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힘내. 다와 간단 말이야.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아까부터 저 말만 족히 30번째다. 2000년도 밀레니엄을 맞아 함께 뒷동산에 묻은 타임캡슐을 찾으러 가는 길이다. 같은 자리만 빙빙 도는 느낌이 들었으나 여자의 들뜬 목소리에 남자는 포기하고 내려가자는 말을 쉽게 하지 못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차라리 뭐라도 나왔으면 하고 땅을 파볼까 생각도 했다. 여자는 지친 기색은 없었으나 추억이 송두리째 사라질까 염려가 마음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
어떻게 1999년에서 2000년이 될 수 있지?
바보 같긴. 당연히 1999 더하기 1은 2000이 되니까 그렇지.
저렇게 무드와 낭만이 없다. 아무튼 공대생이란. 혀를 소리 내지 않게 끌끌 차고는 남자의 손을 이끌고 한가로운 공원 벤치에 앉았다. 여자는 가방에서 아끼던 예쁜 편지지와 알록달록한 사인펜을 꺼내고는 미리 준비해 둔 작은 선물도 꺼내었다. 남자도 여자가 신신당부를 하며 준비해 오라던 선물을 꺼내었다.
“자. 이제 서로에게 편지를 쓰는 거야. 나는 미래의 너에게. 너는 미래의 나에게. 그리고 타임캡슐에 담아 저기 대추나무 밑에 묻고 3년 뒤 오늘! 짠 하고 열어보는 거지. 어때? 정말 낭만적이지 않니?”
으 응. 이라고 겨우 대답하는 남자를 얄밉다는 표정으로 한번 쏘아본 뒤 편지지를 남자의 앞으로 내밀었다. 여자의 강요에 겨우 펜을 잡은 남자는 몇 자 끼적이기 시작했다. 남자와 여자는 각자 편지와 선물을 타임캡슐에 넣고 상기된 표정으로 큰 대추나무 밑에 땅을 파 타임캡슐을 묻었다. 3년 뒤에도 이 자리에 있겠지? 잊지 말아야 한다는 당부를 몇 차례 주입시킨 뒤 서로의 편지와 선물이 궁금했지만 3년 뒤에 열어보기로 하였기 때문에 궁금해도 어쩔 수 없었다.
아! 여긴 것 같아. 여기 대추나무!
여자와 남자는 족히 40분간 같은 자리를 빙빙 돌다 3년 전 타임캡슐을 묻었던 대추나무를 찾았다. 안도의 한숨이 자신도 모르게 후 하고 나왔다. 등에는 식은땀도 주르륵 흘렀다.
“뭔가 변한 것 같아.”
“변하긴 뭐가. 똑같구만. 우리 변한 것 봐. 우리가 변해서 대추나무도 변한 것 같은 것일 뿐이야.”
“그런가? 아무튼 얼른 파보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대추나무 밑을 파보았다. 쏘옥하고 3년 전 묻어두었던 둘만의 추억이 솟아올랐다.
“있었구나. 정말. 그대로. 얼른 읽어볼래 편지!”
다소 오글거리는 편지를 나눠 읽은 뒤 작은 선물을 열어보았다. 여자는 남자가 당시 가지고 싶어 하던 카세트테이프를 넣었었다. 당시 남자가 좋아하던 가수 신승훈 카세트테이프다.
여자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선물상자를 열었다. 어?
대추씨 반쪽
“이게 뭐야?”
“대추씨 반쪽이잖아.”
“누가 몰라서 물어? 그러니까 나한테 줄 선물이 고작 대추씨였어? 그것도 반쪽짜리?”
“우리가 있는 곳 우리의 추억이 묻힌 곳 그리고 이 나무를 잘 봐.”
여자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나무를 가만히 살펴보았다.
“뭔가 변한 것 같아.”
먼 옛날, 동해안 바닷가 마을에 효은이라는 처녀가 살았다. 그녀는 양반집 규수로 일찍 어미를 잃고 홀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성품이 곱고 어질어 집안 노비들에게도 친절하게 대하니 남녀 가릴 것 없이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녀를 예뻐했다.
그러던 어느 날, 효은의 아버지가 옆 마을 아름다운 처자와 결혼을 하였다. 효은의 계모는 성질이 사납고 야박하여 베풀 줄 모르는 욕심쟁이였다. 아버지는 계모의 꼬임에 빠져 밤낮 가리지 않고 술을 마셨고, 계모는 몸치장에 혈안이 되어 가산을 탕진하였다.
