고 너와 작별인사를 했을 때가 생각나. 널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야. 그래도 널 너의 별나라로 보내줄 수 있어서 기뻤어. 그리고 나도 더 열심히 공부해서 2021년에 다시 한 번 발사될 한국형 발사체에 탑승해 널 꼭 다시 만나고 싶어. 너와 함께 보냈던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될 거야.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으면 좋겠어. 비록 너의 소식을 들을 수는 없지만 네가 잘 도착해서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야. 그럼 다음에 또 만날 때까지 안녕. 동호가.
오늘 아침은 유난히 몸이 무거웠다. 간밤에 누군가에게 솜방망이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삭신이 쑤셨다. 의도하지 않은 무거운 신음이 입 밖으로 슬며시 흘러나왔다. 겨우 팔과 다리를 뻗어 자다 깬 그대로 기지개를 켰다. 겨우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데 현기증이 났다. 한번 휘청거리며 선반 모서리를 손으로 짚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창문을 가리고 있는 커튼을 걷는데 창문으로 새어 들어온 빛 때문에 다시금 현기증이 났다. 머리를 부여잡고 침대에 앉았는데 몇 개의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공지사항. 어제 연락드린 외국인을 위한 맞춤 프로그램에 대한 문서 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 확인 바랍니다.
클라이언트는 도무지 주말과 휴일의 개념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회사에 나오라는 말만 안 했을 뿐이지 자신이 보낸 메일을 확인하라는 것 자체가 일의 연장선임을 진정 모르는 것일까 생각했다. 미지근한 물 한잔을 마시고 메일을 확인해보려는데 입사동기 성연의 전화가 왔다.
“어, 성연씨. 무슨 일이야?”
“어! 웬일이야. 매번 여보세요 하고 딱딱하게 받더니. 다른 게 아니고 메일 받았냐고.”
“응, 지금 열어보려던 참이야. 뭐 급한 거야? 이렇게 전화를 다 주고.”
“급한 거라기보단 외국인 협업 프로젝트라나 그런 건데 자기랑 나랑 하게 되었더라고. 그래서 연락해봤어. 무슨 주말이 이러냐. 아무튼 메일 확인하고 시간 잡아서 기획 좀 짜보자고.”
이렇게 정신없는 아침도 없을 거라며 눈을 한번 지그시 감았다 떠보니 클라이언트가 보낸 메일이 와있었다. 내용인즉슨 관광을 통한 지역의 문화 익히기라는 주제의 행사를 맡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그리 기획만 탄탄히 짜면 그리 어렵지 않은 프로젝트였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프로젝트 담당자가 자신과 성연이라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민주와 입사동기인 성연은 늘 비슷한 업무를 맡았기에 항상 비교, 평가의 대상이었다. 물론 민주의 자격지심이라면 자격지심이었겠지만 민주는 이번 프로젝트 담당이 외국인인 것에 더욱 신경이 쓰였다. 성연은 화려한 어학연수 스펙을 가지고 있었으나 민주는 비행기라고 타본 것은 제주도를 갔다 온 것뿐이었다. 민주는 쓴 한숨을 내뱉었다. 어쩐지 성연이 한껏 들뜬 목소리로 전화한 것이 참 얄미웠다.
민주와 성연은 각자 관광 지역을 선정하고 지역의 문화에 대해 조사하기로 했다. 민주는 강진청자를 떠올렸다. 우연히 들렀던 강진에서 외국인들의 청자 만들어보기 체험을 본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강진청자 만들기 체험? 무슨 애들도 아니고. 외국인들이라고 해서 어린이들이 아니야. 이게 뭐니?”
참. 말 한마디도 얄밉다. 청자 만들기 체험이 무슨 어린이들만 해야 하는 대표 프로그램도 아닌데 저렇게 길길이 날뛴다.
그렇게 두 파트로 나누어 각각 10명의 외국인들과 함께 자신이 기획한 일정대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민주는 말이 좀 어색했지만 그만큼 외국인들의 말을 들으려 노력했고 더 세심한 준비를 했다.
흙을 만져본 느낌, 청자에 대한 첫 생각 등을 참 편안하게 나누었다. 그리고는 각자가 만든 도자기에 자신이 새기고 싶은 문구나 기억하고 싶은 문구를 새기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외국인들은 흥미로워했고 꽤 진지하게 문구를 생각했다.
