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당시의 슬픔, 우리 민족의 고난을 담은 소설 한 편이 있습니다. 전라남도 보성의 벌교읍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기막히고도 가슴 절절한 이야기는 아직도 벌교천을 따라 흐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아픔이 너무나 크기 때문일까요?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모두 알기에는 조금 힘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바로 소설 ‘태백산맥’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태백산맥 문화거리입니다. 벌교천을 따라 걸으면 태백산맥 속 아픔을 모두 이해할 수 있을까요? 오늘의 <트래블아이>미션은 ‘소설 태백산맥의 아픔을 따라 걸어라!’입니다.
부용교의 좁은 다리 옆으로 낡은 돌난간이 세워져 그 오래된 정취를 더하고 있다. 그 앞에 서자 오싹한 기운이 오른다. 이런 오싹할만한 이유가 있다고 하는데?
“소설 속에는 부용교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데, 이곳이 태백산맥 문학기행의 첫 장소가 된 이유는 과연 뭘까?”
“이 다리가 바로 ‘소화다리’야. 소설에서 말하는 총살이 날마다 일어났다는 그곳이지. 그러다보니 나무 아래에 자리한 갈대밭은 내려다보기에도 겁이 나는 걸?”
소화다리는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하나의 통로이며, 아픈 역사를 고증하는 유물이 되었다. 조정래는 ‘태백산맥’에서 이곳을 어떻게 묘사해놓았을까?
“이 다리는 1931년에 건립될 당시 일제에서는 소화(昭和, 일본국왕) 6년이었어. 그 이름을 붙인 것도 못내 서러운데, 이후 여순사건 갈등이 극에 치달았을 때는 더했지.”
“맞아. 총살이 이 다리 위에서 자행되었지. 소설에서도 ‘소화다리 아래 갯물에고 갯바닥에고 시체가 질펀허니 널렸는디, 아이고메 인자 징혀서 더 못 보겄구만이라’라고 했잖아.”
밤과 아침 사이, 낮과 밤 사이, 어둠과 빛 사이의 그 어정쩡한 시간에 벌교의 작은 포구에 다다르면 아름답고도 이유 없이 슬픈 감정이 일렁인다.
“이제는 쓸모를 다 한 낡은 두 척의 배만이 포구 한쪽에 묶여 있었구나. 하지만 언제든 배들을 껴안을 수 있는 포구에는 온 힘을 다해 밧줄을 당기는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어.”
“아픈 역사를 보냈기 때문일까. 벌교라는 이름은 꼬막의 씨알처럼 굵고, 유명한 풍문의 주먹처럼 단단해 보여. 꼬막과 주먹이라는 큰 상징은 벌교를 독보적으로 만들어주었지.”
어머니의 손으로 한참을 주물러줘야 할 것만 같은 참 아픈 자리 벌교 포구로 가면 갈대숲 쪽에서 구슬픈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데, 어떤 소리일까?
“벌교 포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드넓은 갈대숲은 흘러나온 갯물을 빨아들이며 지금까지도 높이 자라 있구나. 잠시 귀기울여봐. 바람이 불면 희한한 소리가 들리지 않아?”
“그러게,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 같기도 하고. 갈대 소리, 솔바람, 대숲 소리는 인간의 마음을 정화시켜 준다는데, 유독 벌교의 갈대에선 울음이 들리는 것만 같아.”
소화다리와 중도방죽을 지나 태백산맥문학관과 현부잣집, 소화의 집을 보면 얼추 문학기행을 마친 셈이다. 유리탑을 거쳐 걷는 이 길이 소설 태백산맥 속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와, 소설 태백산맥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구나! 과연 어떤 이야기들이 2층이나 되는 전시관을 가득 메우고 있을까?”
“이곳에는 조정래 작가가 직접 손으로 쓴 육필 원고도 전시되어 있다고 해! 태백산맥의 흔적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겠어.”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한 별교읍내로 들어서면 소설태백산맥문학거리에 다다르게 된다. 정갈한 소화의 집을 바라보면 당장이라도 소화와 정하섭이 뛰어 나올 것만 같은데.
“이 소화의 집은 작가의 집을 모델로 해 복원한 것이라고 해. 게다가 소설 속에도 등장하는 곳이니, 그 가치가 더욱 높아 보여.”
“현부자네 집은 말 그대로 웅장한 것이 정말 부자의 집 같아. 그런데 보통 한옥의 모양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지어진 것일까?”
검은 판자가 촘촘히 붙은 독특한 2층집. 조금은 음침한 기분이 든다. 별교의 부조화에 한 몫을 하는 이 건물은 대체 어떤 곳일까?
“벌교읍내의 일본식 가옥 중에서도 가장 보존이 잘 되어있는 것 같아. 수난과 고난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이 같아!”
“맞아. 소설 속에서 일본군의 안식처로 표현 되었던 이곳은 실제로 ‘보성여관’이라는 곳이라고 해. 일본인들의 중심 거리에 위치한 여관이었지.”
난간조차 없이 뻗은 무지개 돌다리의 모습이 운치 있다. 벌교의 상징으로 불린다는 이 다리는 소설 속에서도 은밀히 드러난다는데?
“벌교라는 이름의 유래를 그대로 구현해 낸 것이 바로 이 홍교라고 할 수 있어. 해석해보면 ‘뗏목다리’라는 것인데, 벌교천을 건너는 뗏목이 바로 이 홍교인가봐.”
