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강진은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18년간의 당진에 유배되었던 다산은 목민심서, 흠흠심서 등의 저서를 집필하며 거처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인지 차가 많고 차를 마시기 좋은 길이 많아서 다산(茶山)인지 모르겠지만 강진은 언제나 조용하고 다정한 느낌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오늘 <트래블아이>와 떠날 곳은 전남 강진의 다산오솔길입니다. 그럼 이쯤에서 오늘의 미션도 공개해야겠지요? 오늘의 미션은 바로 ‘다산오솔길에서 다산을 만나고 오라’입니다.
요즘 현대인들의 최대의 관심사는 웰빙과 힐링이다. 그래서 걷기를 좋아하며 숲에서 힐링을 느끼려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조금 더 특별한 힐링을 할 수 있다고?
“요즘은 둘레길이나 다양한 숲길들이 잘 마련되어 있는 것 같아. 그래서 언뜻 다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해.”
“그렇다면 오늘 여행이 더 특별하겠다. 200년 전의 사람과 만날 수 있는 곳이거든. 다산 정약용 선생이 제자들과 숱하게 오가던 길이야. 선생의 발자국이 남아있나 볼까?”
숲의 따뜻함을 느끼자마자 다산초당과 마주한다. 제자들을 가르치며 약 500여 권의 책을 지필한 곳이다. 아직도 그곳에서 백성들을 생각하는 선생의 모습이 보일 것만 같다.
“다산선생이 11년간 머물면서 실학체계를 구상하고 백성들을 다스리는 500여 권의 책을 집필하셨던 곳이야. <목민심서>나 <흠흠신서>,<경세유표>등의 저서도 다산초당에서 집필하셨다고 해.”
“지금은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책을 쓰시며 제자들을 가르치고 계실 것만 같아.”
강진만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끝 천일각이 있다. '하늘 끝 한 모퉁이'라는 뜻의 천일각은 유배 당시에는 없었다는데, 그곳에서 만난 다산은 누구를 그리워했을까?
“와, 강진만이 다 내려다보이네? 여기가 천일각이라고?”
“응, 유배 당시에는 없었는데 다산이 흑산도로 유배 간 형 ‘약전’을 그리워하며 눈물지었을 것이라 하여 만들어졌다고 해.”
“유배 중에서 고향을 그리워하고 가족들을 그리워했을 선생의 마음이 느껴져.”
초당 주변에는 다산의 흔적이 남아있는 다산4경이 놓여있다. 약천은 다산이 직접 판 샘물로 왜 약천(藥泉)이라는 이름이 불리게 되었을까?
“여기가 바로 약천이구나! 여기 보이는 이 샘물로 차를 우려마시기도 하고 이 샘물로 담을 삭이거나 묵은 병을 치료하였다고 해서 약천이라고 불린다고 해.”
“지금도 물이 이렇게 나오네! 선생이 마셨던 물을 나도 마실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워, 시공간을 초월한 기분이랄까?”
다산이 해배될 때 초당 뒤편에 있는 바위에 정석이라 새겼다 한다. 고향과 가족이 그리워 한달음에 달려갔을 것만 같은데?
“정석이라고 쓰여 있는 이 바위는 무슨 의미지?”
“그건 선생이 해배되었을 때 남긴 썼다고 전해지는 바위야. 그 벅찬 기쁨과 감동이 이루 말할 수 없었겠지?”
“응, 기쁨과 그리움이 함께 묻어나는 것 같은데?”
자칫 평범해 보이는 이 커다란 바윗돌은 무엇일까? 다조라고 불리는 이 바위는 다산의 손때가 가장 많이 묻은 곳으로 찻물을 끓여 마시곤 하였다 한다.
“커다란 바윗돌은 무슨 용도였을까? 앉아서 쉬시던 곳인가?”
“잘 봐. 약간 검게 그을린 흔적이 있지? 여긴 선생께서 차를 끓여 마시던 부뚜막과 같던 곳이라고 해.”
“선생의 손때가 가장 많이 묻은 곳이구나!”
초당 오른편에 있는 작은 연못은 다산이 직접 못을 파고 축대를 쌓아 만들어 물고기도 기르고 작은 폭포도 만들었던 연지석가산이 있다. 꽃나무와 동백 그늘이 꽤 낭만 있다.
“다산4경 중 마지막으로 보는 곳이 연지석가산이구나. 여긴 작은 정원 같은 곳이야. 선생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하지? 직접 못을 파고 물고기를 기르던 곳이야.”
“숲속의 정원이라. 꽤 낭만적인데?”
오솔길 곳곳 다산의 흔적과 발자취를 따라 걸을 수 있다. 2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만난 다산의 향기는 오래 즐기던 찻잎의 고유한 향처럼 그윽하다.
“천천히 걸으며 숲을 만끽하고 그곳에서 다산 선생의 흔적을 만날 수 있어서 더욱 특별했던 것 같아.”
“짧은 오솔길에서 선생의 흔적도 느끼고 대나무숲, 편백나무숲을 지나니 지루할 틈이 없었던 것 같아!”
<트래블아이>와 함께 떠난 강진 다산오솔길 여행 어떠셨나요? 그곳에서 만난 다산과 여러분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유배생활에서도 백성들을 생각하시던 선생의 마음과 손때가 고스란히 남은 다산4경을 통해 200여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오르는 길.
맑은 공기와 맑은 소리에서 다산의 향기가 전해지는 것 같지 않나요?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천천히 음미하는 오솔길. 평범해 보이지만 전혀 평범하지 않은 오솔길을 만나고 싶다면 다시 한 번 다산오솔길을 추천합니다!
전라남도 구례에는 높지도, 험하지도 않은 고즈넉한 ‘오산’이 있습니다. 자라모양을 닮아있다고 하는 오산은, 험한 산길은 아니지만 켜켜이 쌓인 숲과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경관을 배경으로 ‘수도하기 좋은 곳’으로 이름이 나 있다고 합니다. 그 곳에 자리한 절벽 한 가운데, 오산의 가장 높은 곳에는 아슬아슬 버티고 선 사찰 하나가 있습니다. 그 사찰에는 전설과 신비로움이 가득하다고 하는데요! 오늘의 <트래블아이>미션은 ‘비밀스럽게 자리한 부처님을 찾아라!’입니다.
