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제발요. 제가 잘못했어요. 딱 한 번만, 네?”
아빠도 엄마도 좀처럼 내 부탁을 들어 주시지 않으셨다. 지난 여행에 대한 실망이 크신 모양이었다. 백령도에 여행을 다녀온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나는 벌써 백령도가 그리워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백령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떠날 걸 그랬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든다.
지난 주말,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백령도를 여행하는 내내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부모님이 설명해 주시는 내용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얼굴 모양을 한 바위나 예쁜 조약돌들이 널린 해변 같은 것도 그 순간에만 신기할 뿐 그렇게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주말인데 친구들과 놀러 가지도 못하고, 인터넷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을 이 먼 곳까지 와서 봐야 하다니. 내가 빨리 집에 가자는 말을 하루 종일 입에 달고 있었기에, 1박 2일의 일정이 당일치기로 줄어들며 백령도 여행은 싱겁게 끝나 버렸었다.
그런데 며칠 뒤에 백령도가 뉴스에 나왔다. 인천 아시안 게임의 마스코트로 점박이 물범이 선정되며, 점박이 물범이 사는 백령도가 언급된 것이다.
“엄마, 나한테는 저기 점박이 물범 산다고 얘기 안 했잖아!”
“얘는. 네가 얘기하면 듣기나 했니?”
엄마가 핀잔을 주며 방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그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콩돌 해변을 거닐거나 두무진을 구경하고, 사곶 해수욕장 사진을 찍기만 하는 등 유명한 곳들만 골라서 돌아다니신 엄마랑 아빠에게도 책임이 있었다. 사진 찍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경치가 좋은 곳보다는 재미있는 곳에 가기를 좋아하는 내가 백령도 여행 내내 지루하지 않았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도 물범이 산다고 미리 말해 줬으면 나도 그렇게 짜증 안 냈을 거 아니야!”
아쉬운 마음에 괜히 안방을 향해 외쳐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 다 내 잘못이지, 뭐.
그러고 보니 정말 신기했다. 물개나 물범 같은 해양 동물들은 외국에나 사는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에도 점박이 물범 서식지가 있다니. 그것도 내가 다녀온 백령도에 물범 서식지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텔레비전 속의 점박이 물범들은 일광욕을 하거나 수면 밖으로 빼꼼 머리를 내밀거나 하며 놀고 있었다. 동물원의 작은 풀장이 아닌, 넓은 바다를 헤엄치고 있는 물범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왠지 억울한 생각이 들어서 당장 인터넷을 켜고 백령도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예상했던 대로 점박이 물범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었다. 백령도에 살고 있는 점박이 물범의 숫자도 점점 줄고 있어서, 환경단체에서 점박이 물범 보호를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모습들도 꽤 많이 볼 수 있었다.
두무진에 갔던 사람들이 가끔 바위 위에 올라와 휴식을 취하는 점박이 물범을 육안으로 보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점박이 물범의 매력에 푹 빠진 뒤였다. 어린 아기 같은 얼굴의 물범은 야생동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순하고 귀여워 보였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심청이가 몸을 던졌던 인당수도 백령도 앞바다라고 한다. 게다가 심청이를 감싼 연꽃이 걸렸던 바위인 연봉 바위도 있는데 이 바위는 하늘에서 보면 연꽃이 활짝 핀 것처럼 생겼다고 한다. 연봉바위에 걸리기 전에 연꽃에서 떨어진 연밥이 흘러들어 연꽃이 피게 된 마을인 연화마을까지, 백령도는 점박이 물범의 섬이면서 심청이의 섬이기도 했다.
부모님을 일주일 내내 조른 결과, 다음 달에 다시 백령도에 가 보기로 약속했다. 이번에는 심청이의 전설과 신비로운 점박이 물범을 모두 마음속에 담고 올 것이라고 굳게 다짐했다. 하얀 날개 섬이라는 뜻인 백령도. 이 섬의 이름에도 아름다운 전설이 있지만, 이 얘기는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자. 백령도의 진가는 백령도 이야기를 모두 안 뒤에나 마음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더 힘내. 다와 간단 말이야.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아까부터 저 말만 족히 30번째다. 2000년도 밀레니엄을 맞아 함께 뒷동산에 묻은 타임캡슐을 찾으러 가는 길이다. 같은 자리만 빙빙 도는 느낌이 들었으나 여자의 들뜬 목소리에 남자는 포기하고 내려가자는 말을 쉽게 하지 못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차라리 뭐라도 나왔으면 하고 땅을 파볼까 생각도 했다. 여자는 지친 기색은 없었으나 추억이 송두리째 사라질까 염려가 마음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
어떻게 1999년에서 2000년이 될 수 있지?
