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마일로. 나 동호야.
벌써 네가 우주로 간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어. 벌써 보고 싶다. 너와 처음 만난 날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거야. 쪼글쪼글한 얼굴에 귀여운 외모를 가진 너는 나보다 키가 훨씬 작아서 난 네가 개미인 줄 알았다니까.
고인돌 앞에서 우연히 널 처음 만났을 때 네가 하도 작아서 내가 널 밟을 뻔한 것도 기억이 생생해. 그땐 정말 아찔했는데 말이야. 그때 넌 머나먼 별에서 왔다고 하며 이곳이 어딘지 물었었지. 특히 넌 고인돌을 보고 이 큰 돌이 무엇이냐고 신기해했었지.
널 우리 집으로 몰래 들여보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것이 생각나. 넌 내가 사는 지구 그리고 우리 마을에 대해 궁금해 했고 난 네가 살고 있는 우주에 대해 궁금해 했었지. 그래서 우주에서 온 너를 위해 나로우주센터과학관에 널 데려갔었지. 그때 넌 정말 신기해하면서도 집에 가고 싶어 했던 것이 생각나. 그리고 난 과학자를 꿈꾸고 있기 때문에 널 만난 것을 참 행운이라고 생각했어. 너에게 직접 우주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우주과학센터에서 보는 것들에 대해 너와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어.
그리고 넌 우주로 오는 지구인들을 봤다는 이야기도 했었지. 그때 넌 정말 신기해했는데. 지구인들은 우주에 오면 신기한 옷을 입고 생활한다면서 말이야.
우리 고흥은 특히 과학의 도시야. 너도 알다시피 우리 고흥에서는 100kg급의 인공위성으로 지구 저궤도에 진입시킬 수 있는 한국 최초 우주발사체 나로호 발사 준비에 한창이었지. 사실 1차와 2차를 발사했었지만 아쉽게도 실패했었어.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3차 준비에 매진하던 시기였어. 그때 널 만난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고.
넌 왜 고흥에서 나로호를 발사하는 것이냐며 궁금해했었지? 그건 발사장 주변의 안전과 발사각도, 발사장의 여러 시설의 설치 등을 생각해서 발사해야 하기 때문이야. 특히 우리 고흥은 발사운용 각도가 15도로 넓고 발사체를 발사했을 때 발사체의 추락과 같은 국제적인 문제도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들었어. 나 꽤 똑똑하지? 네가 다시 우주로 돌아가고 더욱 우주와 과학에 대해 궁금해졌어.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
아참! 나 너와 약속했던 비밀 아직도 지키고 있어. 바로 3차로 발사될 나로호에 널 몰래 태운 말이야. 지금 생각해도 심장이 두근거린다니까. 나로우주과학관에서 나온 넌 네가 살던 별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보였었잖아. 그때 나도 무척이나 가슴이 아팠었어. 그래서 생각했지. 네가 우리 마을로 떨어진 날이 1월 28일이었잖아. 그런데 1월 30일에 나로호 3차 발사가 예정되어있었어. 그래서 널 몰래 나로호에 태웠었지.
그래서 나로호가 발사되는 것이 나에게는 더욱 뜻깊은 일이 되었어. 네가 나로호에 탄 것은 아마 우리나라 사람 아무도 모를 거야. 그리고 난 네가 나로호에 탔기 때문에 3차 발사에 성공하길 더욱더 간절하게 바랐어.
나로호 발사를 몇 분 남겨놓지 않고 너와 작별인사를 했을 때가 생각나. 널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야. 그래도 널 너의 별나라로 보내줄 수 있어서 기뻤어. 그리고 나도 더 열심히 공부해서 2021년에 다시 한 번 발사될 한국형 발사체에 탑승해 널 꼭 다시 만나고 싶어. 너와 함께 보냈던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될 거야.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으면 좋겠어. 비록 너의 소식을 들을 수는 없지만 네가 잘 도착해서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야. 그럼 다음에 또 만날 때까지 안녕. 동호가.
