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동쪽 야트막한 산비탈에 시간이 멈춘 거리가 있다. 60년대 청계천을 연상시키는 개천 판자촌과 70, 80년대 거리풍경과 달동네를 재현한 순천 드라마촬영장이다. 매표소를 지나면 시간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돌아 과거로 돌아간다. 옛날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들이 길거리에서 사방치기를 하며 연신 웃음을 터뜨린다. 왼쪽 골목으로 보이는 극장 간판에 50년전 청춘스타 신성일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보인다.
온 가족이 재밌어 하는 여행지, 순천 드라마촬영장
70년대 히트작 「맨발의 청춘」 간판 옆에 역시 화제를 모았던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 간판그림이 있다. 속옷차림의 여배우가 의자에 앉은 관능적인 그림이 눈길을 끈다. 그때 까까머리 청춘들은 적나라한 간판을 보는 것만으로도 설레며 주위 눈치를 살펴야 했다. 극장 옆 고고장에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가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
드라마촬영장처럼 온 가족이 재밌어 하는 여행지도 드물다. 할아버지는 허름한 대포집을 들여다보며 한창 시절 일을 마치고 즐겼던 한잔의 추억을 되새긴다. 이제 귀밑머리가 희끗해지는 아버지 세대는 어렸을 적 뛰어놀았던 골목길을 연신 돌아본다. 기억 속 골목길의 흔적을 찾아가다 만나는 대장간이나 만화방을 보면서 연신 “맞아, 그때는 이런 곳도 있었어”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젊은 아들딸들은 마냥 신난다. 옛날 교복을 입고 영화속 주인공처럼 골목을 누빈다. 드라마 여주인공이 되고 스크린 속 열혈남아가 되어 쏘다닌다. 낯선 시간 낯선 장소에서 낯선 자신이 된 기분에 들뜬 표정들이다.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우리나라 최대의 드라마촬영장답게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이곳에서 촬영하였다. 「사랑과 야망」「에덴의 동쪽」 등은 드라마촬영장만큼이나 오래된 추억의 드라마다. 거리 한 귀퉁이에서 드라마 주인공이 불쑥 나올 것만 같다. 「눈이 부시게」「살인자의 기억법」「말모이」 등 비교적 최근 상영한 영화 포스터를 보면서 촬영장소를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촬영장은 크게 60년대에서 80년대까지 3구역으로 나뉜다. 60년대 서울 청계천 판자집을 옮겨다 놓은 듯한 거리, 산비탈마다 빽빽하게 집이 들어찼던 서울의 달동네, 그리고 70, 80년대 순천읍내를 옮겨 놓은 거리를 테마로 조성하였다. 박제된 시간처럼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드라마촬영장도 사실 조금씩 바뀐다. 새로운 드라마나 영화를 촬영할 때 시대에 맞춰 간판과 소도구가 조금씩 달라진다.
거리 세트장 위쪽 언덕에 달동네가 있다. 방 한칸에 부엌이라기도 민망한 공간이 딸린 단칸집들이 산등성이에 다닥다닥 따개비처럼 붙어 있다. 달 아래 첫동네라서 달동네다. 고단한 삶이지만 여유는 잃지 말자는 해학이 담겨 있는 단어다. 보름달이라도 비치면 집집마다 창문에 등을 단 듯 환할 것이다.
비탈진 골목길을 오르면 달동네 신산한 삶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손만 뻗으면 닿을 이웃집 창문 너머 옆집 아저씨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한집에서 부부쌈이라도 나면 옆집 뒷집은 물론이고 건너 건너집까지 그날 초저녁 잠은 다 자야했다.
수도가 없어 아랫동네 우물가에서 길어왔다. 한겨울 연탄 두 장을 들고 비탈진 길을 올라야 했던 기억도 빠뜨릴 수 없다. 그때는 대부분 그리 살았으니 그러려니 했겠지만 지금 돌아보면 힘들고 쓰렸던 삶이다. 그 시간도 지나니 추억이다. 나이든 이들은 드라마촬영장을 돌아보며 꼭 한마디 한다.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살았던 삶이지만 그래도 어울려 사는 정이 있었다”고.
드라마촬영장 앞으로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다. 언덕배기 달동네 사람들이 모두 들어가 살만큼 큰 아파트 단지다. 시대가 바뀌었고 우리의 삶도 바뀌었다. 삶은 윤택해진 대신 이웃과의 거리는 멀어졌다. 옛거리를 찾아 추억을 되새기는 건 사라진 과거의 한 조각이 그리워서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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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트래블투데이 차예진 취재기자
발행2021년 03월 03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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