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수탁의 아침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삐거덕 하는 문을 열고 조용한 걸음걸이의 소녀 설화가 나왔습니다. 마을에서 설화라는 소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효녀로 소문이 나있었지요. 설화는 아픈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신해 마을일을 돕고 바느질 삵을 받아 근근이 살아갔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번 돈으로는 반찬은 가족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쌀을 사기도 힘들었답니다. 소녀 설화는 마을일을 도와드리며 반찬 조금씩을 얻어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소녀가장이 된 설화의 착한 심성과 딱한 사정을 아는 마을사람들은 집에 있는 반찬을 조금씩 바가지에 담아주었습니다. 그런데 마을사람들의 반찬을 따로 담을 수 없어 그만 한 바가지에 나물들이 전부 섞여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래도 반찬들을 얻었다는 기쁨에 한달음에 달려간 설화는 나물들이 섞인 바가지에 밥을 넣어 숟가락으로 비벼 상을 차렸습니다. 부모님께 이렇게 밖에 상을 차리지 못했다는 죄송스런 마음이 들었지요. 설화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처음 보는 생소한 밥에 두 눈이 휘둥그레 졌습니다. 그런데 막상 먹어보니 그 맛도 맛있고 다른 찬을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어서 더 잘됐다고 설화를 위로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설화가 막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낯선 행색의 웬 남자가 설화의 집 앞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행색을 보니 이 동네 사람은 아닌 듯싶었지만 사람을 구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되어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우선 물을 먹여 목을 축이게 하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 주었습니다. 그러자 남자가 정신을 차리고는 고마운 마음을 전하였습니다. 달리 내 드릴 것이 없던 설화는 금방 얻어온 반찬들과 산에서 캐온 나물들을 섞어 고추장과 함께 내드렸습니다.
“소녀, 집안 살림이 누추하여 이런 것 밖에 내 드릴 것이 없사옵니다. 송구스럽습니다.”
남자도 생전 처음 보는 밥상에 잠시 놀랐으나 고추장에 쓱쓱 비벼 맛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맛도 맛이지만 밥에 들어간 나물들이 모여 이만한 영양가를 내는 밥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밥의 이름이 무엇이냐? 혹, 밥을 이렇게 만들게 된 경위를 내게 알려줄 수 있겠느냐?”
“이 밥에 이름은 달리 없사옵니다. 사실….”
설화는 집이 가난하여 이웃사람들에게 얻은 반찬이 우연히 섞여 밥과 함께 먹은 것이라고 남자에게 말했습니다.
“허허. 그것 참 딱하면서도 놀랄 일이구나. 사실 나는 궁에서 시찰을 나온 암행어사니라. 아까는 잠시 현기증이 나 쓰러져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너를 만난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이런 천한 음식을 내 드렸으니, 송구할 따름입니다.”
“아니다. 밥과 함께 갖가지 나물들을 비벼먹는다... 비빔밥이 좋겠구나!”
“네? 비빔밥이요?”
“그래, 이 마을이 전주이니 전주비빔밥이 좋겠구나.”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암행어사가 다시 설화의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왕실의 수라간 나인이 되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임금님이 드시는 음식을 손수 차릴 수 있다는 생각에 승낙한 설화는 궁으로 들어갔습니다. 궁에는 수많은 음식들이 있었습니다. 설화는 갖가지 좋은 재료 중에서 나물과 고기를 가지런히 밥 위에 올려 수라상을 만들었습니다. 맛을 본 임금은 이름을 음식의 이름을 물었고 설화는 그 때 암행어사가 지어준 이름을 대었습니다.
맛의 우수함과 영양까지 두루 갖춘 전주비빔밥의 시작은 우연함이었지만 궁중음식으로 사랑받으며 전주의 제일가는 음식으로 지금까지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때는 1990년도. 나는 설레는 스무 살이다. 아니 스무 살이었다. 풋풋하고 순진함이 가득했던 그 때. 스무 살.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그런 나이다.
왠지 스무 살은 그렇지 않은가. 고작 한 살 더 먹은 것 가지고 다른 세계로 순간이동을 한 느낌이다. 적어도 그땐 그랬다. 십대에서 이십대로 변화되었고 술과 담배를 지적받던 청소년은 작은 카드 하나만 내밀면 만사 오케이니까. 그것이 스무 살이 누리는 행복이라는 단어였으니까.