다섯 살 때 무렵이다. 나는 동네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다. 무서움에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차마 ‘엄마’를 목 놓아 부르지도 못했다. 그저 나중에서야 엄마를 보고 난 뒤 안도감에 참았던 설움과 공포가 한꺼번에 쏟아져 내릴 뿐이었다. 엄마는 내 엉덩이를 팡팡 때리면서 엄마도 놀람과 안도감을 내려 보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아직 사그라지지 않는 두려움 때문에 눈물을 찔끔찔끔 흘렸다. 그럴 때면 엄마는 집으로 돌아와 싱싱한 딸기를 생크림에 듬뿍 찍어 주셨다. 그럼 언제 그랬냐는 듯 씩씩하게 눈물을 훔치고 딸기 한 접시를 뚝딱하고 비웠다.
어려서의 기억이 자신도 모르게 머릿속에 담겨있어서 일까, 나는 여전히 마음에 두려움이 가득 찰 때면 딸기를 먹었다. 수능시험을 칠 때. 처음 남자친구와 첫 키스를 하던 날.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면접을 볼 때. 나는 마음속으로 딸기를 되뇌었다. 그럴 때면 자연스레 입안에 침이 고였다.
서울에서 자취를 하던 나는 주말이 되어서야 집에 내려갔다. 자취 생활이 어느덧 몸에 익숙해지자 주말에만 가던 것도 줄어들어 한 달에 한번 혹은 두 달에 한번 꼴로 집에 내려갔다. 엄마가 항상 전화로 안부를 물으며 집에 내려올 것을 당부했지만 알겠다고 한 뒤 당일 일이 생겨서 못 간다는 식으로 한 달 그리도 두 달을 보냈다. 내가 집으로 곧장 달려간 것은 아빠의 전화를 받은 후였다.
‘네 엄마 지금 쓰러졌어. 여기 병원이야. 얼른 집으로 내려와.’ 내가 아무리 집에 소홀하고 엄마에게 소홀했다고 해서 이런 식으로 복수를 하냐며 꿈속을 헤매고 있는 엄마의 몸을 마구 흔들었다. 간호사는 환자는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며 나와 엄마를 분리시켰고 나는 마구잡이로 엄마를 흔들어댔다. 결국 면회시간도 다 못 채우고 병실 밖으로 쫓겨났다. 담당 의사는 엄마가 지금 혼수상태라고 했다. 언제 정신이 돌아올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혼수상태라고 하면 한 달 혹은 일 년 그것도 아니면 기약할 수 없는 언젠가를 바라면서 잠들어있는 상태가 아닌가. 어떻게 이런 일이.
병원 복도 끝에 그만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기 때문이다. 머리를 큰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엄마가 왜? 아니. 나에게 왜 이런 일이.
간호사에게 사정사정하여 잠깐 동안 얼굴만 보고 나오겠다고 빌었다. 간호사는 안 된다고 말했으나 그녀도 사람인지라 아주 잠깐동안만이라는 전제하에 허락을 해주었다.
“엄마. 내 말 들리지? 엄마 지금 자고 있는 거니까 내 말 다 알아 듣고 있는 거지? 엄마 그 동안 많이 힘들었어? 왜 이렇게 갑자기 쉬고 싶어진 거야? 응? 엄마, 한숨 푹 자고 나면 이제 지겨워서라도 일어날 거지? 일어나서 나랑 같이 쇼핑도 하고 요리도 하고……. 그래! 엄마랑 내가 좋아하는 딸기 생크림에 듬뿍 찍어 먹어야지. 응?”
엄마, 제발 눈 좀 떠봐, 내말 안 들려?
엄마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된지도 벌써 한 해가 흘렀다. 주위에서는 이제 그만 엄마를 보내주는 것이 어떠냐는 말이 귀에 잠잠히 들려왔지만 나는 믿는다. 그저 엄마는 꿈속에서 너무 좋은 일들이 많아서 아직 깨고 싶지 않은 걸 거라고. 내게 줄 딸기를 모조리 따오느라 늦는 걸 거라고.
