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 해 버렸다. 곱창골목에 가고 싶다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더니만, 일부러 먼 곳에서 오는 내게 시간을 맞춰 주는 정도의 융통성도 없는 건 여전하다. 칼같이 시간을 지키는 그 섬세함은 나 때문에 생긴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약속 시간 한 시간 반 전으로 알람 맞추고, 정시에 도착해! 약속 시간 십 분 전에는 전화 하고. 일 분도 지각하면 안 돼!’라고 으름장을 놓았던 것은 항상 내 쪽이었다.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곱창골목에서 걸어서 십 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카페골목으로 걸음을 옮겼다.
예나 지금이나, 이 거리는 참 예뻤다. 마치 향기로 골조를 세운 것처럼, 각 가게의 특색이 그대로 반영된 건물들이 가득 들어 차 있다. 프랜차이즈 점들을 무심히 지나쳐 테라스가 있는 붉은 벽돌집 앞에 섰다. 연애를 시작하던 무렵, 정현이와 함께 케이블카를 타던 날 들렀던 그 카페였다.
우리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마주 앉아 케이블카를 탔었다. 나는 너무 높아서 무섭다며, 소년처럼 신이 나 있는 정현이의 팔을 꼭 붙들었다. 아마 우리는 그 날 첫 키스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날의 붉어진 뺨처럼, 쉴 새 없이 두근대던 가슴처럼 달콤한 카페 모카를 주문했었다. 휘핑 크림을 잔뜩 얹어서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보이는 카페 모카를 말이다. 하지만, 방금 나는 카운터 앞에 서서 망설임 없이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카페 모카와 아메리카노 만큼이나 다르다.
새삼, 옛 연인과의 재회가 이렇게 사심 없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현이와 헤어진 지도 어느덧 삼 년. 우리는 그 후로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몇 달에 한 번 정도는 꼬박꼬박 만나서 새로 생긴 고민이 무엇인지, 점심으로 무엇을 먹었는지, 심지어는 새로운 애인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하긴, 나와 정현이 둘 다 그 새로운 애인이라는 사람들과 빠르게 이별을 고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야, 너는 어째 백 일을 못 넘기냐.”
“뭐래, 너 지난 번 남자친구랑 한 달도 못 채우고 헤어진 거 기억 안 나?”
정현이는 자연스럽게 내 몫의 아메리카노를 주문했고, 나 또한 습관처럼 정현이 몫의 카페 라떼를 주문했다. 그러고 나면 왜 네가 내 것을 시키느냐며 투닥거릴 차례다.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도 익숙해져 있었다.
나는 아직도 내가 처음으로 정현이 앞에서 카페 모카 대신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던 날을 기억한다. 정현이가 주문한 카페 모카를 취소하고, ‘아메리카노 주세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곧바로 ‘나 이제 아메리카노 마시는 여자야.’라고 농담을 건네려 했는데, 오랜만에 만났더니 입맛마저 바뀌었느냐고 묻는 정현이는 왠지 모르게 우울해 보였다.
그 때, 나는 내가 내심 정현이가 나 때문에 새로운 연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사이의 불문율에 속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진지해지는 순간 여느 헤어진 연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서로를 피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다 함은, 그 사이의 공백 기간 동안 서로의 향기를 잊기 위해서다.
아메리카노 한 잔과 한 시간은 찰떡궁합이다. 여섯 시 십 분 전. 어김없이 휴대 전화가 울렸다. 정말,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내가 변하려고 기를 쓰는 동안, 정현이는 우리들의 달콤했던 향기를 잊지 않으려 애를 썼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야.”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온 한 마디는, 정현이가 입버릇처럼 내게 했던 말이다. 입가에 슬쩍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옛 연인과의 재회가 사심 없을 수 있겠는가. 나는 지금 향기를 나누러 간다.
기다리는 일은 항상 생각보다 더디게 다가온다. 출근길의 버스나 고기가 낚시 바늘을 잡아 무는 순간, 아내의 귀가나 유채꽃이 피는 시기 같은 것들 말이다. 재희의 성화에 오늘도 호수공원에 나왔지만, 내가 이곳에서 사랑하는 것은 유채꽃뿐이다.
“아빠! 나 저 쪽!”
