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마리의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다가 한 마리가 오르지 못하고 아홉 마리의 용만 승천했다고 하여 붙은 지명인 구룡포. 멋진 이름을 증명하듯이 구룡포 해안선에는 용의 불길이 훑고 지나간 것 같은 주상절리가 펼쳐져 있다. 이러한 주상절리를 비롯하여 구룡포 과메기의 본고장, 대게와 고래, 오징어가 가득한 비옥한 어장으로도 유명한 구룡포지만 일제강점기의 아픈 상처와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일본 어민들의 땅이 된 구룡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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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우리나라의 국력이 약해질 무렵인 조선 후기부터 한반도에 입성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1876년 흥선대원군이 권력투쟁으로 인해 정권에서 물러나자 운요호 사건을 일으키고 강화도 조약을 맺게 된다. 이 조약으로 인해 강제적으로 한반도 주요 항구 세 곳이 개항되었으며 개항장에서 일본 상인의 자유로운 무역과 거주의 편의를 보장받게 된다. 이곳에는 일본인 범죄자에 대한 치외법권 조항도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강화도 조약을 계기로 한반도에는 일본인을 비롯한 많은 외국인들이 들어오게 된다.
동해바다가 훤히 보이는 포항은 강화도 조약 다음에 체결된 조일통상장정 이후에 많은 일본인이 거주했던 곳이다. 그 당시 포항으로 들어온 일본인의 대부분은 구룡포의 비옥한 어장을 이용해 돈을 벌었던 어민이었다. 그들은 일본에서 공수한 자재와 기술력으로 구룡포 인근에 일본식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건물들이 지금의 구룡포 근대역사문화거리를 이루고 있으며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를 비롯한 각종 시대극의 배경으로 출현하기도 했다.
일본인이 만든 상처에서 일제강점기를 만나다
조선의 수산물을 이용해 돈을 벌었던 당시의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거주할 일본 가옥을 지어 구룡포에 머물렀다. 그때 일본 어민 중 가가와현 출신 하시모토 젠기치가 지은 가옥은 현재 구룡포근대역사관으로 지정되어 전시되고 있다. 하시모토 젠기치 가옥은 일본 건축양식을 토대로 만들어진 2층 목조건물로, 당시 선어 운반업으로 막대한 돈을 벌었던 하시모토 젠기치가 직접 건축자재를 운반해서 건립했다고 전해진다.
광복 이후 하시모토 젠기치와 그 가족들은 모두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 뒤로는 계속 한국인이 거주했고 2010년 포항시에서 이 가옥을 매입하여 구룡포근대역사관으로 개관한다. 포항시는 하시모토 젠기치 가옥을 당시 상황과 비슷하게 복원하고 근대 일본 가옥의 건축 양식을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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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포근대역사관의 1층에서는 홀로그램과 그래픽을 통해 구룡포 이름의 이야기와 일본인들이 구룡포에 정착했던 당시의 상황을 소개하고 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하시모토 젠기치 부부가 거주하던 안방과 일본의 전통 부엌, 난방시설, 화장실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당시 하시모토 젠기치 부부의 생활모습을 재현한 모습을 볼 수 있어 눈길을 끄는 1층이다.
1층을 모두 둘러본 뒤 2층으로 올라가면 여러 나무가 엇갈린 일본식 창틀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곳곳을 살펴보면 일본식 환기창인 란마를 비롯하여 일본식 붙박이장인 오시이레와 같은 일본 가정집의 모습이 담겨있다. 하시모토 젠기치 딸의 방과 손님 접대방이 있는 2층이기 때문에 유카타를 입은 딸의 모습도 재현되어 있다. 구룡포근대역사관은 근대 일본 가정식 건물의 전형을 볼 수 있는 건물이다. 그런 이유로 이곳은 한국과 일본의 건축 전문가들이 관심을 가지는 건물이며 이를 보기 위해 한일 양국의 사람들이 이곳을 꾸준히 방문하고 있다.
구룡포근대역사관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구룡포 엘도라도‘라는 글이다. 이것은 당시 가난한 일본 어민들이 부를 찾아 이곳 구룡포를 찾았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그들에게는 구룡포가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구룡포 주민들에게는 저승사자와 같았을 것이다. 구룡포근대역사관은 ’구룡포 엘도라도‘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일본인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이제는 구룡포의 관광명소로 자리 잡은 구룡포근대역사관. 하지만 일제강점기가 남긴 아픈 상처라는 것을 한 번만 생각하면서 둘러보길 바랍니다.
글 트래블투데이 박선영 취재기자
발행2021년 06월 05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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