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조한 마음에 소식 없는 문 앞만을 지키고 서있다. 나올 시간이 지났는데 깜깜 무소식이었다. 그때 아기 울음소리가 우렁차게 들렸고 남자는 자리에 멈추어서 소식을 말해줄이를 두손 모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문 안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찢어지는 듯한 울음소리 뒤로 안도의 한숨과 함께 산모는 아이의 성별을 물었다. 아들인가요? 딸인가요? 돌아오는 대답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하. 여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산모들 같으면 손가락 발가락 다 있나요? 혹은 아이는 어떤가요? 라는 말을 물었을 텐데 아이의 성별을 먼저 묻는 걸 보니 한참을 기다렸던 아들인가보다 했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나왔다. 아이의 성별을 말해주기 위함이었다. 방금 나온 아이가 아들이라는 것을 들은 남자는 털썩 주저앉았다. 기뻤다. 딸이었어도 기뻤을 것이었지만 아들이라는 말에 조마조마했던 시간을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남자는 한참 만에 시골에 전화를 할 수 있었다. 감격에 찬 목소리로 전화를 걸고 아이가 아들임을 당당히 말했다.
“그게 정말이가? 고추가 나왔단 말이지? 아이고, 장하다. 장해.”
“어머니도 참. 아무튼 그렇게 아세요.”
“그래, 마. 아가한테도 수고했다고 전해주고. 알긋나?”
남자의 엄마는 수화기 주변으로 모여 앉은 사람에게 아들이라는 단어 대신에 또 고추라는 단어를 쓰며 아들이 태어났음을 알렸다. 그리고 며느리에게 아가라는 말을 단어를 쓴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게 아들을 기다렸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이제 시골집에 금줄에 고추를 매달아 놓을 것이다. 그리고 마을 잔치를 벌이시겠지.
요즘은 많이 사라졌다고 해도 시골에 계신 시부모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실 아들귀한 집안에 줄줄이 딸을 낳았으니 애가 타는 마음을 아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넷째를 가졌다는 말에 시골에서는 아들 낳기 좋다는 한약재들과 각종 음식들을 보내왔다.
그 중에서도 고추로 만든 음식들이 많았다. 여자는 눈앞이 아찔해졌다. 아무리 아들을 바라왔던 이들이지만 너무 노골적이지 않은가 생각했다. 고추를 많이 먹는다고 아들을 잘 낳게 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 인구비율이 제대로 맞춰질 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부담가지지 말라며 보내온 음식들을 꼬박꼬박 챙겨먹으며 여자는 온몸으로 모든 시선과 부담을 감수해야 했다.
의사는 양수와 분비물로 뒤섞인, 마치 핏덩어리 같은 갓난아이를 품에 안아주었다. 뱃속에 있다 나와서인지 따뜻했다.
“아들을 많이 기다리셨나봐요.”
“네. 많이 기다렸어요. 제가 그동안 고추를 얼마나 많이 먹었는데요.”
“아, 네. 참, 아이도 산모도 건강해서 다행입니다.”
의사는 마무리 말을 하고 간호사에게 뒷마무리를 넘긴 뒤 자리를 벗어났다. 의사에게 괜한 소리까지 한 것을 알면서도 여자는 감격의 눈물인지 슬픔의 눈물인지 모를 눈물을 흘렸다.
이 아이가 딸아이였다면 아니, 또 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나왔더라면 어땠을까 생각을 했다. 맵기도 정말 매웠던 고추를 그렇게 씹어 먹으며 눈물로 기다리던 아이였다. 막상 기다리던 아들이라는 소식을 들었는데 왜 이렇게 슬픈 건지 몰랐다.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데 눈가가 매웠다.