아이는 말을 배우는 속도가 더뎠다. 아내의 부재 때문일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아마 나 때문일 것이다. 아내는 명문대를 졸업한 엘리트였고, 나는 중학교 졸업을 최종 학력으로 가진 막노동꾼이었다. 그날, 아내는 하얀 원피스를 입고 빨간 가방을 멘 채 유채꽃밭에 서 있었고, 나는 공원을 재정비에 동원되어 자재를 나르고 있었다.
어떻게 우리의 눈이 마주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썩어가던 더러운 하천이 말끔히 정비되어 아름다운 호수 공원으로 바뀐 그 해에 결혼식도 올리지 않고 살림을 차렸다. 나는 쓰러진 장모님 앞에서, 아내를 평생 행복하게 해 주겠다며 무릎을 꿇고 빌었다.
단칸방에서 시작한 살림이었지만, 불행하다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집 안에서 큰 소리가 나거나, 아내가 눈물을 흘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조금씩 나아지리라. 그러면 나는 아내에게 하얀 원피스를 선물하고, 아내와 나는 각자 아이의 오른손과 왼손을 잡고 유채꽃밭을 걸어야지. 아내는 장롱 안에서 빨간 가방을 꺼내 메고, 아이가 넘어지면 내게 주었던 노란 손수건으로 아이의 상처를 정성스레 닦아 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아이에게 다가가
“아빠, 나!”
재희가 갑자기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나는 무심코 재희의 손을 뿌리치고 말았고, 어린애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나는 당황해 재희를 안아 일으키고 무릎이며 팔꿈치를 살펴보았다. 아이는 울지 않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만 있다.
“엄마 생각 해?”
나는 울고 싶어졌다.
아내는 재희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돈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살릴 수 있었을 텐데, 그놈의 돈이 없어 차일피일 병원 가는 것을 미루다보니 어느 새 늦어버리고 말았다. 블라인드가 쳐진 병실이 아니라, 창문에 신문지를 붙여 둔 단칸방에서 겨울 이불을 뒤집어쓰고 떨다가 죽었다.
아마 아내는 마지막 순간에 아이에게 먹일 분유를 타 주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겨우 기어 다니기 시작할 나이였던 재희는 엄마가 끝내 놓치고 만 빈 젖병을 안고 잠들어 있었고, 내가 집에 들어오자 옹알이 소리로 웃으며 나를 불렀다. 그 때부터 나는 왠지 아이가 무서웠다.
“다친 데 없지? 아빠 왜 불렀어?”
재희가 안내문을 가리켰다. 읽어 달라는 모양이었다. 안내문에는 장자못 설화가 적혀 있었다. 며느리는 장독대 뚜껑을 덮지 않은 것이 기억나 뒤를 돌아보았고, 그대로 돌이 되어버렸단다. 우스운 이야기였다. 나는 다시 눈물이 날 것만 같아서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유채꽃이 피려면 아직 두 달은 더 기다려야 했지만, 장미정원에는 장미가 만개했다고 한다. 나는 재희를 안고 천천히 둘레길을 따라 장미정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옛날 장자가 살던 자리에서 커다란 고기들이 뻐끔뻐끔 입을 벌리고 있었다. 물고기가 숨 쉰 자리에서 동심원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재희가 내 옷깃을 꼭 잡고 수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동심원이 늘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오랫동안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오늘은 동호가 좋아하는 음악수업이 있는 날입니다. 특별히 음악실에서 수업을 하기 때문이지요. 동호는 특별히 음악수업을 좋아하였습니다.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아이들은 자리를 정돈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음악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수업을 시작하셨지요. 교과서를 보니 오늘은 판소리에 대해 배우는 날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대뜸 아이들에게 눈을 감으라고 하더니 카세트테이프를 틀었습니다. 그러자 테이프에서는 예전에 들어본 적 있는 판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소리가 흘러나오자마자 머리가 주뼛거리고 이상한 전율이 흐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모두 수업이 지루했다고 투덜거렸습니다. 재미도 없고 지루하기만 한 판소리보다 뮤지컬이나 오페라가 더 좋다고 삐죽거렸지요. 하지만 동호는 친구들의 의견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학교 수업이 끝날 때까지 판소리의 여운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동호는 가방도 푸르기 전에 판소리에 대해 검색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오늘 수업시간에 들었던 신재효 선생에 대해서도 상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밤이 되고 동호는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동호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의 주변은 온통 상투를 튼 사람들과 한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었지요. 그리고 한 고즈넉하게 자리한 초가집에서 낯익은 얼굴의 할아버지가 나왔습니다.
