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미술관 일원에는 박수근공원이 조성돼 있다.
박수근 화백은 1914년 강원도 양구 정림리에서 태어났다. 보통학교 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재주가 뛰어났던 그는 화가를 꿈꿨다. 이후 가세가 기울면서 생활은 곤궁해졌지만, 박 화백은 가난한 서민들의 소박한 삶을 그리는 화가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양구는 박수근 화백이 평생을 바쳤던 그림에 대한 열정과 꿈이 시작됐던 곳이다. 그가 수없이 스케치했던 나무와 일하는 여인, 나물 캐는 아낙, 빨래터 등 양구는 그의 모든 흔적을 담고 있으며 깨끗한 자연만큼이나 선한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양구 보통학교 뒷동산이었던 곳에 보통학교 시절 박수근 화백이 자주 그렸던 300년 수령의 느릅나무 두 그루가 있다. 양구군에서 보호 관리하고 있는 이 고목들은 양구 교육청 뒤편에 있다.
박수근 화백의 삶
박수근 화백은 과감한 생략과 단순한 구도, 투박한 질감이 느껴지는 마티에르기법을 통해 한국적인 정서를 가장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박 화백은 서민적 그림을 통한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점에서 한국적이면서 현대적인 화가로 평가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양구군에서는 1990년 박수근화백공원을 조성하고 동상을 건립했다.
박수근 화백이 나고 자란 양구에는 박수근 화백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박수근 화백은 1914년 2월 21일 양구읍 정림리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7세 때 부친의 광산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었다. 박 화백은 양구 공립 보통학교 시절 프랑스의 농민 화가 밀레의 만종을 원색도판으로 보고 화가가 되기로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업실패 후 박 화백은 물감을 살 돈이 없어 쩔쩔맬 정도로 가난에 시달려 중학교진학을 포기했으나 독학으로 화업에 전념해 18세인 1932년 처음 ‘봄이 오다’라는 작품으로 조선 미술전 서양화부에서 수채화로 입선하기도 했다.
빚값으로 한 채 남은 집마저 팔아버리고 온 식구가 뿔뿔이 헤어져 살 수밖에 없게 되자 박 화백은 춘천, 평양에서 봉급생활을 하면서 작품 활동을 계속해 왔다. 초등학교 때의 소질을 발견하고 자신의 인생을 초지일관 그 위에 세우고자 곱고 끈기 있게 온갖 빈곤과 위협에 싸워 온 박 화백의 자랑스러운 인생회고담이라 하겠다. 박 화백은 한국의 전원 풍경과 ‘절구질하는 여인’, ‘망가는 여인’ 등을 많이 그렸다. 그의 진가가 드러났다. 1996년 미국 소더비경매장에서 그의 유화 ‘강변에서 빨래하는 여인’은 31만 달러(한화 약 2억5000만 원)에 팔려 나가는 등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우뚝 섰다.
박수근미술관, 박수근 화백을 담다
2001년 10월 박수근 화백 생가에 200여 평 규모로 건립된 박수근미술관은 작가의 예술관과 인생관을 기리는 동시에 지역 대표적인 문화 공간으로 박수근 화백의 삶과 예술을 재조명하고 있다. 또한, 미술관은 작가의 손길이 담겨있는 유품과 스케치, 드로잉과 같은 습작, 판화, 삽화 등 여러 유작을 소장하고 있으며 이를 선별해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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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박수근의 삶과 예술은 ‘서민의 화가’라고 한마디로 요약된다. 그는 곤궁한 시절에 힘겹게 살아갔던 서민화가 그 자체였다. 박수근 화백의 삶은 예술 의지가 돼 서민의 모습을 단순히 인상적으로 담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박 화백은 서민의 모습을 철저한 평면화 작업을 추구하며 주관적 감정으로 파악한 대상으로서의 서민 모습을 개인의 감정에서 독립된 완전한 객체로서 표현했다. 즉 ‘존재론적 사실주의’를 지향했다. 그래서 박수근 화백의 그림은 부동의 기념비적 형식이 되었으며 유럽 중세의 기독교 이론과 비슷한 성서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화강암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처럼 움직일 수 없는 뜻과 따뜻한 정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상이 그림으로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가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하다거나 다채롭지 않다. 그는 그들의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물론 어린아이의 이미지를 가장 즐겨 그렸다. 박 화백은 앉아있는 남녀를 통해 그들의 전통적 복장과 자세 속에서 미를 추구하며 조화된 ‘장식적 스타일’로 배치한다. 한국의 자기를 연상시키는 그의 침잠한 백색과 회색의 조화는 조용함을 말하고 넓은 형식들을 말해준다. 이외에도 한국의 밀레라는 평을 받고 있는 박수근 화백은 진실, 담백한 화풍을 그의 작품에 담고 있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든가,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언을 생각하면서 진실하게 살려고 애썼고, 고난의 길에서 인내력을 길러왔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언제 보아도 소박하고도 정겹다.
박수근 화백의 작품뿐만 아니라 그의 일대기가 궁금하다면 양구군으로 떠나보세요! 박수근미술관에는 박수근 화백의 흔적이 잔뜩 담겨 있답니다.
글 트래블투데이 심성자 취재기자
발행2020년 03월 14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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