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오 년 전 초겨울 즈음의 일이었다. 옆 동네에서 건너 온 소식으로 아침부터 마을이 들썩였다. 어린이대공원 안의 동물원에 있던 어린 여우 두 마리를 소백산으로 돌려보냈는데, 그 중 한 마리가 옆 동네의 아궁이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허이구, 그게 삼십 년 전인가에 멸종했다던 그 여우 아니여?”
“맞아요, 맞아. 서울대공원에서 번식 시키려고 그렇게 노력했다던데 정말 아깝게 됐어요.”
“여우? <어린왕자>에 나오는 그 여우?”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졸린 눈을 비비며 어른들의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할머니가 장난스러운 얼굴로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아니야, 아가. 구미호가 와서 죽었단다.”
그 때 그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불여우나 불여시로 불려왔으며, 구미호 전설의 주인이기도 한 토종 붉은여우였다. 온몸이 황적색의 털로 덮여 있는 이 붉은여우는 원래 우리나라에 아주 많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마치 옛날 얘기 속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뒷산의 호랑이처럼 말이다. 호랑이만큼이나 여우가 많았던지 여우를 소재로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졌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구미호 얘기였다.
이렇게 많았던 붉은여우는 안타깝게도 밀렵되거나 쥐약 먹은 쥐를 잡아먹어 야생에서는 멸종되었었다. 옆 동네 아궁이에서 그 새끼 여우가 죽은 채로 발견되기 몇 년 전에 서울동물원에서 40년 만에 토종 여우의 번식을 성공시켰고, 이에 힘입어 야생에 여우 한 쌍을 방사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 쌍의 여우 중 암컷은 아궁이에서 죽었고, 수컷은 이로부터 며칠 뒤에 덫에 걸린 채 발견되었다.
다시 말해, 구미호는 아니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서 붉은여우는 백 년, 혹은 천 년을 살기도 하며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변하여 사람을 유혹해 생간을 빼 먹기도 하는 요물이었다. 여우가 와서 죽은 뒤로, 할머니는 밤이면 밤마다 어렸던 내게 불여우가 얼마나 무서운 동물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다.
불여우는 아홉 개나 되는 꼬리를 치마 속에 감추고 나그네를 유혹했다가, 나그네가 잠들면 쇠고랑 같은 손톱으로 생간을 빼 내 먹는다고 했다. 구미호가 인간이 되려면 사람의 간이 백 개나 필요해서, 나그네만 보면 해치려 든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하다 지친 할머니가 먼저 잠이 드셔도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럼 서울동물원에서는 구미호를 키우고 있는 것일까.
나는 할머니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여우를 상상했다. 여우는 아마 몸집은 아주 커다랗고 온 몸이 붉은 색 털로 뒤덮여 있으며, 날카롭고 긴 발톱을 가졌을 것이다. 입가에는 항상 피가 묻어 있고, 어쩌면 그 입에 갓 빼낸 싱싱한 생간이 물려 있을지도 몰랐다. 밤이면 늑대처럼 주둥이를 길게 빼며 울거나 처녀 귀신같은 모습으로 변해 숲을 돌아다니며 사냥감을 찾을 것이었다. 밤에는 절대 집 밖에 나가지 않겠다고 몇 번씩 다짐하고, 문을 꼭꼭 잠근 뒤에야 잠들 수 있었다.
그런데 몇 달 전에 텔레비전에 여우가 나왔다. 오랜 노력 끝에 드디어 붉은여우가 소백산자락에 터를 잡고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산 너머에 붉은여우가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붉은여우가 우리 집 근처에 살고 있다는 것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화면 속 여우의 모습이었다. 붉은여우는 작은 몸집에 날씬한 다리, 길고 탐스러운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전설 속의 주인공이라기에는 너무도 앙증맞은 모습에 나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친구와 함께 서울대공원에 있는 붉은여우를 보러 가기로 했다. 번식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이제는 대공원에서 아기 붉은여우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산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아마 산 속에서는 붉은여우들이 코를 킁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3학년 첫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느 새 여름이 눈앞에 성큼 다가와 있었다. 시간이 금방 흐를 거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빠를 줄은 몰랐다. 이제는 정말 진로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텐데, 심리학도, 철학도, 경영학도, 심지어는 예술분야까지, 나는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막막한 마음에 일단 부모님과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공부부터 열심히 하려 했던 것이 오히려 결정을 미루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내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일이 어떻게 쉬울 수 있겠냐마는, 이대로 있다가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져 간다. 날씨가 더워지며 점점 머리에도 열이 올랐다.