수능만 끝나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나의 이십대는 흩날리는 사월의 벚꽃만큼 하늘하늘 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간 대학 그리고 짙푸른 잔디밭이 펼쳐진 캠퍼스를 꿈꿔왔던 나는 드디어 학교 동아리에서 첫 MT를 떠났다. 장소는 강원도 인제.
인제까지 가는 봉고차 안에서는 여행을 떠나요가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이때다 싶어 목청껏 따라 불렀다.
봉고차 안에서 나는 새내기다운 특유의 얌전함으로 창밖만을 내다보았다. 그때 옆자리로 다가온 한 남자, 현규선배다.
“혼자 뭐해? 이번에 들어온 신입생이지?”
다정하게 웃는다. 웃을 때마다 미묘하게 움직이는 볼을 따라 보조개가 살짝 패인다.
“네. 안녕하세요?”
나는 멋쩍은 듯 웃었지만 현규선배는 아무렇지 않은 듯 옆자리에 앉았다. 사실 현규선배는 우리 동아리에서 킹카로 불린다. 수수한 생김새를 하였지만 동아리 장답게 남자다운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옆에 앉은 선배보다 주위에 다른 사람 시선을 더 많이 살폈다.
도착을 알리는 내비게이션의 목소리가 들렸고 사람들은 숙소에 짐을 날랐다. 여자들은 레포츠를 즐기기 위해 가벼운 차림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듣기만 해도 시원한 내린천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인제는 열 가지가 넘는 레포츠를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우리는 2조로 나누어 내린천 래프팅을 하였고 진 팀에서 두 명을 선발해 번지점프까지 하기로 내기를 했다.
나는 현규선배와 같은 조였고 우리는 열심히 물살을 갈랐으나 상대팀의 덩치가 좋은 남자 선배의 리더십으로 우리 조가 지게 되었다. 번지점프를 해야 하는 사람을 뽑기 위해 가위 바위 보를 하였는데 그만 나와 현규선배가 걸리게 되었다.
이 무슨 우연의 일치인가. 나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선배는 히죽거리며 웃었다.
무서워하는 나를 말없이 꼭 안아주던 선배였다.
하나 둘 셋의 구호에 맞게 하늘을 날았다. 사월의 벚꽃이 하늘하늘 내리듯 그날 번지점프 위에서 내 마음도 하늘하늘 날았다.
낭만과 기대로 가득 찼던 첫 MT. 날이 저물고 캠프파이어 앞에서 통기타를 치던 선배가 생각난다. 돌이켜보면 즐거운 시절.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서른 즈음에 들어선 나는 괜히 그 때가 그립다. 이제는 웬만한 일에도 익숙해져서 인지 아니면 익숙함이 나를 익숙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때의 풋풋하고 어리숙함이 그립다.
번지점프 대위에 올랐을 때, 현규선배가 나를 안고 뛰어내릴 때 내 심장소리가 그에게 들렸을 까 고민하던 그 때로.
다시금 그 장소에 가보고 싶다. 무작정 떠나본다. 지갑, 휴대전화, 사진기 한 장 달랑 들고 떠난다. 사진첩에 담긴 그 장소 그 자리에서 다시 사진을 찍어본다. 선배도 함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바람이 불고 나는 네가 그립다.
사사삭 사사삭, 나는 유독 의성어나 의태어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소리들을 좋아했다. 예를 들면 뽀드득 뽀드득 같이 눈 오늘 날 눈을 밟을 때 나는 소리나 가을철 떨어지는 낙엽을 밟을 때 나는 바스락 거리는 소리 그리고 모래사장에서 맨발로 모래를 밟을 때 나는 사사삭 하는 소리와 같은 것 말이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소리들에 남달리 귀가 쫑긋 솟는 나는 그만큼 소리에 민감하게 굴어 친구들과 자주 다투기도 했다. 어쩐지 친구들은 그런 나와 싸우면 치사하게 내가 싫어하는 소리들을 내곤 했다.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다던가 식판을 숟가락으로 긁는 다는 등.
누군가 내게 가장 좋았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타임머신이 있다고 해도 나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가장 좋았던 그 순간 같은 해에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순간이 교집합처럼 얽혀있기 때문이다.