프러포즈 내용을 쓰기도 하고 자신의 다짐을 쓰기도 했다.
그새 정이 들었는지 외국인 한명 한명에게 좋은 추억이 되었을까 진심어린 걱정이 되었다. 고맙게도 외국인들은 이번 체험에 만족했고 즐거운 추억을 안고 돌아간다며 고마워했다. 그렇게 프로젝트는 성공리에 마쳤다.
그날 아침은 생각보다 상쾌했다. 적당히 불어오는 바람도 산뜻했고 햇볕도 그다지 따갑지 않았다.
‘택배요’
택배? 주문한 게 없는데.
손에 안겨진 것은 다름 아닌 서툰 글씨가 새겨진 청자였다.
‘보고 싶은 사람에게.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정말이지 추억은 국경을 넘어선다.
“한 번뿐인 인생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아야지. 그동안 당신 힘들었던 거 알아. 누구보다도.”
이제는 원망이나 설득을 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다. 원망이나 설득의 마음이 없다고 해도 그래도 남편이 마음을 돌려주기를 내심 바라는 마음은 있다. 홧김에 한 말이었다고 그냥 다시 예전처럼 지내고 싶다고 말해주길.
“연락 자주 할게. 아이들 데리고 자주 내려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하는 남편이다. 일주일 전만 해도 화를 내고 시부모님께 일러보기도 하고 협박까지 했던 아내였기에 남편의 말 한마디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다.
남편은 안정된 직장에서 남부럽지 않은 연봉에 인정받는 사람이었고, 가정에서는 집안일도 잘 도와주고 아이들이라면 끔찍이 아끼던 최고의 가장이었기 때문에 남편의 선택을 받아들이기가 더욱 힘든 아내였다. 생활비 한 번 허투루 쓴 적 없는 모범답안과 같던 남편이 돌연 귀농 생활을 통보한다. 처음에는 권유였으나 나중에는 혼자라도 가겠다고 통보를 한다.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묵묵히 함께 살아온 30년. 아이들을 다 키워놨다고 생각해서일까. 일주일간 아내는 잠도 제대로 못 들고 남편의 생각을 읽으려 노력했다. 도저히 모르겠다. 무슨 영문인지.
생각에 변함없음을 알리는 남편의 대답에 이젠 이런 실랑이도 소용이 없음을 받아들였다.
결국, 남편은 홀로 횡성으로 떠났다. 예전의 남편이라면 아내가 싫다고 할 때 마음을 접었을 것이다. 고집불통이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싶은 생각도 든다. 무작정 우겨 내려온 것이지만 단출한 살림에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귀농 생활이었다. 일단 무작정 장에 가보기로 한 남자는 우연히 소 한 마리를 얻어 기르게 되었다.
큰 눈을 껌벅이는 소를 바라보니 어릴 적 남편과 닮았다. 남편은 큰 눈에 겁이 많아 소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소와 남편은 닮은 점이 많았다. 큰 눈을 껌벅이며 남편을 바라보는 것이 이 녀석과 잘 지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논농사를 지을 것도 아니고 특별히 밭을 갈 일도 없는 남자였지만 남편은 소를 애지중지 키웠다. 아내가 바라보았다면 질투를 느낄 정도였다.
귀농 생활이 어느 정도 제자리를 잡을 즈음 아내가 왔다. 아내는 오자마자 집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마당에 자리 잡고 있는 소를 바라본다. 이젠 소까지 키우느냐며 농사꾼이 다 됐다고 웃는다. 아내가 오랜만에 웃는다.
아내도 자신이 빙긋 웃는 것이 어색했는지 슬쩍 말을 돌린다.
“혼자 피죽도 못 얻어먹고 사나 했더니 제법 살림꾼 다되었나 보네. 딸린 식구도 있고. 하긴, 횡성 하면 한우지. 이 소는 잡아먹으려고 키우는 거야?”
아내는 겁이 많고 큰 눈을 껌벅이는 소를 향해 잡아먹으려고 기르는 거냐며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아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아내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소여물을 다듬었다. 하지만 아내의 말이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다. 잡아먹으려고 키우는 거야?
소를 끔찍이 생각하던 횡성사람들이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점점 줄고 소들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생활로 접어들자 횡성사람들은 소를 식용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에겐 여전히 소는 가족과 같은 존재이다.
