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일은 항상 생각보다 더디게 다가온다. 출근길의 버스나 고기가 낚시 바늘을 잡아 무는 순간, 아내의 귀가나 유채꽃이 피는 시기 같은 것들 말이다. 재희의 성화에 오늘도 호수공원에 나왔지만, 내가 이곳에서 사랑하는 것은 유채꽃뿐이다.
“아빠! 나 저 쪽!”
아이는 말을 배우는 속도가 더뎠다. 아내의 부재 때문일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아마 나 때문일 것이다. 아내는 명문대를 졸업한 엘리트였고, 나는 중학교 졸업을 최종 학력으로 가진 막노동꾼이었다. 그날, 아내는 하얀 원피스를 입고 빨간 가방을 멘 채 유채꽃밭에 서 있었고, 나는 공원을 재정비에 동원되어 자재를 나르고 있었다.
어떻게 우리의 눈이 마주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썩어가던 더러운 하천이 말끔히 정비되어 아름다운 호수 공원으로 바뀐 그 해에 결혼식도 올리지 않고 살림을 차렸다. 나는 쓰러진 장모님 앞에서, 아내를 평생 행복하게 해 주겠다며 무릎을 꿇고 빌었다.
단칸방에서 시작한 살림이었지만, 불행하다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집 안에서 큰 소리가 나거나, 아내가 눈물을 흘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조금씩 나아지리라. 그러면 나는 아내에게 하얀 원피스를 선물하고, 아내와 나는 각자 아이의 오른손과 왼손을 잡고 유채꽃밭을 걸어야지. 아내는 장롱 안에서 빨간 가방을 꺼내 메고, 아이가 넘어지면 내게 주었던 노란 손수건으로 아이의 상처를 정성스레 닦아 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아이에게 다가가
“아빠, 나!”
재희가 갑자기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나는 무심코 재희의 손을 뿌리치고 말았고, 어린애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나는 당황해 재희를 안아 일으키고 무릎이며 팔꿈치를 살펴보았다. 아이는 울지 않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만 있다.
“엄마 생각 해?”
나는 울고 싶어졌다.
아내는 재희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돈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살릴 수 있었을 텐데, 그놈의 돈이 없어 차일피일 병원 가는 것을 미루다보니 어느 새 늦어버리고 말았다. 블라인드가 쳐진 병실이 아니라, 창문에 신문지를 붙여 둔 단칸방에서 겨울 이불을 뒤집어쓰고 떨다가 죽었다.
아마 아내는 마지막 순간에 아이에게 먹일 분유를 타 주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겨우 기어 다니기 시작할 나이였던 재희는 엄마가 끝내 놓치고 만 빈 젖병을 안고 잠들어 있었고, 내가 집에 들어오자 옹알이 소리로 웃으며 나를 불렀다. 그 때부터 나는 왠지 아이가 무서웠다.
“다친 데 없지? 아빠 왜 불렀어?”
재희가 안내문을 가리켰다. 읽어 달라는 모양이었다. 안내문에는 장자못 설화가 적혀 있었다. 며느리는 장독대 뚜껑을 덮지 않은 것이 기억나 뒤를 돌아보았고, 그대로 돌이 되어버렸단다. 우스운 이야기였다. 나는 다시 눈물이 날 것만 같아서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유채꽃이 피려면 아직 두 달은 더 기다려야 했지만, 장미정원에는 장미가 만개했다고 한다. 나는 재희를 안고 천천히 둘레길을 따라 장미정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옛날 장자가 살던 자리에서 커다란 고기들이 뻐끔뻐끔 입을 벌리고 있었다. 물고기가 숨 쉰 자리에서 동심원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재희가 내 옷깃을 꼭 잡고 수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동심원이 늘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오랫동안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눈 깜짝할 새에 또 신년이었다. 맥주 한 캔을 사 와서 안주 없이 마시며 텔레비전으로 제야의 종 치는 걸 구경했다. 혹시 핸드폰이 울리지는 않는지 계속 확인 해 보았지만 별다른 연락이 오지 않았다. 다들 자고 있는 모양이었다. 시차 때문이니 어쩔 수 없지. 혼잣말을 하며 이어지는 축하 무대를 본다. 벌써 삼 년 째 혼자 맞는 신년이었다.