며칠 전 밤을 새워 모의고사 준비를 하다 코피를 쏟고 만 이후로, 안 그래도 느긋하신 성품의 부모님은 딸 걱정에 어쩔 줄을 몰라 하시고 있다. 보약도 지어 오시고, 내가 좋아하는 케이크나 쿠키 종류를 사다 주시기도 하시지만 머리가 식지 않았다.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천천히 고민해 보라는 부모님의 말씀이 내게는 전혀 와 닿지 않는다. 부모님의 말씀대로 고민할 시간이 있으면 좋을 텐데 수능도, 대입도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수연아, 그러지 말고 이번 주말에 물놀이라도 가는 게 어때? 날씨도 많이 더워졌잖아. 엄마가 좋은 곳을 알고 있는데, 아마 수연이도 정말 좋아할 거야.”
“그래, 수연아. 네 엄마도 나도 정말 걱정이다. 더위도 식히고, 머리도 식혀보자.”
이쯤 되면 거절하는 것도 참 애매하다. 나는 마지못해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방으로 들어와 오답정리를 시작했다. 거실에서 부모님이 주말의 일정과 준비해야 할 물건들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 내게는 이 생각뿐이었다.
물놀이를 간다고 해서 막연하게 바다나 강가를 상상했는데, 도착한 곳은 내 상상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계곡이긴 한데, 여기저기 예술작품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부모님이 돗자리를 펴시고 튜브에 바람을 불어넣는 동안 나는 정신없이 예술작품들을 구경했다. 물가에는 <돌꽃>이 피어 있었고, 안양 종합 운동장에서 옮겨왔다는 잔디밭에는 <잔디밭은 휴가 중>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안양에 ‘예술의 도시’라는 슬로건이 붙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독특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물고기의 눈물이 호수로 떨어지다>라는 이름을 가진 분수를 지나 내 발걸음이 멈춘 곳은 <큐브>였다. 나는 이 두 개의 철제 상자 사이에 턱을 괴고 쪼그리고 앉았다. 두 개의 상자는 내가 선택해야 될 미래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감옥 같아 보이기도 했다. 한 가지 작품을 보고 미래와 감옥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개의 단어가 떠오른 것이 한편으로는 서글프기도 했다.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는 두 개의 상자를 만들며 작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지금 미래를 선택한다고 한들, 나는 자유롭게 내 미래의 문을 여닫을 수 있을까.
문득, 내 자신이 내 미래에 자신을 가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개의 큐브 중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의 큐브 밖에 있는 내 자신이 내가 정말로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아닐까.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맛있는 점심이 준비되어 있었다. 부모님과 나란히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불현듯 담임선생님께서 추천해주셨던 자유전공학부 제도가 떠올랐다. 학부로 대학에 입학해 다양한 학문을 접해본 뒤 2학년이 될 때 세부 전공을 선택하는 제도였다. 대학에 입학하면 또 취업 준비로 바빠질 텐데 괜히 소중한 일 년을 허비하는 것 같은 생각에 거절했었지만, 예술 공원을 한 바퀴 거닐며 갖가지 관점의 상상력을 접한 나는 내게 1년의 시간을 더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있자니 머릿속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양 옆에 앉으신 부모님의 손을 꼭 쥐며 말했다.
“나, 생각보다 시간이 많은 것 같아요.”
편안한 차림을 한 청년들이 모여 있고 그 속에는 유난히 흰 피부를 가진 민규가 눈에 띈다. 소풍이라도 가듯이 청년들은 삼삼오오 한껏 들뜬 표정을 하고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농활을 가는 길이다. 대학졸업을 위해 더 자세하게는 학점을 위해 떠나는 농촌봉사활동이다.
