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거리에 농담을 걸다
- 서울특별시 강북구 -
흔히 말하는 ‘집채만 하다’는 수식어가 딱 들어맞는 커다란 강아지 한 마리가 반쯤 내린 셔터 문 사이로 얼굴을 내밉니다. ‘물리면 어쩌지?’ 하며 으레 겁먹었다가 이내 마음을 놓습니다. 그 강아지는 셔터 문에 그려진 그림이니까요. 각박한 도시가 공공미술로 새롭게 탈바꿈한 이곳은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 위치한 ‘큰마을길’입니다. 이런 거리미술이 있기에 바쁜 일상에 허덕이다가도 우리는 소소한 웃음과 작은 여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트래블아이>의 미션은 바로 ‘화폭에 담긴 거리, 큰마을길을 조망하라!’입니다.
큰마을길 초입에 우뚝 선 해바라기가 우리를 정겹게 맞이한다. 그런데, 주변을 환하게 밝히기까지 하는 이 해바라기, 그 특유의 화사함이 마냥 신기하기만 한데?
“이 초대형 해바라기 좀 봐. 처음에는 진짜 꽃인 줄 알았는데, 너무 선명하게 아름답고 밝기까지해서 들여다보니 안에 LED 조명이 설치되어 있어.”
“이 역시 조형미술이야. 이 빛은 어둠이 내려앉으면 밤까지 밝혀준다지. 해바라기의 디밍과 그라데이션 효과가 어두운 밤과 만나면 어떤 멋진 모습을 연출할지 궁금하지 않아?”
아이들의 웃음과 맑은 물소리가 한데 섞여 흐르던 과거 미아동의 삼양시장 인근은 개발의 역풍을 맞아 개천마저 콘크리트에 덮이고 말았다. 그간 어떤 변화들이 있었을까?
“처음에 이 마을에 왔을 때는 주민들과 동네가 굉장히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어.” “맞아. 흉측하기까지 했지.”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흉흉했던 마을이 지금은 180도 변했어. 배전함은 멋진 등대로 다시 태어났고 동네 곳곳 상점의 셔터와 간판도 멋진 그림으로 채워져 있구나.”
무겁고 칙칙했던 배전함이 뱃길을 밝혀주는 등대 역할을 하면서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문화공원도 언제나 활기를 띤다. 거리 곳곳에는 또 어떤 예술이 기다리고 있을까?
“저 집 지붕 위에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는 꼬맹이들 모습의 조각작품 좀 봐. 여기 마치 겔러리에 온 것 같지 않니?”
“낡은 빌딩의 벽면에도 마을의 옛 풍경이 고스란히 담겼네. 중세에서 현대까지, 대와 대를 이어온 역사가 이 30m가 넘는 길 위의 화폭에 그대로 실려 있어.”
미관을 흐렸던 한 재활용품점 외벽은 이제 설치작품으로 바뀌었다. 특히 이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감춰진 비밀을 알아가는 깨알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데?
“재활용이미지를 형상화한 설치미술이로구나! 도대체 뭘 활용해 만든 걸까? 분명 뭔가로 압착한 것 같은데?”
“난 알 것 같아. 그 재료 자체로 벽이자 간판이 된 듯해. 뭔가 다양한 의미가 담겼어.” “그러니까 대체 그 미술재료가 뭐냐고!”
이 골목 곳곳에는 조각품과 벽화 등 수십여 개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지만, 그 하나하나를 모두 감상하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숨은 작품들을 모두 찾아낼 수 있을까?
“휴~ 찾아다닌다고 한참을 빨빨거리며 돌아다녔는데 고작 몇 개밖에 발견하지 못했네.”
“‘셔터화’는 가게문을 닫아야 볼 수 있어.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둘러보지 않으면 무심결에 지나칠 허공의 조각품도 정말 많아. 작품들 대부분이 늘 제자리에 있으면서 우리 일상과도 함께하지만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얻을 수 없는 우리의 소소한 삶의 단편들이라고.”
큰마을길이 서울의 숨은 명소로 거듭나기까지 예술가들과 주민들이 함께 공공미술프로젝트를 성공리에 마쳤기 때문. 결실을 맺기까지의 과정들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예술가들이 주민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희망에 대한 이야기부터 살면서 겪는 문젯거리를 조사하고 그밖에도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촘촘하게 들었다지.”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주민들의 삶을 받아들임으로써 작품 속에도 그대로 반영할 수 있었던 거야.”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예술가들의 헌신적인 작업으로 추진한 프로젝트, 특히 벽화를 들여다보면 주민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데, 과연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까?
“낮은 담 어린 자녀들의 낙서며, 땀 흘려 자동차를 정비하는 아버지와, 빨래를 널고 있는 어머니까지, 잊고 있던 우리 가족의 진실 어린 풍경이 아닐까?”
“작품 하나하나에는 세월이 흘러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과거 이 마을의 이야기들이 모두 담겨 있어. 그래서 마치 이 거리가 생명을 얻어 다시 되살아나고 있는 듯해.”
하나의 커다란 설치미술공원과도 같은 큰마을길 같은 지역이 점차 확대된다면, 또는 예술가와 주민이 소통하고 만들어가는 공공미술작품이 점점 늘어난다면 어떨까?
“갤러리와 화랑에서 만나게 되는 미술작품, 그런 폐쇄된 공간이 아닌 이제는 거리로 나와 사람들과 만나 소통하는 미술의 시대가 됐다는 걸 이 큰마을길에서 배웠어.”
“맞아. 삶에 풍요로움을 선사하는 미술작품이 개별작가의 만족을 위한 결과물이 아닌 공공과의 소통을 통해 모두가 함께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기를 소망해.”
예술가는 작업실에서 그저 자신의 철학을 담아내는 작품 활동으로만, 대중은 그저 갤러리를 찾아 감상했던 예술. 작품세계는 무궁무진하지만 이럴 때 보면 마치 새장에 갇힌 새를 보는 것마냥 답답합니다. 하지만, 큰마을길은 분명 그 틀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주민과의 화합으로 만들어낸 공공미술은 예술의 폭을 확대시켰습니다. 그러면서 예술가와 대중 모두 작업의 폭과 감상의 폭을 넓혀줍니다. 화폭에 담긴 거리, 강북구 큰마을길이 조금 더 궁금해졌다면 이번 주말은 예술탐방 한번 떠나보는 건 어떠세요?