“이런 호수 말고, 애들이 빨리 바다를 봐야 하지 않겠어요?”
아내가 농담처럼 꺼낸 한 마디가 시작이었다. 우리 부부 모두 대학을 나오지 못한 것이 한이었다. 이래저래 불편한 점도 많았고, 서러운 경우도 많이 당했었다. 아내는 오래 전부터 계획을 준비한 듯, 일사천리로 서류 준비를 끝내고 아이들과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입버릇처럼 ‘우리 애 교육만은’하고 되뇌었었는데, 막상 아내와 아이들을 떠나보낼 때에는 그 앞에서 펑펑 울지 않은 게 용하다 싶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남부럽지 않은 교육 환경을 만들어 주기로 신혼 때부터 약속해 온지라, 떠나는 가족들 앞에서 서운하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제대로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나는 그렇게 기러기 아빠가 되었다.
새해 아침에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호숫가로 나섰다. 날이 꽤 추워 현관문을 열면서부터 옷깃을 손으로 꽉 여미고 나섰는데, 막상 나서보니 맑은 공기가 상쾌했다. 며칠 째 내리던 눈도 이제는 모두 그친 모양이었다.
가족 단위로 호수를 보러 마실 나온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나 많았다. 호수의 얼음 위를 걸어보겠다고 조심스레 한 발짝씩을 내 딛는 이들도 있었다. 아이들이 부모 손에 매달려 웃는 모습을 보니 코끝이 아려왔다. 우리 아이들도 딱 저만할 텐데. 아니, 못 본 지 삼 년이나 되었으니 아마 머리 하나는 더 자랐을 것이다. 서러워하지 않기로 했는데, 외로움은 내 힘으로 어찌 할 수가 없었다.
얼어붙은 호수에 눈이 덮인 모습이 마치 저 멀리 남극 대륙에 온 것 같았다. 그 신비로운 모습을 렌즈에 담으려 애쓰는 남자도 보였다. 저 앵글 속에 내가 들어간다면 안성맞춤일 것이다. 목을 움츠린 내 모습은 펭귄을 닮았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가족으로서의 내가 필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비약이다. 하지만 수 년 간 쌓여 온 외로움이 사람을 점점 더 비관적이게 하고 있었다.
혼자서라도 떡국을 끓여 먹어야 하나, 친구를 만나 볼까. 이런 저런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해져 있는데, 저 멀리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비닐봉투에서 무언가를 꺼내 뿌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곳이라더니, 철새들이 먹을 모이를 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용기를 내어 그들에게 다가가 보았다.
“저어, 저도 한 번 해 볼 수 있을까요?”
그들은 선뜻 준비되어 있던 봉투들 중 하나를 내 손에 쥐어주며 요령을 알려준 뒤, 제각기 몇 마디씩을 건넸다.
“겨울이니 청둥오리나 쇠오리, 쇠기러기 같은 녀석들이 찾아 올 거예요.”
“여기 사는 녀석들도 아니고, 한 철 잠시 다녀가는 녀석들이지만 반갑게 맞아 줘야지.”
나는 그들이 모두 외로운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이들도 어딘가에 돌아올 사람들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새들의 길목에 서서 다른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언 땅에 모이를 흩뿌렸다.
벚나무 가지에 쌓여 있던 눈이 머리 위로 조금씩 떨어져 내렸다. 나는 이른 봄을 맞이하는 기분으로 벚나무 밑에 서 있었다.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핸드폰 너머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벚나무에서는 꽃잎이 흩날릴 것이다.
“아, 또 포장마차 가려는 거잖아. 난 싫다고! 레스토랑 가자니까?”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교에 다니는 딸이 오랜만에 집에 왔다. 귀하신 얼굴을 영접했으니, 마땅한 대접을 해 드리는 것이 인지상정. 아빠랑 단둘이 외식 한 번 하자며 대뜸 손을 잡아끌었는데, 녀석이 예전 같지가 않다.
아내가 집을 나가 버린 지도 십여 년이 흘렀다. 집을 나갔을 때에 바로 찾으러 나갔다면 세 식구 오순도순 사는 집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인데, 자존심 때문에 잡지 않은 것이 지금까지도 한으로 남아 있었다.
