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이 어디든 산을 오르는 것이 미연은 영 못마땅하다. 서울의 많고 많은 곳 중에 산이라니. 미연은 혀를 끌끌 찼다.
“너도 참 너다. 이 넓은 서울에 갈 곳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동네 산이니?”
“왜, 좋잖아. 자 공기한번 쭉 마셔봐. 이렇게 맑은 공기를 돈 안내고 마시는 걸 감사해야해. 그리고 멀리 가지 않고 등산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좋아!”
“웃겨. 너랑 주말을 보낸다고 온 내가 바보다.”
미연은 투덜거리면서도 연수의 뒤를 곧잘 쫒아온다. 리본 끈으로 길을 안내하는 곳곳에는 이야기가 있는 관악산 둘레길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아, 힘들어. 원래 이렇게 힘든 코스였어? 동네산이 뭐 이래?”
“여기만 넘어가면 내리막길이야. 조금만 힘내. 너 다이어트 한다며, 한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지방 타는 소리가 들리지~ 안 들려?”
“놀리냐, 힘들어 죽겠구만. 물이나 좀 줘봐.”
관악산 둘레길 제2구간은 물과 바람 공기가 참 시원했다. 작고 아담한 계곡을 지나면 장승과 솟대가 등산객을 반긴다. 한여름이면 여름의 냄새가 나고 가을이면 또 가을의 냄새가 나는 곳이다. 흙길을 걷다보면 오르막길 내리막길이 번갈아가며 나왔다. 오르막을 오르다 지칠 즈음이면 내리막길이 나와 쉼을 주었고 땀이 식을 만하면 다시 오르막길이 나왔다. 작은 들꽃은 휴식을 함께 기뻐해주기라도 하듯 아담하게 피어있다.
희진은 미연이 올라올 수 있도록 보폭을 맞춰주었다. 그리고 뒤에서 미연의 등을 살짝 떠밀어주기도 하며 미연의 힘을 나누고자했다.
“어! 다람쥐다. 여기 다람쥐가 다 있네.”
“그러게, 귀엽다. 우리 이러고 있으니까 소풍 온 어린애들 같아.”
“소풍? 소풍이라면 소풍이지. 점심으로 김밥도 싸왔으니까, 제대 론데?”
미연과 희진은 마주보고 웃었다.
관악산 제2구간은 돌산 조망점에 올라 서울시내를 바라 볼 수 있으며 인근 호수공원도 둘러볼 수 있는 코스라고 했다. 미연과 희진도 곧 돌산 조망점 지점에 도착하였다. 한숨 돌리고 큰 바위에 털썩하고 주저앉으니 서울시내가 한눈에 다 담겼다. 이곳이 정상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는 것이 신기했다. 뭉친 다리근육을 털고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오이를 꺼냈다.
“경치는 좋네.”
“거봐, 따라오길 잘했지? 땀 흘리고 먹으니까 더 맛있는 것 같다. 그치?”
“이래서 사람들이 산을 오르는 걸까?”
“무슨 소리야?”
“아니, 그냥. 턱 끝까지 숨이 차고 다리가 후들거려도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걸 느끼고 자신이 숨을 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공기가 좋아서 오는 사람도 있고, 바람을 좀 더 많이 느끼고 싶을 수도, 그냥 산이라는 것 자체가 좋아서 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이야기가 있는 둘레길은 친구와, 가족과 연인 등 사랑하는 사람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각자의 산을 오르는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산이 주는 행복과 시원함은 각자의 추억대로 되가져갈 것이다.
누군가 산다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처럼 오르막길 내리막길이 있다고 했다. 흙길로 걷기도 했다가 딱딱한 아스팔트를 걷기도 하며 계단을 오르기도 하고 평지를 걷다 내리막길을 만나기도 한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그곳에 바람도 있고 물도 있고 나무도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구간까지 정복하고 나니 석수역이다. 꽤나 긴 코스를 마치고 내려오니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꽤나 알찬 주말을 보낸 것 같은 뿌듯함과 쾌감이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그저 그런 주말이었다면 집에서 밀린 잠을 잔다거나 텔레비전이나 붙잡고 있었을 것이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 50분.
“드디어 도착. 음, 막걸리에 파전 어때?”
“좋지!”