“벌교천을 중심으로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고 있는 곳이 바로 이 벌교읍인 것 같아. 물론 아픈 역사의 잔재들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소설 속에 존재하는 곳이 이렇게나 명확히 남아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아픈 역사와 시대, 그리고 이 곳 전라남도 순천의 벌교를 배경으로 펼쳐진 소설 태백산맥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녹차의 향기가 풍기고, 꼬막을 캐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한 이곳에도 아픈 역사의 흔적이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아픔이 지금의 여러분을 있게 했음을 깨닫게 될 이곳으로 여행을 떠나보시는 것은 어떤가요? 정갈하게 가꾸어진 그 흔적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거시기, 머시기’는 이도 저도 아닌 흑백의 경계를 넘어선 애매하고 이상한 전라도 말입니다. 대체 그 속뜻은 뭘까요? ‘거시기’는 이미 알고 있지만 설명할 수 없을 때 그 답답함을 나타내는 주어로, ‘머시기’는 언어로는 줄긋기 어려운 삶의 의미를 행위의 술어로 대략 쓰입니다. 아슬아슬하게 곡예 넘듯 줄타기하는 이 두 단어를 가지고 서로의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고 위로해온 시장이 있습니다. 그 속에서 광주인의 인생고락도 들여다볼 수 있을까요? <트래블아이>의 오늘 미션은 바로 ‘양동시장에서 광주인의 진짜 삶을 들여다보라!’입니다.
광주역에서 양동시장으로 이동한다. 5·18 민주화운동 때 시민군에 식량을 제공했던 이 시장은 전남 최대의 상설시장으로 변모를 거듭했다. 지금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양동시장이 그간 여러 차례 보수와 신축을 통해 현대식으로 깔끔하게 정리됐구나. 시내 번화가의 모던한 느낌 역시 시간의 변화에 따른 풍경이겠지?”
“예전에 처음 광주에 와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이 바로 이곳 양동시장이었는데, 왠지 이곳 시장에서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들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100여 년 전까지도 이 자리는 그저 갈대밭이었으나 일제 때 큰 장이 서기 시작했다. 그때 축구장, 씨름판도 있었다. 당시 이 장터를 명명했던 이름도 참 다양했다는데?
“‘샘몰’, ‘천정’, ‘동명’ 등등 이 시장자리는 왜 그리 이름도 많았는지.”
“그래도, 여러 직종에서 드센 사람들이 모이는 데라 그런가, 일제가 동명(洞名)이라고 이름짓자마자 그 잔영을 없애려고 양동(良洞)이라고 바로 바꿔 불렀다지?”
“지역적 특성에 착안했다는데, ‘양동’은 무슨 뜻이지?”
1910년 광주교 아래서 노천시장으로 출발한 양동시장. 농수산물, 공산품, 식품 등이 주로 팔리지만 이 시장에서 제일 인기 좋은 물건은 따로 있다는데?
“신혼용 침대와 12자짜리 장롱을 합해 100만원? 어떻게 이렇게 싸진 거죠? 그런데 예전보다 활기는 좀 떨어지네요.”
“아, 근처에 백화점 들어서면서부터 거리에 냉기가 팍팍 흐르제. 늦게까지 술 마시는 사람도 없고. 사람 없는 거 보면 모르겠소.”
1932년 지금의 사동에 처음 장터가 생겨난 양동시장은 현재 호남 최대의 시장으로 성장했다. 그 변화의 과정 속에 품게 된 다양한 이야기들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국밥집’으로 알려진 하나분식이 이곳에 있다는 거 알고 있었니? 대선 5일전 시장을 방문했을 때 이곳의 국밥을 남김없이 비웠다해 유명해졌지.”
“어디 그뿐일까. 여기가 대인시장과 함께 광주시민에게 주먹밥, 약품 등을 제공하며 지원도 많이 했지. 지금 이 시장자리가 쫓겨난 곳이라는데, 혹시 그 사연을 알고 있니?"
양동시장 상인들은 1980년 5월에도 언제 계엄군에게 보복당할지 모르는 이들에게 나눠준 주먹밥.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이라는 심정으로 주먹밥을 만든 것일까?
“술에라도 취해 볼거나. 술집 색시 / 싸구려 분 냄새라도 맡아 볼거나 /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
“신경림의 ‘겨울밤’이구나. 광주가 무참히 살육 당했지만 끝내 다시 살아난 까닭은 정말 이 지고지순한 주먹밥 때문이었을까?”
굽이쳐 흐르던 광주천을 직강화 하천으로 만들고 광주천 주변에 근대식 공장과 운동장이 만들어지던 새마을운동 시기, 이곳 광주사람들에게는 또 어떤 삶이 있었을까?
“그땐 부모님들에게 고난의 시작이었지. 시장에서 메리야스나 플라스틱 용기 같은 것들을 사서 머리에 이고 마을을 돌며 외상을 주고 추수 뒤에 받는 방식으로 장사를 하셨으니까.”
“맞아. ‘명색이 가장이라는 사람이 쯧쯧쯧~’ 하며 겨울에 동상 걸려 한 걸음 떼기도 어려운 몸을 이끌고 다니는 어머니를 보다 못한 집안 어른들이 아버지를 크게 꾸짖을 정도였으니.”
양동시장 신용협동조합 옆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가면 ‘양동문화센터’가 있다. 이곳에는 자기 둥지를 떠나와 시장옥상에 새롭게 둥지를 튼 그들만의 공간이 있다는데?
“말 안 통하는 짐승이야 삼시 세끼 밥만 챙겨줘도 되지만 이역만리까지 시집 왔응께 여그서라도 말 배워 편하게 살아야지라. 보믄 짠해 죽겄소.”
“정말 애틋한 며느리와 시어머니 관계야. 가족은 서로에게 그런 존재기도 하네.”
“무지개마을이 물건만 파는 가게인 줄 알았는데 공방도 마련되어 있구나. 작은 쉼터 같아.”
전라도 사람을 닮아 때때로 드세고, 때때로 곰살맞으며, 때때로 서럽고, 때때로 흥에 넘치한 치는 양동시장, 이곳에서 광주만의 리얼리티를 발견할 수 있을까?
“1980년대 군부독재가 레코드판마다 강제로 주입시킨 검열 받은 건전성 짙은 음악은 없지만 독립운동하다 포목장사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의 이야기와 따뜻한 아무 의미 없는 국밥 한 그릇에 담긴 이야기가 한치의 꾸밈없이 좌판처럼 즐비해 있어.”
“그래서 이 시장을 광주 본연의 리얼리티 전당이라고 하는 걸까?”
