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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시야 너머로 산등성이가 붉게 타오르는 게 보였다. 하얀 구름이 짙어질 정도로 눈부신 오늘이 떠오르고 있다.
정묘사 가는 길, 그곳은 어째서인지 햇빛이 들지 않는 그늘이었는데 외롭다거나 춥지 않고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오래도록 잠겨있던 마음의 빗장이 열렸다. 그런다 한들 어찌 쉬이 들이닥칠 수 있을까.
언덕 위로 둥실, 배 한 척이 떠올랐다. 묘한 마음이 주는 묘한 풍경.
천 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이곳을 지나갔을 무수한 사람들. 그 사람들의 기억이 이어지는 한 영원이 흔들릴 깃발들.
얇은 봉지 너머로 따스함이 퍼진다. 호도과자 하나 입안에 넣으니 부드러운 것이 굴러다니며 담백하고 정갈한 향을 묻힌다.
언제부터 어깨를 맞대고 서 있었을까. 나무들과 울타리, 그리고 우리들의 모습까지.
이름을 붙이는 일, 그 하나로 이렇게나 특별해지는 길. 괜스레 우연히 마주친 풀꽃 한 송이에 이름을 붙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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