가야의 전설을 깨우다
- 경상남도 김해시 -
경남 김해에는 가야유적지 위에 아름다운 꽃과 봄향기 가득한 ‘가야사 누리길’이 있습니다. 대성동고분박물관을 시작으로 국립김해박물관~연지공원~구지봉~수로왕비릉~동상재래시장~북문~수로왕릉 등 가야의 역사문화 유적지를 하나로 연결하는 이 길은 특히 봄이면 곳곳에 이팝나무, 은목서, 꽃사과, 조팝나무, 백철쭉, 비비추 등을 함께 보며 걸을 수 있어 더욱 좋습니다. 가야시대 찬란했던 유적을 탐방하면서 봄을 만끽하는 당일치기 여행, <트래블아이>가 제안하는 미션입니다.
수로왕릉역, 박물관역 등 이름만 봐도 호기심을 갖기에 충분한 김해 경전철역. 여기서 국립김해박물관이 곧바로 연결되기에 쉽게 찾아갈 수 있다.
“박물관 앞 광장에도 봄나들이객들이 굴렁쇠를 굴리며 뛰놀고 있어. 이 박물관에서 제공하는 체험 프로그램의 하나인 것 같아.”
“내 생각도 그래. 그렇다면 우리도 본관 옆 가야누리관에서 직접 가야의 생활상을 체험한 후 본관에 전시된 가야문화유산을 둘러보는 게 좋겠다.”
김해박물관 뒤편에 있는 100년이 넘은 벚꽃나무도 호젓한 볼거리다. 하지만 이곳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더 제대로 된 여유와 휴식이 가능한 연지공원을 만날 수 있다.
“아직 파릇파릇한 새순이 돋지 않은 탓에 푸른 잔디를 볼 수 없어 조금 아쉽군.”
“이제 막 겨울의 문턱을 넘어섰는데 뭘 더 바라겠어. 겉옷을 벗어 던질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볕은 따습지?” “앗, 저기 좀 봐! 호수 내 설치된 분수가 가동되기 시작했어!”
국립김해시박물관과 함께 대성동고분박물관에서도 가야민족을 상징하는 여러 전시물을 구경할 수 있다. 김해박물관 바로 옆에 대성동고분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가야인의 생활상과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변화된 삶을 담고 있군. 가야에서 김해로의 변천사와 숨결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기회였어.”
“아직 끝이 아니야. 이 박물관에서도 매월 가야토기 만들기, 청동거울 만들기, 가야무사 활쏘기 등 가야인의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열고 있대.”
김해박물관 뒤편으로는 작은 언덕이 하나 있다. 해발 200여m에 불과한 동산에 불과할 것 같지만 가야왕국 시조인 김수로왕 탄생설화를 간직한 곳이다.
“여기가 고대 국문학상 중요한 서사시인 ‘구지가(龜旨歌)’의 발상지라는 사실 알고 있니?” “그렇다면 여기가 알속에서 수로왕 등 6가야 시조왕들이 태어났다는 전설이 깃든 구지봉?”
“맞아. 동네 뒷산처럼 보이는 이 작은 동산이 역사적으로 국문학적으로 ‘구지가’의 산실인 만큼 탄강 설화와 함께 김해에서 가장 중요한 곳으로 평가되고 있지.”
구지봉에서 내려오다 보면, 이역만리 길을 떠나 영원한 사랑의 결실을 맺고 김해 땅에서 왕비가 되어 영원한 사랑의 화신으로 잠든 김수로왕비릉 앞에 발길이 멈출 것이다.
“허황옥 공주가 잠들어 있는 곳이야. 서역 땅에서부터 공주의 신분으로 길을 떠나 멀고도 험한 길을 걷고 또 걸어 마침내 김수로왕을 만난 공주의 이야기는 아직도 심금을 울려.”
“맞아. 그녀의 이야기는 2000년 전의 영원한 사랑의 화신이 되었고 지금까지 산자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영원히 기억되겠지.”
이 가야사 역사탐방 코스에는 재래시장도 포함되어 있어 다소 의문이 들 수 있다. 김해재래시장(동상동)과 가야문화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가야정찬, 허왕후 만찬, 수로왕 만찬 같은 궁중음식들을 팔고 있을까?”
“아니야. 이 시장의 몇 십년 전통 음식점들은 약40년 전통을 가진 김해고유의 탁주 김해수로막걸리나 칼국수 같이 철저히 서민 위주의 음식을 팔고 있지.” “그렇다면, 김해수로막걸리 맛 좀 보고 갈까?”
이번에는 분산성으로 가보자. 조선시대 김해와 부산을 왜적으로부터 지켜온 김해 읍성의 4대문 중 하나인 북문의 위풍당당한 자태를 발견하게 된다.
“높이 솟은 문루 아래로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둥글게 쌓아둔 옹성이 보여.”
“김해읍성 중 북문이로구나. 양쪽에 날개처럼 쌓인 체성까지,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복원되어 있어. 조선 세종 때부터 김해와 부산의 왜적방어에 큰 몫을 했다지.” “120년 만에 되살아난 김해읍성을 마주한 느낌은 어때?”
수로왕릉역 해반천 교량에 새겨진 두 마리 물고기 문양은 김수로왕릉의 정문 납릉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상징적 의미가 담긴 걸까?
“이 납릉 문설주에도 두 마리 물고기가 있어! 허왕후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왔다는 강력한 증거가 아닐까?”
“글쎄, 어찌됐든 이 두 마리 물고기처럼 허왕후와 수로왕은 높지도 낮지도 않게 서로를 마주 바라보면서 영원한 사랑을 이루었을 거야. 그 교화가 백성을 다스리는데도 일조했겠지?”
‘가락의 동쪽’이란 뜻을 가진 낙동강, 그 하구에 자리 잡은 김해는 2000년 전 금관가야의 찬란한 문화가 꽃피었던 곳입니다. 그래서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습니다. 1990년 대성동고분군 발굴을 통해 가야가 가장 철을 잘 다룬 국가였음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또 김해 땅의 흙과 낙동강의 물이 만나 이뤄낸 가야토기의 문화는 지금까지도 이어져오는 조선시대 민요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걷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가야의 전설이 깨어나는 가야사 누리길, 여러분은 걸어보셨나요?