바로 동호가 오늘 공부한 판소리를 집대성한 신재효 선생이었지요. 반가운 마음에 동호는 선생께 알은체를 하였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을 이렇게 만나 뵙다니 정말 반갑습니다! 선생님께서 판소리 여섯 마당을 엮으신 분이시지 않습니까?”
“이놈, 네가 나를 어찌 아느냐. 소리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 것이냐.”
동호는 신이 나 신재효 선생 앞에서 그날 배운 판소리와 동호가 느낀 소리에 대한 마음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러자 신재효 선생도 그런 동호가 기특했는지 방으로 들어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동호는 꿈속인지 아닌지 신재효 선생 뒤를 따라 다니며 직접 소리에 대한 진심을 배우고 우리 소리에 대한 마음을 배웠습니다. 동호가 아는 단순한 판소리의 지식이 아니었지요.
따르릉 울리는 전화소리에 동호는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잠에서 깬 동호는 어리둥절하였습니다. 신재효 선생님을 만나 몇날 며칠 판소리를 배우던 것이 모두 꿈이었던 것이니까요. 하지만 꿈이라고 하기에 너무 생생하였던 동호는 당장 고창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신재효 선생이 머물던 고택에 도착하였지요.
꿈에서 보던 초가집이 그대로 있고 꿈속에서 선생과 함께 배우던 것들과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꿈속에서 선생과 함께한 집안 곳곳을 둘러보던 중 이상한 증표가 하나 보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동호가 꿈속에서 몰래 남긴 흔적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동호는 그것이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혼란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꿈이 아니었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리고 마음 한편에 찡한 무엇인가가 느껴졌지요. 그것은 음악수업시간에 판소리를 들었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였습니다.
동호는 신재효 선생이 밟았던 길을 밟고 싶어졌습니다. 한참을 고택에 머물던 동호는 감사의 인사를 전한 뒤 선생님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길을 나섰습니다.
우리의 소리를 찾기로 한 동호의 마음속에는 선생의 소리의 한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습니다.
어느 날 문득 걸려온 전화 한 통. 초등학교 동창생에게 걸려온 전화이다. 사실 그녀가 학교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 초등학교 동창생 인줄은 꿈에도 몰랐다. 설거지를 하던 도중에 급히 받은 전화라 대충 받고 끊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생각보다 길어진 통화에 고무장갑까지 벗고 진지하게 전화를 받았다.
1993년 폐교가 된 생둔분교. 가물가물한 이름을 말하는 동창생이지만 일단 반갑게 통화를 했다. 평소보다 한 옥타브 정도는 더 높은 톤의 목소리에 동창생과 통화를 하는지 콜 상담원직원과 통화를 하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걸려온 전화의 요지는 이번 동창회는 특별하게 분교에서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반드시 참석하라는 것. 권유가 아닌 통보다.
홍천에서 서울로 떠나온 지가 언제인데. 그리고 이름도 얼굴도 가물가물한 옛 친구들과의 분교캠핑이라니. 다 늙어서 무슨 캠핑이람?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다.
홍천 시내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나오는 오지마을. 그동안 궁금하긴 했다. 매캐한 연기와 콘크리트 덩어리들 사이에서 쉼 없이 달려온 그동안의 시간 속에서 이곳이 궁금하긴 했다. 학교도 친구들도 마음속으로 안녕을 전해야만 했던 추억들이었다.
미숙이의 끈질긴 설득에 못 이기는 척 동창회에 나가기로 했다. 약속장소 도착 5분 전 친구들이 나를 못 알아보면 어쩌나, 초등학교 친구들이라 얼굴이 많이 변했을 텐데. 똑같이 나이를 먹고 같이 늙어가는 처지였으나 어쩐지 늙는다는 것이 서럽게 느껴졌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동창회 소식을 알리던 미숙이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전화 속 목소리와 다를 것이 없었다.
“어머 반갑다. 얘, 얘는 어떻게 늙지를 않니?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엉?”
궁금한 것이 많은 모양이었다. 버스 안에 앉아있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니 졸업을 하기 전 떠난 수학여행이 생각났다. 많지 않은 전교생이라 소풍 정도로 보였겠지만 그 나름의 추억이 있었다.
도심의 때가 묻지 않은 마을에 도착하니 감회가 새롭다. 점심도 그때의 추억 그대로 김밥에 주황색이 진한 환타 병까지 준비되었다. 삼삼오오 둘러앉아 점심을 먹으니 언제 그랬냐는 듯 어색함이 눈 녹듯이 사라진다. 세월이 무색하게도 어색함이 없는 친구들. 맨 앞자리에 앉던 키 작은 친구, 뺑뺑이 안경에 반에서 일 등만 하던 반장 모두 그대로이다.