민규에게 시골이라는 공간은 이국의 어떤 사원만큼이나 낯선 공간이었다.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댁 모두 서울이었다. 그래도 민규는 할머니댁 간다는 말을 시골에 간다는 표현으로 쓰곤 했다. 다른 애들처럼.
도시에서만 자란, 민규와 친구들에게 농활은 그저 졸업장을 받기 위한 수단이었고 친구들과 떠나는 2박 3일 MT쯤으로 여겼다. 그저 적당히 물이나 주고 돌멩이나 고르다 오면 그뿐, 맑은 공기 마시며 힐링이나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버스에 오른 민규였다.
뻥 뚫린 고속도로에는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원활한 소통을 보였다. 그래서일까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김제. 내리자마자 코끝에 불어오는 풀냄새와 꽃향기가 느껴졌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서 그들이 해야 할 일은 가을에 황금빛을 띠며 자랄 벼를 위해 논에 물을 대고 잡초들을 뽑는 일이었다.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농활이었다. 쪼그려 앉아 몇 시간씩 고된 농사일을 하다 보니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일은 해도 해도 끝날 줄을 몰랐다. 하하 호호 웃고 떠들던 청년들은 점점 말수가 줄었고 긴 한숨 소리만 정적을 메웠다.
때마침 반가운 새참시간. 학생들은 환호했고 민규도 뻣뻣해진 허리를 모처럼 폈다. 우두둑 소리가 났다. 새참은 파전에 막걸리였다. 민규가 무리의 끄트머리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파전을 먹었고 이제야 시골에 대한 환상과 현실의 중간을 만난 듯했다.
“힘들지?”
진 초록색 모자를 쓰신 할아버지께서 민규 옆자리에 앉으셨다. 아마 이장님 댁 할아버지이신 듯했다.
“아닙니다. 허허. 저희는 그래 봐야 이틀인데요. 뭐.”
민규는 저도 모르게 이틀이라는 시간을 단정 지었다. 이틀, 그 이상은 봉사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암묵적인 통보처럼 들리기도 했다.
“젊은이들은 모를 거야. 쌀이 어떻게 나오는지. 교과서에서 배웠을지 모르겠지만…. 쌀 한 톨 귀한 줄 알아야 해. 요즘은 산업이다 공업이다 성공의 잣대가 최첨단으로 흐르고 있지만 그 뿌리는 농사다 이거지. 허허”
할아버지는 젊은이들을 앉혀놓고 괜한 잔소리가 아닌가 싶어 끝에 웃음을 흘렸다.
쌀이 어떻게 출하되는지는 민규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할아버지 말대로 민규는 교과서에서 모내기부터 추수까지 나름대로 자세하게 쓰여 있었으니까.
그런데 교과서에는 벼가 쌀알이 되기까지 농민들의 이야기는 한 글자도 언급되지 않았음을 안다.
“우리나라가 농경사회가 아니겠어. 한국인은 밥심으로 사는 거지. 밥을 먹어야 힘이 나는 거야. 알지? 옛날에는 그저 한해 농사만 잘되게 해달라고 빌었으니까. 바랄 것이 그뿐이었던 시절이 다 있었으니까.”
할아버지의 말씀에는 앞뒤 문맥이 어지럽게 섞여 있었으나 이해를 못 할 만큼은 아니었다.
어느새 날이 저물었다. 해가 지니 금방 어두컴컴해졌다. 시골이라 그런지 8시만 되어도 새벽녘처럼 깜깜했다. 하늘에 떠 있는 별만이 환한 빛을 비출 뿐 서울에서 보던 화려한 불빛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오늘은 잠이 잘 올 것만 같았다. 피곤해서 그럴 것이다.
이틀뿐이라던 시간은 흘렀다.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에 오른 민규는 약간은 검게 그을었다. 건강해 보였다. 고속도로는 여전히 소통이 원활했다.
서울은 여전히 높고 화려한 건물들로 가득했고 번쩍이는 네온사인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8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민규는 갑자기 어지러웠다. 잠시 찾아온 현기증 정도로 여겼다.
“응? 가보자! 나 진짜 가고 싶단 말이야!”