유난히 지독한 악몽을 꾸었다. 여전히 꿈에서 깨면 식은땀이 베개에 흥건했고 꿈에서 깨면 얼마동안은 쉬이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이러한 지독한 악몽은 며칠 째 계속되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괴롭히는지 몰랐다. 꿈에서도 그를 쫒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저 두려움에 앞만 보고 달리다보면 어느새 헉 하는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깨곤 한다. 그가 이런 상황을 이야기하면 친구들은 뒤늦게 키가 크려나보지, 네가 애냐며 비웃음 섞인 조롱만 늘어놓았다. 그는 이러한 악몽의 끝에는 돈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항상 가난에 허덕였고 좀처럼 빈곤함은 나아지지 않았다.
깨어나고 싶어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처럼 답답하기만 했다. 누군가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불편한 것이라 했던가.
어렵사리 대학등록금을 마련하여 학교에 다니다보면 또 다시 돌아오는 등록금 납부기간. 도대체 한 학기는 왜 이렇게 빠른 것인지 몰랐다. 남자의 얼굴에는 늘 그늘이 져 있었고 빈곤의 주름이 깊게 패여 있었다.
대학입시와 함께 부모님께는 손을 벌리기 않기로 마음 먹은지 어언 삼년이 넘었다. 그동안에도 그는 풍족함 없이 지냈지만 이렇게 힘든 적도 없었다. 그는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 과수원을 하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과일, 채소를 팔아본 적도 있었고 고기 집에서 불판도 닦으며 중국집에서 배달하는 일도 했다. 사람들은 참 열심히 사는 청년이라며 칭찬을 늘어놓았지만 쉽게 그의 사정을 봐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그가 망설임 없이 구매하는 것. 복권이었다. 그의 친구들은 네가 일확천금을 노리기 때문에 안 되는 거라며 비아냥거렸지만 그는 이렇게 작은 희망이라도 품지 않으면 꼬여만 가는 가난의 실마리를 풀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되던 안 되던 추첨 시간이 되면 그의 답답한 가슴이 잠시나마 두근거리며 뚫리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제도 오늘도 꽝이었지만 그는 잠시 동안의 해방감을 즐겼다.
며칠째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또 다시 불면증과의 사투에 들어가야 하는 것인지 생각했다. 내일이면 아르바이트다 수업이다 해야 할 일이 태산 같은데 잠이 오지 않았다. 물론 잠이 든다고 해도 악몽 때문에 제대로 잔 것 같지도 않게 깨긴 했지만.
그러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잠 속에 빨려 들어갔다. 어딘지 모르는 낯선 곳이었다. 물이 흐르는 곳에 솥 모양의 바위가 있었고 그 곳에는 물안개가 피어나면서 어렴풋이 보아도 심상치 않은 곳이었다. 그는 무언가에 이끌리는 것처럼 바위 쪽으로 손을 뻗었다.
물에 비친 모습 때문이었을까? 손에 닿을 듯 말듯 애간장을 태웠다. 안간힘을 써 손을 뻗었다. 탁! 하고 바위를 치는 순간 잠에서 깨었다. 번쩍하는 느낌에 온 몸에 전율이 흘렀고 긴 악몽에서 깨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식은땀이 흘렀지만 분명히 그전까지 꾸던 악몽은 아니었다. 어딘지 모르는 곳에 있던 바위, 그리고 바위를 만지던 손의 느낌이 생생했다. 왠지 개운함까지 감돌았다.
남자는 예삿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분명히 길몽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꿈을 꾸고 난 뒤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여전히 자장면을 배달해야 했고 고기 집에서 불판을 닦아야 했다. 복권을 사도 꽝이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엔 더 이상 빈곤의 주름이 보이지 않았다.
무슨 영문인지 아침부터 밖은 소란스러웠다. 웅성거리는 곳에서 드문드문 들리는 이야기를 조합해보니 오늘 하루 동안 정전일거라는 이야기였다. 암막커튼을 달아놓아 방안은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도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어두웠다. 불면증이 심한 내가 고안해 낸 최선의 방법 중 하나였다. 아무런 빛이 새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 느지막이 일어나 밖으로 나가보니 오후 2시 반이다. 밖은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소식이 있다고 하더니 밖은 아직 어둠이 내려앉을 시각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두컴컴했다.
“정전이면 텔레비전도 다 안 나오는 건가?”