남자들은 물고기를 잡겠다며 바지를 걷어 올리고 족대를 들고 한껏 들뜬 모습으로 계곡으로 향했고 여자들은 금방 쪄낸 옥수수를 하나씩 들고 살아온 이야기를 나눴다.
일찍 시집갔던 친구는 벌써 손주를 보았고 여태껏 일만 하다 결혼을 못 한 친구도 있었다. 삶이 다 제각각이었지만 다들 열심히 살았나 보다.
언젠가 경비아저씨와 악을 싸우며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는 중년의 여성을 본 적이 있다. 내 나이와 비슷한 중년의 여성은 쉬지 않고 말을 했고 그 모습이 적잖이 꼴 보기 싫었다. 그 이후로 중년의 여성이 쉼 없이 말을 하는 것은 결코 아름답지 않음을 느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모인 이들 앞에서 쉼 없이 지난날을 곱씹고 있다. 누가 보면 꼴 보기 싫을 수도 있으나 상관하지 않는다.
어느새 내 옆에 와 있는 미숙이가 가볍게 한마디 던졌다.
“거봐, 오길 잘했지?”
빙그레 웃었다. 오길 잘했다. 2013년이 아닌 1993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으니까.
밤공기가 제법 쌀쌀해졌다. 서울 도심 한복판이었으면 열대야라며 손부채질을 끊임없이 해댔겠지만 이곳의 공기는 청명했다. 달도 밝고 별도 쏟아질 듯이 빛났다.
어느 샌가 친구들은 모두 별을 바라보았다. 언제 다시 이곳에 모일 수 있을까. 벌써 헤어짐이 아쉬운 걸까. 그리움을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의 행복과 기억이 추억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것인지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몰랐을 것이다.
밤공기를 들이마셔 본다. 차가운지 따뜻한지 모를 공기가 콧속으로 들어와 마음에 머문다.
때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재작년에 시집을 간 여동생의 전화였다.
“언니, 주말에 뭐해? 우리 슬비 좀 하루만 봐주면 안 될까? 한번만 더, 응?”
주말에 뭐하냐고 물어보고선 내가 대답을 할 여유도 주지 않은 채 자신이 전화를 건 본 목적을 뒤따라 이야기 하는 동생이었다. 귀여운 조카 봐주는 것에 인색한 이모는 아니었지만 몇 년째 아이를 기다리는 사람의 입장으로서는 어쩐지 조금 얄미운 구석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렇다고 싫은 내색을 하기에는 어쩐지 조금 치졸한 이모가 될 것 같아 알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슬비는 엄마인 내 동생보다 어쩌면 나를 더 많이 따랐다. 여동생이라고 왜 배 아파 난 자기 자식이 안 예쁠까, 그저 나는 슬비에게 조금 더 약간의 집착이 섞인 행동을 하는 것일 뿐이다. 마치 꼭 저 아이에게서 ‘엄마’라는 단어를 듣고 싶은 사람처럼.
약속된 주말이 왔고 귀엽게 양 갈래를 하고 공주가 그려진 예쁜 원피스를 입은 슬비가 왔다. 이맘때 다른 아이 같으면 엄마랑 떨어지지 않겠다고 울며불며 떼를 쓸 텐데 슬비는 이모인 내 품에 쏙 하고 안겼다. 그리고는 쿨하게 엄마에게 빠이빠이 하며 손을 흔들었다. 여동생은 모처럼 남편과 데이트를 하러 가는 듯했다. 슬비를 내게 맡겨두고는 미안했는지 작은 봉투를 건넸다. 맨입으로 맡겨도 서운했을 텐데 막상 이렇게 돈 봉투를 보니 어쩐지 더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슬비 점심부터 좀 먹여줘 라는 말과 함께 동생네 부부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집을 나섰다.
“우리 슬비 무슨 반찬 해줄까? 점심 먹고 이모랑 뭐하고 놀지 생각해봐.”
“음, 나 치즈계란말이 먹고 싶어.”