또 시작이다. 수원으로 전학 온 지 얼마 안 되어 난생 처음 여자 친구가 생긴 것도 좋고, 여자 친구가 애교도 많고 예쁜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이 여자 친구가 나를 정말 좋아해서 주말만 되면 놀러 가자고 성화인 것도 남들에게는 자랑거리다. 물론 놀러 가서 사진 찍는 걸 나를 좋아하는 만큼이나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를 어쩌면 좋은가. 사귄 지 두 달째. 내 통장의 잔액도 이만 원. 안된다고 하자니 울음을 터뜨릴 게 분명하고, 된다고 하자니 비용이 얼마나 들지가 걱정이다. 유미가 데이트할 때 돈을 안 쓰는 성격도 아니었지만, 나는 용돈이 넉넉하지 않은 편이라 일단 가까운 곳으로 가면 안 되냐고 애매하게 말이라도 꺼내보기로 했다.
“응? 화성행궁이 뭐가 멀다고 그래?”
“시외버스 타는 거면 충분히 멀지.”
유미가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돈이 없다는 걸 들킨 건지 아니면 처음으로 싸우게 되는 건지 조마조마해하고 있는데, 유미가 웃는다.
“아, 뭐야. 너 여기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모르는구나. 화성은 화성시가 아니라 수원에 있어, 바보야.”
그 날 나는 남한산성은 남한에 있고 갈매기살은 갈매기 고기라는 등의 놀림을 온종일 당해야 했다.
화성행궁에 갈 건데 왜 연무대에서 만나자고 했나 했더니, 연무대에서 화성행궁까지 행궁열차를 운행하고 있었다. 맨 앞 칸이 용머리 모양을 하고 있는 열차가 들어왔다. 화성열차를 본 적은 있어도 탄 적은 없다는 유미가 신이 나서 방방 뛰었다. 우리 옆에서 엄마 손을 붙잡고 있는 유치원생들이랑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여 웃음이 나왔다. 열차는 빨간 가마 모양이었다. 유미가 임금님처럼 앉아 에헴 하고 헛기침을 하는 것을 보며, 나는 수원시민에게는 열차가 무료라니, 일단은 살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열차는 삼십여 분을 달려 화성행궁에 도착했다. 화성행궁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원래는 우리나라 행궁 중 가장 규모가 컸던 곳인데 건물 하나를 제외한 모든 시설이 일제 강점기에 파괴되었다가 삼십 여 년 전부터 꾸준히 해 온 복원운동으로 이제는 제법 아름다운 모양을 갖추게 되었단다. 매표소 앞에 선 나는 생각보다 훨씬 저렴한 요금표를 보고 다시 한 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내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미가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바로 궁중 전통문화 상설 체험장이었다. 게다가 어디서 엽전 다섯 개를 가져와 내밀었다. 여기서는 이게 돈이란다. 농담인가 했더니 정말이었다. 엽전을 내고 떡메를 치거나 도자기, 한지 체험 등을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때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궁중 의복 체험이었다.
“너 저것 때문에 오자고 한 거지?”
“당연하지!”
이것도 돈을 내야 하는 건가 고민하고 있는데, 다행히도 엽전으로 계산하게 되어 있었다. 소꿉놀이를 하는 것 같은 기분에 어이가 없기도 하고, 화성행궁만의 방식이 재미있기도 했다. 제멋대로 내게 장군 옷을 골라 입힌 유미가 머리에 가채까지 쓰고 왕비 옷을 입고 나타났다. 이건 좀 불공평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여자 친구가 왕비 옷 입은 걸 언제 또 볼 수 있겠는가! 처음으로 둘이 찍은 커플 사진이 왕비와 장군 옷을 입은 채라니 세상에 우리 같은 커플도 없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미가 나를 쿡쿡 찔렀다. 글쎄, 이번에는 떡메를 치고 오라고 한다. 초등학생들이나 하는 거 아니냐며 자신 있게 나섰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린애 팔뚝만 한 머리가 달린 떡메를 더운 날에 내리치고 있자니 금방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엽전 한 닢을 내고 노동력까지 바쳐야 하는 건가 했더니 내가 친 떡에 고물을 묻혀 순식간에 인절미를 만들어주었다. 꽤 많은 양이라 점심까지 해결되었다. 인절미까지 공짜로 줄 리가 없는데, 이쯤 되니 뭔가 수상하다. 유미는 아직도 손에 쥔 엽전 두 개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할머니는 자주 혼자 계셨다. 언제부턴가는 가족들이 할머니를 보러오는 것도 귀찮은 눈치였다. 할머니는 엄마가 오징어채다 콩자반이다 밑반찬을 바리바리 싸와도 늘 김치 하나만 두고 드셨다. 그런데도 밥은 한 가득 꾹꾹 눌러 담아 드셨다. 그런 할머니에게 엄마는 바리바리 싸온 밑반찬과 함께 잔소리도 한 아름 늘어놓았다.
