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는 내게 너는 놀아달라며 짓궂게 내 품에 파고든다. 읽던 책은 마저 읽고 나가자고 해보아도 이내 무릎을 베고 눕더니 무슨 내용을 읽느냐며 귀찮게 군다. 취미로 플로리스트 과정을 배우고 있던 차라 책을 고를 때에도 이런 장르로만 손이 간다.
꽃말에 관한 책을 읽고 있던 중이다. 꽃말이라고 하면 10대의 여린 감수성에 내게 맞는 꽃말은 어떤 것일까 찾아본 것 이외에는 없었다.
“음~ 장미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이 아마 빨간 장미가 아닐까 싶어! 빨간 장미는 사랑, 절정, 기쁨, 아름다움이고 하얀 장미는 순진, 존경, 순결이래. 노란 장미는 질투라네!”
“너는 질투가 많으니까 노란 장미가 딱 잘 어울리겠다.”
그러고 보니 너는 장미꽃 한번을 사준 적이 없다. 그 흔한 장미꽃 한 송이도.
“꽃꽂이 하면서 예쁜 꽃들도 많이 봤겠다. 그치? 그럼 넌 어떤 꽃이 제일 좋아?”
“글쎄. 꽃은 다 너무 예쁘고 각자가 가진 매력이 다 달라서. 근데 오늘은 장미!”
“오늘은 장미? 뭐가 그래. 그럼 내일은 또 다른 꽃으로 바뀐단 말이야?”
“그럴 수도 있지 뭘. 어차피 계절마다 피고 지는 꽃들도 다른데 사시사철 같은 꽃만 좋아하라는 법 있어? 오늘은 수요일이니까 빨간 장미!”알아들었을까? 이렇게까지 빨간 장미를 받고 싶다고 메시지를 보내는 데 못 알아 듣는다면 정말 미련 곰탱이라고 불러줄 것이다.
이야기가 금세 또 싫증이 났는지 내가 보고 있는 책을 뺏어가더니 나가자고 성화다. 나가면 어차피 밥, 커피, 영화. 영화, 밥, 커피의 반복일거면서 굳이 왜 나가서 시간을 보내야 하냐고 물으려다 그만 둔다.
“어디 갈 건데? 뭐 하고 싶은 거라도 있어? 그래서 이렇게 보채는 거야?”
“그냥. 네가 가면 좋아할 만한 곳이 생각이 나서.”
남자친구의 손에 이끌려 온 곳은 풍암호수 수변공원이었다. 그곳은 때마침 장미축제가 한창이었다. 공원 곳곳을 아름답게 수놓은 장미꽃들의 지릿한 향기에 금세 매료되었다. 그곳에는 연인, 가족, 친구 등 다양한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더 다양한 종류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장미를 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문득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가 떠올랐다.
“여기 있는 장미를 다 모으면 백만 송이가 될까?”
“백만 송이? 글쎄. 감이 안 잡히네. 그런데 아니지 않을까? 수백만 송이면 그게 다 얼마야?”
백만 송이 장미의 노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고 했다. 한 여자를 향한 구애의 도구로 전 재산을 털어 백만 송이 장미를 선물한 남자. 여자는 백만 송이 장미가 주는 아름다움만큼 황홀했을까?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포토존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생각에서 일까 포즈를 취해가며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확실히 꽃이 예쁜 곳에는 사람이 많았고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차례가 돌아왔다.
색색 깔의 장미로 둘러싸인 터널 같은 곳에서 브이자를 그렸다.
천천히 장미꽃을 둘러보는데 장미의 종류가 이렇게 많았나 싶기도 하고 장미처럼 생기지 않은 장미꽃도 많았다. 프린세스 오브 모나코, 코사이, 람피온과 같이 이름들도 모두 귀족적이었다.
“이름들이 하나같이 다 멋있네. 마치 공주님 이름 같아.”
“그럼 얘한테도 예쁜 이름 하나 지어줘봐.”하며 빨간 장미꽃 한 송이를 내밀었다.
“뭐야. 갑자기?”
“뭐긴, 네가 오늘은 빨간 장미가 좋다며. 그래서 준비한 거지. 얼른 이름이나 지어줘.”
“쳇, 둔감한 척 하더니만.”
그렇다면 이 장미의 이름은 빨간 장미를 위하여!