이젠 제법 똑 부러지게 자신의 입장 혹은 의견을 말하는 것을 보고 대견한 마음이 들면서도 약간의 거리감이 들었다. 조만간 이모네 집에 가기 싫다고 똑 부러지게 제 엄마에게 말이라도 하면 어쩌나 싶기도 했다.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슬비는 가방에 싸온 몇 가지 장난감을 바닥에 늘어놓은 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조잘조잘 혼자 떠드나 싶더니 이내 조용해져 불안한 마음에 거실 쪽으로 얼른 머리를 쏘옥 내밀어보니 무엇을 보는지 꽤나 집중을 한 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보아하니 텔레비전에서는 슬비 또래의 아이들이 얼룩소에게 먹이도 주고 치즈로 피자를 만드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슬비야 점심 먹자. 맛있는 돌돌 치즈계란말이가 왔어요~”
슬비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텔레비전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은 몸도 찌뿌듯해서 집에서 놀다가 잠깐 놀이터나 나갔다올까 했는데 슬비는 저곳에 가고 싶은 눈치였다. 하는 수 없이 점심을 먹이고 차키를 챙겨 계양산자연체험학습장을 네비에 찍고 시동을 걸었다. 이래서 요맘때 아이들이 뭐든 다 들어주는 이모를 엄마보다 더 따르는지도 모르겠다. 멀리서 계양산자연체험학습장 간판이 보였다. 슬비는 얼마나 신이 났는지 카시트에서 몸을 들썩였다. 벌써부터 시골냄새가 진하게 풍겨왔고 슬비 또래의 아이들이 보였다. 저 멀리서 체험장 관리하는 선생님이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어머니, 우선 아이 손부터 깨끗이 씻게 하시고 오늘 체험 등록한 아이들과 함께 젖소 젖짜는 체험부터 진행할게요.”
어머니? 물론 이 사람 입장에서는 엄마처럼 보였겠지만 누구의 어머니, 엄마라는 말이 생소한 나는 그만 얼굴이 새빨개졌고 부끄러운 마음에 얼른 아이를 데리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이의 손을 씻기는 데 웬일인지 눈물이 고였다. 조카를 데리고 온 것도 좋지만 정말 내 아이와 함께 오면 얼마나 좋을 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기 때문이다.
아이는 즐거워보였다. 또래 친구들과 젖소 먹이도 주고 쓰다듬기도 하며 도심에서 쉽게 체험하기 힘든 체험들을 하며 정서발달과 신체발달을 고루 키워나갔다. 드디어 오늘 체험의 하이라이트, 직접 만든 치즈로 피자를 만드는 것이다. 사실 내 여동생은 슬비가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피자나 치킨 같은 음식들은 먹이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한 적이 있다. 그 흔한 자장면도 안 먹이고 직접 만들어 준다나. 그런데 오늘 이렇게 하이라이트 순간을 목전에 두고 물러설 슬비가 아니었다. 평소에 떼를 잘 쓰지 않는 성격이지만 꼭 하고 싶다거나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물불을 안 가리고 떼를 쓰기에 오늘 하루는 그냥 피자를 먹이기로 하며 체험을 이어나갔다.
우선 앞에서 선생님이 치즈에 대한 성분과 치즈 만드는 법을 간단히 설명했고 뒤따라 아이들과 부모님들도 치즈를 만들었고 자신이 원하는 재료를 받아다 피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고소한 포테이토 치즈 피자를 만들었고 오븐에 15분 동안 구워내면 완성이었다. 하나 둘씩 저마다 만든 피자를 오븐 앞으로 가져갔다. 고사리 손으로 피자 위에 치즈를 듬뿍 올리고 피자가 익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모, 난 이모가 정말 좋아.”
대뜸 고백을 해오는 슬비에 웃으며 이모도 그렇노라고 말해주었다.
“난 정말이야. 치즈가 좋은 것처럼 이모도 그만큼 좋아.”
슬비는 자신이 정말 좋을 때 치즈에 비유해서 그 양을 말하곤 했다. 그러니 나는 슬비에게 엄청나게 큰 점수를 딴 것이 분명했다.
“고마워, 이모도 슬비 엄청 많이 좋아해.”
“이모, 나한테 동생이 생기더라도 나 많이 좋아해줘야 해.”
여기서 동생은 내가 낳을 아이를 말하는 듯했다. 내가 미쳐 대답을 하기전에 오븐에서 땡 하는 소리가 울렸고 고소하고 부드러운 치즈피자가 완성됐다. 슬비는 언제 그랬냐는 듯 피자를 보고 흥분하여 방방 뛰었다. 직접 만든 피자를 입속에 넣는 순간 치즈가 사르르 녹았다. 어쩐지 마음에 맺혔던 무언가도 함께 사르르 녹는 기분이 들었다.