주홍빛으로 가을을 물들이다
- 경상북도 청도군 -
가을이 깊어갈 무렵이면 감의 고장 경북 청도는 온통 주홍빛으로 넘실댑니다. 마을은 물론 들과 산, 심지어 도로변까지 감빛으로 도배됩니다. 전체의 절반이 넘는 농가가 감농사를 짓기 때문일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감물이 들어 아끼던 옷을 버려야 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감은 훌륭한 염색 소재이기도 하다는 걸 이곳에서 깨닫습니다. 청도에는 감염색 공방 10여 개가 밀집해 이맘때 감물로 천을 염색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가 있습니다. <트래블아이>의 미션입니다. ‘청도 천연염색공방에서 가을을 주홍빛으로 물들여라!’
청도지역이 주홍색 물결을 이루는 깊은 가을날, 화양읍 유등리 꼭두서니 감물염색전시장 어디에서나 감물로 천연염색을 한 천 말리기 작업을 쉽게 볼 수 있다.
“저기를 좀 봐. 감물로 염색한 천을 햇볕에 말리고 계셔.” “마당 한가득 저렇게 감물 밴 광목이 빨랫줄에서 펄럭이는 장면은 청도의 또 다른 가을풍경이 아닐까?”
“맞아. 그런데 이곳은 또 달라. 저분처럼 소금물 뿌려주는 과정을 거듭하는 이유는 뭘까?”
청도군 전역에 천연염색 공방들이 즐비하다. 홍시가 무르익을 무렵 이곳 꼭두서니 감물염색전시장에 가면 감물들이기도 체험이 가능하다고.
“감물 입히는 횟수, 물을 뿌려주는 빈도에 따라 스무 가지도 넘는 색깔이 나옵니더.” “아~ 그렇군요!”
“청도에서는 우리 천연염색 공방이 원조라예. 우리 대표가 원래 다른 사업하다가 요 근방에서 천연염색 시작한 게 벌써 십 수 년도 더 됐쟤 아마.”
천연염색으로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꼭두서니 공방 주변으로 소소하게 놓인 하나하나가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건조장 옆 쪽밭까지…. 이 부지가 다 체험장으로 쓰이나 봐요?” “맞심더! 10여 년 전만 해도 천연염색은 초창기라 꼭두서니가 대표적인 체험장으로 부상했지예.”
“전시실에서 내다보면 마치 별장과 같은 아늑한 모습을 하고 있네요!”
주민들의 구수한 모습은 체험장을 찾는 손님들을 편안하게 한다. 이중 느티나무 공방은 옻염색을 전문으로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른데?
“안내하시는 분 말씀대로, 옻염색 과정에서 제직과 화공 등 섬유 계통에 30년이나 종사한 경력자들로부터 기술을 정말 배울 수가 있을까요? 상당히 고급기술일 텐데.”
“아니라예. 천연염색 기술을 함께 나누고 저변확대를 위해 천연염색 체험학습의 기회의 문을 이렇게 활짝 열어두고 있는 것도 우리 장점 아인교.”
실내 어디든 들어서면 벽장과 탁자에 진열된 완제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같은 재료는 다 어디에서 얻어지는 것일까?
“염색천으로 생활한복, 침구류, 커튼, 방석, 가방, 모자, 슬리퍼 버선, 토시, 식탁보, 속옷류, 카펫, 신발 등 못 만들 것이 없네요. 다 감물로만 이런 색이 나온 건가요?”
“감물뿐이 아니지예. 쪽과 치자, 애기똥풀, 꼭두서니, 자단목, 석류, 황토, 복숭아 가지, 쑥, 쇠뜨기, 밤 껍질 등 색감 내는 자연의 모든 것이 귀중한 재료라 안 합니꺼.”
이곳뿐 아니라 대구 종로에서도 꼭두서니 전문판매점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내 손으로 만든 염색천으로 가방이나 방석 등 아기자기한 용품이 탄생할 땐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
“짜잔~ 내 손에서 탄생한 식탁보! 정말 화려하면서도 고풍스럽기까지 해요! 하지만 옆에서 다 도와주셔서 제가 만들었다고 말하기가 좀 멋쩍네요.”
“한 주에 한 번씩 개인교습도 하니까, 집 가까우면 들르고 해. 우리 체험 프로그램은 생쪽체험 7~9월, 쑥염색 6~8월, 감염색 5~12월에 가능하니 참고 하시고.”
감빛고을에서는 1200여 평의 넓은 공간에서 천연염색 체험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특히 실에 염색을 하는 ‘사염’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라는데?
“사염? 그게 뭐죠?” “말 그대로, 실에 염색하는 기라예. 단순해보여도 천연염색 단점은 극복하고 더 다양한 색상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이만한 게 없지예. 아, 결국 특허까지 획득했다 아입니꺼.”
“방법을 터득하려 2년 넘게 실험을 거쳤다는 게 바로 이거로군요!”
청도에는 다양한 감 관련 체험상품을 만나볼 수 있다. 그 중 감 따기는 단연 인기. 끝 부분에 가위가 달린 장비도 있지만 잠자리채 모양의 정겨운 옛 도구를 직접 활용해보자.
“이 반시를 봐. 청도에서만 볼 수 있지. 달콤하면서도 질리지 않는 이 맛. 먹을 게 지천에 널린 요즘도 가을이 되면 그 옛날 할머니 체취가 묻어나는 홍시가 그립더라.”
“또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리는구나. 하긴, 시골집에 가면 ”내 새끼들~“ 하시며 서리가 내린 뒤 딴 홍시를 대광주리에 그득 담아서 내어주셨지.”
추억의 계절 가을이면 감에 담긴 추억을 반추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은 풍요의 상징입니다. 주먹만 한 감이 가지가 부러질 듯 주렁주렁 열리면 저마다 오래된 옛 기억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쟁반처럼 납작하게 생긴 청도의 홍시가 반시(盤枾)로 불리듯, 청도에 가면 감에 대한 특별한 추억을 다시금 쌓고 올 수 있습니다. 이중 감물염색은 이 지역에서만 보고 또 체험할 수 있어 즐거움은 더욱 배가됩니다. 감 수확철 `청도반시축제`가 열리는 시점에 맞춰 꼭두서니로 색다른 추억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떠세요?
