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마당에 가을이 내렸다
안동의 많고 많은 고택, 종택들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면 그저 고즈넉하기만 하다. 그 안에 무슨 사연이 깃들어 있는지 누구의 종택인지 모른 채 새색시의 연분홍빛 두 볼 마냥 수줍게 돌아 있는 담장과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로만 가득한 고택의 면모에 마음의 안식을 느낄 뿐이다. 정겨움과 편안함만 가지고 고택에서 하룻밤을 지새우기엔 그 안에 깃든 유서 깊은 가품이 무의미하게 흐른다. 그러니 구구절절한 사연이라도 담장 너머 들려오는 이야기에 귀를 닫고 있을 수 없다.
학봉종택은 학봉 김성일 선생의 종가로 선생의 유품과 책, 고문서 등을 보관하고 있다.
학봉종택의 이야기가 담장 너머로 들려온다.
천 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는 명당 중의 명당자리인 검제마을은 안동 시내에서 9km를 더 가면 나오는 수려한 마을이다. 검제마을에 크고 작은 집들은 군락을 이루며 마을을 이뤘고 그 중심에는 퇴계로부터 학봉을 거쳐 지금까지 흐르는 유서 깊은 고택, 학봉종택에 이른다. 이런 길지에 터를 잡은 학봉 김성일 선생은 서애 유성룡과 함께 퇴계 이황의 뒤를 잇는 제자였다고 하나 기록에는 황윤길과 함께 일본의 정세를 살피고 돌아와 황윤기와 반대 입장을 펼쳐 조정에 잘못된 보고를 올린 우매한 신하로 기록되었다. 허나 실제로는 의병을 모으고 민심을 수습하는 등 진주대첩을 총지휘하며 수많은 전공을 남기고 순국한 열사 중 한 명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은 학봉선생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학봉의 13대 종손 김용환은 전 재산과 전답 18만 평을 모두 노름으로 탕진한 것으로 알려져 천하의 파락호 종손으로 알려지며 종가를 팔아먹기까지 하였다. 무남독녀 외동딸이 시댁에서 받은 장롱 구입비까지 가로채 탕진하였다 하여 당시 동네에서는 학봉 집안 사람과는 교제도 금했다고 전해진다. 외동딸이 주눅 든 채 시집살이를 하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 허나 뒤늦게 밝혀진 사실로는 노름으로 탕진한 줄로만 알았던 재산과 전답, 종가를 팔아넘겨 받은 재산 모두를 몰래 독립군 자금을 대며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195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게 되었다. 대를 이어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과 정신이 이어지고 있다.
대대손손 명맥을 이어온 학봉종택
우여곡절과 뒤늦게 밝혀진 역사적 이야기들을 간직한 의성김씨 학봉종택은 하회마을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였다. 의성 김씨의 종가 학봉종택은 본래 처음 지어질 때에는 현재의 자리에 자리하고 이었으나 낮은 지대로 침수가 잦아 학봉의 8대손 김광찬에 의해 1762년 현재 소계서당 자리에 옮겨졌으며, 1964년 다시 원래 자리로 이건하게 되었다. 현재는 15대 종손이자 IT분야의 CEO로 알려진 김종길씨가 종택을 지키고 있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학봉종택의 전경은 이러한 역사적 사건의 산실이 뒤엉켜 있는 것과는 다르게 평온하고 안락하다. 심히 고즈넉하여 보기에 편안하다. 5칸의 솟을대문에는 '학봉선생고택'이라는 편액이 걸려있어 종택의 위엄이 비로소 느껴진다. 솟을대문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가니 푸른 잔디가 곱게 깔려있다. 머릿속에 고동색을 그리고 들어선 고택은 생각을 빛나간 진녹색이다. 안채는 원래 'ㅁ'자형이었으나 한쪽을 층축하면서 巳자 형태를 띤다. 안채의 오른쪽은 넓은 대청이, 왼쪽에는 안방과 부엌을 두었다. 유난히 넓은 대청은 종택이라면 숙명처럼 받들어 가는 제사가 많기 때문이다.
안채의 동편에 위치한 사랑채는 돌출형 마루가 눈에 띈다. 마치 누마루처럼 튀어 나와 있다. 우물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길게 툇마루를 한 사랑채는 사랑방과 사랑 마루방으로 나누며 그 옆으로는 작은 사랑방, 뒤쪽으로 책방을 두어 안채와 사랑채를 연결하였다.
고택에 흐르는 이야기가 비로소 최고의 보물이 아닐까.
푸른 잔디가 깔려있는 마당은 현대의 전원주택을 연상시킨다. 이는 마당에 잔디나 나무를 많이 심지 않는 것이 일반적으로 흙과 자갈로 평평하게 나 있는데 학봉종택은 증축하는 과정에서 현대의 정원모습을 도입하여 고즈넉한 고택과 잘 어우러지는 정원을 꾸며놓았다. 학봉종택에서 살펴보아야 할 또 다른 공간은 보물창고라 할 수 있는 운장각이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운장각은 총 1만 5천점의 유물이 보관, 전시되어 있다. 각종 서적과 친필 원고, 유품 등은 국가지정보물도 포함되어 의미가 깊은 곳이다.
고택은 어떤 바람이 불건, 어떤 이야기가 들려오건 피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서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나름의 멋을 내고 눈이 오면 기와지붕에 흰 눈을 맞으며 버티고 서 있다. 마음속으로는 분홍빛의 봄을 품고 있을지언정 자리를 피하거나 크게 떠들어대지 않는다. 그것이 선비정신이고 한옥이 가지는 가장 큰 멋이 아닐까. 고택을 방문하면 고택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작게 속삭이는 가품이 큰 울림으로 다가올지도 모르니 말이다.
*주변관광지
영호루
영호루는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집으로 지어진 고려 시대 누각으로 북쪽 면엔 공민왕의 친필 현판이 걸려있고 남쪽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인 '영호루'가 걸려있다. 현재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274년 이전에 창건 된 것으로 추정된다.
병산서원
서애 류성룡과 그의 셋째 아들 류진을 배향한 사당으로 1863년 병산이라는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으로 승격된 병산서원은 후에 많은 학자들을 배출해냈다. 류성룡 선생이 제자들을 길러낸 곳으로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소실되지 않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서원 중 하나다.
광풍정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위치한 광풍정은 경북문화재자료 제322호로 지정된 조선시대 정자로 천등산 자연 암석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1630년대 장흥효가 초당으로 지었으며 자연암석에 제월대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하였다. 지형적 구조를 이용한 건축물로 그 가치가 크다.
[트래블스테이] 안동고택 이상루
풍류 넘치는, 멋스러운 여행을 꿈꾸고 있다면 주목!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이 가득한 안동고택 이상루는 영화 <광해>의 촬영지로도 익히 이름을 알리고 있는 곳입니다. ‘안동 김씨 태장재사’이기도 하니 안동에 자리한 여러 고택 중 이상루만의 특별함 또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송림을 배경으로 한 멋스러운 한옥숙박 체험, 이상루의 특별함을 만끽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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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트래블투데이 편집국
발행2016년 02월 15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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