쏴아아 부서지는 파도소리만 무성하다. 시간을 조금 더 지체하면 학교에 지각을 할 시간이지만 애꿎은 모래알만 매만지고 있다. 걸어갈 때마다 도시락 가방에서 나는 달각달각 수저 부딪히는 소리가 싫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엄마는 늘 억척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는 순댓국 장사만 벌써 20년째다. 늘 푹푹 찌는 큰 솥 앞에서 걸핏하면 대낮부터 술 한 잔 걸친 공사판 아저씨들 앞에서 걸걸한 말을 하며 지낸 세월이 엄마를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엄마는 늘 도시락에 머릿고기와 순대 그리고 새우젓만 싸주셨다. 나는 그런 엄마가 미워 일부러 도시락을 놓고 간 적도 있다. 다른 애들은 몰라도 신애는 점심시간이 오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으니까. 엄마는 내가 일부러 놓고 간 것을 알아챘는지 복에 겨워서 저런다며 한 소리 했다.
모래알만 매만지던 나는 터덜터덜 교실로 들어갔다. 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국어시간이었고 김정한의 모래톱 이야기를 배웠다. 모래톱이야기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건우의 이야기인지 나 자신의 이야기인지 모를 정도로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나룻배를 타고 통학하는 건우.
갯배를 끌고 나가 통학하는 나.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가진 섬마을에 사는 건우.
실향민들로 이루어진 아바이마을.
내가 살고 있는 아바이 마을은 분단의 아픔이 고스란히 적셔있는 마을로 어려웠던 전후시대를 살아오며 고단하고 억척스러운 곳이었다.
부둣가로 올라오면 생선 비린내가 자욱했고 쪼그려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움푹 파인 마음의 주름을 부서지는 파도에 쓸어내리는 그런 곳.
나는 창밖에 부서지는 모래성을 바라보았다. 아슬아슬 하얀 거품에 스러지지 않기 위해 슬금슬금 뒷걸음을 치는 모래성이다. 쏴아아 쏴아아 겁 없는 파도는 모래성으로 돌진하였고 결국 파도는 모래성을 집어삼켰다.
모래톱 이야기에서 건우는 더 이상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
분단으로 인해 고향으로 가지 못한 설움이 남아있는 곳. 파도가 그 설움마저 무너뜨리는 것 같았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쳤다. 무심하게 발로 도시락 가방을 톡 건드려본다.
‘달각’ 소리를 낸다.
윗동네에 사는 은서가 도시락 가방을 들고 내 자리로 왔다. 나란히 앉아 도시락 가방을 연다.
은서는 새하얀 쌀밥에 멸치볶음에 장조림을 싸왔다. 내 반찬은 어김없이 머릿고기에 순대 그리고 새우젓일까.
어쩌면 나도 멸치볶음에 장조림을 싸주지는 않았을까?
창밖의 갯배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왔다 갔다를 반복한다. 신기한 듯 갯배를 타고 오가는 사람들이 갯배를 타고 오고간다. 신기한 듯 배를 타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드라마 때문일까 어느 날 부턴가 갯배는 헤어진 연인들의 아련한 추억의 공간이 되었고 짙은 녹색에서 희미한 푸른색의 느낌을 띄기도 했다.
반찬통을 열기도 전에 익숙한 냄새가 풍겼다.
도시락 가방을 두고 갔던 날.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내가 싫었던 건 엄마도 아니고 돼지 비린내도 아닌 ‘달각’소리였다는 것을.
어린나이에 남편과 헤어지고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도 벌써 3년이 지났다. 친정엄마도 아이를 그다지 탐탁지 않아 하였기에 아이를 봐달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서부터 어린이집에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이집 원장님께서 전화를 주었다.
“풀잎이 어머님 되시죠? 여기 어린이집인데요. 아이 문제로 상의드릴 일이 좀 있어서요.”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는데 나는 급하게 처리하던 일 때문에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더 급하니 나중에 다시 전화를 걸어 달라고 말할 뻔했다.
“네? 잠시만요. 아이 문제라니요?”
“풀잎이가. 말을 잘 안하려고 하네요.”
“아이가 원래 말을 잘 안 해요. 집에서도. 몸이 아프거나 그런 건 아니죠?”
“어머님. 이건 몸이 아픈 것 보다 더 심각한 문제인 것 같은데요. 일단 오늘 저 좀 뵙고 가세요.”