이 별에 인류가 정착하고 산 이래로 양동시장처럼 독특한 공간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만들어져 사고 팔리는 물건과, 그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 그들이 모인 공간과 그들이 함께하는 시간, 사람이든 물건이든 저마다의 사연을 가득 품고 시장살이를 함께합니다. ‘머시기, 거시기’를 연발하며 웃음도 눈물도 끊이지 않던 세월만큼 강하게 서로를 품고 의지합니다. 전라도 사람을 닮아 때때로 드세고, 때때로 곰살 맞으며, 때때로 서럽고, 때때로 흥에 넘치는 양동시장에서 여러분은 광주의 어떤 삶을 만나고 돌아올 생각인가요?
사람 한 명도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골목길을 걷다보면 마치 이곳만 시간이 더디게 흐른 듯합니다. 그 옛날 고무줄놀이를 하던, 또래들과 소꿉놀이를 하던 골목길엔 켜켜이 쌓인 지난 세월의 티끌만 무성합니다. 최근 많은 이들이 아날로그를 외치며 시간이 멈춘 듯한 골목길을 다시 찾곤 합니다. 부산 동구의 매축지 마을도 시간의 먼지가 그득 깔린 옛 골목길을 간직한 마을입니다. 할머니의 깊은 주름을 닮은 옛 골목의 추억을 느끼고자 한다면 <트래블아이>의 이번 미션, ‘아날로그 감성에 젖어보기’를 주목하세요!
일제강점기 때 바다를 메워 만든 이 마을은 부두에 내린 마부와 말, 짐꾼들이 쉬던 곳으로 마구간을 개조한 가옥들을 볼 수 있다는데, 그 이름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말씀 좀 여쭐게요, 매축지 마을로 가려면 몇 번 출구로 가야돼요?”
“2번 출구로 나오면 가까워, 터널 지나면 육교가 하나 나오는데 육교 건너면 바로 매축지마을이야. 요즘 커다란 카메라 메고 오는 사람들이 많던데, 학생도 그런가보네. 매축지 마을이 왜 매축지 마을인지 알고 가는가?”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정도의 좁은 골목길에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건 당연하다. 좀처럼 펴지지 않는 허리로 빨래를 너시는 할머니께 마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아, 안녕하세요? 동네 좀 둘러봐도 될까요?”“그럼, 멀리서 왔는가? 요즘은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와. 심심하지 않고 좋아. 이 자두 하나 먹고 둘러봐.”
“감사합니다. 저, 할머니 혹시 이 마을에 대해 잠깐 이야기 좀 들을 수 있을까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마을은 한국전쟁 때 피란민의 거주지이기도 했다. 좁디좁은 골목길에 옹기종기 마주한 집들도 다 이러한 이유 때문은 아닐까?
“매축지 마을은 원래 바다였던 곳인데 일제강점기에 군사 목적으로 바다를 메우고 땅을 만들었지. 그 당시에는 부두에 말과 마부는 물론 짐꾼들이 쉬던 곳인데 피난민들이 마구간을 개조하고 마을을 이루면서 판잣집을 짓고 살게 된 거야. 아주 고단한 시작이었지”
“할머니 말씀을 들으니 마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 풍경들도 말이에요.”
오래된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매축지마을은 유명 영화 촬영지나 골목길 등으로 유명해지면서 일부러 이곳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주민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매축지마을을 들르고 간 사람들은 하나 같이 시간이 멈춘 동네 같다, 흑백사진이 어울리는 동네 같다고들 하는데, 할머니는 어떠세요?”
“시간이 멈추긴 멈춘 것 같지, 시내만 나가도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는데, 그래도 요즘 마을이 시끌벅적해서 좋아.”
갑자기 들어선 낯선이의 방문이 반갑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불편하기도 하다는 마을주민들. 반가움은 인사정도로만 건네고 아쉬운 마음은 잠시 접어두자.
“그런데 이렇게 불쑥불쑥 사람들이 찾아와서 불편할 때도 있어. 방음이 시원찮은 동네에서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통에 잠 못 드는 날도 많고. 사진도 막 찍어가고. "
"그래도 다 정 많고 인심 좋은 사람들이라 자네처럼 젊은 학생들이 오면 밥은 먹었나, 찾아오기는 힘들지 않았나 그런 생각부터 들지. 그나저나 저기 벽화는 꼭 보고가, 얼마나 예쁜지 몰라.”
케케묵은 먼지만 가득 쌓인 매축지 마을이 변화하고 있다. 어여쁜 색을 입은 마을은 어쩐지 생기가 돈다. 오래된 마을에서 시간을 함께 걸어보자.
“회색빛으로만 보이던 마을에 알록달록한 그림이 그려지니 생기와 활기가 넘치는 것 같네. 파스텔 색 물감이 오래된 마을의 벽을 허물어 세상과 소통하게 하는 것 같아. "
"영화촬영지라 그런지 영화 관련된 벽화도 보이고 실감나는 그림에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고 있기도 하고, 할머니 말씀대로 정말 예쁘구나.”
시간이 머물다 멈춰선 동네, 매축지 마을은 흥행영화 <아저씨>와 <친구>의 영화 촬영지로 유명하다. 영화의 한 명장면을 떠올려보는 것도 추억의 일부가 되지 않을까?
“저기, 죄송한데 저랑 제 딸 사진 좀 찍어 주시면 안 될까요? 저희도 한 장 찍어드릴게요.”
“아, 예. 여기가 영화 촬영지인가 보네요. 비교적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거 보니까.”
“네, 다른 데는 몰라도 여기서는 꼭 한 장씩 사진을 찍고 가더라고요. 다들 영화 속 주인공과 한 컷 찍으려고 줄을 서요.”
슬레이트 지붕, 손때가 가득 묻은 살림도구들, 가지런히 널려있는 빨래들에서 유년시절의 깊은 추억 한 조각을 발견한다. 반가운 마음을 마을 한 편에 남겨두고 돌아선다.