아내가 돌아갔다. 아내는 은밀히 여기 내려와서 같이 지내는 것도 괜찮겠다고 이야기했다.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물론 함께 지내는 것이 더 좋을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남편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큰 눈을 껌벅이는 소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일까.
오늘도 조용히 어머니가 작은 소반에 밥과 국, 반찬을 담아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민철의 점심을 주기 위함이었다. 몇 날 며칠 술에 취해 사네 못사네 하던 아들을 위해 조용한 걸음으로 콩나물국을 끓여온 것이다. 평소 같았으면 이놈의 후레자식이라고 욕을 한 바가지 했을 아버지였지만 그저 잠잠히 신문만 바라보신다.
민철은 아버지와의 추억이 없다. 아버지가 소리 한번 크게 내실 때면 심장이 떨려 오줌을 지린 적도 있었다. 민철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다정하게 학교를 데려다 주는 친구의 아버지나 학원을 땡땡이쳐도 눈감아주고 함께 분식집에 들어가는 아버지. 민철에게 그런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었다. 옆집 아저씨라면 모를까.
그맘때 아이들이라면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놀이공원 가족사진. 민철에게는 사진 대신 민철이 그려놓은 그림 한 장뿐이었다. 그림에도 아버지는 없다. 엄마와 민철 그리고 남동생뿐.
설사 그 그림을 아버지가 보았다고 해도 민철이 아는 아버지라면 조금도 서운해하지 않았을 거다.
민철의 고등학교 친구들은 담배를 피웠다. 가끔 술도 마셨으나 다행히 민철에게 권하지는 않았다. 민철은 친구들이 소위 나쁜 짓을 할 때에도 아버지가 무서워 일탈을 꿈꿔본 적도 없다. 혹 꿈에 그런 장면이 나왔더라도 놀란 마음에 하루 종일 가시방석 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민철은 대학도 부모님이 원하시던 의대에 갔고 크게 속 한 번 썩힌 적이 없는 착한 아들이었다. 소위 말하는 엘리트코스를 밟아온 민철에게 큰 사건이 터졌다. 예기치 않게 찾아온 의료사고.
단순히 민철의 잘못만은 아니었다. 환자 가족들도 크게 노여워하지 않았지만 민철은 혼란에 빠졌다. 처음으로 자신이 집도한 환자가 생명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민철은 의사를 그만두어야 하나 생각할 정도로 혼란스러웠고 다시는 메스를 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고가 있고 난 뒤 민철은 일주일간 휴가를 냈다. 몇 날 며칠을 술로 지새우던 그에게 아버지가 조용히 다가갔다.
“옷 챙겨 입고 나와라.”
민철이 대답을 하기도전에 아버지는 조용히 낚시도구를 챙기셨다. 집 밖을 나가기도 싫었던 민철도 웬일인지 말없이 따라나섰다.
아버지가 낚시를 간다고 하면 어김없이 오던 곳이다. 그곳에서 둘은 하염없이 낚싯대만 바라보았다.
“미안하구나.”
낮은 음성으로 아버지가 말했다. 민철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며칠째 술만 퍼마셔서 그런지 헛것이 들리는 줄 알았다. 그래서 미쳐 대답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못 했다.
“많이 힘드냐. 자식 다 큰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네. 사람이 죽는다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거다. 그 사람 목숨 생각하면서 더 많은 사람 목숨을 위해 노력하면 되지 않겠냐.”
그렇게 무섭던 아버지가 왜 미안하다고 하셨을까. 그리고 아버지가 미안해해야 하는 건 무엇일까. 어릴 적 놀이동산에 한번 데려가지 않은 일일까 아니면 회초리 한 대 정도면 될 것을 열대를 때리고도 모자라 씩씩거린 일을 말하는 걸까.
물고기가 미끼를 물었는지 던져놓은 찌가 들썩거렸다. 하지만 아버지도 민철도 낚싯대를 건져 올리지 않았다. 다시금 찌가 잠잠해졌다. 미끼만 먹고 달아났다 보다.
아버지는 민철이 어렸을 적 이곳에 온 적이 있다고 했다. 민철이 기억을 못 하는 것일까. 아니면 민철의 기억 속에 있던 아버지와의 추억을 민철이 스스로 지운 것일까.