5년 전 여름 나는 가장 좋아하는 친구 유경과 마주앉아있었고 우린 웃으며 팥빙수를 나눠먹었다. 성격도 잘 맞고 모난 내 성격을 잘 받아주는 유경이었기에 우린 소위 평생친구를 하기로 하며 자주 만났다. 유경과 한참 다이어트를 하며 다음 해 여름엔 꼭 살 빼서 비키니를 입고 부산 앞바다를 누비고 다니자며 약속을 했었는데 우정도 사소한 말다툼엔 배길 재간이 없었다. 사실 지나고 보면 별 것도 아닌 것이었는데 그 때의 소녀감성엔 말 한마디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화해를 하긴 했지만 한 번 금이 간 접시를 다시 쓸 수 없는 것처럼 우리 둘 사이의 보이지 않는 공백은 쉽게 메워지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친구 B에게 유경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당장 전화기를 들어 만나자고 하고 지난날을 후회하며 눈물 콧물을 쏟으며 화해를 하고 웃으며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괜한 자존심도 아니었고 유경에 대한 미움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저 네가 미국으로 떠나는 날 괜스레 송도해수욕장을 나와 맨발로 하염없이 모래사장을 거닐기만 했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났을까. 학창시절에는 별로 친하지 않았던 친구 B와 연락을 지속해오던 나는 B에게서 유경의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조만간 한국에 잠시 들어온 다는 것이었다. 친구 B에게 소식을 전해들은 나는 멋쩍은 말투로 그래? 라고만 했을 뿐 언제인지 어디로 오는지 캐묻지 않았다.
이년 간 다닌 직장을 그만 둔 나는 며칠 간 방안에서 빈둥거리기만 했다. 그러다 문득 친구 B에게서 들은 유경의 소식이 머릿속에 맴돌았기에 점퍼 하나만 집어 들고 송도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여전히 사람들은 많았다. 물놀이를 즐기는 이들은 없었으나 나처럼 맨발로 모래사장을 걷는 이들은 많았다. 사사삭, 사사삭. 내 발끝으로 모래가 밟히자 얄궂은 소리를 내며 내 무게 그대로를 바닥에 그려나갔다. 그렇게 한 발자국 두 발자국을 걸었다. 사사삭 사사삭.
그런데 저 멀리에서 아주 낯익은 누군가가 보였다. 유경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는 없었지만 어쩐지 유경의 모습인 것 같았다. 나는 섣불리 달려갈 수 없었다. 만약 유경이라면 무슨 말을 건네야 할까? 미안했다고 보고 싶었다고 말해야 할까? 아니면 그렇게 가버리는 게 어디 있느냐고 소리를 질러야 할까?
문득 천천히 유경에게 다가가는 데 바닥에 탁 하고 걸리는 것이 있다. 빈 소라껍데기였다. 소라껍데기를 집어 들고는 잠시 귀에 가져다대었다. 사람들이 많았기에 소라껍데기에서 바다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을 텐데 내 귓가에는 솨아아하고 바다소리가 들렸다. 유경이도 나를 보았을까? 내 발걸음이 조금은 빨라졌다. 유경에게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다가가는 데 귓가에서는 더 이상 사사삭하는 모래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오직 소라껍데기에서 들리던 솨아아 하는 소리만 들릴 뿐.
그렇게 맨발로 걸어간 그 길 끝엔 거짓말처럼 유경이 서있었다. 유경은 나를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그리고는 맨발로 달려온 내 발끝만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하구나 넌. 모래사장 걸으면서 사사삭 소리 듣는 거 보니. 나한테 무슨 할 말 없어? 난 너한테 할 말 되게 많았는데.”
나는 말없이 빈 소라껍데기를 건넸다.
“여기, 여기에 내가 하고 싶은 말 다 담았어. 들어봐.”
유경은 웃으며 빈 소라껍데기를 귓가에 가져다 댔다.
멀리서 경종소리가 들려왔다. 바우덕이는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했다. 청룡사 남사당패인 개패거리에 들어온 지 오늘로 꼬박 열 두 해째 되는 날이었다. 그녀가 다섯 살이 되던 해 홀아비 머슴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생을 얼마 연명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시름시름 앓던 그가 끼니도 제대로 연명하지 못한지 닷새만이었다. 아비는 임종 직전, 때때로 함께 술을 나누던 청룡사 남사당패 꼭두쇠에게 그녀를 맡겼다. 왜 하필 남자들만 있던 남사당패에 그녀를 맡겼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개머리패에 들어온 그날부터 그녀는 김암덕이라는 이름 대신 바우덕이라고 불렸다.
