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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에는 물만 모이지 않는다. 그 물을 따라온 햇빛도 구름도, 물고기도 모두 이곳 밑바닥에 모여 있다.
아궁이 안에서 바짝 마른 장작이 깊은 어둠 속에서 먼지와 부대끼고 상 위에 아무렇게나 덮인 천이, 가려지지 않을 세월을 어수룩하게 비껴가고 있다.
머리가 보일 만큼, 딱 그만큼 올라온 담장의 높이를 의심한 이 누가 있는가. 담은 가리기 위해 쌓는 것이 아니라는 걸.
집을 찾는 이는 누군가가 보낸 평범한 안부일 수도 있고 뜻밖의 소식일 수도 있기에 허리를 숙일 때마다 가슴이 뛴다.
발자국은 그 자체로도 살아 숨쉬는 것 같다. 호흡을 하는 그 순간 그대로 멈춰버린 것 같다.
커다란 돌 하나를 들기 위해 몇 개의 손이 달라붙었을까. 돌을 든 사람의 수 만큼 인덕을 베푼 자였을까.
고이 접어 줄에 매단 천이 공민왕의 애절함과 같을까. 천이 늘어나는 이유는 도망칠 곳이 이곳밖에 없기 때문일까.
저것은 어떤 기호나 신호가 아니다. 그림은 더더욱 아니다. 잊지 않으려는 표식이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의 그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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