나는 조그맣게 혼잣말을 읊조렸다. 부스스하게 일어났을 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전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별다를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일단은 무의식적으로 리모컨을 집어 들었으나 팟! 하는 소리와 함께 웅성거리며 켜져야 할 텔레비전은 켜질리 만무했다. 아차, 싶은 마음에 부엌으로 갔다. 뭐라도 먹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즉석밥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넣었다. 물론 이 고철덩어리도 반응할리 없었다.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선반에 놓인 수분이 날아간 식빵 한 조각을 입에 구겨 넣었다. 아직 어두운 밤이 오지 않았음에도 정전은 쉽게 적응되지 않았다. 마치 어두운 동굴 안에서 원시생활을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여겨졌다. 문명과 닿아있는 유일한 끈, 휴대전화의 전원을 켜보니 배터리도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빈집에 불빛도 없이 소파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으려니 나 자신이 무기력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문득 빛이 보고 싶어졌다. 베란다 창고에 가서 촛불이라도 찾아볼 요량으로 자신 있게 팔을 걷어붙이고 창고에 발을 들였으나 어두운 곳에서 촛불하나 찾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와당탕하고 아슬아슬하게 얹어놓은 살림살이들이 머리위로 쏟아져 내렸고 촛불을 찾기는커녕 천둥소리에 놀라 후다닥 거실로 뛰어 들어왔다. 조명이 없다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덩그러니 소파에 앉아있는데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가 떠올랐다. 성냥하나 켜면 맛있는 음식들이 떠오르고 또 하나의 성냥을 켜니 따뜻한 방안이 떠오르고 마지막 하나의 성냥을 켜며 잠이 들었다지. 성냥팔이 소녀에게도 있던 성냥이 나에게는 없다. 고로 빛을 찾아 나서야 했다.
우산 하나만 챙겨 나온 밖엔 비가 그쳐있었다. 비는 그쳤지만 어둠은 그대로였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 채 거리로 나섰다. 거리는 휘황찬란했다. 여러 간판과 가게에서 쏟아져 나오는 빛들로 눈이 부셨다. 불과 몇 시간동안 빛을 못 본 것뿐인데 빛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토끼눈을 떴다.
문득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올해 크리스마스에 남자친구가 생긴다면 꼭 가보고 싶다던 곳이 있다고. 필룩스 조명 박물관에서 크리스마스 특별전을 열었다고 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조명 조형물이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했다. 망설일 필요가 없다. 필룩스 조명 박물관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입장 한 시간 전에 도착하여 나름 여유 있게 박물관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곳은 거리에서 본 찬란한 조명과는 다른 느낌의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을 풍겼다. 아기자기한 조형물을 비롯하여 빛이 없던 시대의 이야기부터 현대의 조명 그러니까 일상생활 속 조명의 역할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찬찬히 둘러보면서 낮에 있었던 정전사태를 떠올렸다.
빛은 있어야 했다. 애써 어둠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어둠이 짙게 깔리면 깔리는 대로 어둠을 놔두면 되고 날이 밝아오면 밝는 대로 밝음을 즐기면 그만이었다.
빛을 받은 조형물들은 아름다웠다. 친구가 말한 대로 크리스마스에 왔더라면 더 아름다웠을 텐데, 하는 아쉬움까지 들었다. 폐장시간이 다 됐는지 드문드문 관람을 하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니 집안은 그리고 내 방안은 여전이 어두웠다. 나는 내 방안에 쳐있던 암막커튼을 확 걷었다. 어두웠던 집안이 한층 밝아진 듯 했다. 마치 은은한 조명을 하나 켠 것처럼. 그리고 조그맣게 혼잣말을 했다.
‘오늘 하루는 꿈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라!’
어머니는 시장에 갈 때면 줄곧 나를 데리고 가셨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사람구경 많이 해보겠노 하면서 고사리 손을 꼭 잡고 시장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주셨다. 작은 아이의 눈에 비친 시장은 없는 것 없는 만물상자 같았다. 엄마는 시장에 오시면 항상 마늘 한 접을 사셨다. 요즘 마트에는 깐 마늘이며 다진 마늘이며 편하게 나온 것들이 많은데 엄마는 항상 흙 묻고 주렁주렁 매달린 통 마늘을 사오셨다.