가슴으로 느끼는 농익은 가야금 선율
- 충청북도 충주시 -
거문고, 향비파와 더불어 3현(絃)으로 일컬어지는 단아하고 해맑은 가야금 소리가 있기에 탄금대입니다. 악성 우륵(于勒)의 넋이 가야금 열두 줄에 서려 있기에 탄금대입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선인들이 창조하여 가꾸어온 우리의 소리는 현(絃)마다에서 신묘한 소리로 당대 사람들을 감동시켰을 것이 자명합니다. 하지만 선인들의 애환을 가락에 얹은 전통적 운율 위에 또 하나의 구슬픈 소리는 가슴으로만 들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트래블아이>가 제안합니다. 명암이 교차하는 농익은 가야금 선율을 가슴으로 느껴라!
우륵이 가야금을 타서 얻은 이름 탄금대는 충주에서 북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탄금대에 선 우륵이 되어 청풍명월(淸風明月)을 느껴보자.
“무심히 흐르는 달천(達川)이 남한강과 조우(遭遇)하는 구릉지대에 위치한 이곳 탄금대는 보게나. 빼어난 주변 풍광이 수려하기 이를 데 없지 않은가.”
“나직하여 편안한 숲에서는 가득 생기 머금고 달려오는 계절이 신록을 준비하는 듯 햇살을 회유하고 있어요.”
숲 향기에 이끌려 오솔길을 돌아나가자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이 펼쳐지고 강을 조망하기 좋은 벼랑 끝 한 지점에 오랜 역사의 갈피를 접고 선 비문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육당 최남선 선생이 지은 탄금대비로구먼. 비문에는 삶의 애환을 올올이 가락으로 승화시킨 우륵에 대한 예찬을 적었구나.”
“이밖에도 병자호란 때 혁혁한 공을 세운 임경업 장군 등을 칭송하고 있지만, 같은 반열에서 패장 신립(申砬:1546~1592) 장군에 대한 음각은 다소 옹색한 느낌을 주네요.”
우리 고유의 악기 가야금은 오동나무 긴 널에다 명주실을 곱게 꼬아 열두 줄을 매고, 줄마다에는 기러기발을 세워 만든다. 그 소리를 들어보자.
“가야금은 오른손으로 줄을 퉁기면서 왼손으로는 기러기발의 바깥쪽을 눌렀다 놓았다 하면서 연주하는데, 그 모습이 아주 고풍스럽고 우아하지. 우리 선인들은 가야금을 벗하여 때로는 연군지정(戀君之情)의 충의를, 때로는 임과의 애달픈 이별을 담아내기도 한단다.”
“때로는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찬탄을 소박하고 넉넉하게 담아내고 있음이 느껴져요.”
우륵은 원래 가야국 사람으로 신라에 귀화한 후 왕의 배려로 충주에 머물며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기고 살았다. 이맘때 우륵이 만든 가야금의 12줄에 담긴 의미는 뭘까?
“우륵은 우리나라 12월의 율(律)을 상징하여 12줄 현악기 가야금을 만들었고, 상하 가야(伽倻) 등 12곡의 노래를 지어 ‘가얏고’라 했다지.” “가히 탄금대는 우리 가락과 노래, 춤이 어우러진 진정한 풍류의 진원지라 하겠군요.”
“그래서 탄금대를 알면 우리 가락에 충분히 자긍심을 가지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일 게야.”
이곳에 풍류만 있었던 건 아니다. 벼랑 끝 바위에 내려서면 임진왜란 당시 최후의 격전 끝에 전멸한 신립 장군이 장렬하게 투신한 열두대에 닿는다. 어떤 느낌이 전해질까?
“애간장을 도려내는 선율을 환청이 들리는 듯하구나. 유장하게 흐르는 탄천의 물줄기가 산기슭을 떠받치며 굽이도는 낭떠러지에서 열두 대가 얼룩진 역사의 한 자락이 바위 끝에 매달린 듯 애처롭기까지 하구나.”
“비극적인 한을 아직까지 아우르지 못하고 있어서인지 유난히 물색이 짙푸른 듯해요.”
열두 대 낭떠러지 아래 충주호 물길을 따라 계속 산길을 걷다 보니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신립 장군의 순절비가 앞길을 막아선다. 그의 죽음은 어떻게 기록됐을까?
“비문에는 임진왜란 때 장군의 행적이 비교적 객관적 문장으로 나열되어 있어. 이중 ‘중과부적(衆寡不敵)’과 ‘고군분투(孤軍奮鬪)’라는 성어가 공감이 가는구나.”
“다행히 신립 장군은 사후에 영의정에 추증되고, 나라에서 충장공(充壯公)이라는 시호까지 내려 그의 장렬한 죽음을 애도했군요.”
물길 따라 가까이 다가온 용섬에는 한적한 오후의 평화가 드넓게 자리를 펼치고, 단청으로 채색된 탄금정(彈琴亭) 처마로 미풍이 스치며 풋풋한 풀냄새가 기분 좋다.
“탄금정에 오르니 솔가지 사이로 살며시 내비치는 물색이 솔잎과 초록색으로 한데 어우러져 싱그럽기 그지없네요.”
“달천의 도도한 물줄기가 저 아래 남한강의 또 다른 물줄기를 만나 하나가 되면서 더욱 당당해지는 모습이 마치 우리의 가야금 소리의 멋을 대변해주는 듯하구나.”
미세한 진동음의 환청이 있어 귀를 기울이니 어디선가 오동나무 고목의 천년 숨결을 머금은 가야금 곡조가 잔물결처럼 파랑으로 번진다. 잠시 그 소리를 따라가 보자.
“실개울처럼 가늘고 길게 이어지는 환청과 같은 진동소리가 들리지 않으세요? 가야국을 그리워하는 우륵의 탄식일까요?”
“바로 계고가 엮어내는 가야금의 고뇌어린 회한이 되고, 법지가 부르는 애조 어린 그리움의 노래가 되고, 만덕이 추는 번뇌어린 소망의 춤사위가 내는 소리로도 들릴 수 있겠지.”
탄금대에 가면 계절이 아무리 앞으로 내달아도 결국 춘하추동의 예정된 사계절을 되새김질하는 일에 불과하듯 역사도 같은 여정의 되풀이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양지 바른 길목에 선 장군의 순절비는 더없이 초라하고 작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회한은 이쯤에서 걷어내고 청명한 바람을 타고 너울너울 춤을 추다 바위에 부서지는 물결의 끝자락을 바라보세요. 그리고 천천히 눈을 감아보세요. 지금 여러분은 풍류에 찬 우륵의 가야금 소리를 듣고 있나요?
