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인 오늘은 승호가 가장 기다리는 날 중 하나입니다. 오늘은 아빠와 단 둘이 여행을 떠나는 날이기 때문이지요. 눈을 뜨자마자 승호는 아빠에게 달려갑니다. 오늘의 목적지가 궁금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아빠는 어떤 영문인지 목적지를 알려주지 않는 것입니다. 아빠 다리에 매달려도 보고 힌트라도 달라고 졸라보아도 요지부동이었습니다. 돌아오는 말이라고는 그저 잠자코 아빠만 믿고 따라오라는 말뿐이었습니다.
궁금증과 기대에 한껏 들뜬 승호는 연신 싱글벙글하며 동생인 연호에게 자랑도 늘어놓았습니다. 드디어 출발입니다. 아빠 차에 탄 승호는 엄마와 동생에게 인사를 한 뒤 콧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 도착하지 않는 바람에 승호는 그만 지쳐 잠이 들었습니다. 집에서 출발한 뒤 무려 3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잠에서 깬 승호는 도로 이정표를 보고 강원도 태백에 와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승호는 속으로 오늘 아빠와 둘이 등산도 하고 맛있는 한우도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마침내 도착한 목적지. 그런데 도착한곳은 태백산도 아니고 한우고기집도 아닌 석탄박물관이라는 곳이었습니다. 급격히 실망한 승호는 투덜거리고 싶었지만 아빠가 목적지도 알려주지 않고 여기로 온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일단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곳에는 책에서만 보던 광부들이 캄캄한 동굴에서 석탄을 캐는 모습과 그 시대 광부들의 삶을 모형으로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모형들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향해 아빠는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하나 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옛날 옛날에 승호가 아직 태어나기도 전이니까 아빠가 딱 승호만한 나이였을 때였어. 아빠의 아빠. 그러니까 승호 할아버지는 여기 보이는 사람들처럼 석탄을 캐는 광부셨어. 할아버지도 이렇게 검은 때가 온 몸을 뒤덮어도 열심히 일하셨지. 우리 승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삼겹살 있지? 그것도 사실 이렇게 하루 종일 탄가루에 뒤덮여 있는 광부들이 검은 가루가 씻겨 내려가라고 먹었던 음식인거 알았니?
그리고 아주 가난하던 시절 가족들의 끼니와 교육을 위해 앞이 보이지도 않는 어두컴컴한 지하 막장에서 땀 흘려 일하셨단다. 할머니는 노란 양은 도시락에 부족하지만 정성스레 담은 도시락을 매일 싸드렸어. 그리고 할아버지가 돌아오시기만을 기다렸지. 달그닥 달그닥 빈 도시락 통이 부딪히는 소리만 들려도 반가운 마음에 버선발로 뛰어나가셨던 모습이 생생해. 석탄 캐는 일이 목숨을 내놓고 일할만큼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에 도시락 소리가 들려야만 안심을 하곤 했었지. 승호 넌 모르겠지만 할아버지는 정말 멋진 일을 하시던 분이셨어.”
이야기를 하는 아빠의 눈이 잠시 붉어졌습니다. 개구쟁이 승호도 이야기를 듣고는 얌전히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습니다. 아빠가 왜 오늘 다른 곳이 아닌 태백에 석탄박물관에 왔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며칠 후 승호는 4시부터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두 시간 뒤에 아빠가 회사에서 돌아오실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승호는 아빠와 석탄박물관에서 들었던 아빠의 이야기가 자꾸만 머릿속에서 맴돌아 아빠도 할아버지가 보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빠 몰래 승호가 맛있는 저녁밥을 만들어드리기로 마음먹은 것이지요. 서툰 솜씨지만 뚝딱뚝딱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딩동! 초인종이 울리고 아빠가 들어오셨습니다. 으쓱한 마음에 승호는 아빠에게 달려가 품안에 쏙 안기며 아빠를 위한 멋진 선물을 준비했다고 말했습니다.
삼겹살에 돼지고기 김치에 돼지껍데기 등 돼지고기로 가득한 한 상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빠 귀에 대고 귓속말로 속삭였습니다.
“아빠, 아빠도 할아버지처럼 정말 멋진 아빠에요!”