몇 년 후, 아버지가 죽자 계모는 집안의 노비들을 팔아넘기고, 효은에게 노비의 옷을 입혀 밤낮으로 집안일을 시켰다. 마음씨가 고운 효은은 군말 없이 집을 청소하고 밥을 해다 바쳤다. 효은은 알뜰하여 어떤 물건도 허투루 버리지 않았다. 모든 가재도구를 아끼고, 늘 닳아 해질 때까지 사용했다.
하루는 효은이 낡은 빗자루로 마당을 쓸다가 가시에 엄지손가락을 찔렸다.
“이런, 빗자루가 못 쓰게 되었구나.”
하얀 손가락에서 떨어진 피는 마당과 빗자루 위에 뚝뚝 떨어졌다. 피가 묻은 물건을 써서는 안 된다는 미신에 따라 효은은 빗자루를 빈 곳간에 넣었다.
오래된 물건에 사람의 피가 묻으면 괴기한 일이 생기는 법. 밤이 되자, 피가 묻은 빗자루에 푸른빛이 돌더니 도깨비로 변하였다. 그곳에는 이미 여러 도깨비가 살고 있었다.
“당신들은 어디서 왔소?”
빗자루 도깨비가 물으니 도깨비들 저마다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아씨가 고운 손 얼어가며 개울에서 빨래할 때 쓰던 방망이요.”
“나는 아씨가 아픈 팔 부여잡고 떡을 칠 때 쓰던 절굿공이요.”
“나는 아궁이 옆에 놓여 아씨 발 등에 불 떨어질까 걱정하던 부지깽이요.”
“나는 아씨의 고운 머리 빗어주던 얼레빗이라오.”
모두 효은의 피가 묻은 물건들이 도깨비로 변한 것이었다. 도깨비들은 저마다 사정이 달랐지만 착한 효은을 걱정하는 마음만은 똑같았다.
“좋소. 오늘부터 우리가 아씨를 도웁시다.”
도깨비들은 밤새 질통에 물을 길어놓고, 깨끗이 집안을 쓸고 닦았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지?”
아침이 되자 효은은 깨끗해진 집안을 둘러보며 어리둥절했다. 도깨비들의 선행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사흘에 한 번꼴로 산 짐승을 잡아다 놓았으며, 밤중에도 아궁이에 불이 꺼지지 않도록 했다. 풍족해진 밥상에 계모가 웬 횡재냐 물었으나, 효은 역시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집은 활기를 되찾았고, 효은의 표정은 나날이 밝아져만 갔다.
“아씨의 표정이 밝아진 것 같아 다행이오. 하지만 손끝에 물 마를 날 없으니 전처럼 모습이 곱지는 않소.”
어느 날, 도깨비들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가 효은의 방 문 앞에 비단옷과 노리개를 가져다 놓았다. 아침이 되자 효은은 문 앞에 놓인 옷을 보고 감탄하였다.
“곱기도 곱다. 이렇게 빛깔이 고운 옷은 난생처음 보는구나.”
옷을 입은 효은의 모습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 그 모습을 본 계모가 시기하며 달려왔다.
“요망한 계집. 어디서 이런 물건을 훔친 게냐. 자고 나면 손 쓸 것 없이 온 집안이 깨끗해지고, 먹을 걱정 안 해도 풍족하니. 이제 집안에 너는 필요 없다.”
계모는 옷을 찢고 효은을 동구 밖으로 내쫓았다. 마을에서 쫓겨난 효은은 오갈 데 없어 헤매다 바다에 몸을 던졌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도깨비들은 화가 나 밤마다 심술을 부렸다. 황소를 지붕 위에 올려놓고, 솥뚜껑을 솥 속에 넣어 두었다. 개똥을 퍼다 마당에 쌓아놓고, 질통의 물을 전부 마셔버렸다. 그러자 계모는 기겁하여 집을 두고 줄행랑치다 효은이 죽은 절벽에서 발을 헛디뎌 목숨을 잃었다.
계모가 죽고 나서도 도깨비들의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밤이 되면 우물물을 마르게 하고, 파도를 높게 했다. 마을의 쌀을 훔쳐 산에다 버리고, 말려놓은 물고기나 궤를 훔쳐갔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도깨비들의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도깨비 고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도깨비 고사는 별신굿이라는 풍어제로 발전했고, 지금도 동해에서는 이 제사를 지내는 곳이 남아있다.