“그저 오래된 옛 마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마을에 대한 이야기나 손때 묻은 풍경들이 잊고 지내던 오래된 일기장같이 정겹구나. 더디지만 조금씩 시계가 돌아가는 것 같아 좋다던 할머니의 말씀이 귓가에 자꾸만 맴돈다. "
"돌아가는 발걸음이 아쉬우니 유년시절의 기억을 널려있는 빨랫줄에 살짝 걸어두고 가야겠다.”
작은 구멍가게와 좁은 골목길, 희끗한 머리카락이 정겨운 할머니의 웃음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부산 동구 매축지마을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한참을 바라보게 만드는 힘. 마을사람들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소소한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시간의 두께를 조금씩 걷어내고 세상과 소통하는 매축지 마을. 화려한 네온사인에 지쳐 단출한 흑백사진이 그립다면, 아기자기한 어울림이 있는 매축지마을에서 아날로그 감성에 흠뻑 젖어보는 건 어떨까요?
서울에 살지 않더라도 누구나 그 이름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곳, 용산역! 전자상가로 유명한 용산역이지만, 용산역을 빠져나와 만날 수 있는 볼거리가 가득하다는 것을 알고 계시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전쟁기념관에서 한강철교를 지나고, 국립중앙박물관과 용산가족공원을 거쳐 서빙고 나루터에 이르는 동안, 용산을 대표하는 볼거리들을 가득 만날 수 있으니 즐겁지 않을 수 없겠지요? <트래블아이>가 드리는 오늘의 미션, ‘용산의 볼거리들을 만끽하라!’입니다.
용산구에서 꼭 가 보아야 할 곳 중의 하나인 전쟁기념관. 건물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그 위용을 느낄 수 있다는데, 어떤 곳일까?
“전쟁기념관에는 우리나라 대외항쟁사와 국난극복사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 담겨져 있어.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지.”
“과거에 대한 기억이 미래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기에 더욱 의미가 있지 않을까?”
전쟁기념관에서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는 길에 한강철교에 들러보도록 하자. 용산구 이촌동과 동작구 노량진동을 잇는 이 다리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까?
“한강철교는 한국전쟁 때 크게 폭파되었었다고 해. 1957년부터 복구를 시작했고, 1995년에 이르러서야 오늘날의 모습을 갖출 수 있게 되었지.”
“평소 아무 생각 없이 지나던 다리인데, 여기에 담긴 역사를 알고 나니 특별하게 느껴지는데? 전쟁 기념관에 들렀다 온 뒤라 더욱 더 그런 것 같아.”
국립중앙박물관에 입장하기 전, 거대한 호수를 만날 수 있다. 박물관 앞에 호수를 조성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이 호수의 이름은 거울못! 여기에는 배산임수의 이치가 담겨져 있다고 들었어. 박물관 뒤쪽으로는 남산이 펼쳐져 있잖아? 그러니까 앞쪽으로는 이 호수를 조성한 거지.”
“도심 속에서 배산임수의 이치를 만날 수 있다니, 신기한데? 아마 이 박물관을 조성한 사람들은 아주 생각이 깊은 이들이었을 거야.”
국립중앙박물관은 그 형태가 몹시 아름답기로도 유명한 곳이다.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표현했다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외형도 놓치지 말고 감상해 보자.
“박물관 하면 흔히 사각형의 건물을 떠올리게 되는데, 우리나라 최고의 박물관은 역시 다르구나! 전시관에 들어서기 전부터 두근거리는데?”
“세세한 부분 하나까지 신경 쓰면서 설계한 것이 느껴져. 거울못도 그렇고, 이 건물도 그렇고! 놀라운 것 투성이인 걸?”
국립중앙박물관을 제대로 둘러보려면 하루가 모자랄 정도이다. 박물관 내부를 돌아보는 동안 우리나라의 거대한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될 것.
“이 수려한 모습! 아름다운 곡선을 좀 봐. 좀처럼 눈을 뗄 수가 없는데? 옛 장인들의 숨결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아.”
“이쪽에 있는 것도 마찬가지야! 이렇게 아름다운 문화를 이룩한 것이 우리 선조들이라니, 정말 자랑스러워.”
3층에 마련된 대형불상 전시실은 국립중앙박물관 안에서도 인기 있는 전시장 중 하나이다. 이 전시실에 앉아있다 보면 절로 고요한 명상에 잠기게 될 것이다.
“아, 이건 국립중앙박물관 안에서의 가장 특별한 경험으로 남을 것 같아. 의자에 앉아있으니 이 커다란 불상들의 시선들이 하나같이 나를 향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정말 그렇구나. 잠시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눈을 감아 보자. 마음속으로 가만히 소원을 빌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일단 한 번 국립중앙박물관을 찾게 되면 시간이 어떻게 지나는지 알 수가 없게 된다. 그만큼 볼거리가 가득하기 때문.
“오늘 가 보아야 할 곳이 많다는 것이 아쉬운 일이 될 줄은 몰랐는데? 아직 찬찬히 둘러보지 못한 것들이 많은데, 아쉬운 마음이 가득해.”
“하하, 뭘 그렇게 고민하는 거야. 언제고 다시 찾아오면 되는 일 아니겠어? 이 박물관 안에 있는 것들을 모두 보기 위해서는 시간이 아주 많이 필요할 테니까 말이야.”
국립중앙박물관의 인근에는 용산 가족 공원이 위치해 있다. 1만 5천 여 그루의 나무와 공원 안을 유유히 산책하고 있는 새들의 모습에 힐링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른다.
“와, 이런 곳도 있었구나. 너무 많은 것을 봐서인지 머리가 조금 어지러웠는데, 머리를 식히기에는 정말 딱인데?”
“여긴 원래 주한미군사령부의 골프장으로 쓰이던 곳이라고 해. 신기하지 않니?”
“그러게 말이야. 자, 이제 마지막 목적지만 남았네! 충분히 쉬고 다시 떠나 보자고!”
