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품에 살다, 제주 해녀박물관
사람들은 대개 푸른 바다를 가슴에 품고 산다지만, 어민들의 바다란 삶을 통째로 의지하는 커다란 품이다. 대한민국 남단 제주인들은 풍요롭지만은 않은, 때론 앗아가는 바다임에도 묵묵히 그 곁을 지키며 살아왔다. 그중에도 물질하는 해녀들의 삶은 고되지만, 움직이는 생명력을 상징하는 고유한 것으로 바다를 무대삼아 아름다운 노동의 가치를 보여준다. 이들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제주에는 그 특별한 삶을 보다 더 가까이 들여다 볼 기회가 많다. 제주 해녀박물관에서 제주 여성과 강인한 어머니를 상징하는 해녀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자.
잠녀, 잠수, 해녀…제주의 어머니를 부르는 말들
제주에는 해녀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다. 그들은 잠녀, 잠수 등으로도 불리어 왔으며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주목받는 희귀한 존재다. 차갑고 어두운 바닷물 속에서 많게는 3분에 이르기까지 숨을 쉬지 않고 물질을 할 수 있는 해녀는 강인한 제주의 여성을 상징하는 존재. 옛날 제주에선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바다에 전적으로 의지했기 때문에 여성들은 대부분 물질을 했다. 제주에 그치지 않고 먼 육지 바다까지 원정을 떠나 물질을 했기 때문에 한 마디로 그들의 삶은 억척스러웠다. 오죽하면 제주에는 ‘길쌈호는 할망은 죽언 보난 천이 닷 필이곡, 물질호는 할망은 죽언 보난 다속곳도 읏나라.(길쌈하는 할머니는 죽고 나니 옷감이 다섯 필이고, 물질하는 할머니는 죽고 나니 속치마도 없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
강인한 제주의 여성, 그리고 위대한 어머니를 상징하는 해녀, 사진은 예년도 제주해녀축제의 모습.
얼마나 서글펐으리라는 것은 전해지는 이야기만으로도 짐작케 되지만 이제 그 삶은 가족의 생계를 지킨 위대한 어머니로 통한다. 또한, 일제의 수탈에 맞서서는 전국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같이 자랑스러운 이름, 해녀의 역사는 오늘날 아쉽게도 쇠퇴기를 걷고 있다. 제주에 남아 물질을 하는 해녀는 어림잡아 수백 명 정도일 것으로 추정하는데, 워낙 고된 일이기도 할 것이지만, 어쨌거나 그 모습이 사라지는 것은 아쉬운 일임에 분명하다. 남아있는 해녀들도 대부분 60대를 훌쩍 넘긴 고령자인데다 젊은 여성은 매우 드문 편. 현재 제주 안팎에서는 사진, 영상 등으로 고유한 해녀의 삶을 조명하고 그 문화를 전승·보존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으며, 유네스코 등재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제주 해녀박물관, 그 삶을 엿보다.
제주시 구좌읍에 위치한 해녀박물관의 전경. 노을 지는 풍경이 아름답다.
제주도 동북쪽에 있는 제주시 구좌읍에 제주 해녀박물관이 있다. 제주 여성의 삶을 전적으로 보여주는 해녀의 삶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2006년 개관했다.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공원 내에 위치하며 그 옆에 있는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도 볼 수 있다. 제주 해녀문화의 세계유산 등재가 머지않아 이루어 질 것으로 보고 그에 발맞춰 많은 이들에게 해녀의 삶과 자랑스러운 정신을 알리고자 조성된 장소다. 공원 내부에는 까무잡잡한 돌들로 정답게 쌓인 돌담이 늘어 서 있으며 박물관은 입구, 제주 바다와 가장 가까운 쪽에 자리해 있다. 전시실은 총 세 곳으로 기본적인 해녀의 생활을 알 수 있는 1전시실, 해녀의 일터와 역사, 공동체 등을 상세히 알아보는 2전시실, 실제 해녀들의 생애를 통틀어 회고와, 경험담을 들어볼 수 있는 3전시실이다.
1
2
1
해녀박물관 1전시실은 해녀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2
해녀박물관 2전시실은 해녀의 물질 도구를 전시한 곳. 광목으로 만든 '물소중이'가 보인다.1전시실에서는 60~70년대 제주의 살림살이를 전시했다. 제주 어촌의 형태와 세시풍속을 알려주며, 제주 여성의 옷과 아이를 눕혀 재우는 애기구덕, 물을 나르던 물허벅, 제주의 전통옹기인 지세항아리 등을 전시한다. 해녀의 삶을 상징하는 유물과 제주의 음식문화, 신앙 등을 통해 의,식,주 전반을 알 수 있는 곳이다. 2전시실은 바다와 해녀, 해녀 공동체에 가까이 다가가 본다. 옛날 해녀들의 작업복이었던 광목으로 만든 ‘물소중이’, 둥근 돌담을 쌓아 바람을 막고 옷을 갈아입던 ‘불턱’을 비롯해 물질에 쓰였던 도구를 직접 볼 수 있고 해녀의 역사, 제주의 해녀항일운동, 해녀공동체의 규율 등에 관련된 각종 문서 등도 해녀들의 실질적인 삶을 짐작케 도와준다. 박물관 한 편에는 어린이해녀관도 있다. 아이들에게 해녀 문화를 쉽게 배울 수 있도록 흥미로운 영상과 해녀 체험, 놀이기구 등을 활용한 다채로운 시도들이 돋보인다.
해녀박물관 3전시실, 오랜 세월 해녀로 살아온 이들의 생애를 담은 영상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3전시실에서는 해녀들을 만날 차례. 제주의 어린 소녀로 시작해, 어느덧 얼굴에 세월을 고스란히 입은 제주의 할망들이 각자의 삶에 대해 진솔한 회고 영상을 남겼다. 꾸밈없이 뱉어내는 그들의 목소리와 표정 등 그 생생한 증언이 해녀의 삶에 관한 그 어떤 기록보다도 강렬하게 다가올 것. 자부심과 의지로 다져진 그들의 모습은 존재만으로 보는 이에게 가슴 벅찬 감동을 선사한다. 3층에 올라가면 실제 해녀 작업장이 보이는 전망대가 있어 진짜 해녀를 만나볼 수도 있다. 매년 9~10월 열리는 제주해녀축제에서는 다양한 체험도 마련되니, 여행에 참고하도록 하자.
제주 해녀박물관은 바다와 물질, 그리고 어민들의 삶을 넘어, 새삼 위대한 어머니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여행지입니다!
글 트래블투데이 박선영 취재기자
발행2019년 11월 11 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