괜찮아.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말이었다. 말. 단지 말뿐이었다. 조금 느린 것뿐이라고 괜찮다고.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르다고 느낀 건 아이가 다섯 살 무렵이었다. 아이는 자동차, 인형, 기차 등 많은 장난감들 사이에서도 말 모양 인형을 가장 아꼈다. 럭키라는 이름도 지어주며 잘 때도 밥을 먹을 때도 항상 럭키와 함께했다. 아이가 말에 대한 강한 애착이 있다고 생각했지 그것이 자폐아이의 보편적인 특징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 아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나도 남편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아이에게서 말 인형을 빼앗아 숨긴 적도 있었다. 말 인형이 보이지 않으면 다른 아이들처럼 한 곳에 집착하지 않고 차츰차츰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싶어서였다. 점점 아이의 불안증세가 깊어지고 말 인형을 찾아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는 통에 결국 두 손을 든 것은 나였다.
아이에게 말이 그렇게 좋으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이 아니라 럭키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 동물이 말이잖아라고 타일러봐도 아이는 고집 있는 말투로 말이 아니라 럭키라고 했다. 결국 또 그래, 럭키. 라고 대답을 한 나다.
아이가 말을 좋아하니 남편은 이제 아이의 상태를 받아들이자고 말했다. 그리고는 주말에 아이가 좋아하는 말을 보러 가자고 했다. 아이가 뛸 듯이 좋아할 것을 생각하니 엷은 웃음이 지어졌다. 분명 많은 말들을 보고 다 럭키라고 부르겠지라고 생각했다.
아이는 지금 10살이다. 태어나서 살아있는 말을 처음 보아서일까 아니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럭키를 닮은 것들이 하나도 아니고 여러 마리가 눈앞에 펼쳐져서 신기해서일까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계속 감탄사만 연발하였다. 남편은 다정하게 아이의 손을 잡고 말을 쓰다듬어보기도 하고 말과 교감을 나누는 법을 알려주었다. 아이도 무서워하지 않고 말과 교감을 나누었다.
“아들, 여기는 말 정말 많다. 그치? 말 어때? 다 럭키처럼 보여?”
“아니. 난 이 말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이 아이만 럭키라고 불러줄거야.”
아이는 뜻밖에도 말 한 마리를 콕 집어 말했다. 말이라면 다 좋아할 줄 알았는데 유난히 마음에 든 말이 있는 모양이다.
아이가 어떤 결정이나 선택을 한 것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지나온 순간에는 그저 엄마인 내가 이건 좋지? 이건 별로다 안 그래? 이런 식으로 아이의 선택을 나 스스로 해왔다. 그것이 아이의 결정인양. 아이의 선택이나 생각은 뒷전이었다. 알면서도 아이의 상태를 내세워 그렇게 살아온 것이 미안해졌다. 충분히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아이였는데 말이다.
날이 어두워졌다. 이제 그만 진짜 말인 럭키와 작별인사를 나누어야 할 때였다. 아이도 헤어짐을 아는지 더 있겠다는 떼를 쓰지 않고 말과 인사를 나누었다. 잘 있으라며 또 보러 오겠다고했다. 작은 손바닥위에 각설탕을 올려놓고 말이 먹을 수 있도록 손을 뻗어주었다.
마사에서 나와 아이를 데리고 별을 관측할 수 있는 천문대로 향했다. 아이에게 천천히 우리가 별을 보러 오는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아이는 반짝반짝이라고 대답했다.
그래 반짝반짝.
요즘처럼 선선한 가을에 보이는 별자리는 무엇인지 간단히 설명을 들은 후 무엇이 보이냐고 물어보았다. 아이가 말이 보인다고 했다. 말? 아이의 머릿속에는 온통 말로 가득한 것 같았다.
“아! 페가수스자리를 본 모양이구나?”
페가수스자리가 말 모양을 했다고 해도 저렇게 큰 하늘을 수놓는 별자리로 말을 떠올리긴 힘들 텐데.
“우리아들 대단하네.”
아이에게 참 오랜만에 대단하다고 칭찬을 한 것 같다. 아이는 쑥스러운지 머리를 긁적이며 웃어보였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건물을 높이 올려다보려니 핑하고 현기증이 났다. 퇴근 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거리에는 행인이 많았다. 지수는 선배가 소개해 준 도자공방을 찾는 중이었다. 공방 이름과 간단한 약도가 적힌 메모지를 들여다보다가 비슷비슷하게 생긴 건물을 한번 더 올려다보았다. 아까부터 고약한 냄새를 풍기던 은행나무에 손을 짚고 지끈거리는 머리에 손을 대었다. 여기가 아닌가 싶을 때 지수의 눈에 들어온 자그마한 공방 하나.