바보 같긴. 당연히 1999 더하기 1은 2000이 되니까 그렇지.
저렇게 무드와 낭만이 없다. 아무튼 공대생이란. 혀를 소리 내지 않게 끌끌 차고는 남자의 손을 이끌고 한가로운 공원 벤치에 앉았다. 여자는 가방에서 아끼던 예쁜 편지지와 알록달록한 사인펜을 꺼내고는 미리 준비해 둔 작은 선물도 꺼내었다. 남자도 여자가 신신당부를 하며 준비해 오라던 선물을 꺼내었다.
“자. 이제 서로에게 편지를 쓰는 거야. 나는 미래의 너에게. 너는 미래의 나에게. 그리고 타임캡슐에 담아 저기 대추나무 밑에 묻고 3년 뒤 오늘! 짠 하고 열어보는 거지. 어때? 정말 낭만적이지 않니?”
으 응. 이라고 겨우 대답하는 남자를 얄밉다는 표정으로 한번 쏘아본 뒤 편지지를 남자의 앞으로 내밀었다. 여자의 강요에 겨우 펜을 잡은 남자는 몇 자 끼적이기 시작했다. 남자와 여자는 각자 편지와 선물을 타임캡슐에 넣고 상기된 표정으로 큰 대추나무 밑에 땅을 파 타임캡슐을 묻었다. 3년 뒤에도 이 자리에 있겠지? 잊지 말아야 한다는 당부를 몇 차례 주입시킨 뒤 서로의 편지와 선물이 궁금했지만 3년 뒤에 열어보기로 하였기 때문에 궁금해도 어쩔 수 없었다.
아! 여긴 것 같아. 여기 대추나무!
여자와 남자는 족히 40분간 같은 자리를 빙빙 돌다 3년 전 타임캡슐을 묻었던 대추나무를 찾았다. 안도의 한숨이 자신도 모르게 후 하고 나왔다. 등에는 식은땀도 주르륵 흘렀다.
“뭔가 변한 것 같아.”
“변하긴 뭐가. 똑같구만. 우리 변한 것 봐. 우리가 변해서 대추나무도 변한 것 같은 것일 뿐이야.”
“그런가? 아무튼 얼른 파보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대추나무 밑을 파보았다. 쏘옥하고 3년 전 묻어두었던 둘만의 추억이 솟아올랐다.
“있었구나. 정말. 그대로. 얼른 읽어볼래 편지!”
다소 오글거리는 편지를 나눠 읽은 뒤 작은 선물을 열어보았다. 여자는 남자가 당시 가지고 싶어 하던 카세트테이프를 넣었었다. 당시 남자가 좋아하던 가수 신승훈 카세트테이프다.
여자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선물상자를 열었다. 어?
대추씨 반쪽
“이게 뭐야?”
“대추씨 반쪽이잖아.”
“누가 몰라서 물어? 그러니까 나한테 줄 선물이 고작 대추씨였어? 그것도 반쪽짜리?”
“우리가 있는 곳 우리의 추억이 묻힌 곳 그리고 이 나무를 잘 봐.”
여자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나무를 가만히 살펴보았다.
“뭔가 변한 것 같아.”
일시적으로 사내 공지게시판에 시선이 쏠렸다. 연말이라 송년회에 관한 공지 글이었다. 장소는 응암동 XX감자국, 시간은 저녁 7시였다.
또 감자탕집이야?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몇 명은 회사 대표가 그 식당에 지분이 있다더라 그 감자국 식당 주인이 친척이나 아는 사람일 것이라는 둥의 믿거나 말거나 하는 이야기들로 소란스러워졌다.
