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마른 풀을 엮어 만든 움집 앞에 있다. 거대한 버섯을 말려둔 것 같은 모양의 움집 안에서, 금방이라도 온몸에 진흙을 묻힌 원시인 하나가 기다란 창을 들고 나올 것만 같다. 움집 안에서는 바싹 바른 여자 하나가 떨고 있을 것이다. 금방이라도 곰이 나타날 것만 같아서 말이다.
“엄마, 다른 데로 좀 가자니까요? 나 숙제하려면 사진 많이 찍어야 한단 말예요.”
옆에서 아들이 몇 번이고 옷을 당기는데도 나는 그 움집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몇 년 전, 남편과 함께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시간과 운명의 인과관계를 다룬 영화였는데, 다른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 있었다. 바로 우울증에 걸린 여주인공을 지키는 주인공의 모습이, 곰으로부터 아내를 지키는 원시인의 모습으로 표현된 것.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원시 복장 차림의 여자에게 이제는 곰이 없다고 되뇌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 오래도록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제, 초등학생인 아들이 기행문을 써야 한다며 나를 졸랐다. 가까운 곳에 무엇이 있나 보았더니, 하필이면 그게 또 선사유적지였다. 나는 영화 속의 그 장면이 꿈에도 나오더니, 이제는 내가 선사유적지를 찾아가게 된 것이었다. 원시인과 내 사이에 운명의 끈이라도 연결되어 있는 것인가 하는 우스꽝스러운 생각을 했었다.
아들이 다시 내 옷자락을 당겼다. 알았어, 알았어. 나는 못이기는 체 걸었다.
아들을 낳고, 나는 꽤 길게 산후우울증을 앓았다. 눈앞에 내 몸에서 나온 아이가 있는데도 몸속이 비어버린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아주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울고, 짜증을 냈으며, 사소한 일로도 남편과 크게 싸웠다.
몇 년이 지나, 우울증은 모두 나았지만 나는 남편을 잃었다. 그 동안 쌓여 온 앙금을 쉽게 이겨내지 못했던 것이었다. 잠시 머리를 식히고 오겠다던 남편은 두 달이 넘게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나는 남편이 어디 있는지 찾으려 하지 않았다. 자존심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없는 곰을 두려워하며 움집 안에 웅크리고 있었던 내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었다.
아들은 이런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처음 보는 원시인들의 모습에 신이 난 모양이었다. 움집 앞 여기저기에 사냥 도구를 만들거나, 잡아 온 사냥감을 굽고 있는 모습들의 황동상들이 서 있었다.
“엄마! 저것 좀 봐요!”
아들이 가리키는 곳에는 나무 막대를 들고 남자에게 사냥법을 배우고 있는 어린 원시인의 모습을 한 황동상이 서 있었다. 아들은 바닥에서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들더니, 그 모습을 똑같이 흉내 내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말했다. 뷰파인더에 눈을 가져다 댔는데, 남자 원시인 옆에서 미소를 지으며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는 여자 원시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인간이란 어쩌면 저렇게 오랜 세월 동안 한결같은 모습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먼 옛날, 선사 시대에 살았던 나도 움집 안에 웅크리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나는 이제 곰을 두려워하지 않아.’라고 의미 모를 문자 한 통을 보냈다. 별다른 생각 없이, 충동적으로 보낸 문자였다. 잠든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나는 휴대전화에 찍힌 정다운 발신자명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전화를 받지 않자, 남편이 문자 한 통을 보내왔다. 나는 남편의 문자를 보고 울었다. 나는, 나의 움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