후회는 빠르게 찾아왔다. 나는 매일 술을 마셨고,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딸애가 내 뒷바라지를 해 주곤 했다. 정신을 차리고 난 뒤에는 그것이 죄스러워 미선이를 공주님처럼 오냐오냐 해 가며 키웠다. 엄격한 아빠 노릇을 하기에는 이미 늦은 일이었지만, 이제는 딸애가 내 장단에 맞춰주질 않으니 이건 또 서럽기도 하다.
“우리 딸도 다 컸으니 이제 아빠랑 술 한 잔 기울일 수도 있는 거지, 뭐. 너도 포장마차 떡볶이랑 국수 좋아하잖아.”
일부러 풀이 죽은 표정을 짓자, 미선이가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게 눈에 보였다. 내가 어디 가서 말은 안 하지만, 우리 미선이는 이렇게 속이 깊고 정이 많은 것이 제일 큰 장점이다.
“아니, 내 말은……. 아빠 좋아하는 것도 많이 먹었으니까 이제 내가 좋아하는 것도 좀 먹으면 안 되냐고. 나 피자도 좋아하고 해물도 좋아하는데, 아빤 내가 집에 오면 맨날 분식만 먹이려고 하잖아.”
듣고 보니 그도 그렇다. 이건 내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었다. 하지만 레스토랑 음식은 영 내 입맛에 맞지를 않으니,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더 시간을 끌었다가는 저녁때를 완전히 넘겨 버릴 것 같았다. 미선이는 아까부터 뭘 하는지 제 방에서 나오질 않고,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거실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사과를 먼저 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넉살좋게 다시 한 번 말을 붙여볼까 고민하고 있던 그 때, 미선이가 방문을 벌컥 열고 나왔다.
“아빠, 찾았어! 가자!”
무어라 대답을 할 틈도 없이 미선이 손에 이끌려 집을 나섰다. 미선이가 이끄는 대로 따라 걷고 있는데, 문득 아내가 집을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 생각났다.
미선이가 정해 준 통금 시간은 아홉 시. 그 어린 것이, 아홉 시가 넘으면 나를 찾아 온 동네 포장마차를 다 돌아다녔다. 어린 애 혼자 술파는 곳을 기웃거리고 있으니, 처음에는 덮어두고 혼을 내던 동네 어른들이 언젠가부터 내가 있는 곳을 넌지시 일러 주었다고 한다. 예쁜 딸을 두고 여기서 뭘 하고 있느냐고 처음 보는 어르신에게 호통을 들은 기억도 있는 것을 보니, 동네에서 꽤 유명해졌을 정도였나 보다.
동네 포장마차 한 구석에서 만취해 잠들어 있는 나를 찾아내면, 미선이는 항상 ‘우리 아빠, 괜찮다. 괜찮다.’하고 말하며 웃어른처럼 내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 주고는 내 주머니를 뒤져 술값을 계산하고 고사리 손으로 나를 잡아끌어 집으로 데려왔었다. 술에 취한 와중에도, 어린 딸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정말 부끄럽고, 또 한편으로는 정말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미선이와 함께 도착한 곳은 허름한 파전 집이었다.
“포장마차가 싫다더니, 파전이 먹고 싶어서 그랬어?”
머쓱해진 내가 말을 건네자. 미선이가 웃는다. 아빠가 파스타니 피자니 하는 것들 싫어하는 거 다 안다고. 우리 둘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뭐가 있을까 해서 찾아봤더니, 동래파전이라는 게 있었단다.
“봐봐. 파전이라도 해물 잔뜩 들어가고 두꺼운 게 꼭 시카고 피자 같잖아?”