“아, 어제 과음해서 얼큰한 거 먹고 싶었는데 잘됐다.” 차장이하 과장들은 남산만한 배를 내놓으며 입맛을 다셨다. 무슨 회사 연말회식을 매번 회식장소로 가는 감자탕집으로 가냐며 투덜대는 소리들이 들렸으나 공지사항이 바뀔 리는 없었다.
300원짜리 자판기 커피나 마시려고 동전을 짤랑대며 복도로 나와 보니 남자 직원들 세 명 정도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나 쓱 하고 가보니 하던 이야기를 딱 멈췄다.
“뭐야? 내 욕하고 있었어? 아니면 왜 얘기를 하다 말어?”
“아니, 대리님 저희가 무슨 대리님 욕을, 아니에요. 정말.”
“아니면 뭔데? 나도 그 비밀 얘기 좀 들어보자.”
아무것도 아니라고 손사래까지 쳐가면서 멀어지는데 분명 무슨 비밀 이야기가 있다. 무슨 이야기 길래 저렇게 도망가듯 사라지나 궁금해졌다.
기지개를 켜며 시계를 보니 어느덧 시계는 6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시간 빠르네’하며 회식장소로 갔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부장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장님이 오셨고 감자탕 대자가 각 테이블 당 하나씩 놓여졌다. 지겹긴 했어도 막상 감자탕이 나오고 나니 회식에 이만한 게 없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장님께서 한 마디 하시고 각자 잔을 부딪치며 올 한해를 마무리 했다.
“고기 좀 뜯어볼까?”
과장님이 팔을 걷어붙이고 흰 와이셔츠에 국물이 튈까 어울리지 않는 앞치마를 하고는 본격적으로 감자탕을 먹기 시작했다.
“과장님은 지겹지도 않으세요?”
“지겹긴, 얼큰한 거 먹고 싶을 때는 여기만큼 해장되는 데가 없거덩. 여기 국물이 다른데랑 달라.”
과장님이 그렇게 말해도 여직원들은 좀처럼 깨작대며 투덜거렸다. 보다 못한 식당 아주머니가 뭐 다른 반찬이라도 만들어 주냐고 말을 걸었다.
“우리 젊은 아가씨들은 감자국 이런 거 싫지? 뭐, 스테이크인가 스파게티인가 그런 거 먹고 싶을 텐데, 매번 여기로 와서 내가 다 미안허네.”
“아니에요. 아주머니가 왜요. 맛있어요.”
억지스럽게 웃으며 고기 한점을 먹는 여직원 뒤로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여직원이 얼굴을 붉히며 밖으로 나갔다. 어디가 아픈가 싶어 따라 나가보니 여직원은 울고 있었다.
“현주씨, 무슨 일 있어요? 어디가 아파요?”
“아니요, 아니에요 그런 거.”
“무슨 일이에요. 말해 봐요. 아무것도 아닌데 왜 갑자기 눈물을…….”
“사실은, 여기 식당 그러니까 아까 우리 테이블로 왔던 그 아주머니요. 우리 엄마에요.”
이건 또 무슨 이야기인가 싶어 어리둥절한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사실 놀랄 일이라면 놀랄 일이지만 그렇게 놀랄 일이 무언가 싶기도 했다.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일인데 말이다.
“아, 그러셨구나. 몰랐어요. 그러고 보니 닮은 것 같기도 하네요.”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으며 말했다.
“부장님이 기왕 회식하는 거 직원들 도움 되는 곳에서 하시자며 매번 이렇게 도와주고 계셨어요. 그런데 저 같아도 매번 같은 집에서 회식하는 거 좀 그렇죠. 그런데 그냥 좀 속상해서. 별일 아닌데 참. 바보같이 눈물이 나네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여직원을 달래주고 먼저 식당에 들어왔다. 가만 생각해보니 아까 자판기에서 남자 직원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이 식당 이야기인 듯 했다.
다시금 식당 아주머니 아니, 현주씨 어머니를 보니 어쩐지 부장님이 달리 보이기도 했다. 늘 앞뒤 꽉 막히고 세대에 뒤 떨어지는 상사라고 생각했는데 세월이 쌓은 노련함이나 마음 씀씀이는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현주씨 어머니가 우리 테이블을 빙빙 맴돌고 계셨다. 아무래도 밖에 나가있는 현주씨가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사장님, 여기 감자탕 아니 감자국은 언제 먹어도 맛있네요. 깍두기도 예술이에요!”