아빠도 승호도 정말 푸짐하고 따뜻한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내 이름은 성춘향이다. 나이는 열 살이다. 나는 학교나 학원뿐만 아니라 어디를 가도 금세 주목받기 일쑤이다. 아마 이름 때문이겠지. 나는 한동안 누가 내 이름을 물어보는 것이 싫었다. 성춘향이라고 하면 무엇인지 나를 통해 춘향전의 춘향이를 떠올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아닌 소설속의 인물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은 데 말이다.
언젠가 할머니 댁에 친척들이 모두 모인 적이 있다. 나는 언니, 오빠들이 많이 신 나게 방방 뛰어다녔으나, 할머니께서는 춘향이가 단정하고 단아하지 못하고 그렇게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어다녀서야 되겠냐고 꾸짖으셨다. 난 춘향이라는 이름 때문에 늘 조심조심하여야 했고 상냥하게 웃어야 했다. 특히나 내가 남원사람이라서 더욱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가끔 잠자리에 들 때면 이런 생각을 한다. 정말 소설에 나오는 춘향이도 조신하고 얌전하며 단아했을까.
나는 일기 속에 춘향이를 만나보고 싶다고 적었다. 춘향이를 만나면 꼭 한번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잠자리에 들면서 되뇌었다. 지금의 춘향이가 과거의 춘향이를 만나는 상상을 말이다. 생각만 해도 키득키득 웃음이 새어나왔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렸다. 춘향이의 꿈속이다. 그곳은 조선시대였다. 춘향이도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있었다. 춘향이는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춘향이의 이름을 불렀고 춘향이는 대답을 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뒤를 돌아본 것이 자신 하나가 아닌 또 다른 사람도 있었던 것.
그리고 춘향이를 부른 사람도 열 살 성춘향을 부른 것 같지 않았다.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나 하는 생각에 고개를 돌려보니 웬 도령이 한 처자에게 춘향이라고 부르며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순간 어린 춘향이는 자신이 정말 과거의 춘향이를 만나러 온 것임을 짐작했다. 놀랍고도 신기한 마음에 춘향이는 몰래 과거의 춘향이 뒤를 졸졸 따라갔다. 인기척을 느낀 과거의 춘향이는 어린 춘향이의 손을 탁 잡았다.
“얘! 너는 뉘 집 자제이기에 나를 이리도 졸졸 쫓아다니는 것이냐!”
“아... 그게.. 그게 아니라.”
놀란 춘향이는 쉽게 말을 잇지 못하다가 두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혹시 언니가 그 성춘향이에요? 내 이름도 성춘향이라고 해요. 나는 저 먼 미래에서 왔어요. 나이는 열 살이에요.”
“뭐? 언니? 그리고 먼 미래?”
과거의 춘향이는 이 꼬마 춘향이가 하는 말을 도통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고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미래에서 온 춘향이가 말을 이었다.
“믿을 수 없겠지만 사실이에요. 먼 미래의 이곳 남원 땅에서 왔다고요. 그리고 중요한 건 난 언니가 참 보고 싶었어요. 내 이름도 춘향이니까.”
과거의 춘향이는 이름이 같다는 것에서일까 여전히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미래에서 왔다는 춘향이가 궁금해졌다.
“그래? 미래에서 왔다고! 믿을 수 없지만 네 말이 사실이라고 치자꾸나. 그런데 왜 날 찾아온 거지?”
둘은 졸졸졸 흐르는 시냇가 앉아 어느덧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지요.
“난요. 누가 내 이름을 물어보는 것이 싫었어요. 이름을 말하면 먼저 웃음부터 터졌고 그다음으로는 내 얼굴을 보면서 언니를 떠올렸을 테니까요. 사람마다 자신의 머릿속엔 춘향이라는 사람이 다 다른 모습으로 있나봐요. 마치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첫사랑처럼요. 그리고 모두들 자신이 생각하는 언니의 모습을 나한테서 보길 바라는 것 같았어요. 얌전해야 하고 조신해야 하며 심지어는 이몽룡을 만나야 되겠다고 놀리기도 하였지요.”
과거의 춘향이는 미래에서 온 춘향이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 길이 없었으나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말했지요.
“그런 것 신경 쓰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그저 춘향이라는 이름의 너. 너 자신을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어. 그러다보면 사람들도 다른 사람이 아닌 너를 기억하게 될 거야. 춘향이라는 이름의 다른 너를 말이지. 새로운 춘향이를 네가 만들어 나가는 것 말이야.”