지수는 회사에서 맡게 된 ‘우리 고장 바로 알기’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끝내야 했다. 입사 후 처음으로 맡은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지수는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다. 도자기라니 말만 들어도 지루하고 따분했다. 지수는 학창시절 여학생들 사이에서 한창 유행한 십자수니 비즈공예니 하는 것들에 눈길 한번 준 적이 없었다.
또각거리는 신발을 다시 한 번 고쳐 신은 지수는 자그마한 공방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널찍한 실내에는 갖가지 도자기와 사기그릇, 앙증맞은 실내 인테리어 장식품까지 단정하게 놓여있었다. 문에 걸린 종이 딸랑거리자 상냥하고 단정해 보이는 여자가 나왔다.
어서 오라는 여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자기 만드는 법 좀 배우러 왔다며 용건을 말했다. 지수의 급한 성격이 여기에서 나왔다. 여자는 친절히 지수를 안내했다.
지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조심스럽게 흙을 만졌다. 반죽된 흙을 쓰다듬듯이 만지는 지수를 보고 여자는 주물러 보라고 했다. 지수가 공들여 받은 네일아트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쉬워 보였던 물레를 돌리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정신집중을 하지 않으면 금세 틀에서 벗어나기 일쑤였다.
‘하아, 따분해.’
지수의 속마음이라도 들리는 걸까 여자는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 대꾸했다.
“많이 따분하죠? 처음 하시는 분들은 다들 그러시더라고요. 영화나 텔레비전으로는 쉬워 보이죠. 그런데 정신 집중 안 하면 틀 하나 잡는 것도 어려운 게 바로 도자기에요.”
지수는 정신을 집중했다. 손의 감촉을 느끼고 흙이 전해주는 소리와 느낌에 신경을 기울였다. 질척거리지만 부드러운 그 촉감을 손끝 감각으로만 느끼려 했다.
‘아, 살아있는 것 같아.’
지수가 빙긋 웃자 여자도 따라 웃었다.
오늘은 첫날이니 흙의 감촉을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자가 말했다. 특별할 것 없다고 그저 프로젝트만 잘하면 그뿐이라고 여겼던 지수에겐 적잖이 놀라운 일이었다.
지수는 공방에 들어올 때 보았던 사기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여전히 투박했다.
다음날도 그 다음 날도 지수는 틈틈이 공방에 들렀다. 지수는 가만히 도자에 손을 대보았다. 가마에서 갓 나온 도자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따뜻함이 남아있었다. 흙의 기운일까 만든 이의 기운일까, 도자기는 여전히 투박했지만 따뜻했다.
조용하고 단순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진중함과 무게감이 좋았다. 옛것이지만 촌스럽거나 싱겁지 않음을. 단순하지만 그 속에 묻어있는 화려함이 좋았다.
“지수씨, 뭔가 바뀐 것 같은데. 머리했어?”
회사선배가 지수 옆을 스치며 툭 던지듯 말했다.
“아니요? 딱히 바꾼 건 없는데…….”
지수는 말끝을 흐렸으나 달라진 것이 무언지 내심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제가 공방에서의 마지막 날이었고 공방 여자와 대화를 나눈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이다.
“지수씨 제법 실력이 늘었어요. 성격도 많이 차분해진 것 같고.”
“그래요? 호호. 제가 원래 성격 급하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웠는데, 여기 다니면서 많이 차분해 진 것 같긴 해요. 흙 만지는 것도 그렇고 물레 돌리는 것도 그렇고. 물레를 돌릴 때면 잡생각이 싹 사라지니까요.”
“선물이에요. 그때 한참 바라보고 있길래.”
여자는 지수에게 작고 아담한 사기그릇 세트였다. 사기그릇을 바라보느라 지수는 고맙다는 말도 잊었다. 손을 대어보았다. 여전히 투박하지만 따뜻했다.