“그래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요.”
“정말이에요. 그런데 왜 감자탕이 아니라 감자국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그게 우리 동네 응암동에서는 그렇게 불러요. 탕은 올림말이고 국은 내림말이라고 생각해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서민적인 음식인 감자탕을 감자국이라고 부르는 거지요. 응암동에서 감자국 안 먹고 가면 섭하다니까요.”
모처럼 환하게 웃으시는 아주머니를 뵈니 이제야 좀 마음이 놓였다. 자리로 돌아오는 현주씨도 어머니의 환한 미소를 보았는지 함께 옅은 미소를 보냈다.
다시 한 번 감자탕 아니 감자국 국물 떠 먹어볼까?
내가 아이를 처음 본 것은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찾아갔던 한 허름한 고아원에서였다. 무리에서 동떨어져 먼 산만을 바라보고 있는 그 모습이, 애교를 부리며 다가오는 다른 아이들보다 더 기억에 선명하게 남았다.
“부모가 이유 없이 밤마다 애를 때렸대요. 그래서 그런지, 여기 온 지 삼 년이 넘었는데도 여태 아무 말도 안 해.”
원장 선생님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이는, 마치 외로운 섬 같았다.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순하게 생긴 것이, 아무리 봐도 참 잘 생겼다고 친구들이 입을 모아 칭찬했는데, 내 눈에는 왠지 다르게 보였다. 기암괴석이 자라나고, 안개와 구름에 묻혀 있는 섬. 아이는 내가 알고 있는 섬 하나를 꼭 닮아 있었다.
아이는 예상보다 훨씬 더 신경질적이었다. 마치 자신에게로 향하는 타인의 관심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외향적인 성격을 내 최고의 자랑거리로 삼고 있었기에, 나도 모르는 새에 나를 온몸으로 거부하는 그 아이에게도 인정받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그러나 아이는 그런 나를 힐끔 쳐다보기만 할 뿐, 내게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한 달이 가도, 두 달이 가도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역시, 민주 씨한테도 쟤는 무리네요. 지금까지 왔던 사람들 중에 아무도 저 아이와 친해지지 못했어요. 유현이가 처음 올 때부터 여기 있었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고요.”
고아원 사람들마저 유현이에게 혀를 내두르는 모습을 보고 오기가 생겼다. 나는 애초에 예정 되어 있던 봉사 기간을 늘렸고, 유현이의 마음을 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집에서 쿠키를 구워 오고, 유현이가 좋아할 만한 장난감을 사다 바치는 등 정신을 차려보니 남자친구에게도 안 했던 일들을 그 아이에게 해 주고 있었다.
“누나가 토요일마다 여기 와서 유현이랑만 놀아 줄게. 그러니까 유현이도 토요일에는 누나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아이는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매주 토요일마다 유현이를 만나러 갔다.
삼 개월이 지나고, 사 개월 차에 접어들자 나도 슬슬 지쳐갔다. 매번 주말이면 고아원에 가는 것에 불만이 많던 남자친구와 크게 싸운 날. 그 날도 유현이는 내게 등을 보이고 앉아 있었다. 나는 애써 서운한 마음을 감추고 밝은 목소리를 짜내어 인사를 건넸다.
“유현아, 누나 왔어.”
유현이가 이쪽을 힐끗 쳐다보더니, 금방 다시 고개를 돌려 버렸다. 갑자기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대체 이 아이가 뭐라고 내가 이렇게 많은 시간을 쏟아 붓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야, 너. 내 얼굴 좀 보란 말이야. 사람이 이렇게 신경을 써 주면 조금이라도 변하는 게 있어야 할 것 아니야. 네가 그렇게 잘났니?”
쿵쿵 발소리를 내며 다가가 유현이의 팔을 끌어당기는데, 아이가 소스라치게 놀라 두 팔로 제 머리를 감싸 안았다. 한 번도 말을 한 적이 없던 아이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리며 바닥에 웅크린 순간, 나는 내가 정말로 못된 행동을 저질렀음을 깨달았다.