그녀는 갖가지 기예를 배워나갔다. 어름(얼음 위를 걷듯이 어렵다는 줄타기), 풍물과 버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까지 기예를 하나씩 익혀갈 때마다 사람들은 그녀의 재능을 놀라워했다. 바우덕이는 모든 기예에 능했다. 그녀가 거리낌 없이 재주를 익혀나갈 수 있었던 것도 꼭두쇠인 곤(滾) 덕분이었다. 그는 바우덕이에게 있어 아비나 마찬가지였다. 발이 부르트도록 줄 위에 올려두었다가도, 밤이 되면 그녀의 발에 어렵사리 장(醬)을 구해 발라주던 것도 그였다. 바우덕이는 곤을 유독 따랐다. 그럴수록 줄타기에 매달렸다. 그녀는 위태로운 줄 하나에 몸을 내맡겨 날아오르는 것이 좋았다. 그 모양새가 제 처지와 비슷해 보이기도 했고, 늘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살아야 했던 그녀에게 하늘을 위해 솟아오르는 일은 유일한 해방구였다.
곤은 그녀가 열다섯이 되자 꼭두쇠에서 물러났다. 이레 전 수레에 다리가 밟히는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바우덕이를 향해 돌진하던 수레를 가로막아 당한 사고였다. 곤의 다리는 점차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 놀이를 하지 못하는 그는 꼭두쇠로 있을 수 없었다. 곤은 울고 있는 그녀를 불렀다.
“덕아, 왜 우느냐.”
덕이는 울음이 북받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자 곤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는 그저 놀면 되는거다. 네 재주껏 한 판 놀면 되는 거란다.”
그녀는 그날부터 힘껏 뛰어올랐다. 조금 더 높이. 더 크게. 그녀의 줄타기를 본 사람들은 저마다 탄성을 질렀다. 그토록 위태롭고도 높이 날아오르는 사람은 없었다. 바우덕이는 안성을 넘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그녀의 줄타기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대원군은 경복궁 중건에 쓰이는 일꾼들을 위해 그녀의 남사당패를 불러 들였다.
합장을 하던 그녀의 손이 떨렸다. 그녀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쥐고 있던 부채를 크게 펼쳐보았다. 곤에게서 받은 부채였다. 그녀는 그것을 무척이나 아꼈다. 가는 부채살들이 제대로 펼쳐졌는지 꼼꼼히 살폈다. 살 하나가 크게 구부러져 있었다. 부러진 살을 세우려고 했다. 하지만 한번 부러진 부채살은 세워지지 않았다.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는 크게 한번 숨을 가다듬었다. 바우덕이에게 오늘은 무엇보다 제일 큰 놀이판이었다. 머리에 두른 두건을 다시 한번 질끈 묶었다. 꽹과리 소리가 크고 경쾌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때 멀리서 곰뱅이쇠가 뛰어왔다. 숨을 헐떡이는 그의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이었다. 그녀는 보따리에서 탈 하나를 꺼내들었다. 곰뱅이쇠가 바우덕이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녀는 곤이 처음으로 만들어주었던 탈을 썼다. 바우덕이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어떠한 표정으로 서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손이 줄을 튕겼다.
이내 바우덕이는 줄을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평소보다 더 거침없이 뛰어올랐다. 한번! 두 번! 세 번! 일꾼들이 그녀의 줄타기를 보며 추임새를 넣었다. 그녀는 마치 춤을 추는 듯 했다. 한 손에는 활짝 펼쳐든 부채를 부드러운 곡선을 따라 흔들었다. 바우덕이의 양 다리는 꼿꼿이 그러면서도 유연하게 움직였다. 하늘을 향해 춤을 췄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크게 회전하며 돌기 시작했다. 그녀의 춤은 멈출 줄을 몰랐다.
“아, 오빠! 이번에는 진짜 맛집이라고 했잖아!”