오늘로 단종께서 유배령을 받은 지 꼬박 닷새만이다. 한참을 걷고 또 걸어 겨우 주천에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단종께서는 심신이 매우 지친상태로 보여 걱정이 됐다. 겨우 12살인 단종. 역사는 어린나이에 숙부에게 왕의 자리를 내어주고 유배령을 받은 비운의 왕으로 기억할 것이다.
단종께서는 많이 지치셨는지 입이 바싹 말라있었다. 마을을 둘러보기도 전에 물 한 모금을 청할 곳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마을에 있는 조그마한 우물가를 발견하고 단종은 물 한 모금을 겨우 마시며 지친 몸을 풀어야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유배 행렬은 다시 이어졌다. 굽이굽이 산길을 돌고 험준한 산을 올라야 했다. 행렬을 뒤따르는 우리는 물론 단종께서도 매우 지쳐있는 상태였으나 단종께서는 고갯마루에 다다르자 자신을 위해 죽어간 사육신을 떠올리며 궁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세상에 어떤 왕이 자신을 위해 죽어간 이들을 생각하며 흙바닥에 큰절을 올릴 수 있을까. 단종은 그저 고마운 마음을 전하려는 것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며 쓴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우리는 마침내 낡은 나룻배를 타고 외딴 섬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청령포라고 불리는 고즈넉한 곳이었다. 우리가 이곳에 도착하였을 때 우리에게는 수라를 올릴 궁녀도 없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울창한 소나무 숲뿐. 단종께서는 소나무로 우거진 섬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는 자신보다 정순왕후의 걱정을 먼저 하였다.
우리는 급하게 밭에서 옥수수와 메밀로 수라상을 올렸고 우리가 청령포에 도착한지 5일이 지난 후에야 궁녀4명이 도착하였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더 지나도 단종께서는 제대로 먹지도 잠들지도 못하였다. 한양에 남겨둔 정순왕후 때문이리라. 단종께서는 종종 뒷동산에 올라 정순왕후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며 탑을 세우곤 하였다.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지 못한 설움과 미안함으로 단종은 자주 눈물을 보였다.
그런데 이곳의 생활도 그렇게 길지는 못하였다. 홍수가 나 거처를 옮겨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풍헌으로 유배지를 옮기자마자 한양으로부터 사약을 받으라는 명이 들려왔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한없이 많은 슬픔을 간직한 왕, 나의 왕이 죽음을 맞았다.
차마 슬픔으로 가득한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단종의 시신은 수습되지 못하고 동강에 버려졌다. 단종의 시신을 거두고자 하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엄포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왕을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신하로서의 예도 다하지 못하다니.
쉽사리 누구 하나 나서는 이 없던 그때 영월의 호장이었던 엄흥도가 소식을 전해왔다. 단종의 시신을 자신이 거두겠다는 것이다. 그의 단호한 전갈에 마음이 저려왔다. 진작 마음의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기 때문이리라.
급히 동강에 버려졌던 왕의 시신을 거두었다. 그리고 한동안은 쉽사리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엄흥도도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단종의 시신을 거둔 뒤 며칠이 지나지 않아 전갈이 도착했다. 엄흥도가 생을 마감하였다는 내용이었다. 또 한 번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엄흥도는 그는 무심하게 솟아오르는 소나무가 되었으리라. 그리고 여전히 나의 왕 그리고 우리의 왕을 영원히 지키리라.
탁. 식탁에 그릇이 부딪치는 소리가 무심하고 매정하다. ‘크음’ 하고 남편이 마른기침을 내뱉었다. 기침에는 증발하다 남은 알코올의 잔해가 남아있었고 이내 공기 중에 산산이 부서졌다.
후루룩후루룩 소리만 공중에 맴돌았다.
