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스며들 듯 사는 거다. 천천히, 이끼처럼 들러붙어 사는 거다.” 한때 인터넷을 달궜던 인기 만화, ‘이끼’에 나오는 대사의 한 구절이다. 초록빛 융단이 펼쳐져있는 것처럼 보이는, 육백산 깊은 산 속의 도계읍 무건리 이끼 계곡을 찾아가 보았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더불어 함께 산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강원 삼척시 도계읍 육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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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삼척시 도계읍 육백산(해발 1,244m). 아득히 먼 옛날부터 산세가 평평한 탓에 조(粟) 600석을 뿌려도 될 만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제는 그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이 육백산 허리춤의 두리봉과 삿갓봉 사이에 성황골이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성황골에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무건리 이끼 계곡이 숨어 있다. 하늘을 가린 금강솔숲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기나긴 세월을 견뎌내고도 아직 그 질긴 생명을 이어가는 곳. 초록 융단 가득한 이끼 계곡을 찾아 육백산 자락으로 발길을 옮긴다.
소재 말 마을, 들머리
무건리 이끼 계곡을 향해 가는 길은 남다르다. 38번 국도 고사리부터 현불사 방향으로 이동하면 산기리, 즉 산터마을이 보인다. 여기서 포장도로를 따라가면 갱도에서 서늘한 냉기가 나오는 석회암 채굴장을 거쳐 소재 말 마을이 나온다. 광산을 지나 가파른 길을 거치면 농가 집 한 채와 차량 3~5대 정도를 겨우 주차할 수 있는 산불감시초소 차량 통행차단기가 길을 막는 곳이 나오는데, 이곳이 들머리다. 이곳에서 큰말을 거쳐 용소까지 약 4㎞, 1시간 30분쯤 발품을 팔아야 한다.
태초의 원시림을 간직한 곳
시멘트로 포장된 오르막을 몇 굽이돌면 서낭당이 있는 국시재 고갯마루다. 여기까지가 포장도로의 끝이다. 서낭당 느티나무 아래엔 누군가 쌓기 시작한 돌들이 모여 돌무덤을 이루고 있다. 작은 돌 하나 얹으며 산행의 예를 갖춘다. 서낭당에서 큰말까지는 순한 길이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큼의 좁은 데다, 한쪽은 아찔한 절벽이 솟아있다. 핏대 봉 허리를 돌고 도는 오솔길은 어제 내린 비로 인해 온통 황톳길이 이어진다. 가파른 절벽에는 궁궐을 짓는 데 사용한다는 붉은 굴피들로 둘러싸인 금강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임도를 따라 걷다 만나는 큰말에는 마을을 지키고 있는 서너 채의 집들이 눈에 띄지만, 인기척이 없다. 임도 옆으로 무수히 만나게 되는 아기 다람쥐들만이 대문도 없는 집을 드나들며 파수꾼 역할을 해내고 있다. 한때 무건리 마을에는 300여 주민이 살았지만 모두 도시로 떠나버리고, 이젠 서너 채의 집들만 남아 마을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첫 번째 이끼 폭포를 만나다
이끼 계곡은 큰말의 임도가 끝나는 지점부터 우측으로 500m 아래로 내려가는 계곡에 있다. 나무계단을 지나 물소리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나뭇잎 사이에 가려졌던 짙푸른 소(沼)가 드디어 시야에 들어온다. 이곳에 터를 잡고 비탈진 산간을 개간한 다음, 강냉이와 감자를 심어 연명을 했을 소수의 화전민들. 그들만이 알고 있었을 신비로운 이끼 폭포다.
실오라기 같은 물줄기가 초록 융단을 따라 흘러내리는 첫 번째 폭포. 그 높이는 7~8m에 이른다. 석회동굴에서 흘러내리는 물들이 푸른빛을 띠는 용소를 만들어 냈다. 옛날 이곳 용소에는 용이 되기 위해 치성을 드렸지만, 끝내 하늘로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초록 이끼가 주는 그리움, 무건리 이끼 계곡
거대한 규모는 아니라도, 이 폭포는 장관을 연출한다. 녹아내린 석회석으로 희뿌옇지만 여전히 푸른 소 뒤로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진짜 아름다운 폭포는 탐방객들에게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 법. 왼쪽 이끼 폭포에 걸린 밧줄을 잡고 미끄러운 바위를 조심해서 올라가보자. 협곡 속에 숨은 두 번째 이끼 폭포가 눈앞에 펼쳐진다.
협곡 사이 좁은 바위들을 부여잡고 미끄러지지 않게 흐르는 물을 건너자 코발트 빛 용소와 10여m 높이의 어둑한 절벽 아래, 이끼 무성한 바위 사이로 섬섬옥수가 비단 치마처럼 흘러내리는 두 번째 폭포가 장엄한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해리포터의 마법의 성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느낄 만큼 신비를 간직한 이곳은, 비라도 내리게 되면 한층 더 진한 청록의 물빛과 절벽을 타고 내리꽂는 새하얀 폭포의 물줄기가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초록 이끼가 주는 그리움을 찾아 들어온 삼척 무건리 이끼 계곡에서, 인간도 결국은 자연과 하나임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신비로운 초록 이끼가 주는 그리움 찾아 삼척 도계읍 무건리 이끼 계곡으로 떠나보세요!
글 트래블투데이 지역 주재기자 안중열
발행2019년 08월 23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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