병실에 들어서기 전 마음속으로 기도를 한다. 엄마 손이 아직 따뜻하잖아. 그걸로 된 거 아니야? 아주 조용히 엄마에게 집중하면 엄마가 가끔 코를 고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러니 나는 아직 엄마를 보낼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열매가 익을 무렵이 아니라는 것에 희망을 건다. 엄마는 딸기가 빨갛게 열매를 맺을 때면 분명 눈을 뜨실 것이다. 그리고는 울고 있는 나를 달래려 따뜻한 생크림을 듬뿍 찍은 딸기를 건네며 ‘많이 무서웠지? 이제 괜찮아.’라며 그동안의 설움을 다독여 줄 것이다.
나는 할아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짜증이 많고 늘 우울해하셨으며, 전쟁 때 팔 한 쪽을 잃어 보기 흉한 외모를 하고 있었다. 입만 여시면 세상을, 정부를, 그리고 자신의 처지를 저주하고 비관하는 말만을 하셨기에 할아버지 댁에 방문하는 것은 낙천주의자인 내게는 꽤나 고역이었다. 자식들이 모두 성공한데다가 할아버지를 극진히 모셔서, 생활비로 쓰고도 저축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이 매달 들어오시는데도 굳이 불편한 몸으로 밭을 일구시는 억척스러운 면도 싫었다. 술을 드신 날이면 좋은 옷을 입은 자식들이며 손주들에게 손가락질을 하시며 우셨고, 서울에 사시는 것을 한사코 마다하시고 먼 김포땅 끝자락에 집을 지으셨다. 어렸던 나는, 그 괴팍한 성미의 할아버지에게 어른들이 한 번도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린 적이 없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할아버지가 지난 해 겨울에 갑자기 돌아가셨다. 술에 잔뜩 취하셔서 집으로 돌아오시다 넘어지셨는데, 그만 일어나지 못하시고 동사하셨다고 했다. 할아버지의 유골을 강에 뿌리고 돌아오던 날,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기일마다 애기봉에 오를 것을 제안하셨다.
“왜 하필 산에 올라요?”
아버지는 내가 아주 어려서부터 할아버지를 무서워하고 피하기만 하는 통에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줄 기회가 없었다고 하시며 긴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그리고 나는 그 때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할아버지가 실향민이며, 할머니를 북쪽에 두고 오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쟁 중에 한쪽 팔을 잃은 할아버지는 아내와 아이들을 부탁했던 친구 집을 찾았다. 아내가 달려 나와 자신을 맞아 줄 줄로만 알았는데, 그곳에는 아이들뿐이었다. 할머니는 아이들을 감싸다 크게 다쳐 도저히 남으로 넘어올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냥 자신을 버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치라고 하셨고, 워낙에 급박한 상황에 친구네 가족은 할머니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아이들만을 겨우 챙겨 남으로 넘어왔다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불편하신 몸으로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형제를 열심히 키우셨지만, 한편으로는 북에 두고 온 할머니 생각에 매일같이 괴로워하셨다고 한다. 돌아가셨으면 시신 수습도 제대로 못 한 것이, 살아 계시면 외롭게 혼자 살아 계실 것이 걱정이셨다. 자식들이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돈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북한에 계실 할머니 걱정에 마음이 편치 않아 하셨다고 한다.
애기봉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곳에 있었다. 애기봉 전망대에 오르면 강 너머의 북한에 있는 마을까지도 맨눈으로 건너다 볼 수 있었는데, 텔레비전에서나 접하던 북한의 모습이 바로 눈앞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애기봉이라는 이름은 병자호란 때 혼자 강을 넘어 피신한 기생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애기라는 이름을 가진 이 기생은 평양 감사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자신만 강을 건너고 평양 감사는 그대로 청나라에 잡혀가자 감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다가 이 봉우리에서 죽었다고 한다. 후에 이것이 이산가족의 모습 같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 이름 없는 봉우리에 애기봉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나는 어쩌면 할아버지도 할머니가 어느 날 갑자기 꿈처럼 강을 건너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장난감을 들고 있던 내게 손가락질을 하며 우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때 그 손을 잡아드릴 수 있었다면 할아버지는 울음을 그치셨을까. 할아버지의 고개. 나는 애기봉에 그런 이름을 붙여 보기로 했다.