어린이집 원장선생님께 한 차례 꾸중 아닌 꾸중을 듣고 난 뒤 7시가 넘은 시각에 아이를 데리러 갔다. 아이는 방 한 편에 곤이 자고 있었다.
“풀잎이 어머님 되시죠? 잠시 제 방으로.”
“네, 오전에는 죄송했어요. 제가 급한 일을 처리할 게 있어서. 원장님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못했네요.”
“일이 많이 바쁘신 건 알겠지만. 그리고 제가 의사도 아니라 잘은 모르겠지만 풀잎이가 유난히 또래보다 정서발달이나 언어 발달이 늦은 것 같아요. 지금 풀잎이 정도면 한창 이것저것 호기심도 많고 말도 많이 웅얼거릴 시기인데 혼자 장난감만 쥐었다 폈다 정도니까.”
원장님의 말에 갑자기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아이에게 좋은 옷, 좋은 음식,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려고 했던 것뿐인데 지금 아이는 홀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니. 그것도 이렇게 조그마한 아이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네? 선생님.”
“뭐, 일단 아이와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엄마 아빠와 고루 정서를 교감하는 것이 아이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물론 그러기 힘들다는 것 저도 잘 알고 있지만요. 아니면 자연이나 동물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차선책이긴 하지만 그런 것도 좋고요.”
아이와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최선이라는 원장선생님 말씀에 큰 결심을 해야 했다. 엄마손이 가장 많이 필요한 시기에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부족한 아이는 정서가 고루 발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이번 주 주말에 하루만 시간을 내기로 했다.
오랜만에 우리 세 식구가 모였다. 가족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어색함이 감돌았지만 날씨도 좋았고 북서울꿈의숲에는 역시나 가족단위로 모인 사람들이 많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넓고 넓은 잔디밭이 어색한지 자꾸만 한곳에 가만히 서있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잔디를 밟아보았다.
“풀잎아. 이게 잔디야. 잔디. 그리고 지금 풀잎이 볼을 스치고 간 건 바람.”
풀잎이도 마음이 조금 열렸는지 발을 콩콩 굴렀다. 한 손에는 아빠의 손을 다른 한 손에는 엄마의 손을 잡은 풀잎이는 모처럼 신이 난 모양이었다.
“우리 풀잎이 기분 좋아? 풀잎이가 좋으니까 엄마도 기분 좋다.”
“엄마, 아빠, 풀, 바람, 하늘, 구름”
풀잎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단어들을 나열하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니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눈물이 흐르는 것을 감추기 위해 하늘을 바라보니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쾌청했다.
남편이 이런 내 모습을 보았는지 가볍게 등을 토닥여 주었다. 남편의 뜻밖의 행동에 서러움이 북받쳤는지 또 눈물이 핑 돌았다.
“혼자 힘들었을 거 알아. 양육비랍시고 돈 보내주는 것 밖에 못해서 미안해. 오늘 풀잎이 보니까 나도 느끼는 거 많았어. 미안해. 앞으로 자주 시간 보내자.”
남편의 말에 어쩐지 힘이 났다. 그 누구의 말보다 그 누구보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이루어졌던 월미도는 연인들의 사랑과 낭만이 가득한 곳이 되었다. 노르망디상륙작전 이후 최대 규모의 상륙 작전이라고 불리는 인천상륙작전. 어머니마저 돌아가신 뒤, 나는 자연스레 다시 이곳을 찾았다.
어머니는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셨던 아버지를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하셨다. 인천상륙작전에서 발생한 여덟 명의 전사자 중 한 분은 아니셨다. 아버지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으셨지만, 전쟁에 대한 후유증으로 힘들어 하시다가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고 했다. 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전쟁이 원망스러울 법도 한데, 전쟁을 회상하시면서도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으셨다.
“네가 그 자랑스러운 분의 딸이란다.”
어릴 때부터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하시던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때의 어머니는 항상 환하게 웃고 계셨다.
문득 십 년 전,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가 떠올랐다. 아이들을 데리고 오기에는 너무 무거운 분위기의 기념관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큰애인 미현이도, 작은 애인 미정이도 여기저기에 자리한 총을 든 군인들과 탱크들의 모습에 잔뜩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울먹이며 보채는 어린 딸들 때문에 기념관을 자세히 둘러보지도 못하고 돌아왔던 기억이 있는데, 이제는 아이들도 대학생, 고등학생이 되어서 그런지 사뭇 진지한 모습이었다.