아이는 악을 쓰며 울었다. 유현이가 내 뱉는 말들 중에는 엄마나 아빠, 그리고 잘못했다는 말들이 섞여 있었다. 아이는 한 순간에 과거로 돌아가 버렸다. 아이가 느끼는 고통이 내게도 생생히 전해져 왔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를 안아주지 못한 채 그냥 거기서 도망쳐 버렸다.
유현이를 잊으려 숱한 노력을 해 왔지만, 지금도 내 꿈속에는 가끔 온 몸을 둥글게 만 채 흐느껴 울고 있는 유현이가 나온다. 나는 이제 그 아이가 그저 다른 사람의 눈을 마주보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것을 안다. 그 아이가 토요일마다 창가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음을 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내가 다시 그 아이를 안아주러 가지 않는 한 그 아이의 상처가 영영 낫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안다.
돌아오는 토요일, 유현이와 약속했던 그 시간에 유현이를 보러 가겠다고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고아원에 가기 전에, 유현이를 닮은 섬을 보러 왔다. 몰운대. 구름에 묻힌 섬이라는 뜻이다. 이름처럼 보일 듯 말 듯, 구름과 안개에 겹겹이 둘러싸인 그 섬은 이제 끊임없이 흘러드는 흙과 모래로 육계도가 되었다. 해안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나는, 우리 둘의 사이에도 흙과 모래가 흘러들고 있다고, 유현이에게 그렇게 말해 주기로 다짐했다. 구름에 묻힌 그 모습을 다들 사랑하고 있다고 말이다.
오늘도 수진이는 학교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했던 수진이는 병원에서 지내느라 친구들과 뛰어 놀지도 못하고 늘 집안이나 병실에서의 생활이 전부였습니다. 그래도 수진이는 늘 밝고 씩씩한 모습이었지요. 그렇게 매일 병원에서만 지내는 수진이가 안쓰러웠던 엄마는 수진이를 위해 가족여행계획을 세웠습니다. 얼마 전 수진이 친구에게서 가족들과 재미있는 여행을 다녀왔다는 편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수진이는 아직 한 번도 가족들과 제대로 된 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습니다. 의사선생님께서 멀리 외출을 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말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수진이의 간곡한 부탁에 못이긴 의사선생님께서도 여행을 허락하였답니다. 그렇게 수진이네 가족은 무주로 첫 가족여행을 떠났습니다. 신나는 마음으로 도착한 수진이는 아픔도 잠시 잊은 채 신나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신나고 재미있는 하루를 보낸 수진이는 기쁜 마음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때마침 환하게 떠오른 달빛은 수진이의 방 창가를 환하게 비추었습니다. 너무도 밝은 달빛에 수진이는 창가 쪽으로 다가갔지요.
그런데 그 때 수진이 눈앞으로 반짝하는 물체가 아른거렸습니다. 수진이는 눈을 비비고 다시금 불빛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가 아닌 두 개의 불빛이 눈앞에서 반짝였습니다. 수진이는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러자 하나에서 두 개, 그리고 수많은 별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수진이는 하늘에 떠있는 별이 자신에게 다가와 이야기를 건네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한참동안 불빛을 바라보던 수진이는 다음날 아침이 되자마자 엄마에게 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친구들에게도 편지로 별을 눈앞에서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하니 수진이의 말을 믿어주는 친구들이 하나도 없었지요.
시간이 흐르고 수진이는 그날의 별빛이 반딧불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지요.
수진이는 다시금 반딧불이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치료도 씩씩하게 받고 운동도 열심히 하였지요. 또다시 가족들과 반딧불을 보러 떠난 수진이는 밤이 되기를 기다리며 반딧불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밤하늘에 별만 가득할 뿐 반딧불은 좀처럼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엄마는 날씨가 너무 더워져 반딧불들이 모두 꽁꽁 숨어버린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반딧불을 보지 못해 속상해 하는 수진이에게 엄마는 반딧불을 꼭 닮은 풍등을 건네주었습니다. 풍등에 소원을 담아 하늘높이 띄우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였지요.
수진이는 자신이 씩씩하게 치료를 받아 건강을 되찾은 것처럼 반딧불들도 다시 무주의 밤하늘로 되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래서 풍등에 반딧불에게 보내는 편지도 적었지요.