붉은 입술, 검은 머리카락, 깊은 눈매를 가진 여인. 초연한 눈빛이 자못 경건하기까지 하다.
사각사각 꽃잎가루를 곱게 빻는다. 사각사각 더 곱게 갈아준다. 꽃잎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유난히 희고 맑은 피부에 분홍빛으로 분칠을 하며 단장을 한다. 붉은 입술은 꼭 다물어 더욱 붉어 보인다. 참빗을 이용하여 머리까지 곱게 빗으니 단장이 끝났다. 거울을 들여다본다. 굳게 다문 입술을 조금 더 꼭 다물어본다.
5세가 되던 해 아비는 죽었다. 아비가 죽고 난 뒤 고약한 집의 민며느리로 팔려갈 뻔하다 겨우 빠져나와 경상도 우병사가 된 최경희의 첩으로 살기까지. 수많은 전투 속에서 자결에 이른 최경희의 빈자리까지 논개는 수많은 눈물을 흘렸었다. 나라는 혼란스러웠고 피비린내는 상황 속에서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도 어려웠다.
닷새 전 집안일을 돌보는 곱단이를 불러 세웠다. 전에 곱단이가 가지고 싶다고 하던 비단 천을 내밀며 네 가락지와 맞바꾸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곱단이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바꾸어 주었다.
“얼마 전 저잣거리에서도 가락지 몇 개 사지 않으셨어요? 요새 왜 이렇게 가락지에 욕심을 내신다요?”
“가락지가 예쁘지 않니? 예쁘기도 하고 단단하기도 하고.”
“단단하다고요?”
“왜 혼례를 치를 때 가락지를 주고받는 줄 아니? 그게 바로 다 부부간에 단단한 믿음과 신뢰로 살아가자는 약속 때문에 그렇단다. 그래서 이 가락지는 단단한 거지. 끊어지지 않고.”
“그런 거래요? 그래도 전 요 부드럽고 고운 비단이 더 좋구먼요.”
가락지를 받아들던 논개의 얼굴빛은 한층 어두워졌다. 열 개의 가락지가 다 채워졌다. 바람이 더욱 쌀쌀하게 불었다.
눈물은 보이지 않기로 마음먹었기에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멀리서 풍악을 울리는 소리가 들렸고 역겨운 기름 냄새와 피비린내 비슷한 냄새가 섞여 속이 울렁거렸다. 방바닥을 짚고 일어서는데 다리가 후들거렸으나 내색하지 말아야 했다. 웃는 얼굴을 하고서 손에 가락지를 끼웠다. 열 손가락 마디마디에 치장을 마쳤다. 누가 봐도 어여쁜 기생처럼 보였다.
밖은 시끄러웠다. 촉석루에서는 이미 흥이 한 판 벌어졌고 기름진 고기를 입가에 묻히고 먹는 왜장들이 보였다. 큰소리로 웃으며 술을 부어 마시는 꼴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조용히 왜장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고고하게 한쪽 다리를 올리고 분위기를 살폈다. 누구하나 술에 취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으나 쉬이 행동을 취했다가는 일을 그르치기 쉬웠기 때문에 분위기를 잘 봐야했다.
결심에 선 논개는 남강이 유유히 흐르는 낭떠러지에 요염한 얼굴을 하고 서있었다. 거나하게 술에 취한 장수들이었으나 아찔한 낭떠러지 앞이라 그런지 누구 하나 섣불리 논개 쪽으로 다가오는 이가 없었다. 그때 늠름한 체구를 가진 왜장 하나가 걸어왔다. 논개는 미소를 띠었다. 바람에 몸을 실어 왜 장수를 낚아채듯 힘껏 안았다. 술에 취한 장수는 덩치에 못 미치게 휘청거렸다. 논개는 찰나의 순간 만 길 낭떠러지 아래로 몸을 던졌다. 열 개의 가락지 사이로 손가락이 팽팽하게 늘어났다.
파도가 넘실거리는 강 속으로 두 눈을 질끈 감은 붉은 혼이 빨려 들어갔다.