집에 오면 신문지 하나 깔고 구부정한 자세로 마늘을 까셨다. 그러면서 매우신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는 엄마에게 슬퍼서 우는 것이냐고 물은 적이 있고 엄마는 아니라고 했다. 그냥 눈이 매워서 그런 것뿐이라고 했다. 엄마의 구부정한 등허리가 흐느낌에 들썩였다.
엄마의 시집살이는 마늘만큼이나 매웠다. 아빠는 엄마와 할머니 사이를 방관하였고 할머니는 그런 엄마를 쥐 잡듯이 잡았다. 엄마는 할머니가 이러는 것이 할아버지 때문이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중풍으로 쓰러져 계셨기 때문이다. 중풍으로 쓰러지신 것이 엄마 때문도 아니었는데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쓰러지신 이후로 엄마를 못살게 굴었다. 할아버지가 쓰러지시는 바람에 할아버지 뒤치다꺼리까지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엄마를 더욱 못살게 굴었다.
서슬이 퍼런 눈매로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을 따지고 들었고 서방 기 빨아먹는 것이라며 욕도 서슴지 않았다. 그럴 때면 나는 쪽방 구석에서 귀를 막고 있었다. 엄마는 할머니에게 한 소리를 듣고 나면 나에게 시장에 가자고 했다. 시장에서 엄마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손을 꼭 잡으면 엄마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시장을 한 바퀴 돌고도 살 것이 마땅치 않으며 한 바퀴를 더 돌곤 했다. 애호박과 마늘, 부추를 사고 난 뒤 마지막으로 마늘 한 접을 또 샀다.
엄마는 주방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마늘을 깠다. 하나 두 개를 까다보니 또 눈이 매운 모양이었다. 엄마의 구부정한 등이 들썩거렸기 때문이다. 나는 마늘이 엄마를 괴롭히는 괴물이라고 생각했다.
동그마니 몸을 말고 앉아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마늘 깔 때마다 울면서 왜 시장갈 때마다 마늘을 사?”
“마늘이 몸에 좋으니까 그렇지.”
“마늘이 몸에 좋아? 그렇지만 너무 맵잖아.”
“매우니까 먹는 거야. 매우니까.”
엄마는 대답을 하면서도 훌쩍거렸다. 눈물과 콧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제 곧 외출했던 할머니가 오실 시간이기 때문에 엄마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내가 도와주겠다고 해도 엄마는 ‘아서’라는 말을 하며 만지지 못하게 했다. 나는 마늘을 까도 맵지 않았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할머니가 들어오셨다. 마늘 정리를 하고 있는 엄마를 곁눈질로 힐끔 보시더니 ‘뭐하려고 맨날 마늘이고.’라고 중얼거리며 쿵 하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엄마는 할머니가 중얼거리는 소리도 놓치지 않고 ‘의성마늘이 매콤한 게 혈액순환에 좋다고 하잖아요, 풍에도 좋지 않을까 해서.’라고 대답을 했으나 이미 할머니가 방문을 있는 힘껏 닫고 들어간 후였다. 나는 할머니가 들어간 방문이라도 흘겨보았다. 언젠가 할머니에게 엄마를 왜 이렇게 미워하냐고 물으려다가 그럼 못쓴다고 엄마에게 호되게 혼이 난 적이 있어서 그러지는 못했다.
엄마는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엄마에게 마늘은 ‘매움’ 그 자체였나 보다. 엄마의 굽은 등허리가 들썩거릴 때마다 마늘은 더욱 매워졌는지도 모른다.
몇 년 전, 우연히 건넜던 다리가 하나 있다. 친척집에 다녀오던 길, 어머니가 갑작스레 야경이 보고 싶다 하셔서 일부러 차를 돌려서 갔던 곳에서 본 다리였다. 아치와 원 모양이 붉은 색과 녹색의 조명으로 빛나고 있던 그 다리는 화려하지도, 소박하지도 않았다. 다리 건너편으로 펼쳐져 있던 울산의 야경이 참 조용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말문을 여셨다.
“옛날에는 여기까지 고래가 들어왔다지.”