내가 시카고 피자가 뭔지 알 턱이 있나. 파전 한 입에 막걸리 한 대접을 기분 좋게 원 샷 하는 딸을 보니 왠지 콧등이 짠해져 왔다. 아빠가 이런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건 알지만, 오늘은 꼭 우리 딸이 만취해버렸으면 좋겠다. 의젓한 우리 딸은 취해서 미안하다며 민망해하겠지만, 나는 괜찮다며 미선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 것이다. 그리고는 손을 잡고, 아니 등에 꼭 업고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깊고 깊은 바닷속에서 쏙 하고 바다사자 한 마리가 고개를 내밉니다. 맑고 깊은 섬 독도에서 사는 강치는 누구보다 용감하고 호기심 많은 바다사자이지요. 늘 쾌활한 성격으로 동해를 마음껏 누비고 다녔지요. 아름다운 자연과 맑은 물이 흐르는 독도를 강치는 너무나 사랑하였어요, 이곳에는 강치와 함께 독도를 누비는 친구들도 많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 강치에게도 한 가지 고민이 있었어요. 그건 바로 갑자기 독도 바다에 나타난 낯선 사람들 때문이었지요. 어느 날부턴가 이들은 무서운 모습을 하고 강치와 강치 가족들은 위협했어요. 그물을 던져 강치 가족들을 잡으려고 했고 무섭게 총을 쏘기도 하였지요. 평화롭던 동해외딴 섬 독도에 검은 구름이 드리워졌지요. 강치의 부모님은 낯선 사람들에 대항하여 용감하게 싸우다 크게 상처를 입게 되었고 결국 강치 홀로 머나먼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강치는 가족들과 함께 독도에 살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독도에 있는 오징어와 명태, 꽁치 등의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도 너무 슬펐지요.
눈물을 머금고 독도를 떠난 강치는 거친 파도와 맞서 싸우기도 하고 배고픔과 추위와의 싸움에 견디기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독도에서의 삶이 너무 그리워 눈물을 흘리곤 하였습니다. 그렇게 홀로 머나먼 바다로 떠난 강치는 낯선 곳에서의 두려움과 또 사람들이 자신을 해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더 깊은 물속으로 꽁꽁 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작은 바위틈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바로 거북이 할아버지의 목소리였습니다.
“얘야. 넌 누구니? 못 보던 아이인 것 같구나”
“누.. 누구세요? 저는 동해에서 온 강치라고 해요.”
“네가 강치로구나!”
“네, 저를 아세요?”
“흐음. 오징어와 명태가 한참 찾으러 다니던 게 바로 너였어. 네 이름을 부르며 한참을 맴돌다 돌아가는 것 같더구나. 아마 멀리 가지는 않았을 게다.”
거북이 할아버지에게 연신 감사하다고 하며 강치는 이곳까지 자신을 잊지 않고 찾아와준 친구들을 생각하며 다시금 용기를 내어 독도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제 돌아가게 되면 다시는 가족들과 친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로 마음먹었지요. 예전에 씩씩하고 용감하던 강치의 모습으로 말이에요.
그렇게 빠르게 헤엄을 친 강치는 드디어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강치야! 보고 싶었어. 네가 떠난 뒤 난 하루도 널 잊은 적이 없었어.”
“나도 보고 싶었어. 너희 모두. 매일 이곳에서 너희와 함께 지내는 꿈을 꾸었다니까.”
“강치 네가 떠난 뒤 많은 것들이 바뀌었어. 갑자기 착한 사람들이 나타나 못된 사람들이 너희 가족들을 괴롭히지 못하게 하고 지금도 이곳 독도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어. 그 일이 있고 난 뒤부터는 많은 사람들이 우릴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해.
특히 모두 너를 많이 그리워하고 있어. 강치야.”
그렇게 독도로 돌아온 강치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어 더없이 행복했지요.
오징어는 강치에게 울릉도에서 온 친구들을 소개해주고 독도와 울릉도를 찾는 많은 사람들 덕분에 더는 외롭거나 슬프지 않게 되었답니다.
그렇게 강치는 다시 독도로 돌아와 웃음을 되찾게 되고 용감하고 쾌활한 독도지킴이가 되었답니다.
도시의 거리는 잠들지 않는다. 소란스러움이 당연시되는 이 거리의 밤은 더욱 찬란해진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건네는 자와 받는 자들은 거리의 소음을 즐기며 흘러가는 밤을 만끽하곤 한다. 신도시 건설이다 관광지 개발이다 말이 많은 송탄의 밤은 더욱 뜨거웠다. 거리 한복판에서 현주는 홍콩의 밤거리를 떠올렸다. 단 한 번도 홍콩을 다녀오지 않았던 그녀였지만 어쩐지 송탄의 거리는 홍콩의 밤거리를 떠올리게 했다.
