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곡매괴성당에 새겨진 또 다른 기억
- 충청북도 음성군 -
이 땅에 오랫동안 뿌리를 내린 유서 깊은 성당을 가보면, 그 곳엔 헌신적인 신부가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매괴’라는 이름마저 낯설게 느껴지는 감곡의 옛 성당에도 그런 분이 있으니 바로 임 가밀로(Camille Bouillon, 1869~1947)라는 프랑스 신부입니다. 100년도 훨씬 전인 1986년도에 세워진 감곡 매괴성당의 초대신부인 임 신부에게는 전형적인 신부 모습 외에도 남다른 면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를 알면 뼈아픈 역사와 슬픈 희생의 정신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트래블아이>가 제안합니다. 매괴성당의 숨겨진 발자취를 만나라!
논과 밭, 산으로 둘러싸인 한적하고 평온한 마을 감곡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면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을 만난다. 바로 매괴성당이다. 쉽게 찾을 수 있을까?
“시계를 보니 서울에서 감곡터미널까지 버스로 1시간반 가량 걸렸구나. 감곡마을 방향으로 10분 정도 걸어온 것 같은데? 이즈음에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매괴성당이 보인다고 했어.”
“저쪽을 봐! 야트막한 동산 위에 붉은 벽돌과 첨탑이 있는 웅장한 건물이 바로 매괴성당일 거야! 가까이에서 보니 더욱 위풍당당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있는데?”
성당 내부 앞마당에 세워져 있는 이국적인 모습의 성모 마리아상은 ‘매괴의 어머니’로 불리며 많은 사람들의 내적 치유를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왜 ‘매괴’라 할까?
“수녀님, 그런데 ‘매괴’라는 이름이 너무 낯설어요.”
“지금은 잘 사용하지는 않는 용어죠. 천주교에서 하는 때문에 묵주기도는 장미꽃다발을 뜻하는 ‘로사리오(Rosario)’ 기도라고 불리는데 이 로사리오의 중국식 번역 한자어가 바로 ‘매괴’에요. 이곳은 ‘성모’를 수호성인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매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1896년 임 신부에 의해 설립된 이 성당은 충북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민족의 아픈 역사,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함께한 셈이다. 차근차근 그 이야기를 들어보자.
우리나라가 중국으로부터 천주교를 받아들일 당시였으면 정말 이 성당은 긴긴 역사를 갖고 있군요.
일제강점기엔 청년들과 학생들에게 한글교육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민족의 맥을 이어주었고,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 때엔 성모상이 수난을 당하기도 했었어요.
초대 신부였던 임가밀로는 1896년 여주 장호원에 본당을 세우고 이후 1930년에 다시 지 었다. 그 험한 시대에 성당과 이곳 성모광장 건립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새로운 사목지를 찾던 중 장호원에서 멋지고 큰 집 하나를 발견한 임가밀로 신부는 “이 집을 성당으로 삼을 수 있게 해달라고, 그러면 성모님을 마리아의 주보(수호성인)로 모시겠다”며 매일같이 성모께 간청을 했지요.“
“그의 신념이 현실로 이루어진 거군요.”
1943년 이곳에 또 한번 이곳에 성당이 지어진 연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은 본명 일본군이 신사를 지으려고 터를 닦던 곳이었는데?
“당시 임 가밀로 신부가 무염시태 기적의 패를 묻어두고 “이 공사를 중단하게 해주시면 이곳을 성모님께 봉헌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하셨답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공사 중 여러 가지 기상이변으로 더 이상 진행하지 못했다고 해요.”
“그의 뜻이 간절했기에 신사터가 될 뻔한 이곳이 성모광장으로 봉헌될 수 있었군요!”
이곳 매괴박물관 또한 1930년대 지어진 오래된 건축물. 충북 최초의 석조물인지라 회색빛을 띠기 때문에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런 멋이 느껴진다. 그 안으로 들어가 보자.
“전시실에는 1930년대에 사용됐던 신구약성서 한지 필사본 등 다양한 천주교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군요. 앗! 이건 임가밀로 신부의 태극기를 소개하는 글 아닌가요?”
“맞아요. 국 직후 임 신부는 고종 황제로부터 태극기 하나를 받았는데, 일제강점기 때 이 태극기를 제의장 밑에 깔고 미사를 돕던 사람들에게 몰래 보여줬다고 해요.”
일제의 감시로 사람들은 태극기를 만들지도, 마음대로 꺼내기도 어려웠던 시기였다. 이에 임 신부는 우리 민족에게 태극기를 보여줌으로써 민족의식을 일깨우고자 했던 걸까?
“정말로 마음 깊숙이 한국을 사랑했고, 한국의 신자들을 사랑했던 마음이 느껴져요.”
“박물관 옆으로는 산을 따라 묵주기도길과 십자가의 길 14처가 이어져 있어요. 이 성지를 한 바퀴 둘러보고 나면 아름다운 풍경과 100여 년 전 이곳에 살았던 외국인 신부의 마음이 전해져 마음이 더욱 따스해질 거예요.”
51년 동안 본당에서 사목 생활을 하던 임 신부는 194년 10월 "성모여 저를 구원하소서"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가 평소 하던 말은 더욱 뜻깊다는데?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임 목사가 평소에 자주 했던 말이었습니다. 매괴 성모성지 ‘영성의 집’ 앞에는 임가밀로 신부의 동상과 그 발아래 이 한 줄의 글이 새겨져 있죠.”
“이제는 성지 곳곳에 그의 향기와 그를 기억하려는 이들의 사랑이 자욱하게 남아 있어요”
종교적 의미는 말할 것도 없는 감곡매괴성당. 이와 더불어 이곳은 일제강점기의 혹독한 감시 하에서도 성당을 방문하고 미사를 보던 신자들에게 몰래 숨겨둔 태극기를 보여주곤 했던 임가일로 신부의 투철한 독립운동정신이 깊이 서린 곳이기도 합니다. 당시 신부가 꺼내든 태극기는 한국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그였기에 여기가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우리 민족의 가슴에 새겨두라는 의미였을 겁니다. 진정 나라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요? 여러분은 이곳 성지에서 어떠한 진정성을 느끼고 돌아올 생각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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