그런 딸들을 보면서도 기분이 묘했다. 소설이나 영화에서라면, 참전자의 가족들은 이곳에 와서 울음을 터뜨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도, 아이들도 전쟁을 피부로 겪어 본 세대는 아니었다. 나조차도 이곳에 있는 전쟁의 기록들이 어렵기만 한데, 딸들에게는 오죽할까 싶기도 했다.
유월 이십오 일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지 단체로 관람을 온 아이들이 많았다. 원복을 입고 노란 가방을 멘 유치원생들은 전쟁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눈물이 글썽해진 아이도 있고, 친구의 손을 꼭 잡은 아이도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참혹하게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은 어린 아이들에게는 이상하기만 한 일인 것 같았다.
“선생님! 전쟁이 또 일어나면 어떻게 해요?”
흑백으로 찍힌 전쟁 사진들을 보고 눈이 동그래져서 질문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스쳐 지났다. 글쎄, 어떻게 해야 할까. 나조차도 전쟁은 먼 나라의 이야기 같게만 느껴지는데 말이다. 어머니는 항상 아버지 이야기를 하셨지만, 나는 아버지의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교과서를 통해, 방송을 통해 전쟁 이야기를 접할 때에도 눈물이 나기는커녕 ‘아, 저런 일이 있었구나. 잊지 말아야지.’하는 단편적인 감상밖에는 들지 않았다. 유월이 될 때마다 여기저기에서 쓰는 말인 ‘호국영령’ 중 한 명이 바로 우리 아버지인데도 말이다. 몇 십 년이 지난 뒤에 내가 죽어 아버지를 만난다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이 아픔을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이해해야 할 텐데 그것이 너무 어려웠다.
야외 전시장을 지나 기념관을 나서려는데 미정이가 나를 불렀다. 딸이 가리키고 있는 곳에는 벽을 오르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을 한 청동상이 있었다.
“엄마, 이것 좀 봐요. 이 중에 할아버지의 모습이 있을까?”
그 말을 들은 순간 어찌 할 수도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는 어머니의 얼굴 대신, 부엌에서 숨을 죽여 우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아픔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었다.
오늘도 곰과 호랑이는 아옹다옹합니다. 서로 자신이 더 우위에 있다며 형님이라고 부르라는 것이지요. 곰은 단군시대부터 호랑이보다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고 호랑이는 한반도가 호랑이 형상을 띄고 있으니 자신이 곰보다 더 우위에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곰과 호랑이의 싸움을 보다 못한 밤나무가 제안을 하나 하였습니다. 우리 마을 숲속 동물친구들 앞에서 공주에 전해지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서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동물이 형님이 되는 것이었지요.
곰과 호랑이 둘 다 밤나무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다음날 정오가 되자 밤나무 주위로 동물 친구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밤나무를 사이에 두고 빙 둘러앉은 동물친구들도 곰이 이길지 호랑이가 이길지 의견이 분분하였지요.
먼저 곰이 어깨를 으쓱하며 나섰습니다.
“에헴,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아주 먼 옛날 연미산 강 건너에 홀로 외롭게 살고 있던 암곰 한마리가 있었어. 늘 외로움에 떨며 캄캄한 동굴 속에 살았지. 그런데 어느 날 강 나루터 근처에 나무를 하고 온 나무꾼이 목을 축이려고 강가로 내려오는 게 아니겠어? 물고기를 잡으러 강가로 나갔던 암곰이 글쎄 그 나무꾼을 데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캄캄한 동굴 속으로 들어갔어.
목숨을 잃을까 두려웠던 어부는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암곰이 자신을 헤치지 않고 먹을 것을 물어다 주고 살뜰히 대해주는 게 아니겠어? 그래도 나무꾼이 도망을 갈까 두려웠던 암곰은 동굴의 문을 굳게 닫고 열어주지 않았어.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나무꾼은 조금씩 암곰에게 마음을 열고, 정을 나눈 암곰과 나무꾼은 자식도 낳고 오순도순 살았지.
쯧쯧쯧, 그런데 암곰이 사람을 너무 많이 믿었던 거야. 나무꾼이 인간세상을 그리워하는 줄 몰랐던 거지. 어느 날 암곰이 물고기를 잡으러 강가로 나간 순간, 나무꾼은 열린 동굴 문을 통해 통나무배를 타고 도망을 쳤어. 물고기를 잡다 장면을 목격한 암곰은 새끼 두 마리를 안고 나무꾼에게 도망가지 말라고 애원을 하였지.
