앳된 선비들의 흔적대신 은은한 솔향만이 시간을 메운다.
흰 도포자락 휘날리며 분주히 발걸음을 옮기던 선비들의 발자국이 사라진지 오래인 서원에는 간간히 옛 향기에 대한 그리움을 안은 이들만이 허전한 공기를 메운다. 청량한 바람이 금빛 담장을 따라 흐르고 솟을대문부터 고산정사까지 이어지는 길로 낮은 무게의 기품이 흐른다. 세월의 흐름이 무색하리만큼 단정한 고산서원 향도문 앞으로 난 키가 큰 소나무가 먼저 눈길을 끈다. 미천강을 따라선 오래된 소나무는 고산서원과 함께 늙어가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월에 따라 소나무의 향도 옅어진 걸까, 오래전 이곳을 지나던 이들도 같은 쉼을 얻고 갔을까 하는 물음표를 품고 고산서원으로 고개를 돌린다.
고산서원은 안동 관광에서 빠지지 않는 명소이다.
솔향을 따라 간 곳에서 만난 고산서원
삼삼오오 모여 학식을 논하던 앳된 선비들의 걸음걸이가 흔적으로 남은 고산서원은 정조 13년(1789) 대산 이상정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방 사림이 건립되었다. 선현 배향은 물론 지방 교육도 함께 담당하였으며 1985년 10월 경상북도기념물 제56호로 지정되었다.
고산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고 이후에는 향사만을 지내왔다가 1977년 중수되면서 이상정의 아우인 소산 이광정을 함께 배향하고 있다.
향도문으로 들어가면 어떤 쉼을 얻을 수 있을까.
이광정은 영조 16년(1740) 전시에서 실패한 후 다시 벼슬을 구하지 않고 학문에만 열중하였다. 이후 정조 7년에 이조에 명하며 각종 벼슬이 내려졌으나 출세의 뜻을 버리고 학문과 행검에만 몰두하던 이광정은 벼슬에 오르지 않고 묵묵히 효(孝)와 학업에만 열중하였다. 대산 이산정은 이색의 15대손으로 소퇴계라 불릴 만큼 이황의 학통을 계승하며 후진 양성에 힘써 무려 273명의 제자를 둘 정도로 성리학 연구과 학문을 갈고 닦는데 몰두하였다. 또한 벼슬을 하면서도 백성들의 굶주림과 사정을 헤아렸으며 벼슬길에서 물러날 때에도 많은 선비들이 제자가 되기를 바라며 그의 겸손과 행실을 본받으려 하였다. 밤낮으로 사색하고 늘 책을 가까이 하였던 이상정은 아우인 이광정과의 우애와 부모에 대한 효성도 지극하였다 한다.
1857년 고산정사 자리에 대산을 기리며 사당인 경행사를 지었고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 방식으로 강당인 호인당을 배치하였다. 우측으로는 'ㅁ'자형의 관리사와 정면으로는 고산정사를 배치하였다. 고산서원은 멀리서부터 규모와 격식을 두루 갖추고 있어 절로 옷깃을 여미게 한다. 경내에는 경행사와 호인당, 앙지재, 고산정사, 향도문, 주사 등 9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푸른 잔디가 깔린 사당 뜰에는 정요대가 설치되어 있다. 사당인 경행사(景行祠)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옮기는 걸음마다 정성으로 가득하다. 경행사의 고요함은 마음깊이 예를 다하던 호인당까지 닿는다.