그렇게 말하고는 어린 춘향이의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따뜻하고 보드라운 손길에 어린 춘향이는 잠에서 깬 줄도 몰랐지요. 눈을 떠보니 옆에 자던 곰돌이의 손을 꼭 잡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춘향이의 학교에서 자신의 이름의 뜻과 자기소개로 발표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서둘러 학교에 간 춘향이는 꿈속에서 만난 과거의 춘향이의 말대로 자신의 이름을 사랑하게 되었고 당당하고 자신 있게 말했지요. 이제부터 과거의 춘향전을 이을 새로운 춘향전이 시작되었다고.
절에만 간다 하면 심통을 부리는 아들 녀석이 유달리 좋아하는 절이 있다. 바로 부산에 있는 해동용궁사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맞는 첫 여름방학을 기념하여 온 가족이 함께 바다에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들렀던 곳이 바로 해동용궁사다.
나라고 해서 불심이 깊어 절에 가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는 불자이셨지만, 나는 전형적인 무교다. 내가 절을 좋아하는 것은, 교회와는 또 다른 빛깔의 화려한 색채들과 그윽한 향내의 조화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용! 용 있는 절! 용 사는 절!”
“어휴, 진형아. 조용히 좀 하자. 지금 가고 있잖아.”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차 안에서 소리를 질러 대는 진형이를 달래느라 진땀을 뺐다. 남편이 옆에서 ‘이제는 진형이가 당신보다 더 절을 좋아하게 되었다’며 웃었다. 사실 나는 오랜만에 비키니도 입어보고 싶고, 바다 절벽 위에 자리한 펜션에서 여유를 즐기고 싶은데 주객이 전도 되어 버린 기분이다.
남편이 취향이 워낙에 유치한지라 진형이가 걸음마를 시작할 무렵부터 함께 <드래곤볼>을 보았는데, 진형이는 여기 나오는 용신을 제일 좋아했다. 어린 아이가 보기에는 폭력적인 면이 없지 않은 만화영화라 걱정했었는데, 주인공이 지구를 구하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라 그냥 커다란 용신이 멋있단다.
그리고 그 때부터 용 모형만 보면 사 달라고 떼를 쓰곤 했는데, 그런 진형이를 해동용궁사로 유인하기 위해 ‘그 절에 사실 용이 살고 있다’고 말한 것이 이렇게 일이 커질 줄은 정말 몰랐던 것이다.
결국 다른 일정을 모두 제쳐 두고 용궁사를 제일 먼저 찾았다. 일부러 평일을 골라 왔는데도 주차장에 차들이 넘쳐나는 것이, 혹시 다른 엄마들도 다 나와 같은 거짓말을 해서 아이들을 데려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엄마, 빨리 좀 와! 엄마는 느림보야! 무천도사 같아!”
그게 누군지 묻기도 전에 진형이가 저만치 달려 나간다. 노점상에서 파는 씨앗 호떡 하나를 들려주어 겨우 진형이를 진정시키고 용궁사 가는 길을 올랐다. 같이 좀 말려 주면 좋을 텐데, 남편은 용을 외치며 방방 뛰고 있는 진형이가 그저 귀여운 모양이었다. 용궁사 가는 길에 있는 십이지상 앞에서 원숭이띠를 찾아 사진을 찍어 주니 또 좋아 죽겠단다. <드래곤볼>에 나오는 주인공도 원숭이라던데, 자기가 만화영화 속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가 보다.
두 번째로 오는 길인데도 이렇게 난리 법석인데, 초행길은 오죽했겠는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경에는 관심도 두지 않고 용을 찾고 있던 진형이가 없어져 울상이 돼 있는데, 대웅보전 앞에 서 있는 진형이가 보였다.
무엇을 보고 있나 했더니, 대웅보전 앞에서 꿈틀대고 있는 커다란 비룡상과 비룡이 쥐고 있는 여의주였다. 용이 좋다, 좋다 노래를 부르더니만 막상 눈앞에 있는 용을 보니 무서웠던지 뒷걸음질을 치던 진형이가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내가 진형이한테 가기도 전에 지나가던 어르신 한 분이 얼른 진형이를 일으켜 세웠는데, 진형이는 감사하다는 인사 대신 ‘드래곤볼!’하고 소리를 질렀다.