“엄마, 정말 이렇게 살 거야? 언제까지? 엄마도 아빠 따라 가려고 그래?”
“그런 말 마라. 이렇게 사는 게 어떻다고. 늙으면 다 그런 거지. 무슨 유난은. 이제 이런 것도 가져오지 마. 먹고 사는데 아무 문제없으니까.”
“김치, 지겹지도 않아? 그것도 폭삭 쉬어터진거. 만두도 못해먹겠다.”
할머니는 엄마의 잔소리가 귀찮다는 듯 조용히 보청기를 내려놓으셨다.
엄마는 할머니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잔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일종의 분풀이랄까 아니면 그것이 이 두 모녀만의 대화 방법이었을지는 모른다. 그저 반찬만 두고 바로 돌아선다면 독거노인 돌보러 오는 사회복지사와 무엇이 다를까 생각한지도 모른다.
할머니가 이렇게 혼자 계시기 시작한 것은 몇 달 전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서부터이다. 엄마는 할머니가 혼자 계시는 것이 안타까워 모셔간다고 우겼으나 할머니의 고집은 누구도 말릴 수 없이 단호했다. 엄마가 할머니께 반찬을 가져다줄 때면 내가 항상 뒤따랐다. 할머니 혼자 계신 집에 발을 들일 때면 항상 퀴퀴하면서도 짠 냄새가 났다. 할머니 고유의 살비듬 냄새가 벽지와 가구, 침구에 배어있는 듯했다. 할머니 댁에 갈 때면 은연중에 나도 모르게 킁킁거렸다. 예전에 할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에는 분명 깔끔한 냄새가 났었다고 기억한다.
“엄마, 할머니한테서 이상한 냄새가 나.”
“그런 말 마. 가꾸지 않아서 그래. 혼자 살면 원래 더 그런 거야.”
그리움이 켜켜이 쌓여서일까. 할머니의 방에서는 짜고 비릿한 냄새가 났다. 마치 새우젓과 같은 냄새랄까. 할머니의 흔적이 묻어있는 곳에서는 항상 할머니 냄새가 났다.
엄마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배추와 파 고추 등 김장에 필요한 재료들을 샀다. 할머니가 다 쉬어터진 김치만 두고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거실 한가득 김치 재료들을 늘어놓았다. 엄마는 한숨을 푹푹 쉬었으나 할머니를 다시금 찾아 뵐 이유가 생겼음에 기분이 들떠보였다.
김장 재료들 사이로 새우젓이 눈에 들었다. 할머니 방이 떠올랐다. 나중에 우리 엄마 방에서도 이런 냄새가 난다면 어떨까?
보자기로 한 보따리를 들고 할머니 댁을 다시 찾았다. 할머니는 반가운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심 속으로는 반가우신 모양이었다. 엄마는 언제나 그랬듯이 냉장고 문을 열었다. 저번에 엄마가 가져다 준 반찬이 거의 그대로였다. 엄마의 기대에 부응을 한 냉장고는 늠름하게 문을 닫았고 엄마의 잔소리는 다시금 시작되었다.
“엄마, 내가 가져다 준 반찬 하나도 안 먹었어?”
“먹었어.”
“뭘 먹어. 그대론데. 정말 속상하게. 또 김치 하나만 두고 먹었어? 휴. 안 그래도 김치 새로 담가왔어,”
“뭘. 또 새로 만들었어. 놔두라니까.”
할머니가 오늘은 보청기를 빼놓지 않는다. 엄마와의 대화가 이제는 귀찮지는 않은가 보다. 할머니의 방에 들어서면서 숨을 크게 들이마셔보았다. 할머니 냄새가 희미하게 묻어있었다.