체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슬비는 고단했는지 곯아떨어졌다. 우리가 집에 도착하니 뒤이어 여동생내 내외도 도착했다.
“언니, 오늘 슬비가 말썽 안 부렸어? 매번 고마워. 그리고 이거.”
동생의 손에는 인진쑥과 함께 산부인과 진료카드가 들려있었다.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에 마음이 스르르 녹았다.
눈 깜짝할 새에 또 신년이었다. 맥주 한 캔을 사 와서 안주 없이 마시며 텔레비전으로 제야의 종 치는 걸 구경했다. 혹시 핸드폰이 울리지는 않는지 계속 확인 해 보았지만 별다른 연락이 오지 않았다. 다들 자고 있는 모양이었다. 시차 때문이니 어쩔 수 없지. 혼잣말을 하며 이어지는 축하 무대를 본다. 벌써 삼 년 째 혼자 맞는 신년이었다.
“이런 호수 말고, 애들이 빨리 바다를 봐야 하지 않겠어요?”
아내가 농담처럼 꺼낸 한 마디가 시작이었다. 우리 부부 모두 대학을 나오지 못한 것이 한이었다. 이래저래 불편한 점도 많았고, 서러운 경우도 많이 당했었다. 아내는 오래 전부터 계획을 준비한 듯, 일사천리로 서류 준비를 끝내고 아이들과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입버릇처럼 ‘우리 애 교육만은’하고 되뇌었었는데, 막상 아내와 아이들을 떠나보낼 때에는 그 앞에서 펑펑 울지 않은 게 용하다 싶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남부럽지 않은 교육 환경을 만들어 주기로 신혼 때부터 약속해 온지라, 떠나는 가족들 앞에서 서운하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제대로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나는 그렇게 기러기 아빠가 되었다.
새해 아침에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호숫가로 나섰다. 날이 꽤 추워 현관문을 열면서부터 옷깃을 손으로 꽉 여미고 나섰는데, 막상 나서보니 맑은 공기가 상쾌했다. 며칠 째 내리던 눈도 이제는 모두 그친 모양이었다.
가족 단위로 호수를 보러 마실 나온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나 많았다. 호수의 얼음 위를 걸어보겠다고 조심스레 한 발짝씩을 내 딛는 이들도 있었다. 아이들이 부모 손에 매달려 웃는 모습을 보니 코끝이 아려왔다. 우리 아이들도 딱 저만할 텐데. 아니, 못 본 지 삼 년이나 되었으니 아마 머리 하나는 더 자랐을 것이다. 서러워하지 않기로 했는데, 외로움은 내 힘으로 어찌 할 수가 없었다.
얼어붙은 호수에 눈이 덮인 모습이 마치 저 멀리 남극 대륙에 온 것 같았다. 그 신비로운 모습을 렌즈에 담으려 애쓰는 남자도 보였다. 저 앵글 속에 내가 들어간다면 안성맞춤일 것이다. 목을 움츠린 내 모습은 펭귄을 닮았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가족으로서의 내가 필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비약이다. 하지만 수 년 간 쌓여 온 외로움이 사람을 점점 더 비관적이게 하고 있었다.
혼자서라도 떡국을 끓여 먹어야 하나, 친구를 만나 볼까. 이런 저런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해져 있는데, 저 멀리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비닐봉투에서 무언가를 꺼내 뿌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곳이라더니, 철새들이 먹을 모이를 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용기를 내어 그들에게 다가가 보았다.
“저어, 저도 한 번 해 볼 수 있을까요?”
그들은 선뜻 준비되어 있던 봉투들 중 하나를 내 손에 쥐어주며 요령을 알려준 뒤, 제각기 몇 마디씩을 건넸다.
“겨울이니 청둥오리나 쇠오리, 쇠기러기 같은 녀석들이 찾아 올 거예요.”
“여기 사는 녀석들도 아니고, 한 철 잠시 다녀가는 녀석들이지만 반갑게 맞아 줘야지.”
나는 그들이 모두 외로운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이들도 어딘가에 돌아올 사람들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새들의 길목에 서서 다른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언 땅에 모이를 흩뿌렸다.