세상에, 드래곤볼이라니! 얼굴이 새빨개진 나를 제외하고는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심지어는 남편까지도 저만치 서서 큰 소리로 웃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 그 당혹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백팔계단 초입에 선 득남상의 코와 배에 사람들의 손때가 잔뜩 묻은 것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용궁사에 들러, 나도 옥두꺼비 같은 아들 하나 내려 주십사 하고 득남상의 배를 쓰다듬어 본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낳은 아이가 용궁사에서 용을 찾겠다고 신이 나 있으니, 정말이지 인간사란 알 수 없는 일이다. 남편이랑 진형이가 앞서 나가서 빨리 오라고 마구 손짓을 해 댄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진형이가 조금 더 자라 용신을 믿지 않게 되면 거짓말에 대한 책임을 물어오지는 않을까 불안해졌다. 아무렴 어떠랴. 지금 이렇게 즐거우니. 용궁사에서 날아올랐다는 용님께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아리랑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
막걸리 한 사발을 기분 좋게 들이키신 할머니께서 목청 높여 노래 한 가닥을 뽑으셨다. 자리에서 일어서서 부르시는 것도 아니고, 앉은 자리에서 울음을 울 듯 부르신다. 친척들의 분위기가 어느 새 숙연해 졌다.
애국가에 이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노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곳이야 널리고 널렸지만, 할머니께서 부르시는 아리랑만 들으면 나도 모르게 괜스레 코끝이 찡해진다.
“어이구, 우리 어머니. 또 이렇게 많이 취하셨네.”
아버지가 할머니를 이부자리로 부축해 가시는데, 어느 새 내 입에서도 아리랑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다. 콧노래로 내 노래를 따라 부르시던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정말이지, 이게 딱 우리 어머니 노래지. 옛날에는 이 노래만 부르시면 눈물을 뚝뚝 흘리셨는데, 이제는 그러지는 않으시는구나.”
가락이 슬픈 노래이긴 했지만 눈물을 흘릴 정도는 아닌데, 왜 그런가 여쭈어 보았더니, 아버지가 아리랑고개에 얽힌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셨다. 외증조 할아버지, 그러니까 할머니의 아버지는 괴나리봇짐을 지고 성북구의 가파른 고개를 매일같이 넘어 다니던 분이었는데, 어느 겨울 날 고개 하나에서 기력이 다하셔서 쓰러지고 마셨다는 것이다. 추운 날에 몇 시간이나 고개에 쓰러진 채 겨울바람을 맞아야 했던 할아버지는 그대로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길을 가던 나는 ‘아리랑고개’라고 적힌 고개를 발견했다. 자주 가던 길이 아니라 평소보다 많이 두리번거리며 걸었기 때문일까. 서울 시내에 언덕길은 많고 많지만, 지명에 ‘고개’가 들어간 경우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추운 겨울 날 언덕에서 쓰러지고 마셨다는 우리 외증조 할아버지. 나는 노래 속의 이 고개를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오십 년 전, 아니, 백 년 전의 이 고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마 할아버지처럼 봇짐을 지고 수염을 기른 사람들이 흰 옷 차림으로 이 고개를 넘고 있지 않았을까.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자연스레 발걸음이 느려졌다. 조금 더 숙연하게, 조금 더 진지하게 넘어야 할 것 같은 고개였다.
“아리랑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
나는 입 안으로 웅얼웅얼, 아리랑을 부르며 고개를 넘었다. 외증조 할아버지가 쓰러지신 채 가쁜 숨을 내쉬었던 고개도 어쩌면 이 고개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리랑을 처음 불렀던 사람이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을 목 놓아 부르며 주저앉았던 고개가 바로 이 고개일지도 모른다. 이 고개를 넘으며 생겨난 이야기들과, 이 고개 너머로 사라진 이야기들이 내 머릿속에서 차례차례 깜빡였다.
고개를 다 넘고 나서야 나중에 알게 된 일인데, 아리랑고개의 본래 이름은 정릉고개였다 한다. 나운규 감독이 영화 <아리랑>을 촬영한 장소라 아리랑고개라는 지명을 쓰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러고 보니, 아리랑고개 마루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리랑 씨네 센터가 보였다. <쉬리>, <번지점프를 하다> 등의 우리나라의 옛날 영화와 함께 <사운드 오브 뮤직>, <벤허>와 같은 외국 고전 영화들의 감독과 주연배우를 새긴 동판이 거리 보도블록을 장식하고 있었다.