오늘도 아침엔 청양고추 팍팍 들어간 콩나물국이다. 남편에게 술 좀 그만 마시고 몸 생각 좀 하라고 그렇게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해도 마이동풍이다. 이런 잔소리가 오고 가고 무거운 침묵의 시간이 반복될 때면 어느 집이나 어느 가정이나 다 비슷한가 보다 생각이 든다. 예전에 우리 엄마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킁킁, 이건 아빠의 냄새다. 아빠가 또 약주를 한 잔 하신 모양이다. 엄마가 한결같이 잔소리를 해도 변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아빠는 참 올곧은 사람이다. 엄마는 아빠에게 잔소리를 빙자하여 모진 소리도 하지만 그건 다 아빠를 위한 거란다.
술이 좋으면 술이랑 함께 살라고 하던가, 술독에 빠진 사람도 당신만은 못할 거야라는 등의 말을 들어도 아빠는 그저 사람 좋은 웃음이다.
아빠는 내게 호랑이같이 무서운 사람이다. 요즘은 딸 바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딸이라면 그저 풀려버린 자물쇠처럼 무장해제인데 우리 아빠는 철저했다. 사랑한다는 말조차 언제 들었나 가물가물하다. 심지어 다른 애들은 늦은 시간이 되도록 딸이 귀가하지 않으면 끊임없이 전화를 한다는데, 우리 아빠가 내게 전화를 할 때에는 아빠 출근 시간에 차키를 두고 왔을 때 가지고 내려오라는 것이 유일했다.
그런 아빠가 무장해제가 되고 딸 바보가 되는 날. 바로 술을 한잔 하시고 들어오실 때이다.
“연주 자니? 아빠 왔어. 아빠가 왔는데 왜 나와 보지도 않아? 이리 와봐.”
“아휴, 술 냄새. 아빠 또 술이야?”
“아이고, 우리 연주 아직 애기네 애기야. 아빠 수염 까끌까끌 하지?”
“아, 따가워. 그리고 이것 좀 놔. 숨 막힌단 말이야.”
사실은 숨이 막혔던 것이 아니라 아빠의 품이 썩 어색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아빠는 지금 이런 모습을 다음날 아침 기억하실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항상 아빠가 술을 드시고 온 다음날이면 북어와 콩나물을 넣은 해장국을 끓여주신다. 특히 청양고추를 송송 썰고 고춧가루까지 팍팍 쳐 아주 매콤하고 칼칼하게 말이다. 내가 맵다고 고추를 쏙쏙 건져놓으면 아빠는 아빠그릇에 넣으라고 손짓을 한다.
엄마는 밥을 먹는 내내 아무 말도 없다. 아빠도 마른기침만 뱉을 뿐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아빠가 술을 드시고 오시는 날마다 벌어지는 풍경이다. 숟가락으로 밥 한 숟갈 뜨고 엄마 눈치 한번. 국 한 숟갈 뜨고 아빠 눈치 한 번씩 번갈아가며 밥을 먹으면 엄마가 무거운 침묵을 깨고 괜히 나에게 호통을 치신다. 밥 먹는데 집중하라고. 치, 밥 먹는데 무슨 집중이람.
내가 더 어렸을 때는 엄마가 아빠와 이혼을 하는 줄 알았다. 왜냐하면 우리 반 지영이네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했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지영이네 아빠가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들어오면 지영이네 엄마는 우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빠가 술을 마시고 온 날이면 안방 문을 배꼼 들여다보며 엄마가 우시는지 확인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아빠를 미워한 것이 아니었다. 매콤하고 칼칼한 청양고추를 듬뿍 넣어 아침상을 차려드린 걸 보면 안다.
내가 지금 그러하고 있는 것과 같이.
“이왕에 놀러가는 거 좀 멀리 갈 것이지, 이게 뭐야?”
열 살짜리 동생은 신이 났지만, 올해 중학생이 된 지훈이는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방학을 맞아 처음으로 나선 가족 나들이인 만큼 해수욕장 같은 떠들썩한 곳으로 갈 것을 예상했는데, 아버지가 서울에서 한 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여주의 신륵사로 템플 스테이를 하러 가자고 하셨기 때문이다. 어제 저녁부터 결사반대를 외쳤지만, 어머니와 동생이 아버지 편을 드는 바람에 지훈이가 다수결에서 밀리고 말았다.