벚나무 가지에 쌓여 있던 눈이 머리 위로 조금씩 떨어져 내렸다. 나는 이른 봄을 맞이하는 기분으로 벚나무 밑에 서 있었다.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핸드폰 너머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벚나무에서는 꽃잎이 흩날릴 것이다.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수산시장의 하루가 시작된다. 얼음을 나르며 생선들에게 오늘 하루도 잘 부탁한다는 말을 건넨다. 수산시장만의 비릿한 냄새가 이제는 익숙한 사람들은 손에 물이 안 묻는 날이 없다. 겨울이면 옷을 겹겹이 껴입어봐도 고무장갑 사이로 들어오는 냉기 때문에 몸이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한두 번이 아니다.
가지런히 정돈된 생선들과 횟감을 둘러보는 사람들 사이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오늘 횟감 좋아요~ 사장님 한번 둘러보고 가셔.”
준영은 멀리서 엄마가 장사를 하시는 걸 보고만 있다. 손님이 엄마의 손을 냅다 뿌리치고 나서야 엄마에게 슬며시 다가갔다.
“여긴 또 뭐 하러 와. 공부하라니까. 이 좋은 옷에 비린내 배겠다.”
“오늘 장사 많이 했어? 추운데 얼른 접고 같이 들어가자.”
“무슨 소리, 너는 얼른 공부하고 나는 얼른 장사하고 그게 우리가 할 일이야. 그만 가봐. 엄마 일 해야 해.”
준영은 엄마를 주려고 가져온 손난로를 채 건네지도 못하고 돌아섰다. 준영은 노량진에서 고시공부를 하고 있다. 이따금씩 엄마를 보러 수산시장에 오면 엄마는 옷에 냄새 밴다며 한사코 돌아가라고만 한다. 생선박스나 얼음은 덩치가 큰 장정들도 혼자 옮기가 힘든데 엄마는 번쩍번쩍 잘도 든다. 여자는 약하나 엄마는 강하다는 말이 이런데서 나오는가 싶다.
엄마가 내색은 안 해도 내가 수산시장에 가면 옆 상회 아주머니들께 장차 나랏일을 할 우리 아들이라고 소개했다.
이따금씩 공부하는 것이 지겨워 ‘노량진’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치열하게 공부하는 사람들과 더 치열하게 생선을 파는 사람들. 어쩐지 엄마와 준영이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엄마에게 손난로를 건네주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는지 엄마는 그날 심한 열감기에 걸리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일을 나가시겠다며 완고하게 고집을 부리시는 통에 하는 수 없이 엄마를 모시고 시장으로 나갔다.
“너는 이제 올라가봐. 들어오지 말고.”
“오늘은 제가 도울게요. 엄마는 병원 다녀오세요.”
“병원은 무슨, 감기 가지고. 여기만 오면 다 낫는다. 여기가 엄마한테는 병원이다.”
말은 그렇게 해도 엄마는 내심 내 손을 뿌리치지는 않으셨다. 오늘 하루는 공부 말고 엄마를 돕기로 하고 방수 앞치마에 장화, 고무장갑까지 끼며 생선들을 정리했다. 생선 종류가 하도 많아 어떤 게 어떤 것인지 듣고 본격적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오늘 생선 정말 싱싱해요. 어찌나 싱싱한지 펄떡거리는 거 잡다가 손목 부러질 뻔 했다니까요!”
“허허, 젊은 청년이 말도 잘하네. 키로에 얼마라고?”
“헤헤, 3만원만 주세요. 큰놈으로 골라 드릴 테니까 어서요.”
준영이 손님을 끌어오면 엄마가 회를 떴다. 엄마는 그 와중에도 손님에게 장차 나랏일을 할 사람이 골라준 생선이라며 쓸데없는 생색을 내셨다. 엄마는 빨간 코끝에 하얀 콧물이 맺힌 줄도 모른 채 생선 내장을 발라냈다.
잠시 손님이 뜸했다.
“엄마는 여기 이 냄새 그리고 생선 지겹지도 않아?”
엄마는 잠시 손난로를 만지작거리시더니 아니 라고 짧게 대답하셨다.
“나는 가끔, 아주 가끔 이 노량진이 지긋지긋해서 나가고 싶은 적도 있었는데. 엄마는 없다고?”
“지긋지긋 하지. 나라고 왜 아니겠어. 그래도 여기만큼 활기 넘치고 싱싱한 곳이 없어. 제철이면 제철 맞은 생선들이 파닥이고, 엄마는 이 비린내 흉이라고 생각 안 해. 나한테 주는 훈장이지 훈장.”
“근데 왜 나는 옷에 비린내 나니까 못 오게 해?”