왠지 속은 것 같은 기분에 억울해 한 것도 잠시. 아리랑고개를 넘으며, 머릿속으로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아리랑을 들으며 이야기들을 얻었으니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그러니까 한 백 년 쯤 지나면 누군가가 이 아리랑고개를 넘어가는 내 모습을 상상할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무슨 영문인지 아침부터 밖은 소란스러웠다. 웅성거리는 곳에서 드문드문 들리는 이야기를 조합해보니 오늘 하루 동안 정전일거라는 이야기였다. 암막커튼을 달아놓아 방안은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도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어두웠다. 불면증이 심한 내가 고안해 낸 최선의 방법 중 하나였다. 아무런 빛이 새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 느지막이 일어나 밖으로 나가보니 오후 2시 반이다. 밖은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소식이 있다고 하더니 밖은 아직 어둠이 내려앉을 시각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두컴컴했다.
“정전이면 텔레비전도 다 안 나오는 건가?”
나는 조그맣게 혼잣말을 읊조렸다. 부스스하게 일어났을 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전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별다를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일단은 무의식적으로 리모컨을 집어 들었으나 팟! 하는 소리와 함께 웅성거리며 켜져야 할 텔레비전은 켜질리 만무했다. 아차, 싶은 마음에 부엌으로 갔다. 뭐라도 먹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즉석밥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넣었다. 물론 이 고철덩어리도 반응할리 없었다.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선반에 놓인 수분이 날아간 식빵 한 조각을 입에 구겨 넣었다. 아직 어두운 밤이 오지 않았음에도 정전은 쉽게 적응되지 않았다. 마치 어두운 동굴 안에서 원시생활을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여겨졌다. 문명과 닿아있는 유일한 끈, 휴대전화의 전원을 켜보니 배터리도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빈집에 불빛도 없이 소파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으려니 나 자신이 무기력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문득 빛이 보고 싶어졌다. 베란다 창고에 가서 촛불이라도 찾아볼 요량으로 자신 있게 팔을 걷어붙이고 창고에 발을 들였으나 어두운 곳에서 촛불하나 찾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와당탕하고 아슬아슬하게 얹어놓은 살림살이들이 머리위로 쏟아져 내렸고 촛불을 찾기는커녕 천둥소리에 놀라 후다닥 거실로 뛰어 들어왔다. 조명이 없다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덩그러니 소파에 앉아있는데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가 떠올랐다. 성냥하나 켜면 맛있는 음식들이 떠오르고 또 하나의 성냥을 켜니 따뜻한 방안이 떠오르고 마지막 하나의 성냥을 켜며 잠이 들었다지. 성냥팔이 소녀에게도 있던 성냥이 나에게는 없다. 고로 빛을 찾아 나서야 했다.
우산 하나만 챙겨 나온 밖엔 비가 그쳐있었다. 비는 그쳤지만 어둠은 그대로였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 채 거리로 나섰다. 거리는 휘황찬란했다. 여러 간판과 가게에서 쏟아져 나오는 빛들로 눈이 부셨다. 불과 몇 시간동안 빛을 못 본 것뿐인데 빛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토끼눈을 떴다.
문득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올해 크리스마스에 남자친구가 생긴다면 꼭 가보고 싶다던 곳이 있다고. 필룩스 조명 박물관에서 크리스마스 특별전을 열었다고 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조명 조형물이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했다. 망설일 필요가 없다. 필룩스 조명 박물관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입장 한 시간 전에 도착하여 나름 여유 있게 박물관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곳은 거리에서 본 찬란한 조명과는 다른 느낌의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을 풍겼다. 아기자기한 조형물을 비롯하여 빛이 없던 시대의 이야기부터 현대의 조명 그러니까 일상생활 속 조명의 역할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찬찬히 둘러보면서 낮에 있었던 정전사태를 떠올렸다.
빛은 있어야 했다. 애써 어둠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어둠이 짙게 깔리면 깔리는 대로 어둠을 놔두면 되고 날이 밝아오면 밝는 대로 밝음을 즐기면 그만이었다.