하지만 나무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배를 타고 떠났고, 암곰은 자식들을 품에 안고 강물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네.
어때? 구슬프고도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가 아닌가? 그러니 내가 저 호랑이놈보다 형님이 되는 것이 맞지!”
곰의 이야기가 끝나자 동물 친구들은 슬픈 이야기에 훌쩍거리며 곰이 형님이 되는 것이 맞지! 하며 곰의 편을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호랑이도 질세라 크르렁 거리며 동물들 앞에 나왔지요.
“어허! 내 이야기는 아직 시작도 안했다고! 다들 잘 들어봐.
옛날 계룡산에 한 중이 작은 암자를 짓고 도를 닦고 있었어. 그런데 절 밖에서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게 아니겠어? 문 밖으로 나가보니 호랑이가 고통스러운 소리로 울부짖으며 목을 바닥에 비비는 거야. 가까이 다가가보니 호랑이 목에 큰 비녀가 걸려 있었어. 스님은 고통스러워하는 호랑이의 목에서 비녀를 빼주었지. 호랑이는 고마움을 표하고 유유히 사라졌어. 호랑이가 다녀간 다음날 또 문밖에서 기척을 느낀 스님이 밖을 나가보니 어제 그 호랑이가 웬 처녀를 물어다 놓고 재빨리 사라지는 것이었어. 정신을 잃은 처녀를 방으로 옮겨 정성껏 돌보아 주었지.
정신을 차린 여자는 혼인을 앞둔 양가의 처녀였어. 저녁에 뒷간에 갔다가 정신을 잃었다고 하였지. 스님은 처녀를 본가에 데려다 주었지만 자신을 구하여 준 스님을 따라 불도를 닦으며 일생을 보내기를 소원하였어. 처녀의 어버이도 하는 수 없이 허락하였고 스님 역시 간곡한 청을 뿌리칠 수 없었지. 그렇게 처녀와 스님은 의남매를 맺고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열반에 올랐다는 군.
어때! 내 이야기가 더 흥미롭지 않아? 그러니 저기 저 곰보단 내가 형님이 되는 것이 옳아!”
곰과 호랑이의 이야기가 끝나자 동물친구들은 의견이 분분하였습니다. 결국 투표로 진행하게 되었답니다. 호랑이 하나, 곰 하나. 그렇게 투표가 진행되었습니다. 마지막 표를 하나 남겨두고 호랑이와 곰의 투표는 동점이었지요. 마지막으로 표를 열어보니 호랑이와 곰 중간으로 기권이 나온 것입니다. 그렇게 곰과 호랑이의 승부는 오늘도 무승부가 되었습니다.
다음에는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로 공주 마을의 이야기 왕이 되기 위한 내기를 할까요?
선농제는 농업 신인 신농과 후직에게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다. 선농제는 제왕의 왕도정치를 실천적인 권농책으로 강조해 일찍이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다. 예전에는 음력 1월인 맹춘에 지냈다고 했는데 지금은 너무 추워 파종을 못하기 때문에 개구리가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 뒤의 좋은 날을 골라 시행하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경칩이 지나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임금님께서 곧 친경(임금님이 직접 참여하는 행사)하시는 날이 가까워졌다는 이야기다. 올해는 음력 2월 9일 춘분에 맞춰 친경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어 궁궐에서는 임금님 행차에 앞서 이것저것 준비에 바쁘다.
임금님께서는 지난해 춘경을 하시며 상언과 격쟁을 열어 이야기를 직접 들으셔 백성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상언은 일반 백성들이 왕에게 직접 억울함을 글로 호소하는 것이고, 격쟁은 임금의 행차 중에 징이나 꽹과리를 쳐서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하는 것인데 임금님께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문제 해결을 지시하기도 했다.
거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가뭄과 홍수를 겪고 있어 백성은 백성대로 굶주리고, 임금은 임금님은 그 모든 것이 자신의 부덕 때문이라며 눈물을 보이시는 날이 많다. 그럴 때마다 임금께서는 신하들에게 거리낌 없이 말하라며 직언을 요청하는 한편, 자신이 직접 민생을 살피기 위해 궁을 나서기도 하신다고 한다.
