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구 남현동에는 지난 2000년 소천한 미당 서정주의 생가가 있다. 유일하게 남은 서정주 시인의 집필 장소이기 때문에 더 큰 의기가 있다. 봉산산방이라는 이름은 쑥과 마늘을 먹고 웅녀가 됐다는 단군 신화에서 차용해 시인이 직접 지은 이름이다. 때로는 뜨겁게 때로는 사랑스럽게 우리의 가슴을 적시던 미당 서정주의 흔적을 봉산산방에서 다시금 느낄 수 있다.
쑥과 마늘의 집, 봉산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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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시 한 구절만으로도 가슴을 찡하게 울리던 시인 서정주. ‘괜찬타 괜찬타’며 방황하는 청춘의 가슴을 부둥켜 안아주기도 하고 ‘그래 나는 천국이나 극락에 가더라도 그녀와 함께 가볼 생각이다’라며 아내에 대한 마음을 아낌없이 표현한 시대의 로맨티스트이기도 했다. 2000년 아내의 죽음으로 곡기마저 끊고 남은 여생을 보내던 곳이 서울 과악구에 흔적처럼 남아있다.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을 고스란히 필체로 옮겨 적던 겨레의 시인 서정주가 30년 동안 머물던 공간 봉산산방이 그곳이다.
1970년부터 2000년까지 30년이라는 세월을 봉산산방에서 보낸 서정주. 쑥과 마늘의 집이라는 뜻의 봉산산방은 아직은 조금 부족한 사람 혹은 늘 소년이려는 마음으로 살아가리라는 시인의 호와 닮아있다. 미당 사후 10년 만에 서정주의 집이 복원되면서 유품 중 일부를 이곳에 보관하고 있다. 그의 문학세계가 고스란히 담긴 시 창작노트부터 아내의 손톱을 깎아주던 손톱깎이에 이르기까지 총 2만 여 점에 이르는 유품이 남아 있다. 시인의 모교인 동국대학교와 전북 고창군 <미당시문학관>에 나누어 전시하고 있지만 봉산산방에 남은 유품은 대부분이 시인이 사용하던 유품들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이 집 마당에는 시인이 기르던 감나무가 있고, 작품이 새겨진 시비가 세워져 있다. 시인이 직접 수치를 적어 넣은 평면도는 이 집을 지어 올릴 당시 서정주를 잘 보여주고 있다. 건축비를 아끼려고 했던 모습과 24평 남짓의 집을 알뜰살뜰하게 꾸며놓은 그의 생활태도도 묻어 있다. 1층 전시장에는 그의 패션감각을 엿볼 수 있는 유품들이 전시돼 있다. 옷, 모자, 가방, 지팡이 등이 있는데 집안에서는 간편한 한복차림으로 지냈지만 양복을 입을 때는 멋스러움을 잃지 않았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늘 소년이려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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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는 시인이 직접 시를 쓰고 창작에 몰두했던 공간이 그대로 복원돼 있다. 미당의 육성이 담긴 영상물도 남아 있으며 생전에 쓰던 유품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질마재 신화’나 ‘팔할이 바람’ 등과 같은 시집이 이곳에서 나왔으며 창작의 고뇌가 깊게 담긴 원고지도 그대로 남아 있다.
유독 눈에 아른거리는 것이 있다면 식탁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맥주 한 캔이다. 맥주 앞에는 마지막 마시던 맥주라고 작은 팻말이 놓여 있다. 2000년 사랑하는 아내가 별세를 한 후 곡기를 끊고 맥주만 드셨다고 한다. 그렇게 마지막 여생을 보낸 그에게 남은 마지막 맥주라고 하니 시인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한국적 아름다움을 문학으로 남긴 그지만 부끄러운 삶이 씻겨지지는 않는다. 종의 아들로 태어나 일제강점기를 보내고 치열하게 살아 온 삶에 대한 이야기를 거침 없이 담은 미당 문학. 늘 소년이려는 마음으로 혹은 아직은 부족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던 까닭이 그런 자신의 삶을 스스로 위로하려던 뜻이 아니었을까.
미당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복원 개방된 서정주의 집. 우리가 몰랐던 시인의 삶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답니다.
글 트래블투데이 김혜진 취재기자
발행2020년 08월 24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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