빛을 받은 조형물들은 아름다웠다. 친구가 말한 대로 크리스마스에 왔더라면 더 아름다웠을 텐데, 하는 아쉬움까지 들었다. 폐장시간이 다 됐는지 드문드문 관람을 하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니 집안은 그리고 내 방안은 여전이 어두웠다. 나는 내 방안에 쳐있던 암막커튼을 확 걷었다. 어두웠던 집안이 한층 밝아진 듯 했다. 마치 은은한 조명을 하나 켠 것처럼. 그리고 조그맣게 혼잣말을 했다.
‘오늘 하루는 꿈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라!’
돌탑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승우.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는지 아니면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는지 모를 만큼 표정이 복잡 미묘하다. 이곳은 돌탑을 구경 온 사람들과 돌탑에 빌기 위해 오는 사람 이렇게 두 부류로 나뉜 듯했다. 조용히 돌탑을 바라보는 승우 옆으로 단체 관광객들이 이 돌탑에 대해 아는 지식이 많은 양 가타부타 떠들어 댔고 그 말 중에서는 거센 태풍이 휩쓸고 갔어도 이 돌탑만큼은 쓰러지지 않았다고 한다며 놀라워했다. 돌탑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은 저 높이 올라간 돌만큼이나 굳건했다. 기이한 현상일까. 그도 그럴 것이 돌탑 바로 옆에는 지난 태풍으로 인해 쓰러진 나뭇가지가 그 현상의 미스터리함을 더했다. 승우는 돌연 생각에 잠겼다.
평소 누구보다 이성적으로 살아온 승우였다. 학창시절 누구나 한 번쯤 떠들어대는 귀신 이야기조차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눈 하나 깜박 않고 넘겨오던 그였다. 그럴 때면 친구들은 재미없는 녀석이라고 웬만한 과학자들도 너보다는 덜 이성적일 것이라며 치를 떨기도 했다.
아마 그의 어머니가 지극히 미신을 믿어서일지도 모른다. 그의 어머니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점쟁이를 찾았고 운세를 보러 다녔다. 그렇게 극성을 떨던 어머니가 차마 집안에 굿판을 벌일 수 없었던 것이 승우 때문이리라.
아들인 승우가 수능을 칠 때에도 사법고시 시험을 칠 때에도 어머니는 극성을 떨었다. 마음 깊이 기도를 드렸고 지금 승우가 서 있는 이곳, 마이산 돌탑을 찾았다.
돌탑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성적인 아들의 명석한 두뇌 때문이었을까 승우는 원하는 학교에 붙었고 사법고시도 한 번에 붙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쓰러지셨다.
‘그렇게 찾아다닌 점쟁이는 엄마가 쓰러지실 것을 알았을까. 알았으면 귀띔이라도 해줄 것이지. 그럼 그렇지. 그런 미신들 다 소용없으니까 그렇게 누누이 믿지 말라고 말했건만.
그렇게 돈 갖다 바치고 시간 갖다 바치면 뭐해 정작 엄마는 이렇게 쓰러져 있는데.
내 말 들리지 엄마? 엄마 이젠 눈 좀 떠봐. 아들 왔어.’
심장박동을 알리는 그래프는 전혀 미동도 없었다. 승우는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힘껏 잡으면 그래프가 조금은 더 힘차게 움직이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래프는 조금의 오차도 없이 일정한 선을 이루며 그래프를 그려나갔다. 엄마의 손을 잡고 있던 승우의 손에도 조금씩 힘이 빠졌다. 손을 잡고 있는지 손을 대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손에 힘이 빠졌다.
승우는 돌탑을 찾기 전에 엄마가 입원해 있는 병실을 들렸다. 그렇게 호들갑을 떨며 운세를 이야기하던 엄마는 이상하리만큼 고요하게 눈을 감고 있다. 얕은 숨을 몰아쉬며 아기같이 쌔액쌔액 거렸다. 곧 깨어나시겠지. 승우는 생각했다. 만약 내가 이곳에 누워있고 엄마가 나를 지켜보는 입장이었다면 엄마는 어떻게 했을까. 의사의 말을 믿었을까 아니면 점쟁이 말을 믿었을까. 의사가 가망이 없다고 해도 점쟁이는 굿을 한번 한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 있다고 엄마를 꾀겠지. 아니 엄마의 지갑을 꾈 것이다.