‘반딧불아. 난 네가 창문에서 나에게 다가왔을 때를 잊을 수가 없어. 난 네가 정말 밤하늘의 별이라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 난 네가 그리울 뿐이야. 너를 다시 보기위해 나도 의사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치료도 열심히 받았어. 그래서 이렇게 건강해졌단다.
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해. 보고 싶어 반딧불아.’
수진이의 순수한 마음 때문이었을까요? 밤하늘에 높이 올라간 풍등을 멀리서 보니 반딧불이 다시 돌아온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늘 높이 떠오른 풍등을 닮은 수천 개의 별들이 반짝이기 시작했고 지금도 무주의 밤하늘에는 수진이와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눈 반딧불이 밝은 불빛을 반짝이며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눌 또 다른 친구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올 여름이 몇 십 년 만에 온 폭염이라더니 조금만 움직여도 금세 이마에 땀이 맺혔다. 시원한 빗줄기라도 내리면 좋으련만 하늘을 구름한 점 없이 맑고 태양은 지글거리며 만물을 비추었다. 장마가 왔어도 두 번은 왔을 시기인데 뉴스에서는 마른장마라며 비는 내리지 않고 습하기만 한 날씨가 당분간은 더 지속될 전망이라고 했다.
하릴없이 모여 있는 남자 둘이라니. 누가 보면 한심하다며 혀를 끌끌 차고 갔겠지만 이 남자들의 공통점은 솔로라는 것이다. 현기는 일병 말에 여자친구가 고무신을 거꾸로 신은 상병이 현욱은 자그마치 삼일 전에 커플지옥에서 솔로천국으로 들어온 따끈따끈한 복학생이다. 간만에 쉬는 날짜가 겹친 남자 셋은 딱히 만날 사람도 갈 곳도 없이 늘어져 있었다.
현기는 목뒤로 흐르는 땀을 닦으며 연신 손부채질을 해댔다.
“아! 이럴 땐 그저 마루에 시원한 대나무 자리 하나 깔고 대 자로 드러누워 낮잠 한 숨 자면 그만인데.”
“맞아, 죽부인 하나 껴안고 자면 며칠 못 잔 잠 몰아서 잘 수 있을 텐데. 크큭”
“으이구, 죽부인도 여자로 보이냐? 한심한 자식. 그나저나 우리 이렇게 쉬는 날도 겹쳤는데 방에서 할 일없이 뒹구는 것 밖에 할 게 없냐? 어디라도 갈까?”
“대나무 죽부인 하니까 생각나는 건데 담양 대나무 숲에나 놀러갈까? 거기 영화 촬영도 많이 했잖아, 대나무 밭에서 무림 고수들의 싸움이랄까. 한판 할래?”
원래 여행은 갑작스럽게 가는 것이 제 맛이다. 어디로 갈 것인지 장소가 정해지고 함께 갈 사람만 있으면 그뿐이다. 배낭하나 둘러메고 출발한 담양 여행길에 들뜬 둘은 연신 종알대었다. 귓가가 따갑도록 수다를 떨다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랐다.
숨을 한번 들이 쉬어 마시니 공기가 시원하고 차가운 것이 청량감이 돌았다. 담양하면 떠오르는 대숲에 들어서니 빼곡히 서있는 대나무들로 인해 뜨겁게 내리쬐던 햇볕이 잠시 누그러졌다. 바람이 불때마다 대나무들은 스스스 하며 울어댔다. 눈을 감고 들어보니 빗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현욱의 말에 차분하게 명상하는 것도 잠시였다.
“이야. 대나무 죽이네. 판다가 있을 것만 같아.”
“저기 있네. 판다.”
현기가 가리키는 곳에는 모형으로 만들어놓은 판다 조형물이었다.
“사진이나 찍을래?”
“남자 둘이? 미쳤냐? 사람들이 보면 욕해.”
“뭐 어때, 이것도 기념인데 찍자 찍어.”
친절해 보이는 아주머니께 사진 좀 찍어달라고 부탁 한 뒤 대나무 숲에서 포즈를 취해보았다. 앞에는 아기자기한 판다 모형이 있었고 지나가던 여자들의 시선이 조금 따가웠지만 상관없었다. 남자들이라고 다정하게 사진 못 찍을 이유가 무엇이 있겠나.
자 하나, 둘, 셋! 찰칵!