“우와, 형! 저것 좀 봐!”
시무룩한 얼굴로 휴대전화만 내려다보고 있던 지훈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찻길 옆으로 돌연 바다가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마음에 드냐? 네가 계속 토라져 있어서 잠깐 들렀다. 꿩 대신 닭이라고 저수지라도 좀 봐라.”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다가 아니라 바다처럼 커다란 저수지였다. 지훈이는 아버지가 고갯짓으로 가리키신 곳을 보고 저수지 구경을 하다 말고는 환호성을 질렀다.
“저게 한 이백 미터 정도 되는 미끄럼틀이야. 아마 우리나라에서 제일 길다고 하지? 한 번 타 보고 갈래?”
“네!”
“다 큰 척 하더니 아직 애는 애구나.”
어머니가 웃음을 터뜨리셨다. 자세히 보니 저수지만 휑하니 있는 게 아니라, 광장도 있고 체육 시설도 꾸며져 있었다. 지훈이도 동생도 미끄럼틀에 잔뜩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에, 지훈이네 가족은 잠시 저수지변에 차를 대고 쉬다 가기로 했다. 지훈이는 동생과 함께 몇 번이나 미끄럼틀을 탔다.
“아, 이렇게 재밌는 것만 많으면 좋을 텐데.”
다시 길을 떠나게 되자 지훈이가 아쉬운 목소리로 투덜댔다.
“녀석, 가보기도 전에 그러면 안 되지. 거기 가면 염주도 만들 수 있고, 연꽃도 만들 수 있어. 어디 보자. 이 근처에 세종대왕릉도 있고 주록리도 있지. 오늘 하루 절에서 자고, 내일은 요 근처를 좀 돌아다녀볼까?”
“주록리? 그건 그냥 마을 아니야?”
“그냥 마을이라니. 사슴 마을이야.”
사슴 농장이 있는 마을인가 했더니 그건 또 아니었다. 주록리는 달릴 주 자에 사슴 록 자를 쓰는데, 사슴이 달릴 정도로 깨끗하고 맑은 곳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마을이 생기며 사슴은 전설 속으로 사라져버렸지만, 주록리는 여전히 가재가 잡힌다고 한다.
“가재뿐이냐? 반딧불도 볼 수 있다, 반딧불도. 게다가 여기 이 금사저수지는 팔뚝만한 잉어가 잡혀서 낚시꾼들이 아주 좋아하는 곳이야. 박물관도 있고 이 근처가 볼거리가 아주 많아서, 나라에서 아예 나들이길 코스를 짜 놨을 정도라니까?”
결혼하시기 전까지 여주에 사셨다는 아버지는 명성황후 생가며 금싸라기 참외, 목아 박물관 등등 여주의 자랑거리들을 잔뜩 늘어놓으셨지만, 지훈이의 머릿속에는 계속 사슴이 맴돌았다. 사슴은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마을 이름이 될 정도로 사슴이 많이 살던 곳이 근처에 있다니!
“아빠, 그 주록리에 살았다는 사슴 말이야. 아직도 있을까?”
아버지는 고개를 갸웃거리셨다. 사슴이 전설 속으로 사라진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 사람들을 피해 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간 거라 아직 사슴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확실한 건 나도 잘 모르지만 말이야.”
신륵사에 도착해서도 지훈이는 뒷산을 계속 힐끔거렸다. 남한강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풍경도 멋졌지만, 산 너머로 사슴 한 마리가 갑자기 고개를 내밀 것만 같았다. 아까 아버지가 하신 말이 떠올랐다.
“혹시 모르지, 신륵사 뒷산으로 가서 살고 있을지.”
작은 원을 그려보았다. 손끝을 따라서 동그란 원이 그려졌다. 그리고는 나무를 향해 말했다.
“나는 일곱 살이야. 너는? 너는 나이가 많으니?”