지금으로부터 80여 년 전, 영도에는 조선 팔도에 하나 뿐인 기상천외한 다리가 생겼다. 배가 지나갈 때마다 다리를 들어 올리는 구조의 도개교가 생겨난 것. 돛단배와 우마차가 다니던 시절에 배가 지나갈 수 있도록 다리가 열리니, 이 얼마나 커다란 구경거리인가! 영도다리 개통식에는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로 팔십 대 노인 한 분을 초빙하여 다리를 건너는 퍼포먼스를 벌였고, 전국 각지에서 이 다리를 보려는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영도다리 앞은 항상 구름 같은 사람이 몰린 진풍경이 펼쳐졌다고 한다.
그런데 일이 참 묘하게 되었다. 1950년, 전쟁이 터지자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된 이들이 천지였는데, 이들이 하나같이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한 것이다. 부산 땅까지 모두가 무사히 왔을 리가 만무한데도, 어미를 찾고 자식을 찾고 지아비를 찾는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40계단과 영도다리 사이를 오가며, 사람들은 탄성 대신 울음소리를 내질렀다. 다리가 열리든 말든 이제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영도다리 앞은 오래도록 북적였단다.
“어느으 세에워얼에에 너와아 내가아 마안나아…….”
“할아버지! 그 노래 좀 그만 불러요, 진짜!”
아버지가 또 어디서 막걸리 한 잔을 걸치고 오신 모양이었다. 이제 수험생이 된 딸아이는 제 할아버지가 술에 취했을 때마다 신경이 날카롭다. 앞서 영도다리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혹여 아버지가 어머니를 영영 만나지 못했을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있다면 큰 오산이다. 조금만 있으면 어머니가 방에서 나와 아버지에게 불호령을 내릴 것이다.
아버지는 40계단과 영도다리를 오가며 꼬박 세 달을 기다린 끝에 어머니를 만났다. 영영 못 만나는 줄 알았다며, 두 분은 영도다리 아래서 얼싸안고 엉엉 우셨다고 한다. 원래부터 공처가이셨던 아버지는 그 기적적인 재회 이후로 평생 어머니만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다.
“당신, 현정이 수능 못 보면 책임 질겨? 당장 그 노래 그치지 못하는가?”
그래서 어머니가 한 마디만 하시면 온 집안이 조용해진다. 한 번쯤 성을 내실 법도 한데, 아버지는 어머니의 얼굴만 봐도 행복하신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순한 강아지처럼 방으로 끌려 들어가신 뒤에 현정이가 한숨을 내 쉰다.
“아빠, 아빠도 엄마한테 저렇게 좀 잘 해 봐. 맨날 싸우지 좀 말고.”
내가 아내에게 나쁜 남편이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오산이다. 다만, 아버지만큼 잘 하기가 정말 힘들 뿐이다.
현정이가 아주 어렸을 때, 나와 크게 싸운 아내가 짐을 싸서 친정으로 돌아가 버린 일이 있었다. 잘잘못을 따지기 어려운 일이라 누가 먼저 사과를 하느냐가 문제인 자존심 싸움이 되어버렸는데, 그 때 아버지가 나를 집 앞 대폿집으로 끌고 가셨다.
“이 녀석아. 사랑은 아무나 하는 줄 알어? 내가 그 때 네 엄마를 못 만났으면 말야, 가정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겨. 내 인생의 낙이 죄다 사라질 뻔 한 겨!”
또 그놈의 사랑 타령. ‘아버지가 뭘 아신다고 그래요?’하고 대꾸를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사랑에 있어서만은, 아무도 아버지를 이길 수 없었다.
아버지는 또 영도다리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전쟁이 나기 전에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고구마랑 김밥을 싸 가지고 영도다리를 구경하러 왔었는데, 그 때 어머니가 그렇게나 예뻐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틈만 나면 어머니를 데리고 영도다리에 왔다고 한다. 아버지는 전쟁 통에 어머니를 잃어버리셨는데, 어디서 만나자 약속을 하지 못해서 무작정 어머니가 좋아하던 영도다리에 오셨다. 다른 먹을거리는 다 마다하고 기도하는 기분으로 고구마랑 김밥만 먹으며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 날 거짓말처럼 이쁜 아낙네 하나가 고구마랑 김밥을 먹으며 영도다리를 올려다보고 있더란다.
“그게 바로 운명이라는 거여. 너랑 며늘아가 사이에도 영도다리 같은 게 꼭 하나 있을 것인디, 그걸 모르니까 싸우고 그러는 거 아니여.”