울산이 고래로 유명한 곳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강까지 고래가 다녀갔다니? 아버지의 말에 놀라 다리를 다시 살펴보니, 그것은 고래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물론 강에 고래가 지나다닌 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일 터였다. 하지만 그 후로 나는 가끔, 울산에 흐르는 작은 강과 그 아래를 헤엄치는 고래의 모습을 상상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강은 그리 작은 편은 아니었다. 다만, 내 상상 속의 커다란 대왕고래 한 마리가 헤엄치기에 작을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내 상상 속에서 고래는 항상 하얀 배로 강바닥을 긁으며 천천히 태화강 상류로 헤엄쳐간다. 고래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가끔씩 하얀 물안개를 그려내며 유유히 헤엄친다. 그 거대한 고래가 지나가고 움푹 팬 자리에 푸른 강물이 넘실대며 차오르고, 고래의 지느러미가 쓸고 지나간 부분은 그대로 아름다운 강둑이 된다. 그야말로, 고래가 만든 강이었다.
그리고 며칠 전, 나는 다시 그 다리를 찾게 되었다. 오랜만에 다시 친척집을 찾았는데, 돌아오는 길에 가족 나들이가 계획된 것이었다. 어디로 갈까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고래를 닮았던 그 다리를 다시 보고 싶다 하셨고, 마침 아버지도, 나도 그 다리가 그리워지고 있던 참이라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이제 막 정오를 지났으니 야경을 보는 건 무리겠네.”
어머니가 아쉬운 듯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우리 가족은 야경만큼이나 값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해가 내리쬐는 시간에 본 태화강변은 내 상상과는 달리, 아주 넓은 대밭이었던 것이다. 밤에는 그저 강변공원에 조성된 숲인 줄로 알았던 것이, 낮에 보니 모두 대나무였다.
“세상에,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낮에 들렀을 텐데 말이야. 고래 다리도 예쁘지만 대숲이 아주 장관이네!”
“그럼 아예 지금부터 해 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야경까지 보고 갈까?”
아버지의 말에 우리 가족 모두 오케이를 외쳤다. 흔히들 그러듯이, 울산이라 하면 공업 도시를 생각하는데 이곳은 사람 키의 몇 배나 되는 대나무들이 녹색 장막을 펼치고 있었다. 이전부터 자생하던 대나무를 시민들이 합심하여 이만큼 키워낸 것이라는데, 사람들뿐만 아니라 백로나 괭이갈매기, 고니, 왜가리나 민물 가마우지 같은 철새들도 많이 다녀간다고 했다. 도시 한가운데임에도 불구하고, 너구리가 살고 있다는 안내판까지 붙어있는 것을 보고 다들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만하면 고래도 아직 살지 않을까?”
실없는 말 한 마디를 던졌을 뿐인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러면 좋겠다며 고개를 끄덕여 주셨다.
대숲을 누비고 다니다 지친 우리는 배를 탔다. 강 이쪽 편과 저쪽 편 사이를 연결한 줄을 잡고 직접 뗏목을 움직여가는 이 배의 이름은 갯배라고 하였다. 태화강 전망대와 그 뒤에 펼쳐진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가 직접 줄을 잡고 당기게 되었다. 아버지와 함께 줄을 당기는 동안, 건너갈 수 없을 것만 같던 강 저편이 점점 가까워져갔다.
순간, 나는 물밑으로 커다란 고래 한 마리가 헤엄치는 상상을 했다. 고래의 숨구멍에서 뿜어져 나온 물줄기가 대밭으로 떨어진다. 대나무는 고래가 뿌린 물을 마시려 고개를 한껏 빳빳이 세웠다. 난데없는 상상에 웃음이 났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셨다. 나는 그 순간 우리 모두 같은 상상을 한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흐뭇한 마음에 줄을 더욱 힘껏 당겼다.
어느새 ‘강남’이라는 행정자치구 자체가 하나의 문화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강남을 외쳤고 그 외침 하나로 강남이라는 지역 일대에 파란이 일었다. 땅값은 물론 그곳에서 피어난 문화, 패션, 거리 하나까지 그 시대의 트렌드를 이끄는 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강남스타일이라는 대중가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도대체 ‘강남스타일’이 무엇이기에 사람들은 그것에 열광을 하는 것일까 생각한 적이 있다.
언젠가 강남이라는 단어는 부의 상징이었고 무너져가는 아파트라도 강남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훈장처럼 달리는 명예였다. 소위 잘산다는 사람들의 동네로 불리는 강남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워너비 동네로 자리 잡고 있다.