띠링, 여동생 진주의 문자다. 언니, 올 때 닭강정 하나만 사다줘. 진주는 현주가 송탄쇼핑타운 근처에 가있을 때면 귀신같이 문자를 보냈다. 언제 한 번 쇼핑 겸 엄마심부름으로 중앙시장에 같이 나왔을 때 닭강정 한 번 맛보더니 때만 되면 그렇게 문자를 보낸다.
미군부대가 근처에 있어서 일까 다양한 언어가 섞이며 화장품이면 화장품, 옷가게면 옷가게가 줄지어 늘어서 있고 밤이면 먹거리 포장마차들이 저마다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를 풍긴다. 현주는 잠시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진주의 부탁대로 닭강정을 파는 작은 핑크색 포장마차로 갔다.
“어머, 또 왔어요? 오늘은 어떻게 줄까?”
“한 박스만 포장해주세요.”
“이거 조금만 먹으면서 기다려요. 금방 해줄게.”
아주머니는 친절했다. 기다리는 사람을 배려하는 얼굴과 말씨로 시식용 그릇에 닭강정 한 조각을 잘라주었다. 닭강정 하나를 조각내어 먹고 있는데 아주머니께서 말씀을 걸어왔다.
“우리 딸이 딱 아가씨만 한 나이인데. 매번 이렇게 찾아줘서 고맙고 반갑네. 우리 딸은 여기도 좋구만 꼭 그렇게 서울로 올라가서 놀더라고.”
“아무래도 서울이 더 볼 게 많고 살 것도 많으니까요.”
“그런가? 우리 딸이 자주 가는 데가 명동이랑 이태원이라는데 난 여기가 거기 하나 안 부러운 것 같은데 젊은 사람들 눈엔 또 다르고 그런가봐.”
“그렇죠 뭐. 사람도 많고…….”
나는 말끝을 흐렸다. 딱히 사람이 많은 것 말고는 특별히 그 두 곳보다 더 떨어지는 부분을 찾지 못해서였다. 물론 서울의 동대문이나 명동, 이태원이 트렌드의 중심으로 화려함과 번잡함이 물 흐르듯 흐르고 있을 테지만 어쩐지 나도 아주머니의 딸처럼 송탄관광특구에 대한 자부심은 특별하게 없었다. 그 옛날 관광특구로 선정될 때 크게 열린 행사에 관심을 가진 것 외에는 쇼핑을 위해 혹은 밤거리를 즐기기 위해 거리로 나온 적이 없었다.
닭강정 한 박스를 받아들고 좀 걷기로 했다. 낯선 글씨의 간판, 꼭 한번 먹어보겠다고 벼르고 별렀지만 아직 먹어보지 못한 미스리 햄버거, 촌스러운 듯하지만 나름대로 개성 있는 옷가게들 어쩐지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이 들었다. 집에서 불과 몇 분 거리에 나와 있음에도 이곳이 명동인지 이태원인지 아니면 홍콩의 거리 한복판인지 모를 정도였다.
여기저기에선 군복을 입은 미군들이 지나다녔다. 옛날 같았으면 괜스레 무서운 마음이 들어 옆으로 살짝 비켜 지나갔겠지만 오늘은 어쩐지 무섭다는 생각보다 훨씬 이 거리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닭강정을 팔던 아주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명동이랑 이태원 하나 안 부러운 것 같은데 거기나 여기나 외국인들 많고 예쁜 옷 많이 팔고 먹을 것도 많다고.’
얼마나 걸었는지 중앙시장 끝까지 와버렸다. 띠링, 동생의 문자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될 것을 그새를 못 참고 또 문자를 보냈나 하고 시계를 보니 벌써 한 시간 반이 훌쩍 지나있었다. 닭강정은 차갑게 식어있을테고 동생은 투정을 부릴 것이다. 나는 동생에게 답장을 보냈다. 아주 멀리서 사가느라 늦었다고, 언젠가 너도 데리고 와 주겠다고. 지금 바로 간다고.