오산을 올려다보면 그리 높지 않은 모양새가 가벼운 산보를 나서고 싶게 만든다. 사실 그 높이가 그리 나지막한 산은 아닌데 말이다.
“전남 구례는 이곳의 사람들 보다 타지에서부터 온 사람들이 잘 산다는 전설이 있다고 해. 그것이 다 이 오산과 관련되어있다면 믿어져?”
“맞아. 주인으로 불리는 봉성산보다 객산인 이 오산이 더 높은 봉우리를 가지고 있으니, 객식구가 더 잘산다는 전설이 있을 법도 해!”
오산을 끝까지 올라서야 만나게 된 사찰, ‘사성암’. 절벽에 위태하게 매달린 모습이 꼭 산과 하나가 된 듯, 그저 경이롭다.
“절벽 속에 자리 잡은 사찰이 하나 있어. 건물이 무너지지 않도록 아래에서 받쳐놓은 기둥옆에 서 보면, 그 규모를 알 수 있을까?”
“하지만 절벽과 이루어진 조화가 경북 구미에 있는 비슷한 사찰과는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아. 물론 웅장함에서도 그렇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 그 흔한 나무계단 하나 없는 저 높은 절에 오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멀리서 바라본 사성암은 그저 막막하다.
“사성함에 가려면, 돌계단을 올라야 해. 이렇게 숨어있는 돌계단을 찾지 못하면 멀리서부터 포기하고 돌아설 지도 모르겠어!”
“절벽의 경관을 헤치기는커녕, 담쟁이 넝쿨들이 잘 어울린 모습이 참 인상적이야. 모든 것이 자연과 하나가 된 사찰이구나!”
사성암의 앞마당에 오르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켜켜이 쌓인 기와. 기와 한 장 한 장에 소망을 담아 쌓인 모습이 조금 특이한데?
“기와 하나하나에 적힌 사람들의 소원이 참 정겨워. 그리고 기와를 쌓아 놓은 모양새가 꼭 구름을 산수화로 그려놓은 것 같아.”
“검고 둥근 기와를 얼기설기 엮어 놓았으니, 그렇게 느낄 만도 해. 조금 뒤로 물러서서보면 그 모습을 더 잘 볼 수 있을 거야.”
소망이 적힌 기와에 살짝이 몸을 기대보았다. 구름에 올라선 듯 몸이 가벼워진다. 아마도 새하얗게 펼쳐진 운해를 맞이해서 일까?
“와! 바다보다도 더 멋진 절경이 펼쳐지는 걸?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도 보이지 않을 만큼 빽빽이 들어찬 구름이야!”
“그러게, 하지만 날씨에 따라서 이 절경을 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미리미리 알아보고 오는 것이 좋겠어!”
사성암 곳곳에는 비밀스럽게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이가 있다. 투박한 듯, 또 섬세한 그의 얼굴을 찾아볼까?
“이 절에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불상이 있다고 하던데? 에이, 섬세한 장인의 손길을 거쳐야하는 불상이 어떻게 자연적으로 생기겠어!”
“정말이야! 부처의 얼굴을 한 그 바위를 찾아내면 소원이 이루어진데! 사람들은 그 바위를 소원바위라고 부른다니, 얼른 찾아봐!”
산신각 옆, 절벽과 아찔하게 맞닿은 기와의 끝자락! 그곳에도 부처의 얼굴이 숨어있다. 이 사찰의 터는 부처님의 은덕이 가득한 곳인가 보다.
“절벽이 둘러 싼 신선각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화려함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그런데 저 옆길은 무엇이지?”
“도선굴로 가는 길을 말하는구나? 도선굴은 도선국사가 참선을 했다는 전설을 따라 지은 이름이야. 서늘한 바람이 부는 저곳에 무엇이 있을지, 보러갈까?”
사성암에는 작고 소박한 불상 네 개가 모셔져있다. 어디에서나 볼 법한 커다랗고 인자함 가득한 부처의 모습을 볼 수 없다니, 어떻게 된 것일까?
“네 개의 불상 뒤편에 자리한 마애여래입상이 보여? 음각으로 새겨진 신기한 불상이야. 저 불상에도 전설이 있다고 해. 손톱으로 저 입상을 새겼다고 하는데,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
“이곳의 불상들이 작고 아기자기 한 것은, 가운데 자리한 마애여래입상이 본전불이기 때문이라고 해.”
모든 것이 경이로운 곳입니다. 사찰이 자리한 절벽도, 위에서 하늘을 내려다 볼 수 있다는 것도. 또 자연 속 부처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 까지. 이 곳 사성암은 수려한 절경과 함께 끝없이 이어져 내려오는 전설들로 볼 것도, 들을 것도 많은 곳이 아닐까 합니다. 이곳의 자연 불상을 발견해 그의 얼굴을 보면, 모든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던데, 여러분도 오산을 올라 만나는 사성암에서 그의 얼굴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절벽에 위치한 아찔한 경관과 구름위에 선 쾌감이 모든 것을 잊을 듯 자극적이기는 하지만요!
21세기 서울 한복판에 6000년 전으로 떠나는 시간의 문이 열립니다. 매머드가 움직이고 시조새가 날아다니는 원시세계에서 돌도끼, 돌칼을 든 원시인과 조우할 수 있는 기회는 강동의 암사동선사유적지에서 주어집니다! 그야말로, 과거와 미래를 잇는 독창적인 색깔을 담아내 선사시대 우리 조상들의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는 시간여행입니다. 원시로 가는 문이 열리면 이곳은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할까요? <트래블아이>가 제안합니다. ‘암사동 유적지에서 시간의 문이 열리면 원시세계로 떠나라!’
암사동선사유적지를 찾았다면 가장 먼저 움집터를 들르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생활하고 있었을까?
“암사동선사주거지유적에 대해 알고 있니?”
“그 정도 공부는 했어요! 지금으로부터 약 6,000여 년 전 우리의 조상인 신석기시대의 사람들이 살았던 집터 유적이죠.”