그랬다. 어느 세월 속에서, 나와 아내가 만나 점을 하나 찍기까지 영도다리 하나가 없었을 리가 있는가. 나는 연애하던 시절의 앨범들을 죄다 펼쳐보고는 우리만의 영도다리를 찾아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팔십이 넘은 노인네들이 결혼기념일을 맞아 여행을 보내 달라고 성화셨다. 나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던 것처럼 ‘그럼 영도다리는 어떠세요?’하고 묻고, 아버지는 ‘영도다리? 이번엔 거길 한 번 가 볼까?’ 하신다. ‘임자, 올해는 영도다리에 가 보래.’ 하시며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가시자, 현정이가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묻는다.
“맨날 똑같은 데 가면서 왜들 저러시는 거야?”
“녀석아, 사랑은 아무나 하는 줄 알아?”
어이없어 하는 현정이를 두고, 나는 즐겁게 차편을 예매했다. 올해에는 오십여 년 만에 영도다리가 열린다고 했다.
한두 해에 걸쳐 한 번씩은 꼭 떠나는 부산여행이지만, 이번 여행길은 특별하다. 해수욕장에 가는 대신, 해운대와 광안대교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이기대의 해파랑길과 갈맷길을 걸어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낮이면 온종일 해수욕을 즐기고 밤이 되면 센텀시티의 찬란한 야경을 보며 술을 마시는 것을 부산 여행의 묘미로 삼던 나였는데, 이번에는 아내가 다른 모임에 가는 바람에 아들이 동행으로 붙어버린 것이다. 모처럼 혼자 떠나는 여행인지라 카메라를 챙겨 들고 여유를 즐겨 볼까 했는데, 다 틀렸다.
그래도 내 아들인데 어쩌겠는가. 아직 어린 아들은 빨리 바닷가에 수영을 하러 가자고 끝도 없이 칭얼거릴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이기대를 걸으며 들려 줄 이야기들을 미리 준비했는데, 이기대를 걸으며 전해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들까지 합하니 이야기의 규모가 꽤 크다. 기억 속에 그냥 남겨 두기가 아까워, 그것을 이 자리에 풀어 놓아 보고자 한다.
하나, 이기대의 이기(二妓)란, 두 명의 기생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야기 흐르는 대로’ 걸을 수 있는 곳이라 이기대라며 첫 운을 뗄 생각이었던 내게는 아주 맥 빠지는 내용이었는데, 내 멋대로 해석해 보기는 물 건너갔지만, 이 전설이 꽤나 재미있다.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쳐들어와 이곳에서 승리를 자축하는 연회를 열었는데, 이곳에 불려갔던 기생 두 명이 왜장에게 술을 권하여 취하게 한 후 왜장을 안고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고 한다.
때문에 의로운 기생들의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이라 하여, 의기대(義妓臺)라고 부르던 것이 조금 더 알아듣기 쉬운 이기대로 바뀌었다 한다. 논개에 이어, 이기대에서도 왜장을 안고 투신한 기생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으니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이곳 어딘가에 이 의로운 기생들의 두 무덤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도 내려오니, 이 무덤들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둘, 구천만 년 전에는 공룡도 이 길을 걸었다.
절벽과 절벽 사이를 가로지른 구름다리를 건너가다 보면 커다란 물웅덩이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공룡의 발자국이라고 한다. 무려 구천만 년 전의 백악기에 울트라사우르스라는 이름의 거대한 초식 공룡이 이기대를 걸었던 것이다.
초여름이라 공룡 발자국 안에는 수십 마리의 올챙이들이 살고 있었는데, 공룡 발자국 안에서 자라 개구리까지 된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새로운 이야기들을 마구 써 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이 근처에서 황동이 생산되기도 했다고도 하고, 동굴체험을 할 수 있는 곳도 있다. 몇 년 전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해운대>에서 이기대라는 이름의 어원까지 속 시원하게 언급된 지금이야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곳이 되었지만, 이 아름다운 곳이 크게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군사지역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캐면 캘수록 과거의 이야기가 흘러나오니, 과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라는 별칭이 어울리는 곳이다. 이렇게 숨은 이야기가 많은 지라 길 가다 만난 현지인들은 모두 훌륭한 이야기꾼이다.
셋, 오륙도의 새하얀 섬은 사실 가마우지의 배설물로 덮인 섬이다.
다섯 개의 구름다리를 건너 오륙도가 내다보이는 곳까지 이르렀다. 산책길이라고 하기에는 꽤나 험난한 길이다.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마다 오륙도의 섬 개수를 세어 보고 있다. 날이 맑아 오늘은 여섯 개의 섬이 모두 잘 보였다.