트래블아이와 함께 하는 용산구 탐사, 그 마지막 목적지는 서빙고입니다. 조선 후기에는 나루터로서 제 역할을 활발히 했던 곳이지만, 후에 반포대교가 생기며 나루터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서빙고 나루터에 담겨 있는 역사를 충분히 알아보고 가면, 이 터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볼거리가 가득한 용산구, 그 여정은 어떠셨나요? 그저 구경하기보다는 많은 것을 알고자 하는 마음을 배낭에 함께 챙겨가는 것이 더 알찬 여행을 꾸며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경복궁의 서쪽에 위치한 서촌은 종로구의 다른 골목들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곳입니다. 때문에 관광 명소가 된 다른 곳에 비해 관광정보 면에 있어 조금은 친절하지 않은 것도 사실. 북촌의 깨끗한 한옥에 익숙해진 여행자라면 서촌의 사람냄새 진한 풍경이 낯설게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서촌의 아름다운 분위기를 한 번 직접 보게 되면, 다시 찾고 싶어 언제고 마음이 두근거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트래블아이>가 드리는 미션! ‘서촌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목을 찾아라!’
서촌에 직접 들어서기 전, 통인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서촌이 통인시장과 닮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
“이렇게 사람 냄새 가득한 전통 시장을 보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어. 그런데 이곳, 조금 독특한 것 같지 않니?”
“하하, 그러게 말이야. 곳곳에 재치 넘치는 물건들이 눈에 띄어. 홍보 문구도 그렇고, 가게 문에 쓰여진 글씨도 그렇고! 왠지 서촌은 아주 재미있는 곳일 것 같지 않니?”
통인시장의 재치는 서촌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골목골목에 배치된 재치 넘치는 물건들이 눈길을 사로잡을 것이다.
“저 상자를 좀 봐! 서랍장 같기도 하고⋯⋯. 저게 뭐지? 가까이 가 보자.”
“글씨들이 잔뜩 써져 있는데? 어디 보자, 영추문, 통의동 우체국, 경복궁역⋯⋯.”
“아! 이정표야! 하하! 버려진 서랍장에 글씨를 써 이정표로 만들다니, 정말 재미있는데? 물건 하나하나에 이야기를 담아 놨구나!”
서촌의 벽에는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사람들의 자취가 남겨져 있다. 곳곳에 볼거리가 가득하니, 심심할 틈이 없을 터.
“이것 좀 봐! 색색으로 찍힌 손바닥 자국이 색다른 느낌을 주는데? 혹시 이곳이 서촌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목이 아닐까?”
“예쁘기는 하지만 벌써 판단하기에는 아쉬워! 서촌이 간직한 수많은 이야기들을 아직 절반도 둘러보지 않았는걸!”
벽화마을은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꾸며진 경우가 많지만, 서촌의 벽화는 조금 다르다. 그 특별한 면모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벽화라고 하기에는 왠지 좀 부족한 느낌인데?”
“아! 자세히 들여다 봐! 이건 아이들의 그림이야. 학교 이름과 아이들의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어. 이걸 그린 아이들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기회가 된다면 나도 서촌에 근사한 그림 한 점을 남겨두고 싶은데?”
서촌에는 현대적인 모습과 근현대적인 모습이 공존하고 있다. 붉은 벽돌과 기와, 담쟁이 사이를 걷는 동안 저도 모르게 추억 여행을 하게 된다.
서촌에는 현대적인 모습과 근현대적인 모습이 공존하고 있다. 붉은 벽돌과 기와, 담쟁이 사이를 걷는 동안 저도 모르게 추억 여행을 하게 된다.
“정말 그래! 내 기억 속에 있는 골목도 이곳과 비슷한 것 같아. 어렸을 때의 추억들이 머릿속에 절로 떠오르고 있어.”
서촌에는 낯익은 모습들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골목골목마다 색다른 풍경이 펼쳐지니, 서촌 최고의 매력을 꼽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와, 이 골목은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조금 전에 보았던 골목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잖아? 서촌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목을 정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어디에 한 표를 주어야 할지 알 수가 없어!”
“그러게 말이야. 빨리 다른 골목들도 둘러보도록 하자.”
서촌에 처음 가보는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길을 잃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꼭 당혹스러운 일만은 아니다. 헤매면 헤매는 대로, 서촌 여행은 계속된다.
“이 계단은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 걸까? 다리가 아프기도 하지만, 꼭대기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어 견딜 수가 없어.”
“그러게 말이야. 정말 독특한 매력이 있는 동네인 것 같아.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그대로 엿보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니?”
서촌의 낡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어느 새 말이 없어지게 되곤 한다. 서촌이 주는 추억 가득한 분위기에 젖게 되는 것.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것 같은 신비로운 분위기가 정말 마음에 들어. 과거로 여행을 떠났다가도 금방 현대로 돌아오게 되지 않니?”
“정말 그래. 이제 서촌 여행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네. 이 골목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가 궁금하지만, 조금만 천천히 걷기로 하자.”
서촌을 여행하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잊고 있던 추억의 골목들과, 추억 속의 사람들이 자꾸만 마음을 노크하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되지요. 그래서 몇 번이고 서촌을 다시 찾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촌의 꼭대기에 오르면 종로의 풍경이 한 눈에 내려다보입니다. 다시 삶 속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서촌을 떠나는 발걸음이 자연스레 느려지는 것은, 앞으로도 쭈욱 펼쳐질 여러분의 여행길에 청신호가 밝혀졌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5일장을 구경하려면 꼭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에 가야 할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서울에서도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있는 경기도 성남 모란시장이 바로 그런 곳입니다. 매월 끝자리 숫자가 4, 9로 끝나는 날이 장날인 모란시장은 지난 1960년대 생성되기 시작해 지금은 성남 시민은 물론 인근 서울에서도 일부러 찾아올 만큼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 느낄 수 없는, 사람들 사이의 정이 느껴져서가 아닐까요? 그래서 <트래블아이>의 이번 미션은 ‘대형마트와 다른 모란시장의 손맛을 체험하라’입니다.