‘그래서 가락지는 단단한 거지. 끊어지지 않고.’
남루한 옷차림의 여자는 급히 검은색 자동차에 올라탔다. 고급스런 자동차와는 어울리지 않는 여자는 머리카락이 늘어져 더 초라해보였다. 여자가 차에 올라 탈 때 차 문을 열어준 남자에게 무언가 이야기 할 때 남자가 짧게 ‘하이’라고 하는 것 보니 일본인 같았다.
달빛이 힘을 잃어 어스름했다. 낡았지만 붉은 빛이 선명한 벽돌 건물 앞에 여자는 멈추어 섰다. 여자는 차 안에서 머리를 빗었는지 아까보단 단정해보였다.
차마 붉은 벽돌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 문 밖만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러더니 여자는 다시 자동차에 올랐다.
다음날 오전은 유난히 볕이 따가웠다. 선글라스나 모자 없이는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힘들도록 쾌청한 하늘은 뜨거운 여름을 실감나게 했다. 어제 본 검은색 자동차가 다시금 붉은 벽돌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오늘은 여자 혼자가 아니라 웬 꼬마아이와 함께였다. 아마 여자의 아들이라 생각했다. 여자는 어제보다 단정한 차림이었다. 검정색 투피스를 차려입은 여자는 아이의 손을 잡고 붉은 벽돌 건물로 들어섰다. 표정이 사뭇 비장했다.
“타케이. 잘 봐. 오늘을 잘 기억해둬.”
여자는 한국말을 곧잘 했다. 아이는 짧게 응, 하고 대답하더니 경건한 표정으로 들어섰다.
여자가 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간 곳은 독립을 위해 싸운 애국지사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붙어있는 방이었다. 여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는 아이의 손을 더욱 꼭 잡았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가벼운 목례를 했다. 방을 나오고 나서는 인형으로 고문하는 장면을 재현해 놓은 곳을 들어갔다. 실제와 가까운 비명소리와 인형의 모습에 타케이는 제법 놀란 모양이었다. 무서웠는지 여자의 뒤로 숨으며 나가고 싶어 했다.
“타케이. 무섭니? 하지만 기억해야해. 잊어버리면 안 돼.”
무서워하는 타케이의 손을 잡고 건물 건물을 찬찬히 돌아보았다. 날이 쾌청해서 그런지 제법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들렸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음에도 소란스럽지 않았다. 그 중에서는 이들과 같은 외국인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그들은 다른 나라의 뼈아픈 역사의 한 페이지에 엄숙함을 표했다.
타케이는 여전히 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한 곳을 응시하더니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유관순 열사의 사진이 붙어있는 곳이었다.
“타케이. 유관순 열사 알지? 이분이 여기에서 돌아가셨어. 나라를 위해 독립운동을 하다가 돌아가신 분이야.”
타케이는 그러고도 한참을 멍하니 사진만 바라보았다.
아마 감옥이라는 곳은 죄가 있는 사람들이 가는 곳인데 나라를 위해 싸운 사람들이 왜 감옥에 갇혔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여자는 다시 한 번 가볍게 고개를 숙인 채 아이와 함께 검은 차에 올라탔다. 조용한 발걸음이라 다녀간 흔적도 없이 고요하게 사라졌다.
차안에서 여자를 모시고 가는 남자가 물었다.
“이곳을 이렇게 자주 찾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타케이까지 데리고.”
“당연히 와보아야 하는 곳이니까요. 당연히 알아야 하고.”
“그래도…….”
“유타, 여기에 계신 분들은 자유와 평화를 위해 그리고 빼앗긴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운 사람들이에요. 우리는 그들의 뼈아픈 외마디 비명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의무가 있어요. 잇몸이 문드러져 이가 으스러져도 소리 한번 힘껏 지르지도 못한 분들이라고요.
지나간 시간이고 흘러버린 역사라고 해서 모른 척 눈을 돌리는 건 비겁해요. 좁고 어두운 무서운 곳에서 두꺼운 철제 창이 열리기만을 바라던 사람들의 핏물 섞인 소리를 들어야 해요.”