낚시를 좋아하는 나는 오륙도 인근까지 배를 타고 나가 본 일이 있는데, 아름다운 섬들 중에서도 설산처럼 하얀 굴섬에 매료되었었다. 그런데 ‘섬이 하얀 게 참 예쁘다’는 말을 하자마자 뱃사람 한 명이 웃음을 터뜨리며, ‘저게 다 가마우지의 똥’이라는 말을 했었다. 결과적으로는 이 천연 거름 덕택에 굴섬 주변에 훌륭한 천연 어장이 형성되었지만, 그 때의 충격과 창피함을 어찌 설명할 수 있으랴.
슬쩍 아들의 얼굴을 쳐다보니, 눈이 초롱초롱한 것이 이기대가 퍽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공룡 이야기에서부터 얼굴을 펴기 시작하더니, 가마우지 똥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아주 숨이 넘어가도록 웃었던 것이다. 아들의 배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밥 좀 먹으러 시내로 나갈까?”
“아니, 나 아까 해녀 아줌마가 팔던 거 그거 먹을 거야!”
기특한 일이었다. 나는 아들의 손을 꼭 붙잡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해녀막사 앞의 난장에 멍게가 아주 싱싱하던 것이 떠올라 군침이 꿀꺽 꿀꺽 넘어갔다. 구천만 년 후의 이기대에서는 나와 우리 아들의 발자국이 발견되기를 바라며, 짧은 글을 마친다.
벌써 한 시간 째 베란다에서 민준이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도 열 시가 넘었다. 다른 집 아이들은 벌써 귀가했을 텐데, 내 아들은 유독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늦다. 전에는 말도 잘 듣고, 사내애답지 않게 애교도 부릴 줄 알았는데 재작년 남편과 이혼한 이후로는 말수도 줄고 신경질도 늘었다. 나는 뒤늦게 올해 열다섯 살인 민준이가 한창 사춘기를 겪을 나이라는 것과 이혼에 대한 민준이의 의견을 묻지 않은 것이 떠올랐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에는 이미 늦어 있었다.
두 식구가 살기에는 너무 큰 집에서 대화마저 하지 않으니, 집이 아니라 깊고 어두운 동굴에 들어앉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잦았다. 단지 입구에 들어서는 민준이의 모습이 보였다. 오늘에야말로 민준이 손을 잡고 진득하게 대화를 해 보자 다짐했건만, 담배냄새가 밴 채로 현관에 들어선 아이를 보고는 나도 모르게 소리부터 지르게 된다.
“너 그렇게 엄마 속 썩일 거면 그냥 아빠처럼 나가버려!”
민준이는 대꾸도 하지 않고 제 방으로 쓱 들어가 문을 잠가 버린다. 나는 잠긴 방문을 두드리며 씩씩대다가, 그만 울상이 되고 말았다. 엄마가 잘못했어. 이 한마디를 먼저 하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아침을 먹지 않겠다는 민준이와 승강이를 벌였다. 민준이는 끝내 아침밥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로 신발을 신기 시작했고,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한 기분으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를 내지도, 소리를 지르지도 않자 민준이가 머쓱해졌는지 나를 돌아보며 ‘다녀오겠습니다.’ 라는 짧은 인사를 건넸다. 현관문이 닫히고 곧이어 ‘딩동’ 하고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야 정신을 차리고 현관문을 박차고 나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뛰어들었다. 민준이가 놀란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저기, 엄마랑 같이, 여행, 다녀오지 않을래?”
아들 앞에서 말을 더듬는 엄마는 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얼굴이 새빨개졌다.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인 민준이가 엘리베이터 문을 다시 열어주었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애꿎은 청소기만 한참을 돌렸다.
며칠이 지나고, 민준이가 불쑥 동굴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동굴. 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어두운 것도 싫어하고, 좁은 곳도 싫어하고, 추운 것도 싫어한다는 것을 민준이도 알고 있을 텐데. 하지만 지금 이 제안을 거절했다가는 다시는 민준이와 여행을 갈 기회가 없을 것만 같았다.
“서울 가까운 데에 동굴 하나밖에 없어. 거기로 가자.”
민준이는 조금 들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차로 십오 분. 맥이 빠질 만큼 가까운 거리였지만 두 식구가 된 이후로 처음 나서는 나들이였다. 번호표를 뽑고 입장 순서를 기다릴 때까지도 민준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휴대 전화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계속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는 걸 보니 동굴에 놀러 왔다는 걸 자랑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말을 걸어 보고 싶었지만 딱히 떠오르는 주제가 없었다.