드디어 선농제의 날이 다가왔고 임금께서는 선농단이 있는 제기동으로 행차 하셨다. 올해도 가뭄이 심했다. 임금께서 하문하시길 “가뭄이 너무 심하다. 소나기가 내렸지만 안개가 끼고 흙비가 왔을 뿐이다. 기후가 이렇듯 순조롭지 못하니 벼농사 형편이 걱정되는구나.”라 셨다.
청계천을 따라 행차가 이어지고 동대문을 지나심에 들녘을 돌아본 뒤 말문이 막히신 듯. “날이 가물어 지력이 약해진 것을 보니 눈물이 날 지경이다. 원래 이 땅은 비옥한 편인가, 메마른 편인가?”라면 대언에게 물었다. “원래 이 땅은 메마른데다가 가물어서, 작년 홍수로 농사가 잘 안됐습니다.” 그러나 대언을 거짓을 고한 것이다. 원래 비옥한 땅인데 침통한 임금님의 용안을 본 그가 거짓을 아뢴 것이다.
선농단에 도착하신 임금님께선 풍요를 비는 선농제를 지내시고 하늘을 우러러 비를 내려 주십사 기우제를 지내셨다. 임금께서는 이농기의 가뭄과 여름철 홍수로 고통 받는 백성들을 생각하시며 눈물을 흘리시며 하늘에게 비를 내려 달라 빌고 또 빌었다. 선농제가 있는 오늘도 봄 가뭄으로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선농제, 기우제가 끝나고 어느덧 많은 시간이 흘러 임금께서 서둘러 환궁해야 할 시간이 됐다. 임금님의 가마가 움직이는 순간, 거짓말처럼 하늘에서는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이내 메마른 땅을 적셔주는 굵은 빗방울로 바뀌어 있었다. 모든 백성과 신료들이 뛸 듯이 기뻐하며 너나 할 것 없이 춤추고 흥에 겨웠다. 하지만 많은 비로 땅이 질어져 임금님의 가마를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불상사가 생겼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 환궁하기로 했고 임금님의 수라상을 올릴 시간이 됐다.
하지만 임금님과 대신들 이외에 먹거리가 부족해 군관들이나 궁녀, 의원 등과 같은 궁인들은 먹을 게 없었다. 수라상을 받은 임금께서는 작년 흉년으로 고통받는 백성과 궁인들이 배를 곪고 있는데 어찌 혼자만 수저를 들 수 있느냐며 수라상을 물리라 하셨다. 어의와 대신들은 임금님의 하면을 거둬 달라 간청했다. 임금님께서는 모두가 같이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셨지만 인근 백성들도 배를 곪고 있는 춘궁기로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이때 임금님은 선농제에 풍년을 기원하며 쓴 소를 보시고는 그럼 소를 잡아 물어넣고 끓여 다 같이 허기를 달래자 하셨다. 이윽고 대신과 많은 궁궐 사람들, 굶고 있는 백성들을 대접하기 위하여 쇠뼈와 고기를 삶아낸 국물에 밥을 말아 많은 사람들이 허기를 달랠 수 있었다.
이 일이 있고 백성들은 임금님에 대한 칭송이 더 높아졌다. 그 후 백성들을 생각하며 선농제를 지내고 경작에 쓰인 소를 잡아 선정을 베푼 임금님의 높은 애민정신을 생각하며 그 음식을 선농탕이라고 불렀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설렁탕이 됐다. 어떤 사람들은 소를 잡아 설렁 설렁 끓여 설렁탕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하지만 설렁탕은 끓는 물에 뼈와 고기가 오랫동안 우러나야 진한 맛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설렁탕은 임금님의 백성을 굽어 살피신 마음이 베여있어 더욱 진한 향기가 나는 것일 것이다.
약간은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다. 큰기러기의 보드라운 깃털 사이사이로 차가운 공기가 스며들었다. 이제 가을도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강가는 아직 활기차다. 논병아리 가족들이 줄지어 쪼르르 헤엄치고 있고 청둥오리들도 무리지어 강가를 누볐다. 강가에서 유일하게 혼자인 희망이는 강가를 빙빙 돌며 헤엄쳤다. 가족들이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희망이는 날개를 괜히 접었다 폈다 하며 빨리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희망이는 큰기러기이다. 일찍이 가족들과 이별한 희망이는 강가에서 늘 외롭게 떠돌았다. 간혹 친구들을 사귀기 하였지만 그런 친구들은 금세 다른 곳으로 떠나버렸다. 그래서 희망이는 더욱 외로움에 자신을 가두기도 하였다.