서원 강당인 호인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10칸 집으로 구성되었다. 바다에 수평선이 있다면 고산서원에는 하늘에 떠 있는 조각구름이 지붕에 살짝 걸려 땅과 하늘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동쪽에 2칸짜리 방은 명성재이고 나머지 8칸은 넓은 마루를 놓아 시원한 느낌이다. 호인당 우측과 전면에는 각각 백승각과 청임헌이 위치해 있는데 이는 서재의 역할을 하였다. 서고로 사용하고 있는 백승각은 팔작지붕이나, 청임헌은 工자 지붕으로 모양을 달리하고 있다. 백승각과 앙지재의 멋은 아름다움이라는 네 글자에 담기가 어려울 정도로 호젓하다. 옛 사람의 흔적을 찾듯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이도, 눈으로 아름다움을 담고자 한동안 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도 같은 아름다움을 찾고 있지 않을까. 고산서원의 곳곳에는 옛 사람들의 정신과 숨결이 머물러있다.
전사청은 향사 때 제수를 마련하는 곳으로, 앙지재는 제관들이 숙소로 사용하던 곳으로 향도문은 향시 때만 집사들이 출입문으로 사용한다. 호인당의 넓은 마루에 앉아 풍광을 바라보면 세월도 비껴간 소나무가 언제나 푸르른 멋을 대신한다. 세월이 흘러 가지가 휘어지고 결이 흐트러져도 푸름만은 변치 않는 소나무처럼 옛 사람들의 정신과 얼은 고산서원 어디에도 변하지 않고 푸릇하게 녹아있다. 선비들의 글 외는 소리는 사라졌지만 마루에 앉아 눈을 감으면 어렴풋이 마음속으로 학식을 논하는 선비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대산 이상정의 덕행을 추모하는 고산서원
안동에 위치하였다는 것만으로도 낯설지 않은 고택의 멋스러움은 소박한 미소를 닮아있고 고산서원을 천천히 걷다보면 절로 뒷짐을 지고 걷는 선비가 되어있다. 급하던 발걸음은 누구보다 침착하고 빠르게 움직이던 눈동자도 오랫동안 한 곳에 머물게 되는 곳이 바로 안동의 고산서원이다. 고산서원은 여타의 고택처럼 정면, 측면, 후면 어디든 빈틈이 없이 아름답다. 처마를 올려다보는 것도 윤택이 흐르는 마루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절로 넉넉해진다. 안동 사람들의 자부심이 배어있는 고산서원은 선비들의 뿌리가 얽혀있다는 데 전혀 과장이 없다. 학자들이 학식과 덕을 쌓고 예를 다하던 곳으로 크게는 애민사상까지 깃들어 있어 이곳을 찾는 현대인들의 마음속에 겸손함이 속속들이 배어든다.
*주변관광지
손홍량유허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7호로 지정된 손홍량유허비는 고려 후기의 문신이었던 손홍량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둔 비이다. 손홍량 선생은 일직 손씨의 시조이기도 하며 공민왕 11년 때 일어난 홍건적의 난에서 큰 공을 세워 공을 인정받았다.
한산이씨 유적
한산이씨는 본관은 같으나 시조를 달리하는 두 계열이 있는데 안동의 한산이씨는 목은 이색의 10세손 수은 이홍조가 안동에 정착한 후 형성된 가문이다. 고려 중엽 호장을 지낸 이윤경을 시조로 하며 망호리, 명진리, 원리 일대에 60여 호가 세거해왔다.
조탑동 5층전탑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에 있는 오층전탑은 보물 제57호로 지정된 통일신라시대의 전탑으로 높이가 8.65m이다. 화강암과 벽돌을 혼용해서 올렸으며 가운데 당초문을 새긴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전탑으로 추정되며 부근에 기와 조각이 흩여져 있어 근처에 사당이 있었음으로 추측된다.
[트래블스테이] 안동고택 이상루
풍류 넘치는, 멋스러운 여행을 꿈꾸고 있다면 주목!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이 가득한 안동고택 이상루는 영화 <광해>의 촬영지로도 익히 이름을 알리고 있는 곳입니다. ‘안동 김씨 태장재사’이기도 하니 안동에 자리한 여러 고택 중 이상루만의 특별함 또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송림을 배경으로 한 멋스러운 한옥숙박 체험, 이상루의 특별함을 만끽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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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트래블투데이 편집국
발행2015년 07월 29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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