할머니의 흔적이 묻은 곳에서는 짜고 비릿한 냄새가 났다.
딸애가 유치원에서 신선이라는 단어를 듣고 왔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신선이 뭐냐고 묻는다. 분명 유치원선생님에게도 똑 같이 신선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테고 선생님께서는 다정한 목소리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을 텐데 이 녀석은 내게 꼭 되묻는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하고는 마치 처음 듣는 다는 듯이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모습에 최대한 친절히 대답해주려고 한다.
“신선은 말이야. 산신령알지? 그런 것처럼 상상 속 인물이야. 도를 닦으면서 인간 세계에서 유유자적하며….”
아이에게 말을 해주면서도 아차 싶었다. 아이는 유유자적이 뭐야? 도를 닦는 게 뭐야? 하며 이맘때 쯤 아이들이 그렇듯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로 퍼부어 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어쩐지 곰곰이 생각에 빠진 듯했다.
“빈이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음, 신선은 왠지 좋은 것 같아서.”
역시 어린아이라도 감은 있는 듯했다.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 하는 삶만큼 매력적인 삶이 없다는 것을 그 짧은 이야기 속에서 캐치해 낸 듯했다.
“응, 빈이 말이 맞아. 신선은 아주 경치가 좋은 곳에서 자연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이란다. 그래서 아주 경치가 멋진 곳에는 신선이 노닐다 간 곳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지.”
아이는 반은 알고 반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에게 신선이니 유유자적 하는 삶이니 하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나니 퇴근 후 유치원에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넥타이도 제대로 풀지 못하고 앉아있는 신세가 어쩐지 처량해졌다. 풍류를 즐기며 유유자적하는 삶을 크게 동경하며 사는 것은 아니었지만 쉬는 것을 마다할 사람 없고 노는 것을 싫어할 사람도 없었다. 때마침 아내도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아이의 볼에 입을 맞추고는 아이에게 오늘 하루에 대해 물었다. 아이는 당연히 엄마에게도 처음 듣는 것처럼 신선이 뭐냐고 물었다. 나는 나와 똑같거나 비슷한 이야기를 하겠지라며 넥타이를 푸는데 아내의 입에서는 뜻밖의 이야기가 나왔다.
“빈이 저번에 아빠 엄마랑 무진정 갔다 온 거 기억나? 거기가 신선이 놀던 곳처럼 아름답다고 했었는데.”
“아! 맞아. 엄마랑 아빠랑 거기에서 사진 많이 찍었지!”
역시 엄마는 위대했다. 나는 아이의 눈높이는 고려하지 않은 백과사전같은 말만 늘어놓았는데 아내는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며 아이의 이해를 도왔다.
“응, 그러고 보니 지금쯤 무진정에 꽃도 피고 녹음이 푸르러 더없이 예쁘겠다. 봄은 이래서 좋아. 발길 닿는 곳 어디든 예쁘고 멋있잖아. 그래서 말인데 여보, 이번주 주말에 무진정 다녀올까? 저번에 갔을 때는 사람도 너무 많고 해서 제대로 만끽하지 못한 것 같아.”
이번주 주말이면 사회인 야구단에서 중요한 야구시합이 있는 날인데 차마 아내와 아이의 눈빛을 똑바로 보고 안 된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내는 내 대답도 마저 듣지 않은 채 벌써 룰루랄라였다.
어쩔 수 없이 야구단의 중요 경기에 참석 할 수 없다는 비보를 알린 채 아내와 아이의 손을 잡고 무진정으로 달렸다.
와아. 아내와 아이의 입에서는 동시에 감탄이 흘러나왔다. 아름다운 연못에 소박하게 자리한 정자가 기품 있게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이야. 무진정 무진장 아름답네.”
아내는 어쩐지 썰렁한 농담까지 곁들였다. 사실 주말을 손꼽아 기다린 야구 시합을 제쳐두고 온 것이라 입이 삐죽 나와 있던 차인데 무진정의 멋들어진 경치와 아내와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정말로 신선이 풍류를 즐기다 간 것처럼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내는 무진정 앞에 서니 신선까지는 아니더라도 조선 시대 문신 정도는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빠, 아빠가 신선 같아.”