승우는 다시금 돌탑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여전히 관광객들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돌탑을 바라보았고 저마다 소원을 입 밖으로 내뱉으며 돌을 찾아다녔다. 승우도 그 무리에 묻어 매끄러운 돌을 하나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말없이 누군가가 올린 돌 위에 살포시 올려보았다. 쓰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그리고는 여전히 미신은 믿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돌탑이 거센 태풍에도 쓰러지지 않았다니까. 엄마도 저 거센 돌탑처럼 흔들릴지언정 쓰러지진 않을 것임을 믿었다. 곧 언제 그랬냐는 듯 활기를 되찾을 것임을.
승우의 돌이 오르기 전 바로 밑에 있던 누군가가 올린 돌, 그것이 엄마가 그 전에 올린 돌일지는 알 수 없었다.
그곳을 떠나온 것이 벌써 햇수로 30년이 넘었다. 언젠가 다시 찾아오리라 마음먹었던 곳.
유난히 마당이 넓은 집이었다. 자그마한 나무들과 내 키보다 훌쩍 큰 담장에는 담쟁이넝쿨이 올망졸망 매달려 있었다. 담장 한 편에는 키가 자랄 때마다 그어놓았던 선이 있다. 담장을 뒤로하면 아버지가 시원하게 등목을 하시던 물이 졸졸 흐르는 수돗가가 있다. 아버지가 시멘트를 발라놓으시고는 밟지 말라고 그렇게 주의를 주셨는데 돌아다니다 발자국을 쾅하고 박아놓은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다.
이사 가야겠어.
그때에 아버지는 낮고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지만 꽤 울림이 있었다. 아버지는 조용히 엄마에게만 말한 이야기였지만 나와 우리 언니도 우리가 곧 이사를 가야 했음을 알았다. 나는 집을 떠난다는 아니, 동네를 떠난다는 상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언니가 왜 불안해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언니 왜 그래?”
“왜긴, 이 바보야. 우리 이사 간다잖아. 그럼 이 집에서도 못 살고 친구들도 못 만나게 될 거야.”
그랬다. 왜인지는 몰랐지만 아빠와 엄마가 집을 떠나야 했기에 나와 언니도 집을 떠나야 했다. 유난히 마당이 넓은 집이었다.
우리 집 뒷동네에는 자그마한 동산이 있었다. 동산에 올라가면 졸졸졸 실개천이 흐르고 풀피리 소리가 메아리쳐 울렸다. 졸졸졸 실개천이 흐르고 풀피리 소리가 메아리쳐 울렸다. 늙은 수탁의 울음소리에 눈을 뜨고 얼룩백이 황소의 게으른 울음소리에 잠이 들었다.
서울에 사는 아이들은 시골 근처에만 오면 똥냄새난다고 코를 틀어막았다. 여기에 지내면서 똥냄새라고 여기지 못했는데, 서울 친구들은 여간 깍쟁이가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그것은 똥냄새가 아니고 고향냄새인 줄도 모르는 서울깍쟁이들이었다.
서울로 이사를 오고 나서부터 한동안은 마당이 넓던 우리 집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길을 잃었고 울고 있었다. 낯설지도 익숙하지도 않은 분위기에, 이제는 남의 집이 되어버린 우리 집을 보고 나는 울었다. 꿈에도 잊히지 않는 우리 집이었다.
언젠가 꿈에서 나는 초인종을 눌렀고 그곳에서 나온 정말 그 집 주인에게 여기가 우리 집이에요. 우리 집이었어요. 라고 하며 운 기억도 난다. 지금도 가끔 꿈을 꾸지만 꿈속에만 가면 나는 항상 다섯 살 그때의 어린 나로 돌아간다. 지금은 비록 울지는 않지만 길을 한참 헤매다 찾곤 한다.
이제야 왔다. 그곳에 여전히 실개천이 졸졸졸 마을을 휘돌아 나갔고 얼룩백이 황소는 게으르게 울었다. 담쟁이넝쿨은 내 키보다 훌쩍 큰 담장 전체를 휘감았고 여전히 수돗가의 발자국은 깊게 패여 있었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꿈속에서도 잊히지 않았던 곳.