푸른빛으로 가득한 대나무들 사이로 한 줄기 햇볕이 새어 들어오니 아늑함과 함께 비밀스런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무더운 여름의 더위는 잠시나마 사라지고 답답하기만 한 가슴은 뻥 뚫렸다.
또 한 번 바람이 불었다. 스스스스.
“눈 감고 팔은 딱 벌리고 소리를 들어봐.”
“눈 감고 팔을 딱 벌리고? 소리를 들어?”
현욱은 현기의 말대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스스스스. 마치 대나무 잎 하나하나가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빗소리처럼 들렸다.
“비가 오는 것 같아.”
“그렇지! 시원한 초록비가 내리는 것 같지?”
“짜식. 초록비는 무슨, 배고프다 국수나 한 그릇 먹으러 가자.”
“낭만이라고는 국수처럼 말아먹고 온 자식. 같이 가!”
달려 나가는 현욱의 뒤로 현기는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대나무 소리와 바람 그리고 초록빛이 가득한 곳에 현욱의 모습이 담겨있다.
사진 제목은 초록비가 내리던 날.
엄마는 오늘도 추억에 젖어든다. 엄마는 서재에 들어가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나올 줄을 몰랐다. 그래서 나는 종종 엄마가 서재에 들어간 시간을 알차게 이용한 적도 있다. 엄마가 서재에 들어가서 무엇을 보는지 살그머니 다가가 빼꼼 열린 문을 통해 본적이 있는데 아마도 사진첩을 보는 듯했다.
흑백사진은 지나간 추억을 곱씹는데 유난히 적절함을 선물한다. 똑같은 장면임에도 그것이 아주 선명한 컬러사진이었다면 가슴으로 느껴지는 아날로그적 감성은 아주 현저히 떨어졌으리라 생각한다.
엄마는 오늘도 똑같은 그 사진이다. 나는 언젠가 엄마에게 그 사진이 도대체 무엇인데 그렇게 행복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냐고 물은 적이 있다. 엄마는 내 머리를 톡 치면서 쪼끄만 넌 몰라도 된다고 하셨다. 엄마는 정확히 이야기해주지 않았지만 나는 왠지 알 것 같았다. 그 사진속의 주인공이 엄마의 첫사랑이라는 것을.
엄마가 집에 없을 때 몰래 서재에 들어가 그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촘촘히 돌로 쌓은 긴 다리에 엄마로 추정되는 소녀와 엄마의 첫사랑으로 생각되는 소년이 서로를 향해 걸어오는 장면이었다. 엄마는 행복해보였다. 단정하게 양 갈래로 땋은 머리와 나풀거리는 치마는 엄마에게도 좋은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적절했다.
따사로운 햇볕이 눈부시게 내리쬐고 바람이 나뭇가지를 못살게 구는 오후다.
우리가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까? 이렇게 글을 적어 내려가는 이 시간에도 나는 네가 그립구나. 물에 참방참방 돌을 던지던 너.
너는 그날의 햇살보다 더욱 눈이 부셨어. 그런 네가 돌다리 너머에서 내게로 뛰어오고 있노라면 심장이 콩닥거려 너도 몰래 뒤를 돌아 숨을 고른 적이 있단다.
이름만큼 아름다운 너. 우리가 다시 만날 때 내가 이 편지를 건네면 너는 두 볼이 발그레 질까? 생각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구나.
지금도 네가 그리운 -가.
손발이 오그라드는 연애편지다. 엄마의 연애편지를 훔쳐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진과 함께 꼬깃꼬깃하게 접어둔 누런 종이는 엄마의 주름살만큼이나 세월의 흐름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밖에 인기척이 들리는 것을 보니 엄마가 오셨나보다.
“너 왜 거기서 나와?”
“응? 아니, 책 좀 볼게 있어서. 근데 엄마, 엄마 오늘 좀 예쁘다.”
“간지럽게 왜 이래? 용돈 떨어졌어?”
“치, 엄마는~ 그냥 엄마에게도 햇살 같은 날이 있었던 것 같아서.”
“무슨 소리야? 당최 알아듣질 못하겠다. 싱거운 소리 그만하고 어서 손 씻고 와. 음식 준비해야지.”