“너 장래 희망에다 뭐 썼어?”
“난 청담동 며느리.”
“청담동 며느리가 되는 것이 꿈이야?”
“그럼, 좋은 집안에 시집가서 남편 잘 만나 행복하게 사는 것만큼 좋은 게 어디 있니?”
민지는 청담동 며느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민지 말대로 좋은 집안에 시집가서 행복하게 사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겠지만 그것이 곧 행복이고 꿈이라는 건 조금은 슬픈 일이었다.
드라마에서 재벌집들이 전화를 받으면 동네 이름을 말하며 전화를 받는 것처럼. 민지도 콧소리를 흘리며 ‘청담동입니다’라고 할 것이다.
민지는 항상 만날 약속장소를 말하면 강남역 7번 출구였다. 그래서 친구들은 민지를 강남역 7번 출구라고 부르기도 했다. 금요일이면 강남역은 젊은이들의 문화로 가득했고 만남과 만남으로 들떠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붕붕 울리는 음악과 현란한 사람들의 발소리가 늦은 시각임을 실감하지 못하게 했다. 민지의 헬스클럽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강남역 7번 출구로 나갔다.
민지는 운동으로 잘 다져진 탄탄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것도 다 청담동 며느리가 되기 위한 하나의 조건이라고 하며 자랑스러워했다.
커피숍에 들어가도 민지는 아메리카노 이외에는 입에도 대지 않았다. 나는 약간 비꼬는 목소리로 그것도 강남 스타일이냐? 라며 비웃었지만 민지는 눈 하나 끔뻑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도도한 목소리로 그렇게 달달한 거 자꾸 먹으면 ‘살쪄’라며 생크림 잔뜩 들어간 달달한 내 음료를 비난했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사람들은 강남과 강북을 갈랐고 조망권과 교통권, 문화생활의 차이를 만들어갔고 그 차이를 통해 만족을 느끼려했다.
어쩌면 강남은 서울의 수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뛰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 많은 스펙을 쌓으며 어떤 것을 이루려고 하는 것일까. 과연 서울에도 수도가 있다면 그곳은 강남일까.
여전히 강남역엔 사람들이 붐볐다. 압구정동이나 청담동에는 비슷한 차림새에 비슷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생각과 다른 사연들을 품고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나는 물끄러미 지나가는 행인들을 바라보았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돈이 많은 건 아닐 텐데. 비슷한 얼굴에 비슷한 차림을 하고 있지만 그들이 원하는 삶과 생각은 다를 텐데 말이다.
민지와 꽤 늦은 시간에 헤어졌다. 민지는 저들 틈으로 사라져갔다. 유유히. 민지는 금세 사람들 사이에 스며들어 누가 누군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멀어져갔다.
순간 나는 길을 잃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내가 가야할 곳을 말해줄 것 같은 사람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나에게 ‘이쪽으로 가면 강남역이 나오고 저쪽으로 가면 청담으로 가는 길일 거예요. 저쪽은 삼성동이고요.’정도로 이야기 해주겠지.
겨우 길을 걸으면서 나는 민지를 떠올렸다. 우리는 민지를 선뜻 속물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아니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사람들의 통념이 그렇듯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웬만하면 서울, 그 중에서도 강남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더 많은 사람들의 장래희망이 혹은 꿈이 ‘도곡동 고급아파트, 삼성동 유명백화점, 청담동 며느리’가 되지 않기를 바랄뿐이었다.
거센 바람이 아님에도 촛대의 불이 하늘거리며 흔들렸다. 촛불이 흔들리는지 장군의 두 눈동자의 여린 초점이 흔들리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수많이 적과의 전투가 있었고 곧게 뻗은 대나무처럼 한결같이 묵묵하게 전투를 치러왔던 그였다. 신라군과의 유난히 힘든 전투를 보낸 후라 그런지 그날따라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감도는 듯 했다. 문밖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무심하게 불던 바람에 더욱 평강이 보고 싶던 온달장군은 말없이 붓을 들었다.
온달장군은 늘 평강공주에게 표현이 서툴렀다. 하지만 누구보다 평강을 생각하는 그였다. 사람들은 그래서인지 그를 보고 바보온달이라고 불렀다.
