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고려의 임시수도였던 강화는 심도(沁都)라고도 불리운다. 이러한 강화도의 중심부를 걸으며 고려와 조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현장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강화나들길의 제1코스는 바로 ‘심도역사 문화길’이다. 이곳에서는 강화도령의 잠저, 고려의 왕이 살았던 고려궁지, 프랑스군이 탈취해간 의궤가 있었던 외규장각, 숙종 때 쌓은 성의 흔적이 남아 있는 강화산성, 몽고와 강화조약을 맺었던 연미정 등 열거하기 조차 힘들 정도의 다양한 역사 및 문화 유적을 도처에서 마주할 수 있다.
강화 특산물 체험. 강화풍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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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심도역사 문화길 탐방은 강화터미널 가까이에 있는 강화인삼센터, 강화풍물시장에서부터 시작된다. 강화 특산물은 강화섬쌀, 순무, 속노랑고구마, 인삼, 사자발약쑥, 화문석, 수산물 등이며, 강화풍물시장에 들어서면 다양한 특산물을 쉽게 구입하고 이를 활용한 먹거리를 맛볼 수 있다. 이곳에서 강화의 맛을 경험하고 심도역사 문화길 탐방을 시작한다.
대몽항쟁의 역사. 강화산성 망한루(동문)
강화산성은 고려시대 몽골의 제2차 침입에 대항코자 축조한 산성으로, 안파루(남문), 첨화루(서문), 망한루(동문), 진송루(북문)의 4대문과 암문, 수문, 장대 등의 방어시설이 있다. 능선을 따라 이어진 성곽길에는 초록이 무성하다. 산성의 남장대가 자리한 남산에 오르면 산 아래 강화읍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강화읍 뒤편으로는 바다가 보이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바다 뒤로 북한의 송악산을 볼 수 있다.
가장 오래된 한옥성당. 성공회강화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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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지정 문화재 강화성당은 서구 기독교의 토착화 산물로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성당이다. 건물 외형은 전통한옥 고건축 기법을 따랐으며, 경건한 외양을 강조하기 위해 중층구조의 익공식 건축양식을 따랐다. 1층은 전실(현관)과 퇴실(예복실) 그리고 두줄로 늘어선 기둥 외측에 회랑을 배치했고, 기둥 내측 중층부분은 자연채광을 받을 수 있도록 유리창을 내 서구교회의 전통양식인 바실리카 양식을 도입했다. 이외에도 우리의 전통문화와 기독교 서구문화의 조화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이곳은 현재도 주일예배를 진행하고 있다.
강화도령 철종의 잠저(潛邸), 용흥궁(龍興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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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흥궁은 강화도령으로 불린 조선왕 철종이 강화도에 은거했던 집을 후일 왕위에 오른 이후 보수·단장하여 그 이름을 궁이라고 고쳐 부른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왕의 장자가 물려받는 정상적인 법통이 아닌 방법으로 추대된 왕이 왕위에 오르기 전 거처했던 집을 잠저라 하는데,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잠저로는 태조의 함흥 본궁과 개성 경덕궁, 인조의 저경궁과 어의궁, 영조의 창의궁 등이 있다. 용흥궁도 본래는 보잘 것 없는 초가였으나, 1853년 철종이 보위에 오른 4년 후에 강화 유수 정기세가 지금과 같은 집을 짓고 용흥궁이라 부르게 되었다.
고려의 왕들이 살았던 궁궐, 고려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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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고려는 고종19년(1232년) 대몽항쟁을 위해 수도를 송도에서 천혜의 요새인 강화도로 옮겼다, 이때 옮겨진 도읍터가 고려궁지로 원종11년(1270년) 개성으로 환도할 때까지 38년간 사용되었다. 고려궁지는 송도 궁궐터와 비슷하게 만들어졌고, 궁궐 뒷산의 이름도 송악이라 칭하여 왕도의 제도를 잊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궁궐터와 성은 병자호란 등 여러차례 전란을 겪으면서 무너져내렸고, 현재는 승평문, 강화유수부동헌, 이방청, 종각 등이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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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규장각은 왕립 도서관인 규장각의 부속 도서관으로 조선 정조 때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도에 설치되었다. 설치 이후 국가 주요 행사의 내용을 정리한 의궤을 비롯 왕실 관계 서적이 보관되었고, 1866년(고종 3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습격하면서 의궤를 포함한 여러 서적이 약탈당하거나 소각되었다. 약탈당한 외규장각 도서는 정부의 지속적인 환수 요구를 통해 5년마다 갱신하는 임대형식의 도서대여에 합의하면서, 145년만인 2011년 우리나라에 귀환했다.
