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광릉] 개혁과 피바람의 두 얼굴, 세조, 국내여행,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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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광릉] 개혁과 피바람의 두 얼굴, 세조


조카의 왕위를 빼앗은 매몰찬 군주인가, 세종의 뒤를 이은 치적의 군주인가. 아마도 많은 사람은 세조(世祖, 1417~1468년)를 전자(前者)로 기억하지 않을까 싶다. 권력에 대한 야망을 위해 조카에게 저지른 세조의 행동은 형제에게 칼을 들이대며 왕위에 오른 태종의 ‘왕자의 난’만큼이나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세조가 세종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놀라는 사람도 적지 않다. 세종은 그야말로 성군 중의 성군이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세조와 같은 인물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라고 말이다. 

                    
                

‘인면수심(人面獸心)’ 과연, 세조의 전부일까?

  • 광릉에는 조선왕조 중에서도 '유명한' 인물, 세조가 잠든 능이다. 

세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세조는 형인 문종과 문종의 아들인 조카 단종이 있었기에 조선왕조의 ‘적장자 승계원칙’에 따라 왕이 되기엔 어려웠다. 하지만 조선왕조에서 적장자 승계원칙에 따라 왕이 된 인물은 문종(세종의 아들)과 단종(문종의 아들), 연산군(성종의 아들), 인종(중종의 아들), 현종(효종의 아들), 숙종(현종의 아들)으로 조선 역대 왕 27명 중 단 6명에 불과하다. 이렇게 보니 적장자 승계원칙을 무시하고 왕위에 오른 세조가 그리 이상하게 보이진 않는다. 어쩌면 세조가 왕이 될 수밖에 없었던 운명을 뒷받침하는 그 당시 환경이 존재하고 있진 않았을까.

세종의 맏아들 문종은 아버지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았는지 어려서부터 학문에 관심이 많고 인품 또한 너그러웠다고 한다. 세종이 즉위하고 3년 만인 1421년 문종은 세자로 책봉되었으며 약 30년간 세종을 충실히 보필하였다. 세종이 재위 말기 각종 병마에 시달리자 대신하여 국사를 처리하기도 했던 문종은 1450년 왕위에 올랐지만 안타깝게도 아버지의 병력(病歷)까지 물려받았는지 재위 2년여 만에 병사하고 만다. 실제로 세종은 많은 업적에 비해 건강 상태는 좋지 못해 용상(龍床)과 병상(病狀)을 수시로 오고 갔다고 한다. 결국,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고 왕권을 향한 세조의 야망 또한 점점 끌어 오르기 시작했다. 세조는 형인 문종과는 달리 어려서부터 무예에 뛰어났다. 학문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호탕한 성격에 강한 리더십까지 겸비한 세조가 야망을 품고 있을 것이란 점은 형인 문종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린 아들을 남겨두고 떠나는 문종은 김종서와 황보인에게 단종의 보필을 부탁하지만, 세조의 야망을 잠재우기란 역부족이었다. 조선왕조에서 손꼽힐 참혹한 쿠데타로 왕위에 오른 세조는 단종의 복위운동까지 저지시키며 대세를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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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조의 능인 광릉은 광릉숲내 위치하여 능 조성 이후 몇백 년 간 훼손없이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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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릉에는 광릉역사문화관이 건립되어 있어 역사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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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릉의 묘제를 지내기 위한 광릉 재실의 모습이다. 

강한 힘을 앞세워 왕위에 오른 만큼 그가 남긴 업적 또한 조선 왕조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정책 결정권에 있어 ‘6조 직계제’를 실시하여 재상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시켜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마련하였으며, 종전에 시행하던 과전법을 폐지하고 직전법을 시행함으로써 국가재정을 강화시켰다. 또한, 성삼문과 같은 집현전 학사들이 단종복위운동에 가담하자 집현전을 폐지하기도 하였으나 조선의 법령을 집대성한 『경국대전』과 『동국통감』 등의 역사서 편찬을 명함으로써 정치, 국방, 사회, 경제, 학문 등 다방면의 고른 발전을 꾀한 인물이다.  

 세조가 잠들어 있는 광릉으로 향하기 전, 경복궁에서 세조에 얽힌 일화를 들어보고 가보는 것도 괜찮다. 경복궁 사정전은 왕의 개인 집무실로 왕이 새벽 4시에 기상하여 신하들과 함께 학문을 연마하고 국정을 논의했던 공간이다. 세조는 이곳에서 성삼문과 박팽년 등 단종의 복위운동을 주도한 사육신을 직접 국문하기도 하였다. 세조의 일화가 얽힌 또 하나의 공간은 경회루이다. 왕의 연회나 사신들의 접대장소로 이용된 경회루에서 세조는 단종으로부터 옥새를 넘겨받으며 왕위에 오르게 된다. 웃고, 즐겨야 할 연회의 장소에서 두려움에 떨며 숙부에게 옥새를 넘겨준 단종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재위기간에 이룩한 많은 업적 또한 사실이다. 세조의 두 얼굴 중 어느 것이 진짜인지는 각자가 판단할 몫이다.  


[트래블아이 왕릉 체크포인트]
광릉(光陵)은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해 다른 능에 비해 비교적 서울 외곽에 떨어져 있다. 이 묘의 자리 또한 원래는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고 한다. 풍수지리상 길지(吉地)라 하여 묘 주인이 세조에게 바쳤다고 전해지니 세조는 살아서든 죽어서든 좋은 것은 무엇이든 남에게 넘겨받을 운명을 타고났는가보다. 

보통 왕과 왕비의 능이 하나의 봉분에 합장되어 있거나 두 개의 봉분이 나란히 있는 것과 달리 세조와 정희왕후의 능은 서로 다른 언덕에 따로 봉안되어 있다. 관리사무소를 지나 하나의 산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좌우로 두 개의 언덕을 향하는 길이 나오는데 좌측이 세조, 우측이 정희왕후의 능이다. 이와 같은 능의 형태를 동원이강(同原異崗)릉이라 한다. 광릉에서 눈여겨볼 점은 참도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죽으면 빨리 썩어야 하니 석실과 석곽을 사용하지 말고, 병풍석을 세우지 마라.”는 세조의 유언에 따라 왕릉을 간소하게 조영하였는데 참도 또한 이러한 이유로 없는 것이 아닐까 유추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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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5년 07월 17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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