강남역에서 30여 분 떨어진 곳에서 5일에 한 번씩 모란시장이 열린다. 분당선 모란역에 내려서 걸어서 5분이면 도착하는 이곳. 사람들은 왜 이곳에 몰려들까?
“대형마트 가면 편안하게 살 수 있는데, 왜 굳이 모란시장까지 오자는 거야?”
“모란시장은 학교 교과서에도 나올 만큼 유명한 곳이야. 그만큼 배울 점이 많고 와 볼 가치가 있다는 것이 아니겠어? 대형마트와 달리 이곳에선 물건을 살 때 물건 파시는 분과 손님의 대화는 필수야.”
한 때 일본 원자력발전소 사건이 터지면서 일본산 수산물을 금기시하는 때가 있었지. 그때도 성남모란시장은 손님들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는 품질 보증제가 있는데, 재래시장인 모란시장 물건은 어떻게 믿을 수 있지?”
“걱정하지 마. 대형마트이든 재래시장이든 손님들을 지속적으로 유치하기 위해선 스스로 신뢰를 주는 수밖에 없거든. 그러기 위해선 상인 자신은 물론 손님들 또한 속이지 않는 건 필수야. 모란시장 상인들 또한 손님들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구.”
모란시장은 3천 여평이 넘는 넓은 부지에서 열리니, 어떤 것들을 파는지 미리 알아두고 가면 좋다. 무려 13개의 구역이라니, 어떤 구성인지 궁금한데?
“재래시장인데도 물건 종류가 다양하다구? 어떤 종류가 있는데?”
“모란시장은 총 13개의 구역으로 구분돼 있어. 화훼부, 잡곡부, 약초부, 의류부, 신발부, 잡화부, 생선부, 야채부, 음식부, 애견부, 고추부, 가금부랑 나머지 것들을 파는 구역. 대형마트는 구역별로 이동할 때 천장에 부착된 간판을 보고 찾아다녔는데, 이곳에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찾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네.”
시장은 장보러 오는 사람들만 오는 곳은 아니다. 장터에서 파는 음식은 장 볼 일 없는 사람들에게도 매혹적이다. 특히 따뜻한 보양식 한 그릇은 하루를 버틸 원기를 준다.
“저 흑염소 간판은 뭐야? 모란시장에서 흑염소도 팔아?”
“흑염소는 예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보양식으로 인식돼 왔어. 민속장인 모란시장도 예외는 아니지. 모란시장에서 파는 백숙 등 각종 보양식은 몸보신 좋아하는 손님, 특히 남자 손님들에게 꽤나 매력적일 것 같아. 보양식집에서 나오는 구수한 냄새는 대형마트에선 맡기 힘든 냄새 아닐까?”
안주거리가 넘쳐나는 만큼, 모란시장에서는 거하게 술에 취한 어르신들의 모습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이 또한 모란시장의 특징이라고?
“정말 그런 것 같네. 시장이라고 해서 물건만 파는 줄 알았는데, 먹을 곳도 많은 것 같아.”
“그렇지. 특히 모란시장 안주골목은 고된 하루를 보내고 술 한 잔 걸치러 온 남자손님들이 비교적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곳이야. 시장이 주는 특유의 편안함이랄까, 푸근함이 있으니까.”
모란시장 뒷골목으로 돌아서면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40개가 넘는 기름 가게들이 모여 있는 기름골목이 모습을 드러낸 것. 이곳의 기름에 특별한 것이 있다는데?
“이게 무슨 냄새지? 어디서 참기름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맞아. 모란시장에는 여러 가지 코너가 있지만, 그 중에 참기름만 파는 코너도 있어. 여기가 바로 그곳인데, 참기름 들기름 등 다양한 기름을 동시에 팔고 있지. 구수한 기름 냄새를 맡으니 식욕이 돋는데? 또 마치 시골 외할머니집 마당에 온 것처럼 기분이 편안해져.”
시장 물건 중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제수 음식이다. 일년 중에도 여러 번 제사를 지내는 우리나라답게, 민속장인 모란시장에도 제수음식을 팔고 있다.
“여기는 동태포를 파는 곳이네? 이게 말로만 듣던 어물전인가?”
“어물전 맞아. 그런데 어물전이라 해서 생물 생선만 파는 것은 아니야. 대부분의 시장이 제수음식을 팔 듯, 이곳 모란시장 역시 동태포와 같은 제수음식을 판매하고 있다고. 어떤 게 제일 싱싱한지 골라볼까?”
요즘에는 삼계탕, 백숙 등 닭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도 많이 있다. 그러나 모란시장에는 씨암탉을 팔고 있어서, 직접 집에서 닭을 ‘잡아’ 요리하려는 사람에겐 제격이다.
“우와 웬 닭이 있네? 집에서 기르는 닭인가?”
“에이, 척 보면 몰라? 집에서 닭 잡아 요리할 때 쓰는 씨암탉이잖아. 옛말에 사위가 오면 씨암탉 잡는다는 속담도 있잖아. 대형마트에는 잘 손질된 닭이 포장용기에 담겨서 판매되고 있는데, 모란시장에 오니 살아있는 닭도 볼 수 있어 신기하구나.”
언젠가부터 서울, 지방 구분 없이 대형마트와 백화점이 곳곳에서 성업 중입니다. 이에 따라 어렸을 때부터 마트 또는 백화점에서 장보는 습관이 들어버린 사람들이 많은데요, 이 같은 추세는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우리나라는 예부터 민속장이 발달했습니다. 민속장에 가면 마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사람들 사이의 정, 푸근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더욱 사람 냄새 나는 대화도 나눌 수 있지요. <트래블아이>를 따라 재래시장 투어 떠나보는 것, 어떠세요?