사진을 좀 찍어 달라는 갑작스러운 민준이의 말에 나는 또 당황해버렸다. 민준이가 건넨 휴대 전화를 받아든 나는 ‘하나, 둘, 셋.’ 하는 것도 잊고 사진을 찍고 말았다. ‘미안해, 다시 찍을게.’라고 말하자 민준이가 뭐가 미안하냐고 묻는다. 그냥 다 미안해.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켰다.
어느새 우리 입장 순서가 되어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늦여름이라 아무 생각 없이 왔는데 동굴 안은 놀라울 정도로 서늘했다. 민준이가 앞장서서 걷고, 나는 뒤따라 걸었다. 두 해가 지나며 키도 훌쩍 자라 내 키보다도 머리 하나는 더 커진 민준이는 뒤에서 보면 이제 아주 어른 같다. 돌부리가 계속 발에 채기도 하고 소름이 돋기 시작했기에 몸을 움츠린 채 걷고 있는데, 민준이가 뒤를 돌아보더니 입고 있던 카디건을 벗어 건네주었다.
“추우면 말을 하지. 안 무서워?”
민준이가 내 옆에 와서 나란히 서며 농담처럼 한 마디를 건넸다. ‘당연히 무섭지. 나는 어두운 것도 싫어하고, 좁은 곳도 싫어하고, 추운 것도 싫어한다니까. 네가 이 나이 돼 봐라.’ 할 말은 많았지만, 나는 대답 대신 민준이의 팔을 붙잡았다. 짜증을 내며 뿌리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어서 민준이를 올려다보자 민준이가 슬쩍 웃는다. 왠지 민준이가 굳이 동굴로 오자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긴 사춘기가 끝나고, 이제는 민준이가 내게 눈높이를 맞추어 줄 수 있는 때가 온 것이다.
예전에는 금을 캤다던 동굴 안은 이제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어린아이들이 동굴 벽을 만져보며 여기저기서 웃음을 터뜨렸다. 동굴 영화관도 있고, 동굴 예술의 전당도 있고. 동굴이라고 해도 있을 건 다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꾸며져 있었지만, 일부만 개방되어 있어서 동굴 끝까지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아쉬운 표정을 짓는 민준이 옆에 서서 나는 함께 여행을 오면 하고 싶었던 말들을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너는 이제 엄마가 밉니? 엄마를 미워하지 마. 엄마는 아직 너를 사랑해.’ 라고 말이다.
“가자, 엄마.”
민준이가 내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나는 민준이에게서 대답을 들은 것 같아 홀가분해진 기분으로 동굴을 나섰다.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자 수정이가 오늘도 어김없이 동화책을 읽어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수정이가 골라온 책들은 오늘도 <눈의 여왕>이나 <플란다스의 개>, <어린 왕자> 같이 언젠가 가 볼 수 있을 것 같은 먼 나라의 이야기들이었다. 이야기의 굴곡에 따라 울고 웃던 수정이가 어느 새 잠이 들면 나는 이불을 꼭 덮어주고 조용히 방문을 닫으며 눈물을 훔쳤다.
수정이가 학교에 가지 못한 지도 어느 새 일 년이 넘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기 시작했으니, 또래 친구들도 없었다. 대신 아파줄 수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몇 차례나 수술을 반복해도 수정이의 몸 상태는 쉽게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수정이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갖고 싶은 것이든, 먹고 싶은 것이든 무리를 해서라도 다 사 주었다. 하지만 수정이의 표정은 좀처럼 밝아지지 않았다. 오랫동안 바깥을 돌아다녀 본 적이 없으니 점점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모양이었다. 수정이는 시들어가는 꽃처럼, 멍한 얼굴로 하루 종일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다 나아서 학교에도 가게 되고, 친구들도 사귀게 되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어도 항상 묵묵부답이던 수정이가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은 동화책을 읽어주기 시작한 뒤부터였다. 눈의 여왕이 사는 얼음 궁전과 파트라슈가 뛰어 놀던 튤립이 만발한 들판, 어린 왕자가 도착했던 사막과 같은 곳에 가 보고 싶다고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전래 동화책을 읽어 줄 걸 그랬다고 농담을 하면서도 남편과 나는 기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몇 주 뒤 수정이는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큰 수술을 앞두고 있었고, 남편과 나는 지쳐 있는 수정이를 위해 나들이를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아픈 아이를 데리고 너무 먼 곳으로 갈 수도 없어서 고민 끝에 결정한 행선지는 대부도였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바다를 좋아할뿐더러, 대부도가 요 근래 관광 개발에 힘을 쏟고 있어 여러 가지 볼거리가 많이 생겼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수정이는 나들이를 가기로 한 날 아침에도 식사를 몽땅 토했지만, 좀 더 나으면 가자는 남편의 말에 주사를 맞을 때보다도 더 큰 목소리로 엉엉 울기 시작했다. 남편과 번갈아 가며 달래도 보고 혼내도 보고 한참 애를 썼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눈이 퉁퉁 부은 아이를 안아서 차에 태우고 대부도로 향했다.