여자는 자신이 말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낡은 지갑 속 흑백사진을 말없이 꺼내볼 뿐이었다.
오래된 수탁의 아침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삐거덕 하는 문을 열고 조용한 걸음걸이의 소녀 설화가 나왔습니다. 마을에서 설화라는 소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효녀로 소문이 나있었지요. 설화는 아픈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신해 마을일을 돕고 바느질 삵을 받아 근근이 살아갔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번 돈으로는 반찬은 가족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쌀을 사기도 힘들었답니다. 소녀 설화는 마을일을 도와드리며 반찬 조금씩을 얻어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소녀가장이 된 설화의 착한 심성과 딱한 사정을 아는 마을사람들은 집에 있는 반찬을 조금씩 바가지에 담아주었습니다. 그런데 마을사람들의 반찬을 따로 담을 수 없어 그만 한 바가지에 나물들이 전부 섞여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래도 반찬들을 얻었다는 기쁨에 한달음에 달려간 설화는 나물들이 섞인 바가지에 밥을 넣어 숟가락으로 비벼 상을 차렸습니다. 부모님께 이렇게 밖에 상을 차리지 못했다는 죄송스런 마음이 들었지요. 설화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처음 보는 생소한 밥에 두 눈이 휘둥그레 졌습니다. 그런데 막상 먹어보니 그 맛도 맛있고 다른 찬을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어서 더 잘됐다고 설화를 위로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설화가 막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낯선 행색의 웬 남자가 설화의 집 앞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행색을 보니 이 동네 사람은 아닌 듯싶었지만 사람을 구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되어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우선 물을 먹여 목을 축이게 하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 주었습니다. 그러자 남자가 정신을 차리고는 고마운 마음을 전하였습니다. 달리 내 드릴 것이 없던 설화는 금방 얻어온 반찬들과 산에서 캐온 나물들을 섞어 고추장과 함께 내드렸습니다.
“소녀, 집안 살림이 누추하여 이런 것 밖에 내 드릴 것이 없사옵니다. 송구스럽습니다.”
남자도 생전 처음 보는 밥상에 잠시 놀랐으나 고추장에 쓱쓱 비벼 맛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맛도 맛이지만 밥에 들어간 나물들이 모여 이만한 영양가를 내는 밥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밥의 이름이 무엇이냐? 혹, 밥을 이렇게 만들게 된 경위를 내게 알려줄 수 있겠느냐?”
“이 밥에 이름은 달리 없사옵니다. 사실….”
설화는 집이 가난하여 이웃사람들에게 얻은 반찬이 우연히 섞여 밥과 함께 먹은 것이라고 남자에게 말했습니다.
“허허. 그것 참 딱하면서도 놀랄 일이구나. 사실 나는 궁에서 시찰을 나온 암행어사니라. 아까는 잠시 현기증이 나 쓰러져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너를 만난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이런 천한 음식을 내 드렸으니, 송구할 따름입니다.”
“아니다. 밥과 함께 갖가지 나물들을 비벼먹는다... 비빔밥이 좋겠구나!”
“네? 비빔밥이요?”
“그래, 이 마을이 전주이니 전주비빔밥이 좋겠구나.”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암행어사가 다시 설화의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왕실의 수라간 나인이 되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임금님이 드시는 음식을 손수 차릴 수 있다는 생각에 승낙한 설화는 궁으로 들어갔습니다. 궁에는 수많은 음식들이 있었습니다. 설화는 갖가지 좋은 재료 중에서 나물과 고기를 가지런히 밥 위에 올려 수라상을 만들었습니다. 맛을 본 임금은 이름을 음식의 이름을 물었고 설화는 그 때 암행어사가 지어준 이름을 대었습니다.
맛의 우수함과 영양까지 두루 갖춘 전주비빔밥의 시작은 우연함이었지만 궁중음식으로 사랑받으며 전주의 제일가는 음식으로 지금까지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후회라는 것은 언제나 지나고 난 다음에야 든다. 내가 그렇고 다른 사람이 그렇듯 언제나 동일하게.