용이 지켜주는 천년고찰
- 경상북도 영주시 -
일찍이 깨달음을 얻은 의상대사가 전국의 산천을 돌아다니다 경북 영주의 봉황산 자락에 멈추어 섭니다. 그곳에 그는 부석사를 세웁니다. 속세의 자리에 부처님의 극락세계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입니다. 어느 화창한 가을날 절집의 고요한 풍경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이 고찰에 얽힌 용의 이야기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전설처럼 정말 무량수전을 떠받치고 있는 석룡이 천년의 세월 동안 이 부석사를 지켜온 것일까요? 청량한 가을, 부석사에서 전설의 용을 만나라! 이것이 오늘 <트래블아이>의 미션입니다.
소백산 부석사, 일주문을 지나니 부석사를 대표하는 은행나무. 가을의 부석사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은행나무 길이다.
“부석사 입구에서부터 일주문으로 가는 이 길에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길을 밟게 될 줄이야. 그야말로 가을 정취가 제대로 나는군요!”
“정말 그래요. 마치 극락의 세계로 통하는 길처럼 절집으로 오르는 이 길은 황금빛 일색이네요.”
일주문을 지나니 천왕문 너머로 가파른 계단길이 이어진다. 사람들은 꽤나 가파른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오르고 다시 멈춰서기를 반복할 정도로 계단은 끝이 없다.
“범종루와 안양루를 지나 무량수전까지 바로 이 108계단을 올라야 극락의 세계로 들 수 있다고 전해지죠.”
“정말 이런 난관에 봉착할 줄이야. 힘들지만 이 계단을 오르는 동안 고통과 번뇌는 사라지고 마침내 극락정토에 다다르게 된다는 것이군요.”
천왕문을 지나 다시 계단을 밟아가다 보면 안양루에 닿는다. 이 누각에서 일출 때면 황금빛 부처의 형상을 볼 수 있다고 전해진다.
“사람들이 또다시 나타난 계단 앞에서 크게 한숨이군요. 우리처럼 연신 가다 멈추기를 반복하는 저들의 모습을 좀 보세요. 마지막 계단까지 오르기에 숨이 차기도 할 거예요, 그쵸?”
“하지만 안양루까지 가는 데 마음도 바쁠 거에요. 그곳에서 부석사 경내를 한눈에 볼 수 있어서이기도 하지고, 또 황금빛을 띤 부처의 형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죠.”
누각에서 바라보는 부석사는 무량수전, 안양루, 조사당, 응향각이 절집 안에 편안히 들어앉은 품이다. 이 사찰이 불교 교리를 건축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해냈다고 하는데?
“저 무량수전을 좀 보세요! 눈앞에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군요. 하늘 아래 살짝 들린 팔작지붕의 처마선조차도 가볍지가 않아요.”
“한국 전통건축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대표한다더니, 정말 균형미가 돋보이네요. 저 위풍당당하면서도 거드름이 없으며 겸손한 풍채는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울 겁니다.”
7세기에 창건된 고찰 부석사. 천천히 경내를 둘러보니 고색창연하고도 여유롭다. 담담한 듯 보이는 절집 안마당과 빛바랜 단청이 여유를 더한다.
“불전 안쪽에 앉은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으로 햇살 한 자락이 비껴드니 기도를 올리던 사람들의 얼굴에 잠시 평온한 미소가 깃드네요.”
“누군가를 위해 간절히 기도를 올리는 이들의 모습이 마치 부석사와 오랜 인연이 있는 선묘낭자의 미소를 닮아 있는 듯하군요.”
무량수전 앞 석등은 창건 당시 세워진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 역시 아름다움으로 치면 손에 꼽히는 건축물이다. 의상과 선묘의 사랑 이야기도 바로 이곳에 깃들어 있다.
“예전부터 석등을 100번만 돌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소문이 전해져오고 있다죠? 초파일이면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달밤에 이 석등을 돌며 복을 기원한다죠?”
“그뿐만이 아니에요. 의상대사를 흠모하던 여인 선묘 여인이 용이 되어 지금도 이 사찰을 지킨다는 전설이 잠들어 있죠. 선묘 영정을 모셔둔 선묘각으로 가봅시다.”
석탑을 끼고 왼편 산길을 오르면 조사당이 나타난다. 조사당은 의상대사를 모신 곳인데 그 앞에는 ‘선비화(禪扉花)’라 불리는 나무가 자라고 있다.
“무량수전 왼편에 위치한 저 부석이 바로 선묘낭자가 띄운 돌로 부석사 이름의 기원이 됩니다.… 아, 저 나무도 역시 전설 하나가 전해지고 있어요. 의상대사의 지팡이가 저렇게 나무로 자라났다고 하죠.”
“지금도 해마다 꽃을 피운다는 저 나무에 얽힌 이야기, 정말 신기하군요.”
부석사 여행의 또다른 묘미는 소백산 자락 일몰의 아름다움이다. 특히 무량수전 앞마당과 안양루, 이곳 삼층석탑에서 바라보는 부석사의 일몰은 신묘할 정도로 장관이다.
“마침내 해가 저물고 담홍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보게 되는군요! 이야~ 탄성이 절로 나오네요!”
“지금이에요! 해가 완전히 산 뒤로 넘어가는 찰나! 짙은 구름 너머로 여의주를 베어문 한 마리 용이 슬며시 모습을 감추는 듯하지 않나요?”
부석사를 찾아드는 길목에서부터 황금빛으로 물든 숲길을 만나 탄성을 터뜨립니다. 안양루에 기대어 서서 발아래를 내려다보니 멀리 펼쳐진 소백의 연봉들이 부석사와 함께 한눈에 들어옵니다. 이 고찰에 용에 얽힌 애틋한 전설이 전해지는 탓일까요? 소백산 높고 낮은 산자락이 절집을 감싸 있는 품새는 해가 질 무렵이면 마치 하늘로 솟구치는 커다란 용 한 마리로 변하는 듯합니다. 그때 다시 한 번 탄성을 터뜨리게 되죠. 소백산 산중에 자리한 천년고찰 부석사에서 여러분은 실제 용의 모습과 마주했나요?