바다에 들어가기도 이른 계절이라 가서 아무것도 못 하면 어쩌나 고민했는데, 마침 대부도에서는 튤립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섬에 웬 튤립이 있나 의아해하고 있었는데, 우리 가족의 눈에 들어온 풍경은 상상 이상이었다. 알록달록한 튤립을 지천으로 심고 풍차까지 세워 섬을 네덜란드의 전원 풍경처럼 꾸며 두었던 것이다. 조성된 지 얼마 안 된 테마파크인 모양이었다. 바닷바람에 오색 풍차와 바람개비가 돌아가고 있는 모습, 멀리 바다가 건너다보이는 넓은 갈대밭까지 발견한 수정이가 신이 나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엄마, 이것 좀 봐요! 꼭 동화책 속에 들어온 것 같아!”
차로 이십 여 분 거리에는 유리섬이 있다고 했다. 유리섬. 유리로 만든 섬. 그 이름을 듣자마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수정이는 잠깐만 해변을 걷겠다며 미처 말리기도 전에 차를 뛰쳐나갔다. 저만치 걸어가고 있는 딸아이가 마치 유리로 만든 성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남편과 나는 수정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오랜만에 낙산사를 찾았다. 아내에 대한 나의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낙산사와 아내는 공통점이 많았다.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 손을 잡고 절에 드나들며 자랐다던 아내는 해수관음보살처럼 조용하고 홍련암에서 내려다보는 동해처럼 맑으면서도 낙산사의 노송처럼 곧은 성격이었다.
나는 아내를 끊임없이 낙산사에 비유했다. 아내가 낙산사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한 계절에 한 번씩은 꼭 낙산사에 들렀기 때문이었나. 아니, 그보다 낙산사에 아내를 빗대어 기억하지 않으면 아내에 대한 나의 기억이 너무도 추상적이기 때문이었다. 2005년, 산불로 낙산사가 새까맣게 타 버린 것처럼, 아내도 2005년에 화재로 사라졌다.
나는 아내를 기억하려 무던히도 노력했지만, 앨범이나 비디오테이프, 편지묶음과 같이 아내의 기억이 담겨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이 아내와 함께 사라져버렸기에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나는 아내를 영영 잃어버리고야 말 것만 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혀 하루하루를 보냈다. 직장을 그만두고 술을 퍼마셨기에 재산을 거의 탕진했음은 물론이다.
“너 그러다 정말 죽어, 이 녀석아.”
어머니는 나를 보기만 하면 가슴을 치며 우셨고, 한편으로는 외동아들인 나를 재혼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셨다. 집을 사기 위해 모은 돈도 꽤 있었고, 외모가 못난 편도 아니었지만 내게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좀 더 진득하게 아내를 기억하고 싶었다.
“낙산사에 가고 싶어요.”
아내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낙산사에만 가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하였다. 갓 삼십 대에 들어선 우리 부부에게는 함께 외출할 기회가 그렇게 많지 않았기에 이왕에 외출하는 거라면 아내가 유독 좋아하는 낙산사에 갔었다. 아내가 죽던 해의 일출을 보았던 곳이 낙산사 의상대에서였고, 아내가 화재로 죽은 뒤 혼자 낙산사에 가려 했더니 이번에는 낙산사가 불타버렸다. 아내가 빌라 옥상에서 몇 해째 소중히 기르고 있던 석산화가 불교에서는 피안화(彼岸花), 즉 언덕 너머 저세상에 피는 꽃임을 알았을 때에는 완전히 운명에 농락당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낙산사는 아내였던가, 아니면 아내가 낙산사였던가.
낙산사에 도착했을 때에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다음 날의 일출을 볼 요량으로 길을 나선 것이었는데, 너무 일찍 도착해버렸다. 석가탄신일이 가까워져서인지 연등이 경내 가득 걸려있었다. 남들은 보타전이나 해수관음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다래원에서 차를 마시며 낙산사에서의 일과를 보낸다지만, 내가 가장 먼저 보고 싶은 곳은 화재의 피해를 심각하게 입었다던 원통보전이었다.