빈이는 저 멀리서 달려오며 나보고 신선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순간 그렇게 늙어보이나 라는 생각이 들다가 아이의 함박웃음에 나도 따라 웃으며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무진정 무진장 아름답다 정말.”
아내와 나는 오랜 시간동안 한 곳을 바라보았다.
때는 1990년도. 나는 설레는 스무 살이다. 아니 스무 살이었다. 풋풋하고 순진함이 가득했던 그 때. 스무 살.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그런 나이다.
왠지 스무 살은 그렇지 않은가. 고작 한 살 더 먹은 것 가지고 다른 세계로 순간이동을 한 느낌이다. 적어도 그땐 그랬다. 십대에서 이십대로 변화되었고 술과 담배를 지적받던 청소년은 작은 카드 하나만 내밀면 만사 오케이니까. 그것이 스무 살이 누리는 행복이라는 단어였으니까.
수능만 끝나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나의 이십대는 흩날리는 사월의 벚꽃만큼 하늘하늘 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간 대학 그리고 짙푸른 잔디밭이 펼쳐진 캠퍼스를 꿈꿔왔던 나는 드디어 학교 동아리에서 첫 MT를 떠났다. 장소는 강원도 인제.
인제까지 가는 봉고차 안에서는 여행을 떠나요가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이때다 싶어 목청껏 따라 불렀다.
봉고차 안에서 나는 새내기다운 특유의 얌전함으로 창밖만을 내다보았다. 그때 옆자리로 다가온 한 남자, 현규선배다.
“혼자 뭐해? 이번에 들어온 신입생이지?”
다정하게 웃는다. 웃을 때마다 미묘하게 움직이는 볼을 따라 보조개가 살짝 패인다.
“네. 안녕하세요?”
나는 멋쩍은 듯 웃었지만 현규선배는 아무렇지 않은 듯 옆자리에 앉았다. 사실 현규선배는 우리 동아리에서 킹카로 불린다. 수수한 생김새를 하였지만 동아리 장답게 남자다운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옆에 앉은 선배보다 주위에 다른 사람 시선을 더 많이 살폈다.
도착을 알리는 내비게이션의 목소리가 들렸고 사람들은 숙소에 짐을 날랐다. 여자들은 레포츠를 즐기기 위해 가벼운 차림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듣기만 해도 시원한 내린천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인제는 열 가지가 넘는 레포츠를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우리는 2조로 나누어 내린천 래프팅을 하였고 진 팀에서 두 명을 선발해 번지점프까지 하기로 내기를 했다.
나는 현규선배와 같은 조였고 우리는 열심히 물살을 갈랐으나 상대팀의 덩치가 좋은 남자 선배의 리더십으로 우리 조가 지게 되었다. 번지점프를 해야 하는 사람을 뽑기 위해 가위 바위 보를 하였는데 그만 나와 현규선배가 걸리게 되었다.
이 무슨 우연의 일치인가. 나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선배는 히죽거리며 웃었다.
무서워하는 나를 말없이 꼭 안아주던 선배였다.
하나 둘 셋의 구호에 맞게 하늘을 날았다. 사월의 벚꽃이 하늘하늘 내리듯 그날 번지점프 위에서 내 마음도 하늘하늘 날았다.
낭만과 기대로 가득 찼던 첫 MT. 날이 저물고 캠프파이어 앞에서 통기타를 치던 선배가 생각난다. 돌이켜보면 즐거운 시절.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서른 즈음에 들어선 나는 괜히 그 때가 그립다. 이제는 웬만한 일에도 익숙해져서 인지 아니면 익숙함이 나를 익숙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때의 풋풋하고 어리숙함이 그립다.
번지점프 대위에 올랐을 때, 현규선배가 나를 안고 뛰어내릴 때 내 심장소리가 그에게 들렸을 까 고민하던 그 때로.
다시금 그 장소에 가보고 싶다. 무작정 떠나본다. 지갑, 휴대전화, 사진기 한 장 달랑 들고 떠난다. 사진첩에 담긴 그 장소 그 자리에서 다시 사진을 찍어본다. 선배도 함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바람이 불고 나는 네가 그립다.