“따님이 어머님을 많이 닮았어요.”
미용사가 엄마의 머리를 빗으로 다듬으면서 살갑게 말을 걸어왔다. 어쩌면 지금껏 엄마를 봐온 나보다 엄마를 처음 본 미용사가 더욱 살갑게 느껴질 정도였다. 엄마는 참 오랜만에 미용실을 찾았다.
“우선 희끗한 저 흰머리 좀 염색해주시고 머리는 가볍게 파마해주세요.”
엄마는 온순한 양처럼 가만히 앉아있다. 바로 앞에 마주하고 있는 큰 거울이 어색해서 인지 자꾸만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있다.
“엄마, 고개 좀 들어봐. 그래야 머리가 예쁘게 되고 있는지 알지.”
내 말에 그제야 고개를 살짝 들어 거울을 본다. 여전히 어색한 표정은 남아있지만 그런 어색함이 낯설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따님이랑 이렇게 시내 나오시니 좋으시죠?”
“네”
엄마의 단답형 대답에도 미용사는 여전히 수다스럽게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아무래도 직업병이 아닌가 싶었다.
“점심은 맛있는 거 드셨어요? 따님한테 오늘은 맛있는 거 사달라고 하세요. 예를 들면 스파게티라던지 경양식도 좋고요.”
“네”
미용사는 친절히 메뉴까지 들어주었지만 여전히 엄마는 무뚝뚝했다. 미용사도 조금은 지쳤는지 머리손질에 신경을 두었다. 두어 시간 지나자 엄마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희끗했던 흰머리는 단정한 자연갈색으로 물들었고 헝클어져있던 머리칼은 가벼운 펌으로 탄력이 생겼다.
“이야. 누구 엄마인지 정말 예쁜데?”
엄마는 피식 웃었다. 엄마도 마음에 드신 듯 웃음을 보이셨다.
엄마는 얼마 전 자궁근종 수술을 받았다. 암은 아니라 다행이었지만 자궁을 들어낸다는 것에 엄마는 여자로서의 삶이 끝난 것처럼 많이 우울해 하셨다. 수술은 잘 되었고 건강관리만 잘 하시면 일상생활에도 큰 문제가 없을 거라 했다.
“엄마,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한동안 죽만 먹어서 좀 질렸을 텐데. 엄마가 좋아하는~”
순간 엄마가 좋아하는 하고 말문이 막혔다.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엄마는 내가 자취집에서 집에 가는 날이면 우리 딸 좋아하는 순두부다 갈비찜이다 한상 떡 벌어지게 차려놓고 계셨는데 나는 이렇게 많은 식당이 있음에도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 하나가 떠오르지 않아 엄마 손을 잡고 계속 걷기만 하고 있다.
“칼국수 먹자. 칼칼하고 시원한 게 먹고 싶네.”
엄마는 내가 당황한 것을 알아챘는지 칼국수를 드시고 싶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엄마는 입맛이 없다고 하는 날이면 국수를 말아 드셨던 기억이 났다.
등촌동 칼국수는 뽀얀 국물에 바지락이 들어가 있는 모양이 아니었다. 버섯 매운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얼큰한 국물에 버섯과 미나리 그리고 칼국수 면을 넣어 칼칼하게 먹는 방식이었다. 한여름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먹다보면 땀이 나면서 몸에 원기가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음, 국물 시원하다. 엄마 여기 와 본적 있어?”
“응, 저번에 네 아빠랑. 국물이 칼칼하고 시원한 게 좋더라고.”
“아빠랑? 언제?”
“엄마 수술하기 전에. 여기에서 답답하던 속 다 풀고 가라고.”
무뚝뚝하던 아빠는 수술 전에 엄마를 모시고 나온 적이 있으셨나보다. 엄마의 갑작스런 수술에 아빠도 적잖이 걱정이 되셨던 모양이다. 평소 말 한마디 선물 하나 제대로 해본 적 없으셨던 아빠가 먼저 외식을 하자고 했다는 것에 엄마도 아빠의 마음을 조금은 느끼셨으리라 생각한다.