민철은 퉁퉁 부은 아버지의 손을 말없이 잡아주었다. 그리고는 이 시간을 잊지 않으려는 듯 낚시터를 빙 둘러볼 뿐이었다.
어느 날 문득 걸려온 전화 한 통. 초등학교 동창생에게 걸려온 전화이다. 사실 그녀가 학교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 초등학교 동창생 인줄은 꿈에도 몰랐다. 설거지를 하던 도중에 급히 받은 전화라 대충 받고 끊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생각보다 길어진 통화에 고무장갑까지 벗고 진지하게 전화를 받았다.
1993년 폐교가 된 생둔분교. 가물가물한 이름을 말하는 동창생이지만 일단 반갑게 통화를 했다. 평소보다 한 옥타브 정도는 더 높은 톤의 목소리에 동창생과 통화를 하는지 콜 상담원직원과 통화를 하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걸려온 전화의 요지는 이번 동창회는 특별하게 분교에서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반드시 참석하라는 것. 권유가 아닌 통보다.
홍천에서 서울로 떠나온 지가 언제인데. 그리고 이름도 얼굴도 가물가물한 옛 친구들과의 분교캠핑이라니. 다 늙어서 무슨 캠핑이람?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다.
홍천 시내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나오는 오지마을. 그동안 궁금하긴 했다. 매캐한 연기와 콘크리트 덩어리들 사이에서 쉼 없이 달려온 그동안의 시간 속에서 이곳이 궁금하긴 했다. 학교도 친구들도 마음속으로 안녕을 전해야만 했던 추억들이었다.
미숙이의 끈질긴 설득에 못 이기는 척 동창회에 나가기로 했다. 약속장소 도착 5분 전 친구들이 나를 못 알아보면 어쩌나, 초등학교 친구들이라 얼굴이 많이 변했을 텐데. 똑같이 나이를 먹고 같이 늙어가는 처지였으나 어쩐지 늙는다는 것이 서럽게 느껴졌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동창회 소식을 알리던 미숙이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전화 속 목소리와 다를 것이 없었다.
“어머 반갑다. 얘, 얘는 어떻게 늙지를 않니?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엉?”
궁금한 것이 많은 모양이었다. 버스 안에 앉아있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니 졸업을 하기 전 떠난 수학여행이 생각났다. 많지 않은 전교생이라 소풍 정도로 보였겠지만 그 나름의 추억이 있었다.
도심의 때가 묻지 않은 마을에 도착하니 감회가 새롭다. 점심도 그때의 추억 그대로 김밥에 주황색이 진한 환타 병까지 준비되었다. 삼삼오오 둘러앉아 점심을 먹으니 언제 그랬냐는 듯 어색함이 눈 녹듯이 사라진다. 세월이 무색하게도 어색함이 없는 친구들. 맨 앞자리에 앉던 키 작은 친구, 뺑뺑이 안경에 반에서 일 등만 하던 반장 모두 그대로이다.
남자들은 물고기를 잡겠다며 바지를 걷어 올리고 족대를 들고 한껏 들뜬 모습으로 계곡으로 향했고 여자들은 금방 쪄낸 옥수수를 하나씩 들고 살아온 이야기를 나눴다.
일찍 시집갔던 친구는 벌써 손주를 보았고 여태껏 일만 하다 결혼을 못 한 친구도 있었다. 삶이 다 제각각이었지만 다들 열심히 살았나 보다.
언젠가 경비아저씨와 악을 싸우며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는 중년의 여성을 본 적이 있다. 내 나이와 비슷한 중년의 여성은 쉬지 않고 말을 했고 그 모습이 적잖이 꼴 보기 싫었다. 그 이후로 중년의 여성이 쉼 없이 말을 하는 것은 결코 아름답지 않음을 느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모인 이들 앞에서 쉼 없이 지난날을 곱씹고 있다. 누가 보면 꼴 보기 싫을 수도 있으나 상관하지 않는다.
어느새 내 옆에 와 있는 미숙이가 가볍게 한마디 던졌다.
“거봐, 오길 잘했지?”
빙그레 웃었다. 오길 잘했다. 2013년이 아닌 1993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으니까.
밤공기가 제법 쌀쌀해졌다. 서울 도심 한복판이었으면 열대야라며 손부채질을 끊임없이 해댔겠지만 이곳의 공기는 청명했다. 달도 밝고 별도 쏟아질 듯이 빛났다.