별이 쏟아질 듯한 밤이 오자 희망이는 샛노란 달님을 보며 어김없이 가족들을 그리워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찬바람이 제법 쌀쌀해졌고 강가를 누비던 논병아리 가족들과 청둥오리도 서로 몸을 맞대며 추위를 견뎠다. 이제 겨울이 온 것이다. 외로운 희망이는 몸을 맞댈 가족도, 친구들도 없었다. 또 홀로 날개를 펄럭이며 강가를 빙빙 돌기만 할 뿐이다.
그런데 그때 한 무리의 오리 떼들이 날아왔다. 언뜻 봐도 어마어마한 수의 오리 떼들이 날개를 펼치며 강가로 내려왔다. 희망이도 오리 떼들을 보긴 했지만 이렇게 많은 수는 처음이었다. 큰 눈이 더욱 휘둥그레져 오리 떼들을 바라보았다.
그때 많은 오리의 무리에서 유난히 초록색의 멋진 머리를 가진 오리 한 마리가 희망이에게 다가왔다. 희망이는 자기도 모르게 한걸음 물러섰고 초록색의 머리를 가진 오리는 희망이에게 자신은 가창오리라고 소개를 했다. 희망이도 작은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고 가창오리는 잘 부탁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늘 홀로 강가를 헤엄치던 희망이는 무리지어 헤엄치는 가창오리가 부러웠다. 일제히 하늘을 검게 수놓는 모습도 부러웠다. 그렇지만 가창오리들은 봄이 지나면 다시 북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시 혼자가 될까 두려운 희망이는 가창오리와 친해지고 싶었지만, 또다시 상처를 받을까 봐 가창오리 주위만 맴돌 뿐 가까이 가지 못했다. 그렇게 선뜻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희망이를 위해 가창오리는 갈대를 꺾어 피리도 불어주고 예쁜 꽃을 날개에 달아주기도 하였다. 어느새 마음을 열게 된 희망이는 가창오리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멋지게 하늘을 날기도 하고 누가 더 빨리 헤엄칠 수 있는지 내기도 하였다. 붉은 노을이 스르르 하늘을 물들일 때 일제히 하늘을 수놓는 가창오리의 춤사위를 부러워하던 희망이도 파르르 날아올라 그 무리에 슬쩍 껴보기도 하였다. 시간이 흘러 못 보던 텃세들과 나그네새들이 날아와 친구가 되기도 하였다. 먼저 손을 내밀지 못하던 희망이었지만 가창오리와 함께 지내면서 먼저 친구가 되자고 손을 내밀기도 하였다.
그렇게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아니, 봄의 마지막이 왔다. 이제 가창오리들은 다시 머나먼 길을 떠나야 할 때였다. 희망이는 슬퍼졌다. 가창오리의 주변을 빙빙 맴돌 뿐이었다. 가창오리는 함께 떠나자고 했지만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희망이었다.
이제는 정말로 떠나야 할 때가 왔다. 코끝이 찡해지고 날개가 떨려왔지만 희망이는 입을 꾹 다물며 떨어지려는 눈물을 삼켰다. 어젯밤 달을 보며 가창오리가 떠날 때 울지 않겠다고 가족들에게 약속했기 때문이다. 웃으며 가장 멋진 모습으로 떠나보내 주겠노라고 다짐을 한 희망이는 가창오리에게 잎사귀로 만든 멋진 나비넥타이를 선물하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가창오리도 희망이와의 추억을 잊지 않겠다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라는 인사를 했다.
가창오리는 힘차게 날아올랐다. 가창오리가 날아오르자 나머지 오리들도 일제히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희망이를 위한 마지막 군무를 보였다. 붉게 물든 하늘위로 검은 가창오리 무리가 높게 날아올랐다가 아래로 내려오더니 희망이의 모습을 하늘에 수놓았다.
“안녕! 희망아, 가을이 되면 다시 돌아올게. 그때까지 건강해야 해!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희망이도 하늘을 보며 있는 힘껏 손을 흔들었다. 가창오리 떼들이 먼 길을 떠나고 나서야 희망이는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잘 가! 가창오리야! 보고 싶을 거야….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희망이는 끝까지 울지 않았다. 가창오리와 다시 만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창오리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희망이의 아름다운 날들은 계속될 것이다.