도시의 거리는 잠들지 않았다. 소란스러움이 당연시되는 이 거리의 밤은 흐트러져 보이나 정돈되어 있었다. 거리 한복판에서 현주는 홍콩의 밤거리를 떠올렸다. 단 한 번도 홍콩을 다녀오지 않았던 그녀였지만 어쩐지 송탄의 거리는 홍콩의 밤거리를 떠올리게 했다.
대한민국에 많고 많은 커플들은 전국 방방곡곡 어디를 가도 상관이 없겠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더 멋있고 더 로맨틱한 장소를 찾곤 한다. 결혼을 앞둔 남녀는 더욱 그럴 것이다.
“가을여행으로 어디가 좋을까?” 하늘은 구름 한 점 없고 쾌청했으나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눈이 부시지는 않았다. 눈을 살짝 찡그리며 가을여행지를 생각하고 있는 젊은 여자를 향해 남자는 말했다.
“어디긴 어디야, 가을하면 낭만, 낭만하면 갈대 아니야? 갈대를 보러가자.”
낭만을 입에 달고 사는 남자는 이번에도 또 낭만이다. 다른 때 같았으면 무슨 또 낭만이냐고 했겠지만 이번에 제안한 가을갈대를 보러 가는 것은 꽤 솔깃한 제안이었다.
별다른 준비가 필요 없이 순천으로 가는 차에 올라탔다.
“노을이 짙게 내릴 때면 더 죽여줄 텐데. 안 그래?”“그럼 멋있긴 하겠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돼. 곧 5시 반이야.”
가을이라곤 했지만 아직은 늦더위가 가시지 않아서일까 둘은 약간 거리를 두고 걷고 있었다. 각자가 생각하는 가을 낭만을 떠올리고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사진 찍는 것이 취미인 남자는 순천만 갈대밭의 이곳저곳을 담기에 바빴다. 바람에 스러지는 갈대의 모습이며 빛을 받아 반짝이는 갈대의 모습까지. 남자친구는 주로 풍경사진을 찍었다. 그 사이에 간간히 여자의 모습이 함께 담긴 사진들도 있었으나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여자도 남자의 취미를 존중하고자 남자가 사진을 찍을 때에는 달리 말을 걸지 않았다.
‘찰칵’
“어!”
남자의 외마디 감탄에 여자는 남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연히 굉장히 잘 나온 사진을 건진 것이 분명하다는 직감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남자는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백발의 두 노인이 손을 꼭 잡고 있는 모습이었다.
할아버지는 온 신경을 할머니에게 쏟고 있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 손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이제는 힘이 많이 빠져 손에 힘줄이 솟아나도록 힘을 주지 않으면 할머니 손을 놓칠 것 같아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잡은 손에 힘을 꽉 주셨다. 할머니는 꽃분홍색 스웨터를 입고 계셨는데 표정이 마치 소녀 같으셨다. 볼에 분칠을 하지 않으셨는데도 발그레 하게 꽃이 핀 것 같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꽤 먼 거리에 계셔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시는지 들을 수는 없었지만 해가 저무는 노을빛을 받은 갈대밭 사이로 서로를 향해 웃음 지으시는 노부부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두 분이 어떤 말씀을 나누고 어떤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지 알 것만 같았다.
“와, 정말 멋지지 않아?”
“응. 그렇다. 아마 두 분의 귓가에는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려올 거야. 왜냐면 이렇게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함께 손을 잡고 걸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 자체에 감사함을 느끼고 계실 테니까.”
어쩐지 저렇게 늙어갈 수 있다는 것이 참 행복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까지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스럽게 바라봐 줄 수 있을까. 너의 늙음이 나의 늙음과 같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따뜻하게 보듬어 줄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말없이 서로의 손을 찾아 손을 뻗었다. 맞잡은 두 손이 어쩐지 따뜻했다.
“우리도 나중에 저렇게 아름답게 늙을 수 있을까? 난 말이야. 늙는다는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 그리고 정말 로맨틱하다. 나는 로맨틱이라는 단어는 젊은 이 삼십대 사람들에게만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정말 로맨틱하다.”
바람이 살짝 귓가를 스치는 날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밝지도 어둡지도 않게 내려앉은 노을 때문이었을까. 여자는 감성에 젖어있었다.