“맞아.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밝혀진 신석기시대의 최대 집단취락지가 바로 여기야.”
이곳은 단순한 전시 형태의 움집이 아니라 직접 안으로 들어가 신석기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도록 꾸며진 점이 특징이다.
“이 토기들 좀 봐요! 다 모형이네요. 진짜 유물은 볼 수 없는건가요?”
“그럴 리가. 신석기시대의 생활상뿐 아니라 청동기시대까지 이어지는 토기가 발견된 암사선사유적지에는 현재 야외에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토기모형뿐만 아니라 방금 봤던 복원움집과 원시생활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지. 진짜 토기를 보고 싶니?”
선사주거지 경내는 움집을 중심으로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정돈된 흙길 사이로 100여 개의 소리통을 배치해 그 소리의 맛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쿵쿵쿵쿵~ 퉁퉁퉁퉁~’ “마치 아프리카에 온 것 같아요.”
“정말 그렇구나. 아프리카에서 직접 공수해온 타악기도 있네. 나무, 돌, 동물뼈, 열매 등으로 만든 악기도 있고.”
“이게 진짜 원시의 소리였을까요?”
선사시대로의 시간여행의 필수코스, 신석기 시대 원시인들의 주거공간이던 움집을 직접 만들어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지금 고깔모양으로 만들고 있는 게 대체 뭐니?”
“선사인들이 살았던 집 지붕을 억새풀을 이용해 만들어보고 있어요.”
“아~ 바로 움막에 쓰인다는 서까래라는 거구나.”
“맞아요. 이게 다 완성되면 구덩이를 파서 덮으면 끝이에요! 의외로 쉽죠?”
신석기시대 사용했던 빗살무늬토기를 직접 만들어보기도 하고 굽는 과정도 함께한다. 특히 토기 굽는 과정을 선사문화 그대로 재연해 놓아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고.
“제가 만든 빗살무늬토기예요!”
“와~ 소질 있는데? 이제 선생님께 가져다 드리렴. 화덕자리에서 나무땔감을 이용해 구워주신다는구나! 암사동 유적에서 나온 첨저형 빗살무늬토기는 이 시대 생활예술 중 가장 완성도가 높아. 인류의 예술 진화상 획기적 단계로 평가되고 있지.”
6000년 전, 인류가 이제 막 농업과 정착 생활을 시작했던 시대에 마른 나뭇잎에 불을 피우는 일은 쉬웠을까?
“누구 도움 없이는 힘들어요. 불은 라이터 같은 도구로 한번이면 됐는데, 나뭇가지를 이용해서 피우려니 과연 가능한 일인지 의심도 되고요.”
“교과서에는 쉽게 보였는데 막상 해보니까 어렵지? 원시인들이 이렇게 힘들게 살았구나 생각하니까 뜻 깊고 보람도 있을 거야.”
입구에서 통나무로 된 다리를 건너면 선사시대와 현대의 시간이 흐르는 ‘시간의 길’을 만날 수도 있다.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의 길’로 들어서니, 돌도끼를 쥐고 짐승을 사냥하던 6000년 전 선사시대가 현재와 공존하면서 두 개의 시간이 흐르는 듯해요.”
“정말 그렇구나. 내부 모습 실물 사이즈로 재현된 원주민 당시 생활상이 실감나게 재현되어 있어. 30m 길이의 동굴로 만들어진 이 길을 따라가면 어떤 모습을 보게 될까?”
선사유적지 유물전시관에서는 4차에 걸친 유적지 발굴 광경을 보여주는 등 선사주거지 발굴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다. 또 어떤 볼거리가 자리하고 있을까?
“6000년 전 신석기시대부터 집단적으로 생활해온 실제의 움집의 유적과 석기문화, 발굴 당시 모습까지 재현해놓았어. 게다가 정보검색코너까지 모든 정보를 총망라해놓았구나..”
“특히 선사주거지 발굴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모습이 꽤 인상깊어요. 우리나라 선사 주거지와 유물 현황 등에 대해서 꼼꼼히 짚어볼 수 있어 더 유익한 시간이 됐어요!”
선사시대 원시인들은 어디서 자고 어떻게 사냥을 했을까요? 움집을 짓고 물고기와 짐승을 잡아먹었던 그들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이 서울에 있습니다. 국내에서 발굴된 신석기시대 취락지 중 최대 규모인 강동구 암사동 선사유적지에서는 매년 10월 축제를 열로 과거여행을 위한 문을 활짝 엽니다. 전통문화예술과 현대문화예술이 어우러진 자리, 과거와 21세기의 만남의 장, 현대인과 원시인이 한바탕 춤판을 벌이는 축제의 장으로 떠날 채비 하셨나요?
언제부터인가 서울 가양동 일대가 역사와 문화의 향기가 흐르는 거리로 변신해 있습니다. 양천초등학교 담장에는 겸재 정선의 산수화와 형제간의 우애를 위해 황금을 물속에 던져버렸다는 투금탄 고사 이미지를 한강 물줄기로 연결하여 형상화한 ‘서울풍경’이라는 입체 벽화로 단장했는가 하면, 양천향교 벽면에는 향교로 향하는 아이들을 부조로 표현한 ‘향교종이 땡땡땡’을 전시했습니다. 허준박물관, 구암공원, 궁산 등 다양한 역사문화 자원을 문화벨트로 엮어진 가양동 ‘함께 걷고 싶은 예술의 거리’를 걸어라! <트래블아이>의 미션입니다!
양천고성지-소악루-양천향교로 연결되는 역사문화투어 공간이자 진경산수화의 산실로써 자리매김해 있다. 겸재정선기념관이 강서구 가양동에 자리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경산수화라는 우리 고유의 화풍을 개척한 겸재 정선(1676~1759)이 65세부터 70세 때까지 서울 강서구와 양천구 일대 현감을 지냈다는 거 알고 있니?”
“그럼! 그 당시 겸재는 서울 근교의 명승지와 한강변 풍경을 그린 ‘경교명승첩’ ‘양천팔경첩’ ‘경교명승첩’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잖아.”