어느 샌가 친구들은 모두 별을 바라보았다. 언제 다시 이곳에 모일 수 있을까. 벌써 헤어짐이 아쉬운 걸까. 그리움을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의 행복과 기억이 추억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것인지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몰랐을 것이다.
밤공기를 들이마셔 본다. 차가운지 따뜻한지 모를 공기가 콧속으로 들어와 마음에 머문다.
그날도 어김없이 눈이 내렸다. 희미한 눈발이 흩날리다 금방 그칠 것 같더니, 이내 눈망울들이 모이고 모여 굵은 함박눈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열차는 힘찬 경적소리를 내며 달리기 시작했다.
12월 13일이면 평창에는 하얗게 눈꽃이 핀다. 하얀 눈꽃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고고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열차에 탄 사람들 중 유난히 슬픈 표정을 한 여인이 눈에 띈다.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은 그녀는 한참을 눈꽃을 바라보더니 조용히 작은 간이역에 내렸다. 사람의 발길이 끊인 지 오래된 간이역이라 평소대로라면 기차기 서지 않지만 12월 13일이면 한 사람을 위해 기차가 멈추어 섰다.
그녀는 가늘게 떨리는 손끝으로 간이역 구석구석을 느꼈다. 그리고는 간이역에 작게 쓰인 시를 응시했다.
그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마을의 청년들이 공사현장에 끌려가지만 않았어도, 아니 그날 그렇게 눈이 많이 오지만 않았어도 둘은 아름답고 행복한 미래를 함께 꿈꾸었을 것이다.
마을에서 모인 청년들은 공사현장에 다다르기 전 자그마한 간이역에 머물게 되었다. 청년들로 인해 고요하던 간이역은 금세 북적거렸다. 남자도 다른 청년들과 함께 달걀을 먹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그때 맞은편에 앉아있는 여자가 눈에 띄었다. 흰색 원피스 차림의 여자는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남자의 눈에 비친 여자의 모습은 한없이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렇게 첫눈에 반하게 된 남자는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간이역에서 여자를 기다리며 여자를 위한 시를 써내려갔다. 공사현장에서 궂은일을 할 때에도 남자는 여자를 위한 시를 잊지 않았다. 그런 남자의 성실한 마음에 여자도 남자의 마음을 받아주었고 둘은 간이역에서 아름다운 사랑을 키워나갔다. 남자는 현장으로 가는 열차를 타기 전에 둘만이 아는 장소에 시를 적은 편지를 숨겨놓았다. 그러면 여자는 남자가 탄 열차가 도착하기 전 먼저 간이역에서 남자가 써놓은 시를 읽으며 남자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아름다운 사랑을 키워나가던 둘은 남자의 공사가 끝나고 나면 꼭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자고 약속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눈이 빗방울처럼 쏟아져 내려 바닥에는 금세 눈이 쌓였다. 남자는 그날도 현장에 나갔다. 그날따라 위태로운 난간에서 작업을 해야 했던 그의 주머니 속에는 편지 한 장과 조그마한 반지가 들어있었다. 눈보라가 심하여 작업을 중단하라는 이야기에 난간에서 내려오던 그의 주머니에서 순간 반지가 또르르 떨어졌다. 다행히 반지는 난간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었고 남자는 손을 뻗어 난간의 끝으로 손을 내밀었다. 눈보라로 시야가 흐려지고 난간을 잡고 있던 손이 미끄러지면서 남자는 그대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 시각 간이역에서 여자는 남자를 처음 만났을 때 입었던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어김없이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여자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오지 않는 남자를 기다렸고 마침 열차에서는 남자와 함께 공사현장으로 갔던 청년을 만나게 되었다. 여자는 남자의 사고소식을 들었고 청년은 여자에게 남자가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와 반지를 전해주었다. 눈이 내리던 그날, 그날이 12월 13일이다.
그녀는 시를 바라보다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처럼 흐느껴 울었다. 그리고는 풀썩 주저앉아 한참을 더 울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눈발이 점점 가늘어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 구름 사이로 말갛게 햇볕이 들었다.
그리고 14일, 15일 계속해서 시간은 흐를 것이다. 그리고 다시 돌아올 12월 13일에는 어김없이 두 사람의 비극적인 사랑을 알리는 눈이 내릴 것이고 소복이 쌓인 눈꽃은 아름답게 반짝일 것이다.
