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푸른 새싹이 싹을 틔우고,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귓가를 간질인다. 가을이면 발목까지 빠지는 낙엽으로 낭만을 떠올릴 수 있고, 겨울에 쌓인 눈은 왠지 모르게 따듯한 느낌이다. 완주 화암사로 가는 길은 숲이 주는 오묘한 매력 때문인지 어느 시기에 가더라도 도무지 지루할 틈이 없다. 지친 심신에 왠지 모를 편안한 안정을 주고, 나무들 따라 불어오는 바람 줄기가 더없이 시원한 완주 화암사, 그곳으로 떠나보자.
사냥꾼도 가기 어려웠던 절
흙길과 돌길, 철계단과 돌계단을 차례로 걷다 보면 하얗게 빛나는 화암사와 만나게 된다. 자칫하여 지리산의 유명 사찰인 구례 화엄사와 헷갈릴 수도 있는 이곳은 694년에 지어진 완주군의 고찰이다. 올라오는 길에서 알 수 있듯이 화암사의 주변은 빽빽한 원시림으로 둘러싸여 있다. 예전 사람들이 화암사로 가는 길을 이야기할 때 ‘사냥꾼도 가기 어려운 절’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사찰에 가는 길이 정비가 잘 되어 있어 조상들의 말을 실감하기 어렵다. 하지만 옛날처럼 길이 없었다면 사람이 드나들기 어려운 절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변의 숲이 울창하다.
이러한 자연적 요건 때문인지 화암사는 신라의 고승인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수도의 장소로 사용하기도 했다. 또한 원효의 아들이자 신라의 대학자로 추앙받는 설총은 이곳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누구나 알만한 명사들이 화암사를 찾는 것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심신을 다스리기 좋은 고요함과 바람에 나부끼는 나무의 소리만 들리는 원시적인 자연환경은 단 하나의 잡념도 없는 상태에서 수도를 정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느낌은 지금 방문하더라도 느낄 수 있다.
보물을 품은 사찰
안도현 시인은 화암사에 대한 이야기를 ‘화암사, 내 사랑’이라는 시로 표현했다. 그 시에서 살펴봐야 할 구절은 ‘잘 늙은 절 한 채’라는 말이다. 이 한마디는 화암사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화암사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건물인 우화루는 하얗게 빛바랜 모습으로 화암사를 찾은 사람들을 반긴다.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이후 약 1,300여 년의 세월이 담겨 있기 때문일까. 이색적이기도 하고 정겹기도 한 우화루의 모습에 자꾸 눈길이 간다.
‘꽃비가 흩날리는 누각’, 이름마저 아름다운 화암사 우화루. 오랜 세월을 보내온 이 늙은 건물 한 채는 조용한 모습으로 과객을 반긴다. 화암사가 창건된 지는 약 1,300년이 흘렀지만 지금 보이는 우화루의 모습은 1611년에 세운 뒤 중수와 복원을 반복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외부의 빛바랜 나무는 우화루의 내부에서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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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비가 흩날리던 누각을 지나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면 여러 한옥으로 둘러싸인 건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여러 한옥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건물, 바로 극락전이다. 얼핏 보기에는 다른 한옥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그런데 왜 자꾸 눈길이 가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바라본 극락전에서 특이한 점이 보인다. ‘저 건물은 처마가 좀 다르게 생겼네?’ 자꾸 보게 되는 건물의 비밀은 여기에 있었다.
우리나라에 단 하나밖에 없는 건물. 화암사 극락전은 국내 유일의 하앙식 건물이다. 여기서 하앙이란 지붕과 기둥 사이에 넣은 나무 판을 이야기한다. 하앙은 바깥에서 처마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설치한 부재이며, 화암사 극락전은 하앙의 존재로 인해 일반적인 처마보다 더 긴 길이의 처마를 낼 수 있었다. 하앙은 백제시대의 건축기술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중국과 일본에서 더 많이 관찰할 수 있다. 이를 미루어보아 당시 백제의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기도 하지만 한국에서는 화암사 극락전이 유일하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낡고 오래된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불명산 언저리에 눌러 앉은 고찰 화암사는 아름다운 노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욱 무르익은 아름다움으로 과객들을 맞이할 것이다.
화암사에서 바라보는 풍경 그리고 불어오는 바람이 궁금하다면, 이곳을 찾아보세요. 여유와 힐링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답니다!
글 트래블투데이 홍성규 취재기자
발행2017년 09월 22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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