다섯 개의 문을 거쳐 원통보전 앞에 선 나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홀로 울고 싶어졌다. 단 한 가지, 낙산사와 아내의 결정적인 차이점을 발견한 것이다. 바로 낙산사는 말끔히 복원되었고 아내는 절대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곧바로 등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낙산사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입속으로 ‘여보, 여보.’ 하는 말을 되뇌며 걷는 동안 어느새 하늘이 피안화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내가 결코 복원될 수 없는 기억에 매달려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 억울하기도 하고, 한없이 절망스럽기도 했다. 그때, 제법 어둑해져서인지 등 뒤에서 연등이 오색으로 켜지는 바람에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막 지나온 계단 한가운데의 노송 두 그루 사이로 ‘길에서 길을 묻다’라고 새겨진 석판이 놓여 있었다. 조금만 더 어두웠어도 발견할 수 없었을 터였다.
나는 석판을 한참 어루만지다가 일어섰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할까. 일출은 빠르지만, 일몰은 느리다. 지는 것이 더디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낙산사에 가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하였다. 지금은 이 말을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싶었다.
물들다.
나는 너에게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언제나 너는 붉은색 입술을 오물거렸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듯이. 하지만 너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하얀 얼굴이 금세 붉게 물들곤 했다. 내가 기억하는 너는 그렇다. 너는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미일까.
나는 너에게 고백을 했지만 너는 말없이 싱긋 웃기만 했다. 좋다는 것인지 아니라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다시 묻지는 않았다. 네가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너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3년 전일 것이다.
“매화가 아직 피어있을까? 피어 있어야 할 텐데.”
“글쎄. 피어있겠지. 설마 지금 매화 보러 가자고 하는 건 아니지?”
“왜? 지금은 안 돼?”
“피곤해. 내일 프레젠테이션 준비도 해야 하고.”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오랜 침묵은 그동안의 관계에도 곰팡이처럼 번져나가 관계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나는 그깟 매화는 내년에도 후년에도 언제든지 보러 가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너는 그런 나를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오늘 피는 꽃과 내일 피는 꽃이 같아?”
“피곤해. 하루 종일 회사에서 그놈의 말장난 받아주느라 힘들었단 말이야. 꽃 타령 그만하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응?”
“꽃이 다 같은 꽃이라고? 그게 어떻게 같아? 그게 어떻게 같냐구. 아침과 저녁이 다르듯 어제와 오늘이 다른데 어떻게 꽃이 다 같아.”
우리의 관계가 위태롭다고 느껴지긴 했지만 매화 하나로 너와 나의 연결고리가 끊어져 버릴 줄은 몰랐다. 붉은 매화가 질 무렵 너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떠난다고 했다.
그동안의 침묵 그리고 공백이 익숙해져있었기 때문일까 나는 상관없다고 생각했고 무심하게 알겠다고 했다. 어디로 언제 떠나냐는 질문조차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았다.
그녀가 떠난 뒤 처음 맞는 주말이었다. 그녀와 함께 살던 집도 아닌데 유난히 텅 비어보였다. 너와 마지막으로 다투던 날 너는 흰색 소파와 어울리는 연분홍 원피스를 입고 있었지. 너는 우리 집에 올 때면 항상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았어. 그리고는 흰색 꽃을 식탁에 정성스레 꽂아 두었지.
나는 네가 떠나고 나서 유난히 너의 빈자리를 느꼈다. 마치 함께 하던 공간에 반이 딱 잘려 나간 것 같은. 늘 혼자 있던 공간에서 너를 찾고 너에 대한 연결고리를 찾았다. 네가 자주 듣던 노래를 틀어놓고 네가 좋아하던 꽃을 식탁에 꽂아 놓은 적도 있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다.
“매화가 아직 피어있을까? 피어 있어야 할 텐데.”
추운 겨울이 봄으로 물드는 시간. 네가 떠난 후 삼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너에게선 아직도 연락이 없다. 그때 언제 어디로 가냐고 물었다면 이렇게 마냥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을까? 아니면 네가 매화를 보러 가자고 할 때 피곤하다는 말 말고 차키를 집어 들었다면 되었을까?
문득 네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아침과 저녁이 다르듯 어제와 오늘이 다른데 어떻게 꽃이 다 같냐고. 네가 뭘 아냐고 소리를 질렀지.
물들다.
지나고 보니 너는 나에게 물들어 있었다. 아무리 지워보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연하지만 진하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너의 기억만으로도 봄을 되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