온달은 서툰 솜씨로 편지를 써내려갔다. 막상 붓을 들고 그리운 마음을 전하려 하니 평강이 처음 집으로 와 살림을 꾸리겠다고 당차게 말하던 일이 떠올랐다. 단정하게 빗어 내린 머리칼과 곱디고운 얼굴을 하고 내게 시집을 오겠다고 하던 공주.
보고 싶은 평강공주 보시오.
오늘은 유난히 긴 하루였소. 아마도 당신이 그리워 그렇겠지. 이렇게 당신을 생각하니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라 웃음이 나는구려. 당신은 한없이 고운얼굴과 단정한 차림을 하고선 나에게 시집을 와 살림을 차리겠다고 말했었지. 그때 당신에게 단호하게 거절한 것은 당신이 내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오.
사람들은 모두 나를 바보라고 불렀지만 당신만은 늘 나를 최고라 불러주었던 날들이 생각나오. 내가 당신만큼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에 능숙했더라면 당신이 조금은 덜 외로웠을 텐데, 한 마디 서운함 없이 옆에 있어주어 고맙소.
당신과 함께 장에서 말을 고르며 무술과 학문을 배우던 시간들이 떠오르는 밤이오. 말을 타는 것도, 검술을 익히는 것도 더딘 내게 당신은 그저 최고의 장군이라고 나를 치켜세워주던 것이 지금도 생생하오.
당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이 고구려도 지켜내기 힘들었을 것이오.
항상 미안하고 고마운 공주. 오늘은 이상하리만큼 밖이 고요하오.
늘 거침없고 두려움 없이 섰던 전투임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지나가는 바람에도 마음이 일렁이는구려.
아마도 당신이 그리워서이겠지. 이곳 단양에서의 전투가 끝나면 다시 볼 수 있을 것이오.
그 때까지 건강히 지내시오.
온달은 떨리는 붓을 조용히 거두었다. 막상 편지를 쓰니 평강이 더욱 그리운 밤이었다. 오늘은 쉽게 잠자리에 들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긴긴밤이리라.
어김없이 날은 밝고 일찍부터 전투준비에 성 안팎은 분주했다. 병사들도 지칠 대로 지쳐있었고 물과 식량도 점점 바닥을 드러냈다. 온달은 얼른 전투를 끝내고 승전보를 울리며 평강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견고하게 쌓여진 성벽사이로 여느 때와 같은 긴장감이 맴돌았다.
화살과 돌이 쏟아져 내렸고 날이 선 칼은 순식간의 병사들을 위협했다. 밤에 한숨도 못잔 탓일까, 사력을 다해 싸워온 그였다. 그 때 온달을 향해 날아온 화살. 온달은 정신이 희미해졌다. 온달은 힘없이 쓰러졌다. 맹렬한 그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꼭 승리해서 돌아가겠다는 평강과의 약조가 스쳐지나갔다. 그렇게 그는 세상을 떠났다.
급히 온달의 죽음을 알리기 위한 전갈이 보내졌고 평강은 놀란 마음에 눈물로 통곡하며 산성으로 도착하였다. 하지만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그의 맹렬한 기세. 평강은 하염없이 울었다. 편히 보내주기 위해 화살을 제거하면서 온달의 가슴팍에서 어제 그가 써내려간 편지를 발견한다. 평강은 또 한 번 크게 울었다.
이제는 온달을 편히 보내줄 차례다. 그런데 장사를 지내기 위해 관을 움직이려 하자 관이 꿈적도 하지 않았다. 힘이 센 장정들이 들어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평강은 관을 쓰다듬으며 마지막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마음을 전했다.
"장군. 삶과 죽음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이제 편히 가소서." 하며 편지를 가슴이 품었다.
그러자 꿈적도 않던 관이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평강만을 바라보던 바보장군과 온달만을 바라보던 평강공주. 이 둘의 사랑이야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로 남아있다.
“단풍이 다 똑같은 단풍이지, 왜 꼭 산에까지 와야 하는 거야?”