강화의 교육을 책임졌던 강화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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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1127년(인종 5년)에 세워진 강화향교는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내외 삼문이 있고, 동·서문은 터만 남아 있다. 현재 강화향교는 중국의 5성(聖)과 우리나라 18현(賢)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 동무와 서무, 유학생이 공부하던 명륜당, 유생이 머무는 동재와 서재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내삼문과 외삼문 등이 새롭게 지어졌다. 향교 내에는 ‘강화유수 이안눌 명륜당 창건비’와 ‘강화유수 이용희 문묘기적비’가 세워져 있다.
항쟁의 현장을 한눈에. 진송루 북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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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대로 강화산성을 따라 북장대에 오르면 강화읍의 모습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북장대의 넓은 터에서 광활하게 펼쳐진 평야와 하늘과 닿아 있는 염하 건너 송악산을 볼 수 있다. 진송루를 거쳐 북장대에 오르면 화남 고재형 선생이 강화도를 답사하며 쓴 심도기행 비문을 볼 수 있다.
“높다란 석축위에 북장대가 있는데, 산 가득 숲 우거졌고 산들바람 불어오네. 누가 먼저 차지하여 무예 위엄 보이는가. 분명한 군령 후엔 몇 잔 술이 있었겠지.”
몽고와 강화조약을 맺었던 연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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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미정은 강화 10경 중 하나로 꼽힌다. 이곳은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으로 서해와 인천으로 흐르는 물길이 제비꼬리와 비슷해 연미정이란 이름이 되었다. 예전에는 서해에서 서울로 가는 배가 이 정자의 밑에 닻을 내려 조류를 기다리다 한강으로 들어갔다 한다. 연미정의 최초 건립연대는 정확치 않으나 고려시대 왕이 구재의 학생을 이곳에 모아 면학케 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건물은 팔각지붕의 겹처마로 돌기둥 위에 10개의 기둥을 얹어 지은 민도리집이며 지붕선이 매우 아름답다. 이곳에서는 북한 땅이 보이는데, 파주와 김포, 북한 황해도 개풍군 일대를 조망할 수 있으며, 탁 트인 바다 풍경과 더불어 세월이 스며든 성벽, 정자 옆에 선 오래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다정하게 느껴진다.
호국의 성지. 갑곶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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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갑곶돈대 아니면 초지진이다. 갑곶돈대는 1679년(숙종)에 완성된 48돈대 중 하나로 해안가·접경지역에 돌이나 흙으로 쌓은 소규모의 관측·방어시설이다. 내부에는 옛 업적을 기리는 강화비석군과 400년이 넘은 탱자나무가 있다. 강화비석군은 조선시대 선정을 베푼 유수·판관·군수 등의 선정비와 자연보호의 일환으로 세운 금표, 삼충신을 기리는 삼충사적비 등의 묘석이 모여있다.
탱자나무를 심게 된 이유는 성벽 밑에 심어 철조망과 같은 역할로 적병의 접근을 막기 위함인데,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가장 북쪽 한계선인 강화도에 자리하고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또한 돈대 안의 전쟁박물관은 역사의 고비 때마다 국방의 요충지 역할로 외세의 침략을 막아낸 강화의 호국정신을 느낄 수 있도록 강화에서 벌어진 전쟁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강화나들길1코스 심도역사 문화길은 지붕없는 박물관이라 불리는 강화의 특징이 잘 나타나있습니다. 천년을 넘나드는 시간여행 길을 걸으며 역사, 체험, 풍물시장의 먹거리까지 강화만의 메리트있는 여행을 놓치지마세요~^^
글 트래블투데이 지역 주재기자 왕재군
발행2018년 08월 09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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