그리고는 밟아도 소리 나지 않고 발이 푹푹 빠지는 아주 고운 모래에 다시 동그마니 원을 그렸다. 손끝을 따라 그려지는 원은 모래에 나이테가 그려지는 듯 동그랗게 또 동그랗게 그려져 나갔다. 여러 개의 원이 모이니 톱니바퀴 같은 느낌도 들었다. 어린근원의 손끝에 흐르는 동심원은 점점 더 퍼져나갔다.
근원은 등산화 끈을 조금 당겼다. 오늘은 등산 동호회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A, B팀으로 나뉘어 각자 배정된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근원은 A팀에 배정되었고 아침으로는 김밥과 음료수, 물이 주어졌다. 아주머니들은 삼삼오오 남편과 자식들 이야기로 버스를 가득 메웠고 근원은 홀로 창가쪽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는데 오늘의 사회자로 나선 남자가 마이크를 잡으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근원은 목적지까지 조용히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대다수의 입장에 반기를 들 용기가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신경을 다른 데로 쏟기 위해 근원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미리 챙겨온 시집을 꺼내들었다. 친구 따라 얼떨결에 한두 번쯤 나가본 시사랑 동호회에서 추천받아 사게 된 시집이었다. 시를 잘 모르는 그였기에 어쩌면 시를 더욱 잘 읽고 느낄 수 있었다.
첫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노송’이라는 제목의 시가 등장했다. 8줄 내외로 간략하게 쓰인 시에는 늙은 소나무에 대한 작가의 영감이 손끝을 타고 강렬하게 전해지는 듯했다. 읽기 어려운 점이 없었음으로 근원은 비교적 잘 쓴 시라고 생각했다. 평소라면 한번 읽고 밀려오는 졸음에 정신을 내어주고 목적지까지 다다랐을 그였지만 근원은 자신이 시를 쓰는 작가라면 늙은 소나무를 가지고 어떤 시를 써낼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자꾸만 읽었던 시가 머릿속에 맴돌아 근원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근원은 머리를 흔들었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는 몸짓이었다.
‘늙은 소나무라. 소나무는 원래 좀 늙지 않았나? 어디를 돌아다녀보아도 1,2년 된 소나무는 거의 못 본 것 같은데. 한 400년쯤은 되어야 하지 않나?’
근원은 속으로 속삭였다. 속으로 말하는 것이라 누가 듣는 것도 아닌데 근원은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도착 10분 전입니다. 오늘 저희가 가기로 한 곳은 산이 아니라 트레킹 코스이기 때문에 크게 힘든 점은 없으리라 봅니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므로 단단히 준비하시고 내리셔서 일사분란하게 모여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여기는 소나무가 정말 예술입니다. 오백년 된 소나무가 있다고 하니까 그곳에서 사진 찍으시면 되겠습니다. 자. 이제 차가 멈춰서면 내리세요.”
사회를 맡았던 남자는 도착 10분전을 알리며 깔끔하게 정리멘트를 보냈다. 근원도 잠시 생각을 접고 내릴 준비를 하였다. 오늘은 모처럼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산 따라 물 따라 걷는 트레킹 코스였다. 사회자 남자의 말에 의하면 오백년 된 소나무가 있다고 했다. 남자는 차안에서 읽은 시를 떠올렸다.
날이 맑아서인지 사람들이 꽤 많았다. 우리 동호회 사람을 제외하고도 많은 인파가 색색 깔의 등산복을 입고 소나무 숲길을 걷기위해 몸을 풀었다. 간단히 준비운동을 한 뒤 각각 흩어져 걷기 시작했다. 송림이 우거진 숲에 다다르자 길게 뻗은 소나무들이 울창하게 그 자태를 뽐내었다.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의 탄성이 들려왔고 근원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어 소나무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오백년 된 늙은 소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노송이라’
근원은 머릿속에 시를 그려나갔다.
늙은 소나무
너는 말없이 늙어있구나
너의 늙음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너의 몸에 동그라미를 그려나갔구나
지나간 세월만큼 너는 늙어있구나
굵은 기둥은 단단하고
네 몸뚱이에서 풍겨오는 짙은 냄새가
너의 늙음을 대신하는 구나
근원은 다시 한 번 흙바닥에 동그마니 원을 그려보았다. 어린 근원이 모래바닥에 작은 동심원을 그려 넣듯이 늙은 소나무 앞에서 동심원을 그려나갔다.