마당 넓은 집에 돌아왔다.
그곳이 어디든 산을 오르는 것이 미연은 영 못마땅하다. 서울의 많고 많은 곳 중에 산이라니. 미연은 혀를 끌끌 찼다.
“너도 참 너다. 이 넓은 서울에 갈 곳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동네 산이니?”
“왜, 좋잖아. 자 공기한번 쭉 마셔봐. 이렇게 맑은 공기를 돈 안내고 마시는 걸 감사해야해. 그리고 멀리 가지 않고 등산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좋아!”
“웃겨. 너랑 주말을 보낸다고 온 내가 바보다.”
미연은 투덜거리면서도 연수의 뒤를 곧잘 쫒아온다. 리본 끈으로 길을 안내하는 곳곳에는 이야기가 있는 관악산 둘레길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아, 힘들어. 원래 이렇게 힘든 코스였어? 동네산이 뭐 이래?”
“여기만 넘어가면 내리막길이야. 조금만 힘내. 너 다이어트 한다며, 한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지방 타는 소리가 들리지~ 안 들려?”
“놀리냐, 힘들어 죽겠구만. 물이나 좀 줘봐.”
관악산 둘레길 제2구간은 물과 바람 공기가 참 시원했다. 작고 아담한 계곡을 지나면 장승과 솟대가 등산객을 반긴다. 한여름이면 여름의 냄새가 나고 가을이면 또 가을의 냄새가 나는 곳이다. 흙길을 걷다보면 오르막길 내리막길이 번갈아가며 나왔다. 오르막을 오르다 지칠 즈음이면 내리막길이 나와 쉼을 주었고 땀이 식을 만하면 다시 오르막길이 나왔다. 작은 들꽃은 휴식을 함께 기뻐해주기라도 하듯 아담하게 피어있다.
희진은 미연이 올라올 수 있도록 보폭을 맞춰주었다. 그리고 뒤에서 미연의 등을 살짝 떠밀어주기도 하며 미연의 힘을 나누고자했다.
“어! 다람쥐다. 여기 다람쥐가 다 있네.”
“그러게, 귀엽다. 우리 이러고 있으니까 소풍 온 어린애들 같아.”
“소풍? 소풍이라면 소풍이지. 점심으로 김밥도 싸왔으니까, 제대 론데?”
미연과 희진은 마주보고 웃었다.
관악산 제2구간은 돌산 조망점에 올라 서울시내를 바라 볼 수 있으며 인근 호수공원도 둘러볼 수 있는 코스라고 했다. 미연과 희진도 곧 돌산 조망점 지점에 도착하였다. 한숨 돌리고 큰 바위에 털썩하고 주저앉으니 서울시내가 한눈에 다 담겼다. 이곳이 정상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는 것이 신기했다. 뭉친 다리근육을 털고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오이를 꺼냈다.
“경치는 좋네.”
“거봐, 따라오길 잘했지? 땀 흘리고 먹으니까 더 맛있는 것 같다. 그치?”
“이래서 사람들이 산을 오르는 걸까?”
“무슨 소리야?”
“아니, 그냥. 턱 끝까지 숨이 차고 다리가 후들거려도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걸 느끼고 자신이 숨을 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공기가 좋아서 오는 사람도 있고, 바람을 좀 더 많이 느끼고 싶을 수도, 그냥 산이라는 것 자체가 좋아서 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이야기가 있는 둘레길은 친구와, 가족과 연인 등 사랑하는 사람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각자의 산을 오르는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산이 주는 행복과 시원함은 각자의 추억대로 되가져갈 것이다.
누군가 산다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처럼 오르막길 내리막길이 있다고 했다. 흙길로 걷기도 했다가 딱딱한 아스팔트를 걷기도 하며 계단을 오르기도 하고 평지를 걷다 내리막길을 만나기도 한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그곳에 바람도 있고 물도 있고 나무도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구간까지 정복하고 나니 석수역이다. 꽤나 긴 코스를 마치고 내려오니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꽤나 알찬 주말을 보낸 것 같은 뿌듯함과 쾌감이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그저 그런 주말이었다면 집에서 밀린 잠을 잔다거나 텔레비전이나 붙잡고 있었을 것이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 50분.
“드디어 도착. 음, 막걸리에 파전 어때?”
“좋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