한바탕 화를 내려다 오빠의 허탈한 표정을 보고 그만두었다. 그래, 또 허탕이었다. 국밥 한 그릇 먹자고 부산까지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오빠도 나도 날이 갈수록 짜증만 더해갔다. 사건의 시작은 한 달 전, 부산에 있는 외할머니 댁에 갔다가 그 유명한 서면 돼지국밥을 맛보고 만 것이었다.
오빠의 제대 기념으로 남매끼리 떠났던 기차 여행. 하지만 여행 초반부터 예산을 초과해버린 탓에 하루 종일 차를 타고 이동하다 내려서 사진만 찍는 스파르타식의 여행을 하게 되었다. 부산의 명소란 명소는 다 돌았지만, 배가 고프고 지치니 즐겁지가 않았다.
그 때 내가 묘안을 내 놓았다. 서면에 살고 계시는 외할아버지가 생각 난 것이다. 외할아버지를 깜짝 방문한다면 끼니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고, 어쩌면 용돈도 넉넉히 받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먼저 연락을 드려 볼 것을 그랬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할아버지는 오랜만에 보는 손주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을 정도로 냉장고를 채워 두지 않으셨던 것이다. 곤란해 하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우리도 덩달아 초조해졌다. 할아버지는 고민 끝에 우리를 서면 시장으로 데리고 가셨다. 친구 분께서 하시는 유명한 국밥 집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구, 그 꼬맹이들이 벌써 이만큼 큰 거여?”
처음 보는 할머니 한 분이 나오셔서 반갑게 우리의 손을 잡으셨다. 오빠도 나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친구 분께서는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에는 할아버지 댁의 바로 옆집에 살고 계셨다고 한다. 대여섯 명의 직원들이 있는데도, 그 할머니께서는 우리에게 손수 국밥 두 그릇을 말아다 주셨다.
“순자 그 할망구가 지금까지 살아만 있었어도 이 양반이 여기까지 걸음하진 않았을 텐데 말이여. 그 할망구는 뭐한다고 그렇게 일찍 가 버렸대.”
넋두리 반, 국밥 반이었다. 그 할머니께서는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와 절친한 사이셨던 모양이었다. 친손자를 보듯 따뜻한 눈길에 마음이 참 편해졌었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 때 먹은 그 국밥이 정말이지 너무도 맛이 있었다.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
서울로 돌아온 오빠와 나는 그 때 그 맛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마음에 온 서울의 돼지국밥 집을 다 찾아다녔지만, 번번이 허탕이었다.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고 다대기와 부추를 넣는 것은 물론 고기 위에 새우젓까지 올려 정석대로 먹었지만, 부산에서 먹은 그 맛이 나지를 않았다.
엄마는 기대에 가득 찬 모습으로 집을 나섰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잔뜩 실망 한 얼굴로 터덜터덜 걸어 들어오는 우리들의 모습이 퍽이나 재미있으신 모양이었다. 평소에도 엉뚱한 일을 많이 벌이기로 소문난 우리 남매지만, 이번엔 유독 별나다고 하셨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빠는 어디서 구해 왔는지 ‘오늘 밤 고백할게 너와 함께 돼지국밥을 먹고 싶다 부산으로 떠나자’라는 가사의 노래까지 틀고 있었다. 정말 부산으로 가야만 그 돼지국밥을 다시 먹을 수 있는 걸까. 국밥이라 우습게 봤는데 도무지 그 맛을 다시 볼 수가 없으니, 괜한 집착만 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날 밤 엄마는 새벽 내내 부엌을 들락거리셨고, 다음 날 일어나 보니 식탁 위에 돼지국밥이 차려져 있었다. 아마 밤새 돼지 뼈를 삶으신 모양이었다. 집에서 돼지국밥이라니, 이게 웬 일인가 했더니 엄마가 나고 자라신 곳이 바로 부산이었다.
“할머니가 가르쳐 주신 지 하도 오래 돼서, 제 맛이 나려나 모르겠네.”
엄마는 멋쩍으신 듯 웃으셨지만, 우리의 칭찬을 은근히 기대하고 계시는 것 같았다. 오빠와 나는 한 숟갈을 떠먹고는 서로 눈빛을 교환한 뒤 입을 모아 말했다.
“우리가 찾던 그 맛이네.”
