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연함이 느껴지는 대문의 자태
신라 천년고도 경주에 자리한 월암재는 임진왜란 때 이 지역 의병장이었던 부산첨사 김호 장군의 정자다. 경주 시내에서 삼릉 방면으로 가다가 나정으로 방향을 틀어 마을 안으로 조금 들어가면 고택 월암재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 옛날 전장을 누비던 장수의 위풍당당한 면모를 쏙 빼닮아, 독채이면서도 쉬이 범접하지 못할 기품이 서려 있는 듯한 고택이다.
김호 장군은 1534년 월암재(月菴齋)에서 멀지 않은 식혜동에서 태어났다. 성장하면서 용력과 기질이 남달랐었고 스승을 따라 글을 배울 때 한 번 따라 읽으면 모두를 기억할 정도로 총명하였다. 선조 경오년(庚午年)에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봉사에 이르렀으나 평소 고상한 뜻을 가진지라 곧 물러났다. 하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호 장군은 60세의 나이임에도 세 아들과 함께 평소 가까이 지내던 최선린, 정극후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왜구를 격퇴했다. 나라에서는 공을 부산 첨사에 제수하고 그의 지략과 대범한 용맹을 높이 샀다. 이후에는 김호 장군에게 적군의 후방지원을 끊고 내륙과 바다의 교차로를 막게 하였다고 전한다.
뛰어난 무장 김호 장군의 정자 월암재는 신라의 처음과 마지막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남산자락에 자리하여 맑은 공기와 조용한 분위기를 즐기기에 적합한 곳이다. 뒤편으로는 고택을 호위하듯 송림이 곧게 뻗어 있고 문 앞에는 벚나무 고목이 있어, 봄이면 한옥에 잘 어울리는 화사한 벚꽃이 피어난다. 경주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고풍스러운 고택의 아름다운 어울림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고택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좌우로 방이 배치된 'ㅡ'자 형태의 가옥 구조이며, 한옥 건물의 오른쪽에 별도의 건물로 지어진 욕실 겸용의 현대식 화장실이 있다. 고택을 이용하려면 독채 전체를 한 팀 혹은 한 가족이 빌려야 한다. 방 3개 딸린 한옥을 통째로 빌린 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 운치 있는 한옥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 수 있다.
월암재의 가장 큰 매력은 너른 대청마루. 앞뒤를 시원하게 터놓아 여름이면 은은한 솔향 묻어 있는 바람 솔솔 불어오고, 마루에 누워 고택을 품에 안은 경주 자연의 속살을 찬찬히 탐닉해 볼 수 있으니 가히 일절이다. 자연과 전통의 미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고택의 대청마루에서 서늘한 한옥의 투박한 살갗과 맨살을 섞다 보면 지치고 답답한 마음마저 뻥 뚫릴 것이다. 원래 이 고택이 숙식용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어서 정자 곳곳에 문이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독특하게도 문마다 탁본이 새겨져 있다. 그 탁본은 다름 아닌 성덕대왕 신종에 새겨진 것과 같은 비천상(飛天像)이다.
비천상은 하늘에 떠다니는 선인(仙人)을 묘사한 그림이나 조각으로, 주로 너울거리는 천의(天衣)를 걸치고 꼬리가 긴 꽃구름 속에서 악기를 연주하거나 부처에게 공양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구름 위에 사뿐히 앉아 양손으로 연꽃을 받쳐 든 비천상은 표정이 온화하고 그 몸짓이 몹시도 우아하다. 한 번쯤은 찬찬히 살펴볼 만한 작품이다. 월암재에서는 항아리에 화살을 던져 많이 넣는 편이 승리하는 전통 놀이 투호를 즐길 수 있고, 다례 도구가 비치되어 있어 고택에서 자연이나 지인을 벗 삼아 향긋한 차 향을 음미해볼 수도 있다.
대청마루에 앉아 차 한 잔 마시면서 경주 남산 줄기를 바라보는 즐거움, 달빛 은은한 마당을 거닐며 천 년의 전설을 간직한 경주 땅의 고고한 향기를 깊게 들이켜 보는 묘미가 있다. 이도 저도 귀찮으면 그냥 아랫목에 신라 천 년의 케케묵은 역사를 깔고, 정갈한 고택의 분위기를 이불 삼아 새날을 분주히 열어가기 위해 잠을 청하는 것으로. 밤새 산새는 청아하게 노래하여 잠든 이들의 지친 마음을 달래어 주고 아침에는 새들의 재잘거림이 귀를 간질이는 이곳 월암재. 주변에는 박혁거세의 탄생설화가 깃든 우물인 '경주나정'이 3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 일대는 신라의 신궁터로 추정된다. 이외에도 경주 안압지, 신라오릉, 선덕여왕릉, 신라 신문왕릉, 포석정 등이 가까이 있어 하룻밤 머물며 역사의 향기 가득한 여가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주변관광지
선덕여왕릉
신라 제27대 선덕여왕의 능으로 646년경에 조성되었으며 1969년 사적 제182호로 지정되었다. 고찰 사천왕사(四天王寺) 위 낭산의 정상에 있는데, 현재 상태는 봉토(封土) 밑에 둘레돌을 쌓은 원형의 토분(土墳)이다. 둘레돌은 잡석을 비스듬히 2단으로 쌓았고 그 밖으로 드문드문 둘레돌의 높이와 비슷한 대석을 기대어 놓았다. 전면에 상석(床石)이 있으나 이것은 후세에 설치된 것이다.
포석정
경주 배동에 있는 통일신라 시대의 정원 시설물이다. 돌로 구불구불한 도랑을 타원형으로 만들고 그 도랑을 따라 물이 흐르게 한 것으로서, 신라 귀족들은 이 물줄기 둘레에 둘러앉아 흐르는 물에 잔을 띄우고 시를 읊으며 화려한 연회를 벌였다.
신라오릉
사적 제172호로 「삼국사기」 등 문헌에서는 ‘사릉(蛇陵)’이라고도 한다. 모두 5기가 있으며,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거서간과 왕비 알영(閼英), 제2대 남해차차웅, 제3대 유리이사금, 제4대 파사이사금의 무덤으로 전하고 있다.
[트래블스테이] 서악서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도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서악서원! 원형 그대로를 잘 간직하고 있는 이곳은 숙박 이외에 상상 그 이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다도체험을 비롯해 전통의복체험, 국악공연, 화랑체험, 전통혼례 등 다양한 전통문화 체험을 누릴 수 있는 곳. 서악서원은 고택에서의 특별한 하룻밤을 계획하고 있는 이에게 최고의 선택이 되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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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트래블투데이 서덕아 취재기자
발행2017년 03월 24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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