주말인 오늘은 승호가 가장 기다리는 날 중 하나입니다. 오늘은 아빠와 단 둘이 여행을 떠나는 날이기 때문이지요. 눈을 뜨자마자 승호는 아빠에게 달려갑니다. 오늘의 목적지가 궁금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아빠는 어떤 영문인지 목적지를 알려주지 않는 것입니다. 아빠 다리에 매달려도 보고 힌트라도 달라고 졸라보아도 요지부동이었습니다. 돌아오는 말이라고는 그저 잠자코 아빠만 믿고 따라오라는 말뿐이었습니다.
궁금증과 기대에 한껏 들뜬 승호는 연신 싱글벙글하며 동생인 연호에게 자랑도 늘어놓았습니다. 드디어 출발입니다. 아빠 차에 탄 승호는 엄마와 동생에게 인사를 한 뒤 콧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 도착하지 않는 바람에 승호는 그만 지쳐 잠이 들었습니다. 집에서 출발한 뒤 무려 3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잠에서 깬 승호는 도로 이정표를 보고 강원도 태백에 와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승호는 속으로 오늘 아빠와 둘이 등산도 하고 맛있는 한우도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마침내 도착한 목적지. 그런데 도착한곳은 태백산도 아니고 한우고기집도 아닌 석탄박물관이라는 곳이었습니다. 급격히 실망한 승호는 투덜거리고 싶었지만 아빠가 목적지도 알려주지 않고 여기로 온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일단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곳에는 책에서만 보던 광부들이 캄캄한 동굴에서 석탄을 캐는 모습과 그 시대 광부들의 삶을 모형으로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모형들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향해 아빠는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하나 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옛날 옛날에 승호가 아직 태어나기도 전이니까 아빠가 딱 승호만한 나이였을 때였어. 아빠의 아빠. 그러니까 승호 할아버지는 여기 보이는 사람들처럼 석탄을 캐는 광부셨어. 할아버지도 이렇게 검은 때가 온 몸을 뒤덮어도 열심히 일하셨지. 우리 승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삼겹살 있지? 그것도 사실 이렇게 하루 종일 탄가루에 뒤덮여 있는 광부들이 검은 가루가 씻겨 내려가라고 먹었던 음식인거 알았니?
그리고 아주 가난하던 시절 가족들의 끼니와 교육을 위해 앞이 보이지도 않는 어두컴컴한 지하 막장에서 땀 흘려 일하셨단다. 할머니는 노란 양은 도시락에 부족하지만 정성스레 담은 도시락을 매일 싸드렸어. 그리고 할아버지가 돌아오시기만을 기다렸지. 달그닥 달그닥 빈 도시락 통이 부딪히는 소리만 들려도 반가운 마음에 버선발로 뛰어나가셨던 모습이 생생해. 석탄 캐는 일이 목숨을 내놓고 일할만큼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에 도시락 소리가 들려야만 안심을 하곤 했었지. 승호 넌 모르겠지만 할아버지는 정말 멋진 일을 하시던 분이셨어.”
이야기를 하는 아빠의 눈이 잠시 붉어졌습니다. 개구쟁이 승호도 이야기를 듣고는 얌전히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습니다. 아빠가 왜 오늘 다른 곳이 아닌 태백에 석탄박물관에 왔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며칠 후 승호는 4시부터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두 시간 뒤에 아빠가 회사에서 돌아오실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승호는 아빠와 석탄박물관에서 들었던 아빠의 이야기가 자꾸만 머릿속에서 맴돌아 아빠도 할아버지가 보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빠 몰래 승호가 맛있는 저녁밥을 만들어드리기로 마음먹은 것이지요. 서툰 솜씨지만 뚝딱뚝딱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딩동! 초인종이 울리고 아빠가 들어오셨습니다. 으쓱한 마음에 승호는 아빠에게 달려가 품안에 쏙 안기며 아빠를 위한 멋진 선물을 준비했다고 말했습니다.
삼겹살에 돼지고기 김치에 돼지껍데기 등 돼지고기로 가득한 한 상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빠 귀에 대고 귓속말로 속삭였습니다.
“아빠, 아빠도 할아버지처럼 정말 멋진 아빠에요!”
아빠도 승호도 정말 푸짐하고 따뜻한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