솔직히 말하자면, 엄마가 만든 돼지국밥의 맛보다 부산에서 먹은 돼지국밥이 훨씬 더 맛있었다. 그런데 돼지 뼈를 삶고 옮기다 데셨는지 엄마의 검지가 빨갛게 부어올라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돼지국밥 찾기를 그만두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진부한 말처럼, 맛의 비결은 역시 사랑이라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추억이 묻어있는 그 벤치엔 아무도 없다. 그리고 우리의 흔적이 남아있을지 모르는 그 벤치에 홀로 앉아본다. 바람이 불었고 코스모스가 하늘거렸다. 언제 지났는지 모르는 간이역엔 조그마한 움직임도 없다. 간이역 가봤냐고 수줍게 묻던 열두 살 난 지석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까만 얼굴에 다정하던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철로를 걸으며 은주의 손을 잡아주던 지석을 상상해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눈을 감고 철로를 걸어본다.
소란스럽던 교실에 종이 울리자 아이들이 일사불란하게 각자 자리를 찾아 앉았다.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셨고 선생님 뒤로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가 따라 들어왔다.
차렷, 선생님께 인사! 반장의 구령에 맞춰 아이들이 일제히 인사를 했다. 선생님은 우리 반에 전학생이 왔다고 했다. 서울에서 왔고 이름은 이은주라고 했다. 선생님은 은주에게 빈자리에 앉으라고 하셨고 그 자리는 지석의 옆자리였다. 지석은 서울에서 온 여자아이가 짝이 된다는 것에 괜히 부끄러워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자신에게서 혹시나 시골냄새가 나지 않을까 킁킁거리기도 했다. 은주는 작은 목소리로 안녕? 이라고 했고 지석도 안녕이라고 답했다.
은주의 집은 지석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물이 마을을 휘돌아 나가는 물동이동인 회룡포에 사는 은주와 지석은 줄곧 마을 냇가로 나가서 놀거나 뿅뿅다리를 건너며 놀았다. 밖에서 자주 놀아서인지 지석은 얼굴이 까맸으나 은주는 함께 놀아도 얼굴이 하얬다. 다리를 건너며 장난을 치던 지석은 볼이 발그레 져서는 은근슬쩍 은주에게 용궁역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은주야 너, 간이역 가봤나?”
“간이역? 어디?”
“왜, 저쪽으로 쭉 가다보면 용궁역 나오는데, 가봤나?”
“아니. 안 가봤어. 용궁역이라고? 재밌겠다! 가보고 싶어. 간이역이면 꽤 재미있겠다.”
간이역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었다. 지석은 은주에게 철로를 걸어보자고 했다. 은주는 그러다 갑자기 기차가 달려오면 어쩌냐며 무서워했고 지석은 남자답게 자기만 믿으라고 했다. 둘은 손을 꼭 잡고 철로 끝을 걸었다. 바닥으로 먼저 떨어지는 사람이 손목을 때리는 게임이었다. 지석의 눈에는 두 눈을 꼭 감고 아슬아슬하게 철로 위를 걷는 은주가 참 예뻤다. 그리고는 자신이 먼저 균형을 잃고 떨어지며 은주에게 슬쩍 손목을 내밀었다. 은주는 웃으며 지석의 손목을 살짝 때렸다.
가을바람이 살랑하고 불자 철길 옆에 난 코스모스가 바람 따라 흔들렸다.
“지석아. 실은 나 또 이사 간다. 아빠가 다시 서울로 올라가야 한 대.”
지석은 놀란 마음에 그만 철길 옆 벤치에 주저앉고 말았다.
“원래는 여기에서 초등학교 졸업하고 다시 올라가는 거였는데. 그렇게 됐어. 너무 아쉽다. 너랑 여기에서 재밌는 시간 많이 보냈는데.”
“가족이 다시 올라가면 가야지 뭐. 언제 올라가는데?”
“아마 내일 학교에 인사만 하고 올라갈 것 같아.”
그렇게 은주는 떠났다. 지석은 차마 은주가 떠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은주가 자꾸만 뒤를 돌아보아도 끝내 지석의 모습은 운동장 너머로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십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은주는 가을바람을 맞으며 철길을 걸었다. 간이역에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어쩐지 조금은 쓸쓸해보였다. 벤치에도 철길에도 사람의 흔적이 드문드문 보였다.