“그게 너랑 나랑 같은가. 엄마는 여기가 일터고 너는 일터가 따로 있지 있으니까 그렇지. 그나저나 오늘 엄마 땜에 공부 하나도 못해서 어쩌냐. 곧 시험이라며.”
“하루 안했다고 떨어지는 실력이면 시험 봐도 그만이야. 오늘 공부보다 더 값진 공부 했는데 뭐.”
엄마는 껄껄 웃으셨다. 모처럼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가슴 한 편이 뭉클했다.
비린내 가득하지만 싱싱함과 마주한 이곳. 노량진. 우리 모자에게 노량진은 그런 곳이다.
팟, 하는 소리와 함께 순간 하늘이 닫힌 것 같은 어둠이 짙게 깔렸다. 눈을 몇 번 깜박이니 차츰 약간의 빛이 새어 들어왔다. 정전인 것 같았다. 급히 휴대전화의 불빛을 비춰보니 우리 집만 전기가 나간 것이 아니라 아파트 전체의 문제인 듯 했다. 의도하지 않은 어둠은 사람을 멍하게 만들었다. 전화도,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아무것도 소용이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미리 충전해두었던 휴대전화로 빛을 비추어 보거나 긴급통화를 할뿐, 그마저도 남은 배터리가 15%밖에 되지 않았다.
시간을 보니 아직 8시 40분밖에 되지 않았다. 전기가 언제쯤 공급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무인도에 갇혀 언제 구조될지 모르는 사람처럼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가벼운 외투를 집어 들고 집을 나서려는데 문자가 왔다.
“지금 우리 아파트 정전됐어. 요즘에도 가끔씩 정전이 되나봐. 심심해.”
오래전부터 알던 진환의 문자다. 듣자하니 진환이네 집도 정전이 되었나보다. 뉴스에서 전력공급 수요량에 대해 보도되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 때문인가 생각했다.
“우리 집도 지금 불 나갔어. 너네 동네랑 우리 동네랑 멀지 않아서 그런가? 심심한데 밖에서 잠깐 볼래? 맥주나 한 잔 하자.”
나도 나가려던 참이었다고 하고 우리 동네 앞 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 녀석과 나는 원래부터 잘 알던 사이였으므로 어색할 것은 없었다. 가벼운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나가니 진환이 멀리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가만 보면 우리는 참 공통점이 많다.
“여! 왔어? 갑자기 무슨 정전이래.”
“그러게. 그것도 우리 동네랑 너네 동네랑 같이 정전이라니. 웃기다 크크”
“근데 순간적으로 불이 탁 나가니까 기분이 묘하더라. 내가 너무 불빛에 익숙해졌나 싶기도 하고.”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나보다.
“그래도 막상 2~3분 지나고 나니까 할 게 없어서 불편하던데? 너도 심심하다고 나온 거잖아.”
“그건 그래. 와. 저기 새로 지어진 아파트 되게 으리으리하다. 그치? 저기 공원은 여기랑은 딴 동네 같지 않냐? 친환경 생태도시라던가? 저거봐, 여기는 정전인데 저기 보이는 불빛 봐. 엄청 화려하다. 빨강에 파랑에.”
“부러워?”
“아니. 뭐 부럽다기보다. 그냥. 얼른 결혼해서 저런 좋은 집에 살면 좋겠다는 뭐 그런 생각?”
우리는 비슷한 시기의 각자의 연인과 헤어졌다. 그것도 결혼을 약속한 상대들과. 연인과 헤어진 이유는 각자 다르겠지만 시기가 비슷해서일까 우리는 서로에게 꽤나 큰 의지를 했었다. 인연은 따로 있을 거라면서. 진환은 당시 여자 친구와 결혼을 준비하면서 지금 보고 있는 아파트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런 곳에서 서로를 닮은 아이와 함께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만 해도 행복할 것 같다고 한 적이 있다.
진환의 얼굴빛은 불이 꺼진 방처럼 쓸쓸해졌다.
“가자. 뭘 그렇게 넋을 놓고 보고 있어.”
“곧 분수가 올라올 거야. 분수만 보고 가자.”
진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분수는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화려한 불빛을 받은 분수는 아름다웠다.
언제부터였는지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있었고 분수는 아름답게 솟아올랐다.
아주 잠깐이리라. 솟아오르고 금방 내려오는 분수처럼 혹은 다시 불이 켜지기까지의 정전의 시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