전라남도 여수시 만흥동에 위치한 ‘만성리검은모래해변’은 독특하게도 검은 모래가 해안가를 뒤덮고 있어 이색적인 멋을 자아냅니다. 하지만 이곳이 흥미를 끄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검은 모래가 신경통과 혈액순안 등에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체 검은 모래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기에 그런 효자노릇을 한다는 걸까요? 어떻게 검은 빛을 띠게 됐는지 이곳 모래의 출처 역시도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만성리 해변 모래의 비밀을 밝혀라!’ 이것이 오늘 <트래블아이>의 미션입니다.
만성리 해변의 검은 모래는 국내에서 유일무이한 명소이다. 복원공사를 거쳐 풍부한 모래를 간직한 옛 모습을 되찾은 해변을 처음 마주한 느낌은 어떨까?
“이 해안의 모습은 남해의 해변들처럼 아름답고도 정말 특별해. 1㎞에 달하는 해변을 이루고 있는 모래 덕분에 다른 곳보다 이른 시기에 ‘모래 찜질철’이 시작되는 거겠지.”
“하지만 70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조류와 재해 등으로 이 모래도 상당량 유실돼 그 명성을 잃어 왔어. 생각하면 이런 풍경과 마주하는 것도 어떤 특혜가 아닐까?”
해변에서 더위도 피하고 추억도 만들 수 있는 남도 여행. 하지만 만성리 해변은 물속보다도 후텁지근한 모래 속 찜질에 더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 진풍경을 이룬다.
“이곳 모래가 각종 신경계통 질환에 좋다지?”
“그래서 저렇게 모래찜질에 열을 올리는 건가? 그러면 내 질환에는 해당사항은 없겠군.”
“아니. 이곳 모래는 부인병 치료에도 신통방통하다고 입소문이 났는데, 아직 모르는 거야?”
“거기까지는 잘 몰랐지. 히야~ 고것 참 기특한 놈일세.”
모래가 온몸으로 열을 발산하는 시간대는 따로 있다. 강한 햇볕을 받은 모래가 멈춰 있던 동화작용을 시작하면 모래찜질을 시작하자.
“이 모래가 신경통, 혈액순환, 노폐물 배출에 효과가 있다지?”
“그런데 말이지, 나는 검은 모래가 몸에 주는 좋은 기운을 잘 느끼지 못하겠어.”
“아직 태양이 중천을 지나온 것도 아니니 그럴 수밖에! 태양이 이글이글 타올라야 하니 조금 더 기다려 봐.”
원적외선으로 불리는 모래열이 발산되기 시작하면 다량의 원적외선을 내뿜는다. 이때 우리 몸에 좋은 기운을 내어주는 모래의 원리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지금이야. 지글지글, 검은 모래가 열을 뿜기 시작했어!”
“이때 모래가 발산하는 건 단지 열뿐만이 아니지. 원적외선이 함께 나오면서 모래가 함유한 철 성분을 우리 몸에 전해주는 거야.”
“아~ 그렇구나! 정말이지, 이거 천연 찜질방이 따로 없는데!”
단지 맨발로 뜨거운 모래사장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몸이 노곤해지는 기분이 드는 만성리 해변. 검은 모래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색깔 외에도 특별한 뭔가를 찾게 된다.
“이 알갱이를 자세히 봐봐. 검은 데다 일반 모래보다 4~5배 가량 굵어. 모래찜질은 가능해도 모래성 쌓기는 애초에 포기하는 게 좋겠다.”
“바로 그게 이 모래가 명물이 될 수 있었던 이유인 거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굵은 모래 덕분에 햇볕 전도율도 높을 수 있다고.”
만성리 해변에서는 ‘검은 모래가 눈뜨는 날’을 맞아 혈액순환을 돕는 검은모래 찜질 행사가 열리는 날 그 진가를 맛볼 수 있다.
“검은 모래가 눈뜨는 날? 모래에 눈이 있어서 이르는 말은 아닐 텐데?”
“모래 속 깊이 쌓였던 뜨거운 지열이 모래 위로 올라오는 때를 말하는 거지.”
“와~ 그때가 언제인데?”
“바로 매년 음력 4월 20일이야. 오늘을 음력으로 치면 얼마나 남은 걸까?”
만성리해수욕장이 목적지라면, 1926년 일제가 호남의 미곡을 군량미로 비축하기 위해 뚫은 마래터널도 눈여겨볼 거리다.
“여기가 바로 마곡터널이야.”
“벽면의 낡은 흔적들을 좀 봐. 쇠망치와 정으로 쪼아 급하게 만든 모습이 역력해.”
“맞아. 그런데, 여기는 1차로인데도 막힘이 거의 없는 것 또한 특징이라면 특징이야. 차량이 왕복 운행는 중에 터널 중간중간 대기소에서 양보하며 가기 때문인가?”
마래터널을 지나 검은모래만성리해변~모사금해변~신덕해변~한구미터널을 오가는 길은 아름다운 해안을 바라보며 달리는 명품 드라이브코스로 잘 알려져 있다.
“마래터널을 지나면서 줄곧 드넓게 펼쳐진 해안도로를 따라가고 있어. 화양면을 지나 끝자락 백야도까지 가는 여정도 탁월한 풍경을 선사했는데, 여기도 그 못지않은걸?”
“정말 그래. 개통되고부터 여수 사람들이 즐겨 찾는 해변은 죄다 이 도로 위에서 만날 수 있게 됐다더군.”
만성리해변을 지나는 해안도로는 수려한 경관으로 누구나 감탄사를 자아냅니다. 특히 해변에 서서 오동도와 여수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힐링이 되는 곳이지만, 여러 질환에 효험을 보인다는 검은 모래 덕에 모래찜질은 필수코스가 되어버렸습니다. 백사장은 꽤 아담하지만, 바닷물마저 따뜻해 해수욕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올해는 어디로 바캉스를 떠나야 하나, 피서철 많은 인파로 고생깨나 하지 않을까 고민된다면, 만성리 해변으로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그러면서도 조금은 더 특별한 바캉스를 떠나보는 건 어떠세요?