영험한 기운을 찾아나서다
- 대구광역시 동구 -
팔공산의 등산객들은 저마다 하나의 소망이 있습니다. 등산을 위해 산길을 오르는 사람들도, 봉우리마다 산재한 불교 문화재를 찾는 사람들도. 그들은 끝내 소원 한 가지를 남겨둔 채 팔공산을 내려옵니다. 푸르게 보존 되고 있는 팔공산의 자연과 그 속에 자리한 채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세월을 흐르고 있는 불교문화재의 조화는 그 어느 곳 보다도 아름답게 느껴질 것입니다. <트래블아이>의 오늘 미션은, ‘팔공산의 영험한 기운의 근원을 찾아내라!’입니다.
가장 높게 솟아 오른 비로봉을 중심으로 동서로 길게 펼쳐진 팔공산. 대구의 북서쪽을 둘러싸고는 그 정기를 뿜어내는 팔공산의 기운을 느껴보자.
“팔공산은 꼭 그곳에 올라가지 않아도 보이는 경치가 정말 대단하지. 주봉에서부터 길게 뻗어나가는 산줄기는 꼭 독수리의 날개만큼이나 웅장하단다.”
“그렇군요, 대구를 둘러싼 병풍이 되어서 대구를 지켜주는 듯한 느낌도 들어요. 게다가 두 개의 강이 만나는 자리에 있어 자연환경도 좋고, 등산을 하기에도 최고인 것 같아요.”
본래 ‘공산’이라 불리었던 팔공산은 많은 역사적 사건의 중요한 장소로 기록되고 있다. 특히 험한 산세로 인해 군사적 요충지로 성벽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고 한다.
“팔공산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많았단다. 그만큼 이름에도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을까?”
“음, 아마도 ‘공산’ 이라는 이름 앞에 숫자 8이 붙어있으니 8명의 인물을 기리기 위한 이름이 아니었을까요?”
자연공원, 교육원, 야영장, 케이블카 등 등산객들을 위한 위락시설이 갖추어진 팔공산. 험한 산새를 넘고 넘어야 만날 수 있었던 보물들을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등산로가 정말 잘 정비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렇게 개발을 하면 자연환경이 훼손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대구시는 팔공산의 등산로를 한정적으로 제공하고, 문화재를 연결하는 고리로 할용하고 있단다. 여러 위락시설도 자연을 훼손하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어.”
우리나라 불교의 성지답게 곳곳의 골짝마다, 봉우리마다 자리 한 약사불, 불상, 탑 등은 팔공산이 하나의 거대한 절로 느껴지게 할 정도다.
“팔공산 전체에 흩어져 있는 각각의 사찰이 가진 문화재와 보물들은 그 양이 정말 어마어마 하네요. 전부 다 관리하려면 엄청난 예산과 시간, 정성이 들겠죠?”
“그렇지. 하지만 귀중한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남겨져 전해 내려오는 팔공산의 보물들은 그만큼 관리를 받을 자격과 가치가 충분하단다! ”
오동나무 꽃이 상서롭게 피어있어 동화사라 불리는 이 사찰은 봉황의 둥지로 비교되기도 한다. 동화사에는 어떤 봉황의 흔적이 남아있을까?
“이 봉서루의 누각은 참 독특한 형태를 하고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계단 중간에 있는 이 돌들은 어떤 의미일까요?”
“누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놓인 돌 두 개는 독특한 의미를 담고 일부러 놓인 것이라고 하더구나. 위에 올려진 저 둥근 돌이 꼭 새의 알처럼 보이지 않니?”
조선의 왕조와 깊은 인연을 가졌던 것으로 전해지는 파계사에는 여전히 조선의 풍취가 물씬 풍긴다. 파계사와 조선왕조의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안내판을 읽어보니 파계사와 영조의 탄생 설화가 적혀있어요. 영조의 어의가 발견되었다니, 이 전설이 사실처럼 느껴져요!”
“9개의 물줄기가 되어 흐르는 이 산의 좋은 기운이 모이는 파계사에서, 조선의 왕조의 기운고 합쳐서 좋은 일을 만들어 냈던 것이 아닐까?”
산꼭대기에 근엄한 인상을 한 부처가 가부좌를 튼 채 앉아있다. 그의 머리에 얹혀진 넓적한 바위는 꼭 조선시대 갓을 연상케한다.
“부처님 머리에 올려 진 저 넓적한 바위가 떨어질까 봐 조마조마해요! 그런데 왜 이렇게 높은 산의 바위를 깎아 불상을 만들었을까요?”
“갓바위라고 더 많이 알려진 저 불상의 이름은 관봉석조여래좌상이란다. 신라시대 인현대사가 어머니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구나.”
입시 시즌이면 늘 사람들로 북적이는 갓바위. 그들은 저마다의 소원들 빌며 연신 갓바위를 향해 절을 올린다. 갓바위가 이루어준다는 단 하나의 소원, 과연 이루어질까?
“지성을 다해서 빌면, 갓바위 부처님이 한 가지의 소원들 들어준다고 하는구나. 어떤 소원을 빌고 싶니?”
“음, 글쎄요. 저는 이 팔공산이 잘 보존되어서 불교의 성지인 지금의 상황을 잘 유지하고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기를 빌고 싶어요! “기특하구나. 그래, 우리 함께 팔공산의 미래를 위해서 기도하자.””
산이 높고 험하지만, 일반 등산객들은 돌계단을 이용해 쉽게 산을 오릅니다. 힘든 기색 없이 산 중턱의 휴식처에서 쉬어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부처의 자비로움을 가득 전해 받은 듯이 평온합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암벽등반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만큼 팔공산의 매력은 어느 방면에서도 떨어지는 점이 없을 정도입니다. 마음가짐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 팔공산이 여러분을 대하는 방식도 함께 달라질 것입니다. 부처의 가르침처럼 자신의 심신을 다스리고 지성을 다해 갓바위의 영험함에 소망을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두꺼운 유화 같은 풍경
- 전라남도 화순군 -
말 그대로 붉게 채색된 절벽, 깎아지른 듯 수직으로 치솟은 모습만도 웅장한데 길이도 범상치 않은 전남 화순의 적벽. 장장 7㎞인지라 눈을 아무리 멀리 가져가도 그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적벽 사이로 흐르는 강물은 또 어떻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가늠하기 어려운 적벽을 송두리째 투영시켜 그 크기가 배는 된 것 같습니다. 적벽 아래를 흘러가는 동복천은 그냥 보내기도 아쉬울 정도입니다. 오죽하면 김삿갓조차 이곳에서 유랑을 끝냈을까요? <트래블아이>가 여러분께 제안합니다. ‘유화 같은 풍경 화순적벽을 유랑하라!’
