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 심장을 더듬다
- 경상남도 진주시 -
작사가 반야월은 진주를 “비봉산 품에 안겨 남강이 꿈을 꾸는 내 고향”이라 노래했습니다. 이런 진주를 대표하는 명승지로 단연 진주성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유유히 흐르는 진주 남강을 따라 낮은 성곽을 두르고 있는 진주성은 이끼 낀 성돌만큼이나 오랜 세월의 이야기를 간직한 곳입니다. 천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진주의 심장, 진주성을 느린 걸음으로 더듬어가다 보면 그 창대한 시간들을 모두 아우를 수 있을까요? ‘진주성에서 천년의 세월을 바라보라!’, 오늘 <트래블아이>가 던지는 미션입니다.
백제 때 토성으로 시작해 고려 말에 석성으로 축조했다는 진주성은 삼국시대에는 거열성, 통일신라시대에는 만홍산성, 고려시대에는 촉석성으로 불린 만큼 유서가 매우 깊다.
“숭례문이나 수원의 팔달문이나 모두가 성루만 남아 있어 날개 잃은 학처럼 외로워 보이지만, 이 공북문은 긴 성벽이 둘러처져 안온해 보여.”
“정말 진주성 성벽과 어우러진 자연의 모습은 안정적이고 대담하지? 이 성벽 따라 나 있는 1.2km 둘레길에는 연인, 사색 등의 테마별 산책로가 진주성 여행의 묘미를 배가시킬 거야.”
성으로 들어가는 길은 다양한 문을 지난다. 성의 정문격인 공북문을 비롯해 촉석문 등 북쪽으로 난 여러 문을 지나면 보물들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게 바로 영남포정사야. 1925년까지는 경남도청이 진주성 안에 있었으며 성내의 영남포정사는 도청이 부산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도청의 정문으로 사용되던 문이다.
“성 안팎은 물론 성 바깥에 진을 친 병사들까지 지휘했던 문, 그래서 많은 성의 축성 모델이 되었다는 북장대도 내성 북쪽 끝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니 좀 더 가보자.”
1592년,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성 싸움을 승리로 이끈 진주목사 김시민 장군의 공을 새긴 김시민 장군 전공비도 이곳에 있다.
“김시민 장군이 이끄는 군사와 성민이 힘을 모아 왜군을 물리친 그의 공을 기리고 있어.”
“이 비문에는 1천명이 되지 않는 병력으로 10만명의 대군을 물리쳤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왜군 2만을 3천800명 병사로 물리쳤다는 기록도 있지. 뭐, 사실이야 어찌됐든 그의 공은 인정받아 마땅해”
남강의 서쪽 절벽 위에 장엄하게 서있는 서장대는 김시민 장군이 서쪽 병사들을 호령하며 지휘하던 곳이다.
“진양호 쪽에서 성 쪽으로 들어오다가 이 장대를 바라보면 마치 당시 진주를 엄호하던 한 장수의 눈빛이 살아 전해지는 듯해.”
“특히 가을이면 절벽 위 장대 지붕의 목조 기와가 단풍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지?”
창렬사는 서기 1607년 경상도 순찰사 정사호가 창건한 사액사당으로 김시민 장군을 비롯한 임진년과 계사년에 순국한 39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이 사당은 임진왜란 당시 제2차 진주성전투에서 순절한 분들의 신위를 모시고 있는데, 그 시작이 선조 때였어.”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세월이 흐른 후 아무도 돌보는 이들이 없어 퇴락했다지?” “맞아. 일제 당시 그것을 애석하게 여긴 진주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이곳을 중건해냈어.”
진주 8경 중 제1경을 자랑하는 촉석루는 벼랑 위에 높이 솟아 있다 하여 이름 붙여졌듯이 남강과 진주성, 의암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천하의 절경을 연출하고 있다.
“우아하고 위엄 있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지?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로 손꼽히는 저 촉석루는 미국 CNN이 ‘한국 방문 시 꼭 가봐야 할 곳 50선’으로 꼽기도 했어.”
“그래? 하긴, 이 누각은 전란 시에는 지휘본부로 사용됐지만, 평상시에는 과거를 치르는 시험장으로 활용됐어. 이곳에서 얼마나 멋진 시조가 탄생했을지 감히 상상이 안 가.”
진주성 일대는 의기 논개가 분연히 적장을 껴안고 남강에 몸을 던져 그 한을 되갚은 충정의 장소로 기억되는 곳이다. 그러한 논개의 낙화는 촉석루에서 가장 잘 관찰된다.
“아깝게 쓰러져간 목숨들을 슬퍼하며 분루를 삼킨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이곳 의암에서 홀연히 몸을 던져 충정을 다했지. 이를 지켜본 촉석루는 유유히 흐르는 남강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크게 애통해했을 거야.”
“그래서 논개는 진주의 또 하나의 이름으로 남아 있는 걸 거야.”
촉석루 뒤편으로 가면 진주를 지킨 인물들을 기리는 의기사가 있다. 의기사는 촉석루, 의암과 함께 논개 이야기로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
“이곳에 논개의 영정과 신위를 모시고 그의 넋을 기리는 사당이 있다지?”
“맞아. 비단 바탕에 천연채색으로 된 정면 전신입상의 저 논개 영정이 사실 표준 영정으로 봉안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야. 논개 영정은 과거 한 시민단체가 친일파가 그린 것이라며 뜯겨져 나갔던 거야.”
10만 왜군과의 전투에서 무수히 많은 민관군이 목숨을 잃은 호국성지 진주성. 과거 왜군과의 치열했던 격전과 아픔을 뒤로 한 채 지금의 진주성은 그저 평화롭기만 합니다. 계절 따라 꽃이 피고 단풍이 지고 눈이 쌓이는 그 오랜 세월을 지내오면서 진주성은 이제 찾는 이들에게 지친 마음을 풀어놓은 듯 역사와 문화적 향취를 즐기는 공간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임진왜란 3대 승첩지인 이곳을 느린 걸음으로 돌아보는 건 여전히 진주의 심장을 더듬는 것과도 같음을 느낍니다. 당신은 이곳에서 진주의 맥박과 숨결을 느낄 수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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