“우리도 지금처럼만 지낸다면 저렇게 아름답게 늙을 수 있다고 생각해. 이렇게 로맨틱하게. 그럼 지금 이 노부부 사진에 제목을 한번 지어볼까?”
“음. 생각났어. 더 로맨틱!”
조금만 더 힘내. 다와 간단 말이야.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아까부터 저 말만 족히 30번째다. 2000년도 밀레니엄을 맞아 함께 뒷동산에 묻은 타임캡슐을 찾으러 가는 길이다. 같은 자리만 빙빙 도는 느낌이 들었으나 여자의 들뜬 목소리에 남자는 포기하고 내려가자는 말을 쉽게 하지 못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차라리 뭐라도 나왔으면 하고 땅을 파볼까 생각도 했다. 여자는 지친 기색은 없었으나 추억이 송두리째 사라질까 염려가 마음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
어떻게 1999년에서 2000년이 될 수 있지?
바보 같긴. 당연히 1999 더하기 1은 2000이 되니까 그렇지.
저렇게 무드와 낭만이 없다. 아무튼 공대생이란. 혀를 소리 내지 않게 끌끌 차고는 남자의 손을 이끌고 한가로운 공원 벤치에 앉았다. 여자는 가방에서 아끼던 예쁜 편지지와 알록달록한 사인펜을 꺼내고는 미리 준비해 둔 작은 선물도 꺼내었다. 남자도 여자가 신신당부를 하며 준비해 오라던 선물을 꺼내었다.
“자. 이제 서로에게 편지를 쓰는 거야. 나는 미래의 너에게. 너는 미래의 나에게. 그리고 타임캡슐에 담아 저기 대추나무 밑에 묻고 3년 뒤 오늘! 짠 하고 열어보는 거지. 어때? 정말 낭만적이지 않니?”
으 응. 이라고 겨우 대답하는 남자를 얄밉다는 표정으로 한번 쏘아본 뒤 편지지를 남자의 앞으로 내밀었다. 여자의 강요에 겨우 펜을 잡은 남자는 몇 자 끼적이기 시작했다. 남자와 여자는 각자 편지와 선물을 타임캡슐에 넣고 상기된 표정으로 큰 대추나무 밑에 땅을 파 타임캡슐을 묻었다. 3년 뒤에도 이 자리에 있겠지? 잊지 말아야 한다는 당부를 몇 차례 주입시킨 뒤 서로의 편지와 선물이 궁금했지만 3년 뒤에 열어보기로 하였기 때문에 궁금해도 어쩔 수 없었다.
아! 여긴 것 같아. 여기 대추나무!
여자와 남자는 족히 40분간 같은 자리를 빙빙 돌다 3년 전 타임캡슐을 묻었던 대추나무를 찾았다. 안도의 한숨이 자신도 모르게 후 하고 나왔다. 등에는 식은땀도 주르륵 흘렀다.
“뭔가 변한 것 같아.”
“변하긴 뭐가. 똑같구만. 우리 변한 것 봐. 우리가 변해서 대추나무도 변한 것 같은 것일 뿐이야.”
“그런가? 아무튼 얼른 파보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대추나무 밑을 파보았다. 쏘옥하고 3년 전 묻어두었던 둘만의 추억이 솟아올랐다.
“있었구나. 정말. 그대로. 얼른 읽어볼래 편지!”
다소 오글거리는 편지를 나눠 읽은 뒤 작은 선물을 열어보았다. 여자는 남자가 당시 가지고 싶어 하던 카세트테이프를 넣었었다. 당시 남자가 좋아하던 가수 신승훈 카세트테이프다.
여자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선물상자를 열었다. 어?
대추씨 반쪽
“이게 뭐야?”
“대추씨 반쪽이잖아.”
“누가 몰라서 물어? 그러니까 나한테 줄 선물이 고작 대추씨였어? 그것도 반쪽짜리?”
“우리가 있는 곳 우리의 추억이 묻힌 곳 그리고 이 나무를 잘 봐.”
여자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나무를 가만히 살펴보았다.
“뭔가 변한 것 같아.”