창랑천에는 약 7㎞에 걸쳐 화순적벽, 보산적벽, 창랑적벽, 물염적벽 등 크고 작은 절벽들이 있지만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유독 화순적벽을 찾았던 이유는 뭘까?
“화순적벽. 벌써 수십 년도 더 된 시간의 저편이라 마을 노인들의 기억 속에만 닫혀 있지. 하지만, 화순의 적벽은 한때 이 땅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명소였어.”
“호남팔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화순적벽, 중국 양쯔강변의 소상적벽을 연상케 해. 어디 그뿐인가? 소동파의 적벽부를 생각나게 하는 절경이야. 이 ‘적벽’이 조선시대 붙여진 거 아나?”
화순적벽과 맞은편의 보산적벽은 규모는 작지만 세월의 풍파를 지나 이제는 사람을 가까이 할 수 없기에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하지만 희망의 길도 분명 있다는데?
“창랑적벽이나 물염적벽과 달리 화순적벽과 보산적벽은 안타깝게도 상수원보호구역 안에 위치해 일반인 출입이 금지돼 있구나.”
“보산적벽 위의 평평한 구릉에 보이는 저 망향정 보이지? 저 편백나무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면 네 슬픔이 조금은 가실 거야.”
그렇게 잠가놓은 화순적벽은 1년에 단 한 차례만 문을 연다. 수몰 실향민들이 모두 모여 고향 땅을 향해 제례 겸 잔치를 지내는 날이 그날이다. ‘조선 10경’을 볼 수 있을까?
“차단기를 지나 비포장길로 접어든지 꽤 됐는데… 어, 그렇지! 동복호의 맑은 물 위에 솟아있는 보산적벽 너머 검붉은 위용의 저것이 바로 화순적벽이지?”
“맞아! 까마득하게 수직으로 치솟은 적벽의 아득함. 아하, 이런 정도의 풍경이니 ‘조선 10경’으로 꼽지 않을 도리가 없었겠어.”
처자식을 떠나 ‘동가숙 서가식’하던 김삿갓은 34세 되던 때 처음 화순적벽을 마주했다. 이때만 해도 이곳에 뼈를 묻게 될 줄은 꿈에도 몰을 그의 첫 심경, 어떠했을까?
“화순적벽의 웅장함은 그 앞에 서보지 않은 이들은 짐작조차 하기 힘들 거야. 이 거대한 규모며 웅장한 기운. 글은 물론이거니와 사진으로도 다 담아낼 수 없겠지.”
“맞아. 김삿갓도 화순적벽의 절경에 취해 걸음을 멈추었을 거야. 삿갓을 살짝 들고 화순적벽을 응시했겠지? 그리고 괴나리봇짐에서 지필묵을 꺼내 짤막한 시 한 수를 지었을 게야.”
백아산에서 발원한 동복천이 항아리 모양의 옹성산을 휘감아 돌면서 거대한 산수화를 그리고 있는 화순적벽. 하지만 여기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하나 전해온다는데?
“조선 중종 때 유학자이자 개혁 정치가였던 조광조가 화순에서 사약을 받기 전에 25일 동안 배를 타고 다니며 화순적벽의 절경을 감상하면서 한을 달랬다지.”
“어디 그뿐인가? 어쩌면 화순을 찾아가는 여정에서는 풍경보다는 실타래처럼 풀어지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더 안성맞춤일지도 몰라.”
화순에는 오래 묵은 역사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도 풍성하다. 그 중 가장 매혹적인 이야기는 단연 모후산 아래 절집 유마사에 얽힌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고.
“이 풍치림을 좀 봐! 유마사로 드는 길은 편백나무가 도열하는구나.” “한때 호남지역에서 가장 큰 절집이었다지?”
“지금은 반들반들 윤이 나는 새것들로 가득하지만, 이곳을 한번은 찾아봐야 까닭은 전설 속의 여인 ‘보안’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지. 혹시 보안과 부전스님의 이야기를 알고 있니?”
물염적벽은 비단결 같은 강줄기와 주위 풍광을 감싸 안은 듯 포근하고 고색창연한 물염정이 압권이다. 물염정은 김삿갓이 즐겨 찾던 이 정자에 가면 뭔가 특별함이 있다는데?
“저 병풍처럼 깎아지른 기암괴석과 노송의 풍취를 좀 보게! 물염정에 앉아서 보니 세상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고 티끌 하나 속됨 없이 살겠다는 이 정자의 뜻처럼 청정해이지 않나!”
“여기 정자 안도 좀 보라고! 김인후, 이식, 권필 등 조선 선비들이 지은 시문도 다닥다닥 붙어 있구먼! 여기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라고! 꽤 흥미진진해질 걸?”
화순적벽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망미정에 다다르면 정시룡 방랑생활부터 화순의 동북을 세 번 들른 김삿갓까지, 온갖 의문점에도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까?
“조선팔도를 두루 섭렵한 김삿갓이 하필 화순의 동복을 세 번이나 방문했을까? 동복의 구암리 마을 정시룡은 왜 사랑방을 제집 드나들 듯 하다 여기서 방랑생활을 마감했을까?”
“글쎄, 분명한 건 ‘내 집에 오는 손님을 반겨 맞으라’는 정씨 가문의 넉넉한 인심 때문만은 아닐 거야.”
호남 8경이자 조선 10경의 그 빼어난 전남 화순의 적벽을 둘러보는 여정이지만 쓸쓸할 수도 있습니다. 화순적벽 앞에서 ‘일반인 출입금지’ 조항에 발이 묶여버리는 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을볕에 반짝거리는 동복천과 그것을 비추는 적벽의 풍경은 마치 인상파 화가가 그린 두꺼운 유화작품처럼 여전히 다양한 색으로 현란합니다. 갈대와 억새에 가을볕이 부서지고, 물 건너편에는 온통 단풍이 불붙어 수면에 물그림자를 찍어냅니다. 어디라고 딱히 짚을 것도 없이 화순의 적벽에서 만나는 풍경이 모두 더없이 아름답습니다.