천등산과 지등산 사이에 가로 놓인 고개 박달재는 대중가요 '울고 넘는 박달재'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넘는 우리 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굽이마다 울었소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 노래만 들어봐도 이 고개에 뭔가 가슴 아픈 사연을 품고 있음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연이 있기에 가슴 터지도록 소리치고 울며 넘어야 했을까요? 짐작하셨겠지만, ‘박달재에 서린 슬픈 전설을 찾아라!’ 이것이 오늘 <트래블아이>가 여러분께 드리는 미션입니다.
‘울고 넘는 박달재’가 이 조용한 산기슭의 적막을 깨고 들려온다. 한 개에 노래에 여러 버전을 입혀 똑같은 노래 같지 않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노래를 감상해보자.
“지금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여봐. ‘울고 넘는 박달재’야. 여러 노래를 틀어주는 줄로 착각했는데 계속 들어보니 한 노래를 갖고 여러 버전으로 편곡했네.”
“정말 그렇구나. 이 노래들이 박달재휴게소에서부터 들리고 있어. 기분 좋은데? 산행을 하면서 귀가 이리도 호강한 적은 없었는데 말이야.”
박달재 정상에 다다르기 전 박달재의 옛 지명을 알려주는 ‘이등령’이라는 팻말을 발견할 수 있다. 왜 이 고개 이름이 현재는 박달재로 바뀐 걸까?
“여기 팻말을 봐봐. 이곳을 본래 이등령이라 명명했다고 나와 있어. 양쪽으로 보이는 두 산 가운데에 위치했다고 해서 ‘이등령(二等嶺)’인가?”
“맞아. 박달재의 본래 이름은 천등산과 지등산의 영마루라는 뜻을 지닌 ‘이등령’이었어. 하지만 지금은 박달과 금봉이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가 회자되면서 박달재로 고쳤지.”
마당바위 인근 목굴암이라 칭하는 곳으로 향하면 한 스님이 사후 박달도령보다 조명 받지 못하는 금봉의 처지를 딱히 여겨 만든 암자 하나를 만날 수 있다.
“저 암벽의 여래좌상 표정을 좀 봐봐. 정말 온화하지? 오랜 시간 박달에 대한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지쳤을 금봉의 쓰라린 마음을 달래주고 있는 듯해.”
“정말 그렇네. 저 또한 깊은 애정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 그런데 애초 금봉을 위해 생겨났다는 이곳이 목굴암으로 더 잘 알려지게 된 이유는 뭘까?”
설렘 가득한 표정이 있는가 하면 가슴을 울리는 슬픈 표정의 동상도 있다. 이 표정에서 두 사람의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하는 듯하다. 두 사람은 정말 행복한 결말을 맺지 못했을까?
“과거 급제 후 함께 살기로 굳게 약속하고 한양에 올라온 박달은 결국 낙방했고 금봉을 볼 면목이 없어 평동을 다시 찾지 않았어.”
“그렇게 금봉은 돌아오지 않는 박달을 기다면서 고갯길을 수십 번도 더 오르내렸겠구나.”
“그렇지. 그렇게 목놓아 박달을 기다리다가 결국 마음의 병을 얻고 세상을 떠나게 됐대.”
뚜벅이로 넘기에 험하디 험했던 이 고갯마루 절벽 끝에 서보자. 한서린 금봉과 박달의 생의 마지막 모습이 그려질까?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야. 금봉의 소식을 듣고 슬퍼하던 박달은 그녀의 환상을 보았고 금봉이 이 천길 낭떠러지로 향하자 그녀를 끌어안으려던 박달도 절벽 아래로 떨어지게 돼”
“지금은 박달재에 터널이 뚫려 자동차로 쉽게 오갈 수 있지만 이 험준한 절벽 아래에서 내려다보면 금봉이 고갯마루를 향해 너울너울 춤을 추며 달려가는 듯해.”
정상에서 100m 정도 아래로 내려가면 목각공원이 나온다. 이곳에 두 주인공의 목각동상과 함께 즐비하게 세워진 장승들의 표정에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는 듯하다.
“박달재 목각공원은 정상에는 없는 장승들이 곳곳에 있구나. 전설 속 두 주인공의 극락왕생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아. 지역의 번영과 무사안녕을 기원하기 위함이라는데, 네 말대로 마치 이 정승들이 이루지 못한 둘의 사랑을 위로하고 그 넋을 기리는 듯하구나.”
산 정상과 목각공원에만 두 사람을 형상화해 놓은 것이 아니다. 과연 두 주인공의 캐릭터가 이 일대 어디어디 숨어 있을까?
“가로등 하나까지 캐릭터를 새겨놓았어. 박달재 이야기가 제천의 상징임을 단번에 알 수 있지.”
“가만 생각해보니, 여기 말고도 제천역 바로 앞 동상에서도 같은 캐릭터를 본 적이 있어! 정말 제천 하면 박달재, 박달재 하면 제천이구나.”
정상에서 공원까지 모두 둘러봤다면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한 번 ‘울고 넘는 박달재’를 들어보자. 사뭇 달라진 느낌을 받게 된다면 박달재의 전설이 마음을 울렸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의 트로트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들으니 이토록 애절하게 와닿을 줄이야.”
“과거시험을 마치고도 소식을 알 길 없는 박달을 그리워하며 고개를 오르내리던 금봉의 마음과, 금봉의 죽음을 마주한 뒤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박달의 마음이 가사에서 구구절절이 느껴지지 않니?”
박달재는 흘러간 유행가를 통해 다시 살아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1948년 반야월 작사 김교성 작곡의 '울고 넘는 박달재' 속에서 말이죠. 그러면서 노랫말 속 박달과 금봉의 안타까운 사연에 관심을 갖는 이들도 점차 늘어났어요. 하지만 박달재터널에 직접 가면 애절하고도 슬픈 사랑 이야기 외에 또 다른 모습들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다름아닌 금봉의 수수하고 청초한 모습과 박달의 준수하고 늠름함을 동시에 닮아 있는 박달재의 모습이죠. 젊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마음으로 듣고 싶다면 백운면 박달재터널에서 잠시 차를 멈춰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