옛날 강원도 삼척 산골마을에 금슬 좋은 젊은 부부가 살았어. 남자는 늘 아내를 위해 열심히 나무를 하고 산에서 토끼와 멧돼지를 사냥하였고, 아내는 남편을 위해 늘 따뜻하게 밥을 짓고 성실하게 살림을 꾸려나갔지. 마을 사람들도 젊은 부부가 성실하고 예쁘게 살아가는 것을 축복해 주었지. 그런데 이 둘은 혼인한지 만 삼년이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는 거야. 때 마침 저잣거리 주막에서 이 남자는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
“칠복이 자네, 그 소문 들었나?”
“무슨 소문 말이야?”
“쉿! 목소리 좀 낮추게. 아주 괴기하고 흉흉하여 마을사람들 모두 쉬쉬하고 있다네. 그것이 말이야. 우리 마을 꼭대기에 큰 산이 하나있지. 그 산속에 큰 두 개의 동굴이 마주보고 있는데, 그 이름이 대금굴과 환선굴이라지? 그런데 이곳은 너무나 신비롭고 영험한 기운이 흘러 아무도 들어가 보지 못했다는구먼. 그런데 대금굴에는 만병을 고쳐준다는 신비로운 샘물을 지키는 황룡이, 환선굴에는 소원을 들어준다는 석순을 지키는 청룡이 있다고 하네. 그런데 이 샘물과 석순을 얻기 위해선 반드시 용의 머리를 잘라 동굴입구에 바쳐야 한다고 하질 않나. 그런데 그 동굴에 들어서자마자 용의 울음소리에 귀가 찢어질 지경이라고 한다네. 그런데 한번 동굴에 들어간 사람 중 나온 사람을 본 적이 없다네….”
“예끼, 이사람 할 일없으면 술이나 마시게. 쯧”
그런데 이 이야기를 유심히 듣던 남자는 곧장 이 이야기를 부인에게 전했어. 그리고는 오늘 밤 대금굴과 환선굴에 찾아가 꼭 소원을 들어주는 석순에 아이를 점지해 달라는 소원을 빌기로 했어. 부인은 끝까지 말렸으나 남자는 단호했어. 그렇게 시간이 흘러 밤이 깊어지자 남자는 대금굴과 환선굴을 향해 산속으로 깊이 들어갔어. 드디어 동굴입구에 도착하였지. 큰 두 개의 굴에서는 왠지 우렁찬 울림이 느껴지는 것 같았어. 남자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칼을 쥔 손이 벌벌벌 떨렸지만 꼭 올해에는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힘을 내어 조심스럽게 동굴입구에 들어섰어.
칠흑 같은 어둠에 한치 앞도 자세히 볼 수 없던 남자는 언제 어디에서 용이 나타날지 몰라 신중히 한발 한발을 내딛었어. 동굴 천장에서는 물이 똑똑똑 떨어졌고 바닥에서는 남자의 발자국소리가 쿵쿵하고 울렸지.
그때였어! 그르렁 거리는 소리가 나며 동굴 그림자로 용머리 비슷한 것이 기어 나오는 것이었지. 남자는 두려움에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두 눈을 질끈 감고 청룡의 머리를 있는 힘껏 내려쳤어. 동굴이 크게 울렸고 두려움에 벌벌벌 떨던 남자는 청룡의 머리를 들고 냅다 뛰기 시작했어. 밖이 거의 다 옴을 느낀 남자는 실눈을 떠 용머리를 확인하였는데 자신이 밴 머리가 용의 머리가 아닌 용머리 형상을 한 석순이었던 거야. 당황한 남자는 그만 동굴에 고여 있던 물을 밟고 발을 헛디뎌 동굴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말았지.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는 수일이 지나도 남자가 돌아오질 않자 남자가 떨어진 동굴로 향해 달려갔어. 도착한 곳에는 남편의 짚신 한 짝과 용머리 석상만 있을 뿐 남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 그곳에서 눈물을 흘리던 아내는 남편을 따라 가기로 결심을 했어.
그 마음이 한이 되어 지금도 동굴 입구에는 청년의 아리따운 아내인 미녀상과 천장에는 젊은 부부의 사랑을 담은 하트모양의 무늬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해. 그리고 남자가 떨어지며 놓친 용머리 석순은 아직도 그 자리에 남아 그 때의 일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고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