겸재 정선과 구암 허준
- 서울특별시 강서구 -
언제부터인가 서울 가양동 일대가 역사와 문화의 향기가 흐르는 거리로 변신해 있습니다. 양천초등학교 담장에는 겸재 정선의 산수화와 형제간의 우애를 위해 황금을 물속에 던져버렸다는 투금탄 고사 이미지를 한강 물줄기로 연결하여 형상화한 ‘서울풍경’이라는 입체 벽화로 단장했는가 하면, 양천향교 벽면에는 향교로 향하는 아이들을 부조로 표현한 ‘향교종이 땡땡땡’을 전시했습니다. 허준박물관, 구암공원, 궁산 등 다양한 역사문화 자원을 문화벨트로 엮어진 가양동 ‘함께 걷고 싶은 예술의 거리’를 걸어라! <트래블아이>의 미션입니다!
양천고성지-소악루-양천향교로 연결되는 역사문화투어 공간이자 진경산수화의 산실로써 자리매김해 있다. 겸재정선기념관이 강서구 가양동에 자리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경산수화라는 우리 고유의 화풍을 개척한 겸재 정선(1676~1759)이 65세부터 70세 때까지 서울 강서구와 양천구 일대 현감을 지냈다는 거 알고 있니?”
“그럼! 그 당시 겸재는 서울 근교의 명승지와 한강변 풍경을 그린 ‘경교명승첩’ ‘양천팔경첩’ ‘경교명승첩’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잖아.”
겸재정선기념관에서는 겸재의 화혼을 오늘에 되살리기 위해 2013년에 ‘겸재 맥찾기 유수작가 초청전’을 여는 등 겸재의 실험정신을 본받아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동·서양의 여러 작가를 탐구하고 섭렵한 끝에 만난 나의 마음속 스승이 겸재 정선이야. 우리 전통 미술에서 느끼는 미감이 배어서 낯설지 않고 친근감마저 주고 있잖아.”
“맞아. 특히 근작의 풍경화는 투박한 듯하면서도 무겁지 않고 양감이 풍부한 주홍색 필선이 뼈대를 이루고 있어 더운 기운과 함께 밝은 광채를 느끼게 해.”
경관 조명은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이 길이 단순한 거리가 아닌 다양한 테마를 갖춘 역사·문화 명소로 자리매김한 이유이다. ‘박물관 가는 길’은 어디로 안내할까?
“허준선생은 당대 최고의 명의로서 질병으로 고생하는 백성들의 아픔을 덜어주고자 9종이나 되는 많은 의학서를 저술하셨지. 선생의 다양한 자료뿐 아니라 모형, 영상, 터치스크린, 허준체험 공간 등이 있는 허준박물관이 이 길에 이어지고 있구나!”
“웬걸! 한의학 전문 박물관으로서도 기능을 하고 있어!”
90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가양동에 위치한 허준박물관에서 우리나라 한의학을 집대성한 <동의보감>을 저술한 허준 선생의 인품까지 들여다볼 수 있을까?
“단순히 보는 박물관이 아니야. 직접 체험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한방 음식전, 한방약재공예작품전, 약초표본전, 동의보감 특별전 등을 수시로 열어서 이곳에 나는 자주 오는 편이야.”
“한의학을 쉽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도록 꾸며졌구나. 동양의 의성(醫聖)으로 추앙받는 허준 선생의 모든 것을 만나보니 숭고한 인간애까지 느껴져.”
해마다 음력2월과 8월에 유림, 지역주민, 학생들이 모여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에 대한 석전제를 지내고 있는 양천향교 터에서는 예절교육, 견학코스도 운영하고 있다.
“양천향교가 서울시 유일의 향교라는 거 알고 있니?” “아니. 전혀 몰랐어!”
“우리 조상들의 교육문화의 산실이었던 양천향교는 옛 선비정신을 되살려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정신적, 교육적 가치를 드높이는 교육기관이자 문화유산이다.”
겸재의 그림 <소요정>에서 어부 두 명이 낚싯줄을 드리우고 태평하게 앉아있는 풍광이 돋보이는데, 그 속에 허가바위가 등장한다. 영등포공고 정문 앞 탑산에서 이를 찾아라!
“사람 10명 이상이 들어갈 수 있는 이 동굴을 좀 봐. 옛날 석기시대 사람들이 한강 가에서 조개와 물고기를 잡으며 이곳에서 살았으리라 짐작되는 흔적들이 곳곳에 있어.”
“이 굴에서 양천 허씨의 시조 ‘허선문’ 이 태어났다는 설화도 있고, 허준이 <동의보감> 집필을 마친 곳도 여기라고 알려져 있지!”
겸재정선기념관 뒤편에 있는 궁산근린공원으로 가보자. 이곳에는 어떤 이야기가 깃들어 있을까?
“궁산근린공원은 파산, 성산, 관산, 진산 등 다양한 명칭이 있다는 거 알고 있니?”
“물론이지. 옛날 백제의 양천 고성지와 조선시대 화가인 겸재가 양천 현감으로 재임하면서 그림을 그렸던 소악루가 자리하고 있잖아.” “맞아, 양천향교도 이곳에 위치하고 있으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겠어.”
강서에는 ‘양천향교 제례’, ‘박물관 가는 길’ 등 특색 있는 작품을 조형화하여 포토존으로 꾸며져 있는가 하면 4개 역사문화 코스 나뉜 거리가 조성돼 있다
“조선시대 도성과 양천, 강화를 이어주던 공암나루와 가을이 되면 단풍으로 어우러진 탑산이 있어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푸근하게 하는구나.”
“강서구 가양2동, 한강 남쪽 강변에 위치한 허준마을은 한강 너머로 확 트인 시계가 확보돼 멋진 풍광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게 됐어.”
탑산 아래는 허준의 동의보감 집필장소로 널리 알려진 허가바위가 있으며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허준박물관과 허준의 아호를 따 조성된 구암공원도 지근거리에 있습니다. 인근에는 겸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겸재정선기념관이 소악루와 함께 자리해 있습니다. 이 지역 사람들의 역사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애향심은 얼마나 남다를까요? 이는 그간 문화체험길을 만들기 위해 서로가 똘똘 뭉쳐 해온 노력에서 엿볼 수 있을 겁니다. 가볍게 한 바퀴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역사의식을 고취할 수 있는 가양동 역사문화길을 걸어보는 건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