언제까지 계속 알바만 하고 다닐 거니? 친구들은 취업하지 않았어? 학교는 그러게 끝까지 다니라니까 아무튼 너만 보면 한숨만 나온다. 한숨만.
아침 일찍 어디라도 나가지 않으면 엄마의 잔소리로 하루를 맞이해야 한다. 사실 엄마가 이런 잔소리를 하는 것도 아주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다. 학교는 중퇴하고 친구들은 이제 직장에서 자리 잡으며 안정적인 삶을 꾸려나가는데 나는 느지막이 일어나서 단기 알바자리 있나 어슬렁어슬렁 거릴 뿐이었다.
내 삶을 돌아보면 나는 어쩌면 녹슨 못처럼 쓸모없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쩔때보면 숨만 쉬고 있는 집안의 가구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그 때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야 뭐하냐? 집에서 뒹굴고 있을 것 같아서 전화했다. 좋은 단기 알바자리 있는데 할래?”
“뭐하는 건데?”
“칠석에 있을 전통놀이 행사라는데 그냥 가서 사극에서 나오는 옷 입고 시키는 대로 하면 돼. 어려운 건 아니라니까 해봐. 시급도 괜찮다고 들었어. 할거지? 한다고 한다!”
“야, 야 잠깐만.”
끊겼다. 칠석에 있을 전통놀이 행사? 그런걸 아직도 한단 말이야? 뭐 노인네들 잔치 하나보다 생각했다. 이 녀석은 언제까지 어디로 가면 되는지는 알려줘야지 자기 할 말만 하고 끊었다.
행사 당일이 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모였다. 행사 관계자들 틈에서 갈팡질팡 하고 있는 나를 불러 세운 사람이 있었다.
“영기씨 맞나요?”
세련된 외모에 서구적인 체형을 가진 여자였다.
“네. 오늘 단기알바로 신청한 사람인데요.”
“네, 알고 있어요. 이쪽으로 와서 이 옷으로 갈아입고 고싸움이 시작하면 신나게 줄만 당겨주면 되요. 어렵지 않죠? 그리고 고싸움이 끝나면 나랑 같이 사람들 통제하면 되고요. 뭐 일종의 경호와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쉽죠.”
“아. 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여자가 빙그레 웃었다. 무슨 면접 본 후 마지막으로 남기는 말도 아닌데 왜 그런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저 여자와 함께 한다는 말 때문이리라.
행사는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머슴 옷과 같은 흰색 위아래 한복을 입고 있는 힘껏 줄을 당겼다. 여자는 남사당패들 사이에 있었다. 줄을 당기고 있는 그 순간에도 시선은 여자에게로 향했다. 있는 힘껏 줄을 당기며 아까 여자가 한말을 곱씹어 봤다.
‘나랑 같이 사람들 통제하면 되고요.’
나랑 같이 라고 했지? 분명. 그랬지?
줄 당기는 일이 끝나고 달집 태우는 순서가 오자 사람들이 불 가까이로 우르르 몰려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람들을 통제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검은 양복으로 갈아입은 뒤 사람들이 불 가까이로 가지 못하게 막는 것이었다. 바로 옆에 여자도 사람들을 막고 서 있었다.
불길 옆에 있어서 일까 남자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괜히 더 열심히 사람들을 통제했다. 마치 정말 경호원이 된 것처럼.
달집태우기도 끝나고 준비된 모든 행사가 끝이 났다. 옷을 반납하고 돌아서려는데 여자가 나를 불러 세웠다.
“오늘 멋지던데요? 수고 많았어요. 단기 알바라고 하면 다들 그냥 자리만 채우다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거든요. 그런데 영기씨는 좀 다르더라고요.”
나보고 오늘 멋지다고 했다. 잔뜩 녹이 슬어 쓸모없어 하는 내게 누군가 처음으로 멋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