국수를 다 건져먹고 갖은 채소와 계란까지 풀어 볶음밥까지 싹 비우고 나서 음식점을 나왔다.
나는 엄마에게 뭐 해보고 싶은 것이 없는지 물었다. 엄마는 내손이랑 엄마손을 비교해보더니 “나도 이런 거 해보고 싶다. 이걸 뭐라 하더라? 네일아트?” 엄마는 생각도 못한 네일아트를 해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 엄마. 이제 엄마 해보고 싶은 거 다 하면서 그렇게 사세요.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엄마와 걸어가는 데 발걸음이 훨씬 가벼워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에 걸을 때마다 부스럭한 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제법 쌀쌀한 바람에 소매사이로 찬바람이 새어 들어온다. 겨울이 왔나보다.
궁을 떠나온 지 닷새가 훌쩍 지났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누구보다 조정과 임금을 생각하며 성실히 정치를 펼쳤다. 누구보다 학식이 뛰어났고 어진 성품으로 임금을 잘 보필하던 그였다.
하지만 어찌 정치를 하는 사람들과 궁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이와 같은 마음일까. 궁의 세력들에 밀려 크게 화를 입은 그는 잠시 영주에 내려와 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가느다란 눈발이 잠시 내려앉았다 사라졌다. 겨울이 왔다.
긴긴 겨울을 어찌 보내랴. 이제 겨울의 시작인 것을. 언제 봄이 오려나.
선비는 긴긴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임금을 걱정했다. 그리고 임금과 함께 정사를 논의하고 싶었다. 하루도 한양이 그리워 발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자리에 들었다.
선비는 조용히 종이를 펼치고 먹을 갈아 붓을 들었다. 옛날 선비의 할아버지가 종종 흰 종이에 매화를 그리셨던 것을 떠올렸다. 선비도 고고하고 기품 있는 매화나무를 그렸다. 그리고는 한 송이 한 송이마다 정성을 들였다.
달빛을 받아 더욱 아름다운 매화나무.
매화꽃 한 송이가 피어나면 그 다음날 또 한 송이.
그렇게 피어난 매화는 하얗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수줍은 미소를 건네네.
겨울이 가면 봄은 더욱 가까워오리. 멀지 않은 곳에 봄은 오고 있네.
선비는 그렇게 정성스럽게 꽃 한 송이씩 여든 한 송이의 하얀 매화를 그렸다. 하얀 매화는 긴긴 겨울의 매서운 추위를 무릅쓰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선비는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매화나무를 창문에 붙이고 하루 한 송이씩 붉은 색으로 물들였다. 그렇게 여든 한 송이가 다 물들 때면 봄이 오리라 믿었다.
매일 하루를 마무리 할 때면 노랗게 빛나는 달을 바라보며 임금이 있는 곳을 향하여 경건하게 절을 올린 뒤 매화 꽃송이에 붉은 색을 입혔다. 선비는 떳떳하고 흔들림 없는 지조를 지켜내기 위해 노력했다. 내일이면 동지로 부터 여든 한 번째 날이 되는 날이다. 창문에 붙여놓은 매화나무에도 한 송이의 흰 매화가 없이 모두 붉은 빛을 내는 아름다운 매화나무가 완성될 것이다.
드디어 여든 한 번째의 날이 되었다. 선비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보았다. 정말 마당 앞에 매화나무에도 이처럼 꽃망울을 틔운 꽃들이 반겨줄까 긴장되었다.
문을 열어보니 정말로 봄을 알리는 매화가 피어있었다. 선비는 환하게 웃었다. 길고 길었던 겨울이 지나고 찬바람 사이로 붉은 매화가 꽃잎을 흔들었다. 그때였다. 한양에서 온 전갈이라며 다시 한양으로 올라와 정사를 함께 돌보라는 왕의 명이 담겨있었다. 끝까지 의리와 지조를 버리지 않고 봄을 기다린 선비에게 정말로 봄이 찾아왔다.
선비는 감사함에 절을 올리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겨울이 오면 머지않아 봄은 다시 올 것이다. 그렇게 다시 봄이 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