겸재정선기념관에서는 겸재의 화혼을 오늘에 되살리기 위해 2013년에 ‘겸재 맥찾기 유수작가 초청전’을 여는 등 겸재의 실험정신을 본받아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동·서양의 여러 작가를 탐구하고 섭렵한 끝에 만난 나의 마음속 스승이 겸재 정선이야. 우리 전통 미술에서 느끼는 미감이 배어서 낯설지 않고 친근감마저 주고 있잖아.”
“맞아. 특히 근작의 풍경화는 투박한 듯하면서도 무겁지 않고 양감이 풍부한 주홍색 필선이 뼈대를 이루고 있어 더운 기운과 함께 밝은 광채를 느끼게 해.”
경관 조명은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이 길이 단순한 거리가 아닌 다양한 테마를 갖춘 역사·문화 명소로 자리매김한 이유이다. ‘박물관 가는 길’은 어디로 안내할까?
“허준선생은 당대 최고의 명의로서 질병으로 고생하는 백성들의 아픔을 덜어주고자 9종이나 되는 많은 의학서를 저술하셨지. 선생의 다양한 자료뿐 아니라 모형, 영상, 터치스크린, 허준체험 공간 등이 있는 허준박물관이 이 길에 이어지고 있구나!”
“웬걸! 한의학 전문 박물관으로서도 기능을 하고 있어!”
90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가양동에 위치한 허준박물관에서 우리나라 한의학을 집대성한 <동의보감>을 저술한 허준 선생의 인품까지 들여다볼 수 있을까?
“단순히 보는 박물관이 아니야. 직접 체험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한방 음식전, 한방약재공예작품전, 약초표본전, 동의보감 특별전 등을 수시로 열어서 이곳에 나는 자주 오는 편이야.”
“한의학을 쉽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도록 꾸며졌구나. 동양의 의성(醫聖)으로 추앙받는 허준 선생의 모든 것을 만나보니 숭고한 인간애까지 느껴져.”
해마다 음력2월과 8월에 유림, 지역주민, 학생들이 모여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에 대한 석전제를 지내고 있는 양천향교 터에서는 예절교육, 견학코스도 운영하고 있다.
“양천향교가 서울시 유일의 향교라는 거 알고 있니?”
“아니. 전혀 몰랐어!”
“우리 조상들의 교육문화의 산실이었던 양천향교는 옛 선비정신을 되살려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정신적, 교육적 가치를 드높이는 교육기관이자 문화유산이다.”
겸재의 그림 <소요정>에서 어부 두 명이 낚싯줄을 드리우고 태평하게 앉아있는 풍광이 돋보이는데, 그 속에 허가바위가 등장한다. 영등포공고 정문 앞 탑산에서 이를 찾아라!
“사람 10명 이상이 들어갈 수 있는 이 동굴을 좀 봐. 옛날 석기시대 사람들이 한강 가에서 조개와 물고기를 잡으며 이곳에서 살았으리라 짐작되는 흔적들이 곳곳에 있어.”
“이 굴에서 양천 허씨의 시조 ‘허선문’ 이 태어났다는 설화도 있고, 허준이 <동의보감> 집필을 마친 곳도 여기라고 알려져 있지!”
겸재정선기념관 뒤편에 있는 궁산근린공원으로 가보자. 이곳에는 어떤 이야기가 깃들어 있을까?
“궁산근린공원은 파산, 성산, 관산, 진산 등 다양한 명칭이 있다는 거 알고 있니?”
“물론이지. 옛날 백제의 양천 고성지와 조선시대 화가인 겸재가 양천 현감으로 재임하면서 그림을 그렸던 소악루가 자리하고 있잖아.”
“맞아, 양천향교도 이곳에 위치하고 있으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겠어.”
강서에는 ‘양천향교 제례’, ‘박물관 가는 길’ 등 특색 있는 작품을 조형화하여 포토존으로 꾸며져 있는가 하면 4개 역사문화 코스 나뉜 거리가 조성돼 있다
“조선시대 도성과 양천, 강화를 이어주던 공암나루와 가을이 되면 단풍으로 어우러진 탑산이 있어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푸근하게 하는구나.”
“강서구 가양2동, 한강 남쪽 강변에 위치한 허준마을은 한강 너머로 확 트인 시계가 확보돼 멋진 풍광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게 됐어.”
탑산 아래는 허준의 동의보감 집필장소로 널리 알려진 허가바위가 있으며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허준박물관과 허준의 아호를 따 조성된 구암공원도 지근거리에 있습니다. 인근에는 겸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겸재정선기념관이 소악루와 함께 자리해 있습니다. 이 지역 사람들의 역사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애향심은 얼마나 남다를까요? 이는 그간 문화체험길을 만들기 위해 서로가 똘똘 뭉쳐 해온 노력에서 엿볼 수 있을 겁니다. 가볍게 한 바퀴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역사의식을 고취할 수 있는 가양동 역사문화길을 걸어보는 건 어떠세요?
별빛을 받아 오글거리기만 했던 밤바다를 연인과 함께 걸어보니 얼마나 따스한지 새삼 깨닫습니다. 그래서 충남 보령의 대천해변을 연인과 꼭 한번은 찾나 봅니다. 동해는 봄기운이 덜할 것 같습니다. 또, 남해는 오가는 길이 지루해 자칫 다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래저래 따져보니 보령에는 해변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고즈넉한 절터와 호수, 소박한 기차역, 로맨틱한 드라이브길까지…. 봄기운 찾아 나선 연인들에게 제안하는 <트래블아이>의 특별미션도 바로 그러합니다. ‘보령에서 우리만 아는 특별한 낭만을 찾아라!’
머드축제나 개장시즌이 아니라면 제법 한산한 대천해변이지만, 손 꼭 잡고 사랑 속삭이는 연인부터 모래사장을 거닐며 해변의 지난 과거를 반추하는 여행객들이 눈에 띤다.
“장쾌한 모래사장을 보고 있으니 먹먹한 가슴이 뻥 뚫릴 것만 같아.”
“맞아요. 그리고 바다와 하얀 모래사장의 아날로그적인 이미지도 느껴져요!”
“그래도 우리 ‘나 잡아봐라’ 놀이는 하지 말자. 보는 사람들에게 자칫 민폐라고.”