결혼을 앞둔 여자의 목소리는 한껏 흥분과 설렘이 적절히 섞여 있었다. 그녀에게 세상은 핑크빛일 테고 파스텔 톤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처럼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상견례와 결혼 날짜까지 한 큐에 끝내버리고 요즘은 친정엄마와 혼수를 보러 다니고 피부숍을 다니며 생애 한번 있을 아름다운 날을 위해 온 신경을 쏟았다.
서른둘의 나이. 요즘으로 치면 적지도 많지도 않은 나이라지만 먼저 결혼한 친구들의 훈수 덕에 그녀의 머릿속은 적잖이 복잡해졌다. A는 근사한 카페를 통째로 빌려 피아노를 치며 영화의 한 장면처럼 프러포즈를 받았다더라. 친구 B는 청담동으로 시집간다더니 몇 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몇 세트를 받았다더라 하는 말들이 자연스레 들렸고 친구들은 며칠 굶주린 하이에나들처럼 여자의 결혼에 관심을 기울였다.
여자는 신경 쓰지 않고 남자친구에게 내색하지 않기로 마음먹고도 내심 신경이 쓰였고 기대가 되었다. 여자라면 누구나 그럴 거라며 자신은 속물이 아니라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남자친구에게 대뜸 나 어디서 어떻게 프러포즈해줄 거냐. 몇 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워줄 거냐고 따져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무엇보다 남자친구의 형편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여자의 얼굴엔 점점 그늘이 드리웠다.
오늘 예쁘게 입고와. 일 끝날 때 맞춰서 데리러 갈게.
남자친구의 문자다. 여자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예쁘게 입고오라니, 왜? 혹시 프러포즈하려고 그러나? 그렇담 뭘 입어야 하지? 야외에서 하면 좀 쌀쌀할 텐데 겉옷을 준비해갈까? 눈물을 흘려야 하나? 여자는 30초간의 짧은 순간에 몇 가지 생각들을 흘려보냈다.
귀여운 것. 조금 무뚝뚝하긴 했어도 예쁘게 입고 오라는 힌트까지 주다니. 여자는 한껏 들뜬 마음을 즐겼다. 언제 또 이렇게 행복하겠느냐며 이 순간을 즐기자고 생각했다.
여자는 자신이 아끼던 옷을 꺼내 입고 싱글벙글 하며 남자를 기다렸다. 남자는 칼같이 여자를 데리러 왔다.
“어디 가는 거야? 어디로 가는 건데? 응? 왜 예쁘게 입고 오라고 했어? 어?”
여자는 남자의 차에 타자마자 콧소리를 내며 남자에게 질문을 쏟아 부었다. 남자는 가보면 안다며 목적지를 알려주지 않았고 여자의 기대감은 극도로 높아졌다.
그런데.
남자는 카페를 빌리지도 근사한 곳에서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지도 않았고 무릎을 꿇으면서 눈물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무심히 스윽 건네는 반지케이스 하나.
이게 뭐야. 여자는 기쁨과 감동의 눈물을 준비해왔으나 서러움으로 흘릴 줄은 몰랐다. 여자는 기쁨도 감동도 하지 않은 채 말없이 반지케이스만 바라보았다.
“실망했어?”
그걸 말이라고. 여자는 이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으나 차마 내뱉지 않았다.
“어떤 반지인지 궁금하지 않아?” 라고 말하며 반지케이스를 열었다.
붉은빛이 선명한 반지다. 루비인가. 동시에 남자가 말한다.
“루비 아니야. 빨간색을 띄는 희귀 다이아몬드도 아니고.”
“내가 하늘에 떠있는 별을 따다 달래 달을 따다 달래. 그냥 말 한마디 아니 말 한마디가 어려우면 꽃이라도 아니 꽃도 어려우면 노래라도. 그만하자.”
“알아. 네 마음. 섭섭하겠지 속상하겠지. 그런데 반지 꽤 의미 있는 거야. 이게 1월 탄생석으로 만든 거거든. 당신 생일이자 우리 결혼기념일이 될 1월.”
여자는 애써 침착하게 반지를 바라보았다.
“다음번 결혼기념일에는 근사한 카페도 빌리고 백송이 꽃도 준비하고 피아노도 배워서 노래도 불러줄게. 더 예쁜 반지와 함께.”
좀 전에 남자가 내민 보석은 가넷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