엄마는 아빠가 그리울까? 아빠는 엄마를 그렇게 그리워했는데.
사진 속의 아빠는 웃고 있었다. 그 옛날 다리 위에서 엄마를 바라보고 있던 아빠는 엄마만큼이나 행복한 웃음을 띠고 있다.
지금 아빠가 생전에 좋아하던 전과 나물 그리고 밥을 앞에 두고 또 다른 사진 속 아빠는 웃고 있다.
제사가 끝나고 나는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 우리 진천갈까? 그 다리 나도 걸어보고 싶어.”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자 수정이가 오늘도 어김없이 동화책을 읽어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수정이가 골라온 책들은 오늘도 <눈의 여왕>이나 <플란다스의 개>, <어린 왕자> 같이 언젠가 가 볼 수 있을 것 같은 먼 나라의 이야기들이었다. 이야기의 굴곡에 따라 울고 웃던 수정이가 어느 새 잠이 들면 나는 이불을 꼭 덮어주고 조용히 방문을 닫으며 눈물을 훔쳤다.
수정이가 학교에 가지 못한 지도 어느 새 일 년이 넘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기 시작했으니, 또래 친구들도 없었다. 대신 아파줄 수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몇 차례나 수술을 반복해도 수정이의 몸 상태는 쉽게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남편과 나는 수정이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갖고 싶은 것이든, 먹고 싶은 것이든 무리를 해서라도 다 사 주었다. 하지만 수정이의 표정은 좀처럼 밝아지지 않았다. 오랫동안 바깥을 돌아다녀 본 적이 없으니 점점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모양이었다. 수정이는 시들어가는 꽃처럼, 멍한 얼굴로 하루 종일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다 나아서 학교에도 가게 되고, 친구들도 사귀게 되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어도 항상 묵묵부답이던 수정이가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은 동화책을 읽어주기 시작한 뒤부터였다. 눈의 여왕이 사는 얼음 궁전과 파트라슈가 뛰어 놀던 튤립이 만발한 들판, 어린 왕자가 도착했던 사막과 같은 곳에 가 보고 싶다고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전래 동화책을 읽어 줄 걸 그랬다고 농담을 하면서도 남편과 나는 기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몇 주 뒤 수정이는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큰 수술을 앞두고 있었고, 남편과 나는 지쳐 있는 수정이를 위해 나들이를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아픈 아이를 데리고 너무 먼 곳으로 갈 수도 없어서 고민 끝에 결정한 행선지는 대부도였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바다를 좋아할뿐더러, 대부도가 요 근래 관광 개발에 힘을 쏟고 있어 여러 가지 볼거리가 많이 생겼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수정이는 나들이를 가기로 한 날 아침에도 식사를 몽땅 토했지만, 좀 더 나으면 가자는 남편의 말에 주사를 맞을 때보다도 더 큰 목소리로 엉엉 울기 시작했다. 남편과 번갈아 가며 달래도 보고 혼내도 보고 한참 애를 썼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눈이 퉁퉁 부은 아이를 안아서 차에 태우고 대부도로 향했다.
바다에 들어가기도 이른 계절이라 가서 아무것도 못 하면 어쩌나 고민했는데, 마침 대부도에서는 튤립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섬에 웬 튤립이 있나 의아해하고 있었는데, 우리 가족의 눈에 들어온 풍경은 상상 이상이었다. 알록달록한 튤립을 지천으로 심고 풍차까지 세워 섬을 네덜란드의 전원 풍경처럼 꾸며 두었던 것이다. 조성된 지 얼마 안 된 테마파크인 모양이었다. 바닷바람에 오색 풍차와 바람개비가 돌아가고 있는 모습, 멀리 바다가 건너다보이는 넓은 갈대밭까지 발견한 수정이가 신이 나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엄마, 이것 좀 봐요! 꼭 동화책 속에 들어온 것 같아!”
차로 이십 여 분 거리에는 유리섬이 있다고 했다. 유리섬. 유리로 만든 섬. 그 이름을 듣자마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수정이는 잠깐만 해변을 걷겠다며 미처 말리기도 전에 차를 뛰쳐나갔다. 저만치 걸어가고 있는 딸아이가 마치 유리로 만든 성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남편과 나는 수정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손을 꼭 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