“어머! 난 이곳이 70년대 서해안 최대 해수욕장으로 첫손에 꼽혔단 얘기를 하려던 건데!”
성주사지는 묵직한 시간이 향기에 빠져 산책하기 딱 좋은 절터다. 고즈넉한 운치에 절터를 걷는 기분도 은근히 상쾌하지만 다양한 볼거리가 제법 흥미진진하다는데?
“하늘로 날아오를 듯 경쾌한 느낌의 앞마당 5층석탑이나 강건하고 옹골찬 기운을 가진 금당터 뒤쪽 삼층석탑과 비교해보면 이 석불입상은 참 우스꽝스럽게 생긴 것 같아요.”
“하하~ 정말이네. 특히 웃는 것 같기도, 우는 것 같기도 한 묘한 표정이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군. 조선시대 민초들이 세웠다는데, 이 석상은 과연 어떤 사연을 갖고 있을까?”
성주사지에서 미산면 일대를 가다 보니 보령호가 가까이에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그곳으로 향해본다. 호수를 마주했다면 잠시 차를 세워볼까?
“그런데 제법 다니는 차도 드물어 한적하고 도로도 널찍하니 드라이브하기 정말 괜찮은 것 같아. 비록 호수변이지만 대천해변과는 또 다른 멋이 있는데? 여기서 잠시 차를 세워볼까?”
보령호를 지나 또 다른 해변을 만난다. 전남 진도와 함께 바다가 갈라지는 ‘신비의 바닷길’ 무창포해변이다. 이 신비의 바닷길이 연인들의 사랑을 이뤄준다는데, 직접 걸어보자.
“우리 말고도 젊은 연인들이 이렇게 많은 걸 보니 단지 사랑을 이뤄준다는 소문이 소문으로만 존재하는 건 아닌가 봐요. 그래서 프러포즈 명소가 된 거겠죠?”
“글쎄. 하지만 지금 우리 사랑도 모세의 기적처럼 완성되길 바라. 이 길 위에 있는 사람들 역시 적어도 우리와 같은 마음 아닐까?”
새벽같이 무창포를 찾은 사람들은 바다가 열리기 시작하자 환호성을 지르며 앞다퉈 바닷길로 뛰어든다. 모세의 기적으로 맛보는 즐거움 어떤 종류가 있을까?
“이 바닷길이 석대도까지 1.5km 정도 연결됐다니 지금 가면 넉넉하게 다녀올 수 있겠다. 지금 한번 가볼래?”
“그래요! 근데 바닥에 소라랑 낙지를 거의 맨손으로도 잡겠어요. 가면서 틈틈이 잡아요.”
“바닥에 부서진 조개껍질도 제법인데 운동화로 갈아 신는 게 좋겠구나.”
보령 진죽리에 자리한 작은 간이역 청소역. 캔커피라도 손에 쥐고 대합실 의자에 앉아, 창을 통해 쏟아지는 볕을 쬐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눠보는 것도 제법 폼 나는 휴식이다.
“기차역 초록색 지붕에 빛바랜 매표창구, 곧게 뻗은 철길도 참 운치 있어요.”
“청소역이 장항선에서 가장 오래 된 역사라지. 규모는 단출하지만 역사가 정말 예뻐 연인들이 데이트하러 다녀갈 만하겠다. 여기서 딱 5분만 더 머물다 가자. 지금 내 머리는 추억을 좇고, 몸은 기분 좋은 나른함에 좇고 있으니.”
보령 두 번째 드라이브코스는 무창포해수욕장 인근 607번 지방도로. 울창한 해송과 바다를 감상하며 달리는 맛이 일품이라는데, 비경을 제대로 감상하는 방법은 또 다르다고?
“용두해수욕장 동백관 주변에 저렇게 멋진 송림이 있을 줄이야! 감탄사가 절로 나지 않니?”
“정말 그렇네요. 여기 남포방조제 초입에서 우리 잠깐 주차하고 바람 좀 쐐는 건 어때요?”
“왜?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니?”
“있죠! 예상대로 낙조가 시작됐어요. 해송과 어우러져 탁 트인 바다가 정말 끝내주네요.”
싱싱한 회감을 맛보는 건 보령시내 어디를 향하더라도 크게 고민거리가 아니다. 수산시장도 있고 인근에 축제가 열리고 있다면 더욱 좋다. 어디로 가볼까?
“대천항에서는 싱싱한 횟감을 살 수 있는 수산시장이 있는데 그쪽이 좋겠지?”
“다시 대천항까지 가는 건 좀 무리 아닐까요? 남포방조제 중간에 위치한 죽도관광지에도 횟집들이 많아요.”
“참! 지금 무창포항 일원에서 ‘주꾸미 도다리 축제’가 한창이니 당장 그곳으로 가자!”
충남 보령은 계절에 상관없이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연출되는 곳으로 사시사철 발길 닿는 곳마다 많은 사람이 찾아옵니다. 그러면서 로맨틱한 낭만이 더해진 주옥같은 코스가 있으니 이만한 데이트장소도 없습니다. 그래도 코스는 코스일 뿐. 장소나 그곳의 분위기가 사랑을 애틋하게는 할 수 있지만, 없던 사랑을 만들어주지는 않습니다. 다시 말해 곳곳에 산재한 낭만거리를 발견해내는 것도, 색다른 추억을 개척해나가는 것도 결국 연인들의 몫입니다. 마음속 봄기운을 가득 머금고 달려간 보령에서 여러분은 지금 어떤 낭만을 만들고 있나요?
전어는 긴 겨울을 나기 위해 가을이면 몸속에 지방을 축적하는데, 이때 지방량이 많아지면 꼬리가 황금색으로 변해 ‘황금전어’로 불리기도 합니다. 지방이 많아질수록 전어의 맛은 더욱 고소해집니다. 이 황금전어 떼가 남해안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가을이 무르익으면 사천바다에서 남서쪽으로 약 1.5㎞ 떨어진 섬 마도의 어부들은 ‘갈방아소리’를 불러 재낍니다. ‘갈’을 갈아 그물에 먹이는 전통어업방식을 이어오며 이곳 주민들은 만선을 염원하는 노래를 합니다. <트래블아이>의 미션입니다. ‘갈방아소리 정겨운 마도에서 황금전어를 맛보라!’