남자 친구가 입대 전에 마지막으로 나와의 추억을 만들고 싶어 선택한 여행지는 소요산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수십 차례 산행에 나섰던 남자 친구인지라 우리나라의 유명한 산이란 산은 거의 다 가 보았다는데, 유독 소요산은 꼭 나와 함께 오르고 싶었다는 것이다. ‘길 따라 계곡에 드니 봉우리마다 노을이 곱다 험준한 산봉우리 둘러섰는데 한 줄기 계곡물이 맑고 시리다’는 김시습의 시까지 읽어주는데, 마지막 여행이 산이라니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하루 종일 투정을 부리고 떼를 쓸 생각이었는데, 소요산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들떠버렸다. 연리지문을 보자마자 기분이 좋아져 기념사진을 찍자고 외쳐 버린 것이다. 남자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이, 소요산에서 수행하던 원효 대사와 그런 원효 대사를 사랑한 아름다운 요석공주의 사랑이 연리지처럼 이루어질 수 있었기를 바라는 뜻이 담긴 문이라는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그럼 그렇지. 그냥 단풍이 예뻐서 왔을 리가 있나. 남자 친구는 토라진 나를 위해 또 이야기를 한 보따리 준비했을 터였다. 이야기를 듣고 내가 금방 기분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 괘씸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해서 마음이 근질거리는 통에 또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해골 물 마신 그 원효 대사? 스님한테도 사귀는 사람이 있었어?”
“당연하지. 원효 대사의 아들이 설총이잖아.”
남자 친구가 들려 준 이야기는 교과서에 실린 원효 대사의 사상 이야기보다 몇 배는 더 재미있는 것이었다. 어느 날, 원효 대사는 길거리에서 큰 소리로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줄 건가. 하늘을 받칠 기둥을 깎으려 하네.’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무열왕은 원효 대사가 큰 인물이 될 아들을 얻으려 하는 모양이라 생각하여 일찍이 과부가 된 자신의 아름다운 딸인 요석 공주를 신붓감으로 내어 주기로 결심했다는데, 원효 대사와 요석 공주도 서로에게 관심이 있었단다.
요석 공주는 원효 대사에게 승복과 모란꽃을 선물하기도 했다는데, 이런 마음을 눈치 챈 무열왕이 관리를 시켜 요석 공주의 거처에서 가까운 다리 위에서 원효 대사를 밀어 물에 빠뜨리게 했다는 것이다. 물에 젖은 옷을 말리기 위해 요석궁으로 들어간 원효 대사는 꼬박 사흘을 요석 공주와 함께 지내게 되었고, 요석 공주는 설총을 잉태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원효 대사는 스님이잖아.”
“그렇지. 그래서 원효 대사는 평생을 파계승으로 살아야 했어.”
사흘 뒤 원효 대사는 소리 없이 궁을 나왔고, 스스로를 소성거사라고 칭하며 속세를 떠돌며 속죄 의식을 행했다고 한다. 그러던 도중 수행에 전념하기 위하여 찾아온 곳이 바로 이 소요산. 예로부터 문인들이 이 산을 찾아 거닐었다고 해서 소요(逍遙)라는 이름이 붙은 곳인데, 원효 대사도 소요산에서라면 속세에서의 미련을 잊고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원효 대사를 잊지 못한 요석 공주도 소요산에 조그마한 별궁을 짓고 설총과 함께 소요산에 살았다. 하지만 다시 불도에 정진하는 원효 대사에게 가까이 갈 수가 없어 원효 대사가 있는 방향을 향하여 원효 대사를 위해 기도를 올리는 것으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원효 대사도 이를 알게 되어 산봉우리 하나에 요석 공주를 생각하며 공주봉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단풍 보러 온 게 아니라 원효 대사랑 요석 공주처럼 되고 싶어서 온 거라 이거야?”
남자 친구가 정곡을 찔린 듯 걸음을 빨리 했다. 나는 웃음을 꾹꾹 참으며 그 뒤를 따랐다.
요석 공원부터 공주봉, 원효 폭포에 이르기까지 소요산에는 원효 대사와 요석 공주를 떠올릴 수 있는 이름이 붙은 곳이 많았다. 노을처럼 예쁘게 물들어 있는 소요산의 단풍을 바라보며, 문득 연리지문에 장식되어 있던 단풍이 떠올랐다. 요석 공주의 고운 사랑을 단풍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하였다.
남자 친구는 다음 달이면 군대에 간다. 남자 친구가 군대에 가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요석 공주는 평생을 기다렸는데, 뭐. 내년에는 혼자 소요산에 올라 보기로 결심하며 남자 친구의 손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