철로를 걸으며 은주의 손을 잡아주던 지석을 상상해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눈을 감고 철로를 걸어본다.
어 어. 균형을 잃은 은주가 휘청하고 철로에서 떨어지려는 순간 누군가 은주의 손을 잡았다. 지석이다.
지석은 여전히 다정한 웃음을 지으며 많이 보고 싶었다며 했다. 그리고는 반가운 손을 내밀었다. 은주도 싱긋 웃으며 지석의 손을 잡았다.
2012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오 년 전 초겨울 즈음의 일이었다. 옆 동네에서 건너 온 소식으로 아침부터 마을이 들썩였다. 어린이대공원 안의 동물원에 있던 어린 여우 두 마리를 소백산으로 돌려보냈는데, 그 중 한 마리가 옆 동네의 아궁이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허이구, 그게 삼십 년 전인가에 멸종했다던 그 여우 아니여?”
“맞아요, 맞아. 서울대공원에서 번식 시키려고 그렇게 노력했다던데 정말 아깝게 됐어요.”
“여우? <어린왕자>에 나오는 그 여우?”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졸린 눈을 비비며 어른들의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할머니가 장난스러운 얼굴로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아니야, 아가. 구미호가 와서 죽었단다.”
그 때 그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불여우나 불여시로 불려왔으며, 구미호 전설의 주인이기도 한 토종 붉은여우였다. 온몸이 황적색의 털로 덮여 있는 이 붉은여우는 원래 우리나라에 아주 많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마치 옛날 얘기 속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뒷산의 호랑이처럼 말이다. 호랑이만큼이나 여우가 많았던지 여우를 소재로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졌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구미호 얘기였다.
이렇게 많았던 붉은여우는 안타깝게도 밀렵되거나 쥐약 먹은 쥐를 잡아먹어 야생에서는 멸종되었었다. 옆 동네 아궁이에서 그 새끼 여우가 죽은 채로 발견되기 몇 년 전에 서울동물원에서 40년 만에 토종 여우의 번식을 성공시켰고, 이에 힘입어 야생에 여우 한 쌍을 방사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 쌍의 여우 중 암컷은 아궁이에서 죽었고, 수컷은 이로부터 며칠 뒤에 덫에 걸린 채 발견되었다.
다시 말해, 구미호는 아니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서 붉은여우는 백 년, 혹은 천 년을 살기도 하며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변하여 사람을 유혹해 생간을 빼 먹기도 하는 요물이었다. 여우가 와서 죽은 뒤로, 할머니는 밤이면 밤마다 어렸던 내게 불여우가 얼마나 무서운 동물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다.
불여우는 아홉 개나 되는 꼬리를 치마 속에 감추고 나그네를 유혹했다가, 나그네가 잠들면 쇠고랑 같은 손톱으로 생간을 빼 내 먹는다고 했다. 구미호가 인간이 되려면 사람의 간이 백 개나 필요해서, 나그네만 보면 해치려 든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하다 지친 할머니가 먼저 잠이 드셔도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럼 서울동물원에서는 구미호를 키우고 있는 것일까.
나는 할머니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여우를 상상했다. 여우는 아마 몸집은 아주 커다랗고 온 몸이 붉은 색 털로 뒤덮여 있으며, 날카롭고 긴 발톱을 가졌을 것이다. 입가에는 항상 피가 묻어 있고, 어쩌면 그 입에 갓 빼낸 싱싱한 생간이 물려 있을지도 몰랐다. 밤이면 늑대처럼 주둥이를 길게 빼며 울거나 처녀 귀신같은 모습으로 변해 숲을 돌아다니며 사냥감을 찾을 것이었다. 밤에는 절대 집 밖에 나가지 않겠다고 몇 번씩 다짐하고, 문을 꼭꼭 잠근 뒤에야 잠들 수 있었다.
그런데 몇 달 전에 텔레비전에 여우가 나왔다. 오랜 노력 끝에 드디어 붉은여우가 소백산자락에 터를 잡고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산 너머에 붉은여우가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붉은여우가 우리 집 근처에 살고 있다는 것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화면 속 여우의 모습이었다. 붉은여우는 작은 몸집에 날씬한 다리, 길고 탐스러운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전설 속의 주인공이라기에는 너무도 앙증맞은 모습에 나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친구와 함께 서울대공원에 있는 붉은여우를 보러 가기로 했다. 번식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이제는 대공원에서 아기 붉은여우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산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아마 산 속에서는 붉은여우들이 코를 킁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 많고 많은 커플들은 전국 방방곡곡 어디를 가도 상관이 없겠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더 멋있고 더 로맨틱한 장소를 찾곤 한다. 결혼을 앞둔 남녀는 더욱 그럴 것이다.