가을전어를 놓고 고소함과 풍미를 표현하는 재미진 말들도 참 많다. 하지만 예로부터 전어의 주산지로 알려진 곳이 사천만이라는데, 그 유래를 알 수 있을까?
“고된 시집살이에 시달리다 못해 가출한 며느리가 가을 전어의 맛 때문에 돌아왔을까마는 그래도 돌아오는 핑계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그만큼 가을 전어가 고소하다는 이야기니까.”
“전어 하면 섬 마도를 빼놓으면 섭하다 안했능교. 혹시 여기 섬 주민들 노동요 갈방아소리 압니꺼? 그거 알모 전어 맛도 더 맛나다카이!”
선장은 비슷한 또래의 선원과 함께 자망을 내리기 시작했다. 사천바다에서 그물을 내리는 지점은 어떻게 정해질까?
“한 수십 군데 될라나. 물때를 봐서 그때그때 (그물) 던지는 데는 따로 안 정한다 안허나! ‘학섬 학떼가 학춤을 추면 전어떼 멸치떼 독안(사천만)에 논다~ 배마다 다 실어도 아직도 전어는 수백통이다~’란 갈방아소리 가사도 니는 몬들어본기가?”
“정말이지 사천바다가 다 전어의 주 어장이라고 봐야 할까요?”
면사어망은 풋감을 찧어 그 즙으로 갈칠을 했으나 전어잡이 그물은 대형이어서 마도에서는 장날 소나무껍질을 사 갈을 만들었다. 이때 노래가 절로 나오는 과정이 있었다고.
“한 번 갈을 멕이는 데 필요한 3~4가마니를 요 가루로 맹글어야제. 여염집 아낙들이 찧어내기 참 너무 쌔가 만발이 빠진다카이. 힘센 장정들이 메방아로 작업을 안했나. 큰 절구통 하나에 메를 든 4~6명이 몇 시간을 찧어쌌는디 엄청 대지.”
“참 그 고단함이란… 얼마나 잊고 싶었겠어요.”
전어를 만나러 사천시 삼천포항으로 가면 전어잡이가 한창이다. 이곳 삼천포수산시장은 먹는 재미만큼이나 보는 즐거움도 크다는데?
“삼천포항을 중심으로 형성된 활어전문 상설전통시장어서 그런가, 항구를 중심으로 활어와 회를 판매하고, 농산물, 건어물, 조개류 등을 판매하는 상점과 노점이 정말 즐비하구나!”
“여긴 40년 전만 해도 인근 어촌과 도서지방에서 밤새 잡은 생선을 사고팔던 포구 물양장이었지. 진주, 남해 등지에서 상인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레 시장이 형성된 거라고.”
전어가 제철을 맞으면 경남에서 가장 먼저 열리는 전어축제도 삼천포항 일대로
“‘학섬 학떼가 학춤을 추면 전어떼·멸치떼 독안에 논다~ 배마다 배마다 다 실어도 아직도 전어는 수백통이다~’ 이 노래 구절에서 뭘 알 수 있니?”
“독안이 사천만을 가리킨다고 보면 이 일대가 전어의 주 어장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
“맞아 삼천포항수산물축제에 가면 마도갈방아 공연을 제대로 볼 수 있다지?”
밤새 조업해 오전 9시30분에 맞춰 위판장에 내놓는 전어. 갓 손질한 전어를 얼음물에 잠시 담근 후 먹으면 살이 단단해져 더욱 맛이 좋다는데.
“이놈은 뼈째로 자르고 큰 놈은 반을 갈라 뼈를 제거한 거라요. 도마 위에 가지런히 썰어놓고 된장에 찍어 먹어보이소.”
“갓 잡아선지 살이 참 탱탱하지? 거기다 고소하기까지 해.”
“맞아. 야들야들하니 고놈 참 맛이 제대로 올랐네!”
전어요리의 최고는 단연 구이다. 서서히 익어갈수록 고소한 냄새가 십리 밖까지 퍼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 하지만 진짜 제대로 된 구이를 맛보기 위한 조리 법은 따로 있다는데?
“전어를 오데 꾸워? 뭐라캐쌌노! 요래요래 칼집 쪼매 내고 굵은 소금 뿌려서 바로 여기 놓고 꾸워야 제 맛 나제!”
“‘전어는 깨가 서 말’이라더니, 진짜 전어 머리부터 먹어야 한다는 말이 맞네요! 이 머리에 고소한 맛이 아주 몰려 있어요. 굽는 과정에서 어떤 노하우가 있었던 건가요?”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대상에 빛나는 한려수도의 중심 삼천포대교에서는 매년 ‘삼천포대교 해맞이 축제’를 연다.
“해맞이는 대부분이 동해안으로 몰려 여러 가지 불편한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곳 사천의 경우는 차별화된 장소와 내실 있는 행사들로 관광객들에게 각광을 받는다지.”
“맞아. 이렇게 아름다운 대교 위에서 다양한 풍물패의 길놀이를 시작으로 방파제에서는 신년 축포로 새해 새롭게 마음을 다질 수 있으니. 연말에 다시 들르지 않으면 안 되겠어!”
배를 돌려 돌아오는 길, 사천바다 지척에 보이는 마도를 지날 때 어디선가 흥겨우면서도 애절한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마도 갈방아소리는 이 섬사람들의 주된 생계수단인 전어잡이와 함께 오래전부터 전승되어온 특색 있는 노동요입니다. 그 발생연대는 알 수 없으나 소리의 가락이나 노랫말에 자신들의 삶의 애환이 잘 깃들어 있습니다. 이곳에 가면 배 위에서 먹는 전어회부터 전어구이는 물론 꾸득꾸득 말려 쪄먹던 전어찜까지 섬사람들의 삶이 담긴 음식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갈방아소리 애잔한 이곳에서 황금전어를 두루 맛보는 여행, 어떠세요?