여자를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남자는 한참을 그 시간에 멈춰있었다. 낮인지 밤인지 문 밖에 신문은 켜켜이 쌓여만 갔다. 술로 하루를 시작하고 또 술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남자가 마시는 것이 술인지 눈물인지 모를 만큼 슬픔을 잊기 위해 슬픔을 들이켰다. 얼마나 그 시간에 갇혀 있었던 건지 옆집 사는 사람이 쌓여있는 신문과 상해버린 우유들을 보고 초인종을 몇 번 누르고 간 적이 있다. 인기척을 낼 마음의 여유가 없던 남자는 그냥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렇게 몇 차례 경비 아저씨와 옆집 아주머니가 남자의 집 앞을 다녀간 뒤로 남자의 근황을 염려하는 사람은 없었다.
남자가 여자를 처음 본 것은 병원에서였다. 대학병원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동네에서는 꽤 큰 크기의 종합병원에 근무하던 여자의 직업은 간호사였다.
오토바이를 타다 균형을 잃고 넘어지면서 무릎을 크게 다친 남자는 여자가 근무하는 종합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실로 꿰맨 무릎에 소독을 하러 여자가 남자의 병실에 찾아왔다. 하얀 얼굴이라 그런지 단정한 간호사복이 잘 어울리는 여자는 순백의 천사처럼 보였다. 남자의 상처를 소독할 때면 마치 엄마처럼 상처부위를 호호 불어가며 소독약을 발랐다.
남자의 생활은 꽤 거칠었다. 어울리는 사람들은 험악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생활도 거의 해가 저문 밤에서야 시작되었다. 그런 그를 변화시킨 것도 여자였다. 사랑을 시작하게 되면서 거칠었던 생활도 점차 안정을 찾고 특별할 것 없이 잠잠하게 사랑을 키워나갔다.
그날도 어김없이 여자를 병원에 데려다 주는 길이었다. 매일같이 여자를 데려다 주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날따라 꺼림칙한 느낌에 잠깐 짬을 내어 여자를 데려다 주었던 것이다.
악. 짧은 비명과 함께 여자가 붉은 피를 쏟으며 자리에 쓰러졌다. 종종 어지럽다고 했었는데 그저 과로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여긴 여자의 몸이 병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줄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렇게 여자는 남자의 곁을 떠났다.
실로 오랜만에 남자의 집 앞에 인기척이 들렸다. 남자는 여전히 문 밖을 신경 쓰지 않았으나 강제적으로 문을 따는 소리가 들렸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현관문을 바라보았다. 철컥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집 주인의 허락도 없이 현관문은 스르륵하고 열렸다.
“아직도 이러고 있는 거야? 연락을 해도 답이 없더니만.”
남자의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친구의 방문 아니 무단침입이었다. 남자는 그 와중에 원래 집 주인 허락 없이 문 열어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가. 너랑 실랑이 할 힘도 없어.”
“어후, 술 냄새.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 건데. 뭐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할 것 아니야. 밥이라도 챙겨먹어야지 이 술병들 좀 봐.”
“만사 다 귀찮으니까 가라고.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알아서 하긴, 너 이렇게 사는 거 하늘에서 보고 좋아 할 것 같냐? 이젠 충분해 너도 돌아와야지.”
남자의 어깨가 들썩였다. 소리도 채 새어나오지 않은 울음이었다. 아주 작은 흐느낌으로 남자는 슬픔을 삼켰다. 남자는 여자가 이렇게 아팠던 것이 모두 다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았다.
남자의 슬픔을 바라보던 친구는 남자를 억지로 차에 태웠다. 그리고는 회산백련지에 남자를 데려다 놓았다.
“자. 이제 네 모든 슬픔 여기다 다 남기고 가. 그분도 편하게 보내주고. 이젠 편하게 보내줄 때 된 것 같다.”
하얗게 핀 연꽃이 꼭 그녀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담담한 눈빛으로 넓게 펼쳐진 백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그녀를 조금씩 놓았다.
넓게 펼쳐진 저수지에 유독 하얗게 핀 백련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했다. 이제는 놓아 보겠다고. 희고 아름다웠던 당신을 잊지는 않겠지만 더 이상 슬퍼하지 않겠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