“가을여행으로 어디가 좋을까?” 하늘은 구름 한 점 없고 쾌청했으나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눈이 부시지는 않았다. 눈을 살짝 찡그리며 가을여행지를 생각하고 있는 젊은 여자를 향해 남자는 말했다.
“어디긴 어디야, 가을하면 낭만, 낭만하면 갈대 아니야? 갈대를 보러가자.”
낭만을 입에 달고 사는 남자는 이번에도 또 낭만이다. 다른 때 같았으면 무슨 또 낭만이냐고 했겠지만 이번에 제안한 가을갈대를 보러 가는 것은 꽤 솔깃한 제안이었다.
별다른 준비가 필요 없이 순천으로 가는 차에 올라탔다.
“노을이 짙게 내릴 때면 더 죽여줄 텐데. 안 그래?”“그럼 멋있긴 하겠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돼. 곧 5시 반이야.”
가을이라곤 했지만 아직은 늦더위가 가시지 않아서일까 둘은 약간 거리를 두고 걷고 있었다. 각자가 생각하는 가을 낭만을 떠올리고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사진 찍는 것이 취미인 남자는 순천만 갈대밭의 이곳저곳을 담기에 바빴다. 바람에 스러지는 갈대의 모습이며 빛을 받아 반짝이는 갈대의 모습까지. 남자친구는 주로 풍경사진을 찍었다. 그 사이에 간간히 여자의 모습이 함께 담긴 사진들도 있었으나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여자도 남자의 취미를 존중하고자 남자가 사진을 찍을 때에는 달리 말을 걸지 않았다.
‘찰칵’
“어!”
남자의 외마디 감탄에 여자는 남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연히 굉장히 잘 나온 사진을 건진 것이 분명하다는 직감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남자는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백발의 두 노인이 손을 꼭 잡고 있는 모습이었다.
할아버지는 온 신경을 할머니에게 쏟고 있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 손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이제는 힘이 많이 빠져 손에 힘줄이 솟아나도록 힘을 주지 않으면 할머니 손을 놓칠 것 같아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잡은 손에 힘을 꽉 주셨다. 할머니는 꽃분홍색 스웨터를 입고 계셨는데 표정이 마치 소녀 같으셨다. 볼에 분칠을 하지 않으셨는데도 발그레 하게 꽃이 핀 것 같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꽤 먼 거리에 계셔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시는지 들을 수는 없었지만 해가 저무는 노을빛을 받은 갈대밭 사이로 서로를 향해 웃음 지으시는 노부부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두 분이 어떤 말씀을 나누고 어떤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지 알 것만 같았다.
“와, 정말 멋지지 않아?”
“응. 그렇다. 아마 두 분의 귓가에는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려올 거야. 왜냐면 이렇게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함께 손을 잡고 걸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 자체에 감사함을 느끼고 계실 테니까.”
어쩐지 저렇게 늙어갈 수 있다는 것이 참 행복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까지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스럽게 바라봐 줄 수 있을까. 너의 늙음이 나의 늙음과 같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따뜻하게 보듬어 줄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말없이 서로의 손을 찾아 손을 뻗었다. 맞잡은 두 손이 어쩐지 따뜻했다.
“우리도 나중에 저렇게 아름답게 늙을 수 있을까? 난 말이야. 늙는다는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 그리고 정말 로맨틱하다. 나는 로맨틱이라는 단어는 젊은 이 삼십대 사람들에게만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정말 로맨틱하다.”
바람이 살짝 귓가를 스치는 날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밝지도 어둡지도 않게 내려앉은 노을 때문이었을까. 여자는 감성에 젖어있었다.
“우리도 지금처럼만 지낸다면 저렇게 아름답게 늙을 수 있다고 생각해. 이렇게 로맨틱하게. 그럼 지금 이 노부부 사진에 제목을 한번 지어볼까?”
“음. 생각났어. 더 로맨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