번잡한 일상을 비켜서고 싶은 때가 있습니다. 가는 세월이 무정하고 아쉬움과 허전함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이럴 땐 아스라한 추억을 쌓을 수 있는 ‘나홀로 여행’이 제격입니다. 경남 함안은 아스라함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여섯 가야 중 하나인 아라가야의 고도를 기억하며 오랜 기간 숨죽여 왔던 곳입니다. 그러면서도 비록 초라한 행색일지언정 조선 선비들의 수고로움이 깊이 배어 있기에 더욱 함안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번잡한 마음 밀려올 땐 함안으로 선비들의 족적을 따라가라!’, 이것이 <트래블아이>의 미션입니다.
찬란했던 아라가야(阿羅加耶) 1500년 고도(古都) 함안군의 유수한 문화·관광이 빛을 보게 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말이산 고분군. 분명 신비의 왕국이 이곳에 있다!
“말이산 고분군에서 출토한 고대 가야사의 신비가 고스란히 잠재되어 있구나. 아라가야 고분군에서 출토된 말갑옷, 미늘쇠 등 우수한 유물들까지 인근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다지?
이곳만 보더라도 아직도 미제로 남아 있는 아라가야 왕조 계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가야제국의 역사적 의미를 복원함으로써 1500년 아라가야의 영광이 되살아나는 듯해!”
넓은 공원마냥 펼쳐진 잔디밭이 시원하고 고분 사이로 바람춤을 추는 억새가 장관인 이곳은, 경주가 퍼뜩 떠오르지만 함안도 만만치 않은데 과연 여기는 어디일까?
“함안박물관 뒤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걸으니 역사적인 사실을 제외하고서라도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에 그만이야. "
"조촐하면서도 풍요로운 느낌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이곳,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것과 같은 말 갑옷을 비롯해 안라국의 찬란한 위용이 숨쉬는 수많은 유물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어! 나중에 가족과 함께 찾아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아.”
함안 낙화놀이 무진정은 조삼 선생이 후진 양성하며 여생을 보내기 위해 자신의 호를 따서 괴산리에 직접 지은 정자이다. 이곳이 선비들의 놀이터라 불리는 이유는 뭘까?
“기둥 위에 아무런 장식이나 조각물이 없이 단순 소박하게 꾸민 팔작지붕의 이 정자는 조선 초기의 건축 형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
"특히 앞뒤의 퇴를 길게 빼고 중앙의 한 칸을 온돌방으로 꾸며놓은 것도 참 재밌지. 아무런 장식이나 조각물이 없어 전체적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이 정자나 이 일대 운치만 보더라도 조선 전기 선비들이 자주 들렀을 법해.”
입곡군립공원 옆 철길을 지나 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세월의 문을 뛰어 넘은 듯 촘촘하게 둘러싼 담장은 마치 피안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 같다고.
“아직은 아는 이가 많지 않아 언제 와도 조용하군. 유적지를 알리는 게시판도 제대로 없어 몇 번을 물어가며 찾아야 하는 첩첩산중 비밀의 정원 같은 곳이야."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고려에 대한 충정을 지키기로 한 학자들이 담장을 친 채 외부와 단절하며 살았던 곳이라 하지? 그의 후손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떤 역사책보다도 생생한 울림으로 다가와.”
철길 옆 도로를 따라 서산서원으로 향하다 보면 서원 옆 길가에 잘 생긴 소나무 몇 그루와 반질반질한 배롱나무 아래 엄숙한 기운이 감도는 전각이 큰 뜻을 품고 서있다.
"그 옆에 있는 게 바로 쌍절각이야. 어계 선생의 오세손인 조종도가 정유재란 당시 함양 황석산성에서 왜적과 싸우다 전사하자 부인 전의 이씨가 자결하여 이를 기리고자 세운 것이라지. 강직한 집안 내력이 고스란히 느껴져.”
인근에는 어계고택이 있었다. 수령 250년을 훌쩍 넘긴 커다란 은행나무가 솟아 있고 원북재 뒤의 삼문을 들어서면 사당인 조묘전은 터도 널찍하고 화려하다.
"어계 선생의 부친이 조안이고, 조부가 전서공 조열이라고 했어. 이성계가 왕위에 오른 후 금은 조열 선생을 불러서 거문고를 타도록 청했다고해."
"하지만 수대로 왕씨의 녹을 먹은 신하로서 어찌 이씨 왕과 함께 즐기겠냐며 완강히 사양했다고. 당시 황희와 권근이 그의 절개를 꺾을 수 없으니 공경하게 돌려보내야 한다고 말했다지 아마.“
채미정은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함안을 대표하는 인물인 어계 조려 선생이 낙향하여 낚시와 소요로 여생을 보낸 곳이라고 한다.직접 마주한 이 정자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
“조선시대 세웠다는 이 채미정, 저 살찐 꿩도 구경을 하러 온 모양이군. 왠지 위태위태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게, 방 하나 정도의 크기도 약간은 실망스럽지만 막상 이 정자 앞에 다다르니 생각이 완전 달라지는걸! "
"손에 닿을 듯 흐르는 저 남강과 그 앞으로 넓은 들판, 법수면의 뚝방까지 한눈에 들어와! 이곳에서 보는 노을은 그야말로 장관이라지!”
마산으로 가는 국도변, 단풍옷으로 서서히 갈아입는 나무들은 깊어가는 가을의 상징과도 같다. 붉고 샛노란 이파리들로 흔들릴 때 이수정이 호기심을 자극할 것이다.
“함안은 알고 보면 정자의 도시라고 할 만큼 아름다운 정자들이 많구나. 악양루, 무진정, 이수정, 와룡정, 채미정, 합강정까지…. 그 중 무진정과 이수정, 무기연당은 정말 생각지 못한 아름다움이야. "
"속도를 내며 달려가는 차의 모습과 다르게 이곳에 들어서면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함과 평화로움만이 존재하는 구나. 들어서는 순간 여기서 하루를 접고 싶을 정도야.”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 숨을 죽이고 있는 좀처럼 만날 수 없는 이야기가 함안에 있습니다. 안라국의 찬란한 위용과, 넓은 공원마냥 펼쳐진 고분 사이로 바람춤을 추는 억새가 장관을 이루는 사이로 고즈넉한 연못과 아담한 돌섬이 어우러집니다. 그러면서도 길가에는 잘 생긴 소나무 몇 그루와 반질반질한 배롱나무 아래 엄숙한 기운이 감도는 전각과 정자, 누각에 절로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번잡한 마음 벗어던지고 싶다면, 지역유림의 이야기가 있는 함안으로 나홀로 여행을 나서보는 건 어떠세요?
대구 음식 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막창구이’, ‘등갈비찜’ 등…. 이처럼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대구의 음식은 경상도 음식 문화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경상도 특유의 음식 문화를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오고 있는 대구. 그 중에서도 대구 서구에서는 다른 지역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에 독특한 특징을 더해 새로운 음식 문화를 창조하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자리잡아왔습니다. 오늘의 <트래블아이>미션은 ‘대구 서구만의 서민적인 음식 먹어보기!’입니다.
서구에는 꽤나 오래된 맛집이 많다. 그 곳들은 대체로 저렴하고 서민적인 음식이 많다. 아마도 가까이 위치한 산업 공단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달래주기 위함이 아닐까?
“아, 여기에 있던 식당이 없어졌네. 싸고 맛있는 식사가 가능했던 곳이라서 자주 왔었는데 말이야. 이제는 추억의 음식이 된 것 같아서 너무 아쉬워.”
“하긴, 산업단지 사람들이 줄면서 장사가 안 되긴 했을 거야. 하지만 그렇게 맛있고 유명하던 식당들은 자리를 옮기는 경우가 많으니 함께 찾아볼까?”
대구에는 막창, 곱창이 유명하다. 특히나 서구 중리동 곱창골목에 오면 빨간 국물에 담긴 곱창의 독특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보글보글 조려지는 전골의 맛은 어떤 맛일까?
“중리동 곱창골목은 대구에서 지정해놓은 유명 먹거리 골목이야. 대창, 곱창 구이도 있지만 이 곳의 진정한 별미는 ‘곱창전골’ 이지!”
“곱창 전골? 곱창은 늘 구이로만 먹는 줄 알았는데, 전골로 요리를 하다니, 처음 들어봐. 빨리 먹어보자!”
안지랑 곱창골목이 곱창구이로 유명하다면, 중리동 곱창골목은 곱창전골이다. 그런데 이렇게 끓여 낸 전골에서 곱창 특유의 비린내가 사라진다?
“곱창에서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네?”
“응, 중리동 곱창전골의 특징은 10가지가 넘는 재료로 우려낸 육수를 넣어서 오래동안 끓여내고, 듬뿍 올라가는 채소들 덕에 특유의 비린내가 나지 않아. 게다가 깨끗하게 관리 된 재료를 사용하는 것도 가장 큰 이유야!”
구수한 듯, 혹은 부드러운 듯. 늘 먹는 소고기가 아닌 새로운 고기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약간은 짭짤한 감칠맛이 대구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일까?
“고기 맛이 독특해 ! 우리가 평소에 먹던 부위는 아닌 것 같은데 어떤 고기일까?”
“‘주먹시’라는 부위야. 한 마리에 8kg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소를 직접 잡는 산지가 아니면 접하기 어려운 부위이기도해. 하지만 매일 새벽 도축장에서 직접 가지고 오기 때문에 이렇게 먹을 수 있는 것 이지.”
육사시미처럼 섬세한 음식이 아니다. 그저 처지개살과 우둔살을 뭉퉁하게 썰어 양념에 살짝 담가먹는 뭉티기의 맛은 신선함 그 자체!
“생고기를 참기름, 소금 장이 아닌 고춧가루, 마늘, 참기름을 넣어 만든 양념장에 찍어 먹다니 너무 독특해!”
“그렇지? 대구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어 만들어진 것 같아. 신선한 고기를 그 때 바로 먹을 수도 있고, 조금은 자극적인 양념으로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으니 말이야.”
대구에만 있는 유일한 음식인 ‘무침회’. 내륙지방인지라 활어보다는 이런 형태의 음식이 발달했다고 한다. 무침회의 ‘회’는 과연 어떤 것일까?
“무침회라고 해서 회덮밥 같은 것을 생각했는데, 전혀 다르잖아? 초고추장도 없이 무침회를 하다니, 정말 신기해. 그리고 활어가 아니라 색다른 것들이 들어 있어!”
“맞아, 삶은 오징어, 소라와 깨끗이 손질한 생 아나고를 넣어서 대구만의 방식으로 만든 양념을 넣어 섞는 것이지. 굉장히 독특한 양념이지?”
내륙지방인 대구의 음식은 대체로 짜게 간이 되어있거나 신선하게 바로 즐길 수 있음 음식문화가 많다. 특히나 서구의 뭉티기는 쉽게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는데?
“다음에 다시 와서 뭉티기를 또 먹고 싶어. 나는 뭉티기가 제일 맛있는 것 같아. 신선한 생고기에 독특한 양념까지!”
“그래, 좋아. 하지만 신선한 고기를 가져오는 날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니까 잘 알아보고 오는 것이 좋을거야! 신선하지 않으면 판매하지 않는 것이 철칙이라고해.”
서구의 음식 문화는 대체로 서민적이면서 단순한 것이 많다. 친구와 함께 가볍게 소주 한 잔을 기울일 수 있는 분위기가 정겹게 다가온다.
“서구의 음식들은 대체로 소주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아. 특히 대구에서만 먹을 수 있는 소주도 있으니, 꼭 먹어야 할 것만 같아.”
“맞아,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음식과 술 한 잔을 기울이면서 하루를 마감하는 대구 사람들의 순박한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
서구의 음식들은 대체로 서민적이고 푸짐한 것이 특징입니다. 곱창전골을 먹고 난 뒤 밥을 볶아 먹을 수도 있으니 얼마나 양이 많은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양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대구 서구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양념과 술안주로 제격인 음식들은 대구 사람들의 삶이 부러워지기도 할 정도입니다. 함께 소주 한 잔 할 수 있는 친구와 찾는 다면 속 이야기를 나누며 삶을 되돌아보는 좋은 곳이 될 것만 같은 대구 서구! 친구와 함께 가볍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평범한 일상으로 들어가 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