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바람을 맞으며 외적으로부터 고장을 지켰던 장기읍성은 오늘날 남아 있는 동해안 성곽 중 가장 잘 보전된 성곽 중 하나이다. 동시에 장기읍성이 자리한 이곳 장기면은 조선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귀양 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동해 바다를 지키고 있는 외로운 성채인 장기읍성과 장기유배문화체험촌은 조선의 변방에서 일어났던 독특한 역사의 흔적을 우리에게 선사해 준다.
동해를 끼고 걸어보는 장기읍성 한 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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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장기면 동악산 자락에 위치한 장기읍성은 고려 현종 2년(1011년) 토성을 쌓은 것으로부터 시작된 장기읍성은 왜적 등 외부의 적으로부터 해안선을 지키기 위한 기능을 수행해 왔다. 이후 조선 세종시대 돌로 다시 축조되어 내부에 관아와 향교가 자리잡는 등, 장기읍성은 약 1,000여 년 동안 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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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읍성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관아가 헐리는 등 황폐화되던 시기를 거치기도 하였으나, 문루와 성벽을 보수하는 등의 꾸준한 복원 작업을 거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약 1.4km 가량의 성벽 내·외부를 모두 돌아보는 시간은 약 1시간 정도로, 밖으로는 멀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경치와 안으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주민들이 향교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장기유배문화체험촌에서 유배문화의 발자취를 만나다
오늘날 푸른 바다를 만끽할 수 있는 장기면(옛 장기현)은 조선 시대에는 한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유배지 중 하나로서 권력다툼에서 밀려난 선비들이 가장 많이 귀양 간 고을로도 유명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장기현으로 유배가 결정된 사람이 총 211명 언급되고 있으며 이 중에는 조선 유학의 거두인 우암 송시열과 실학자로 유명한 다산 정약용도 포함되어 있다. 유배는 이들의 삶에 있어서는 비극이었지만, 장기의 주민과 선비들은 한양에서 유배된 선비들을 통해 세련된 학문을 익히고 중앙의 새로운 소식들을 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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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연을 바탕으로, 장기읍성 인근에는 장기로 유배 온 사람들의 삶을 다루는 테마 공원인 장기유배문화체험촌이 자리하고 있다. 장기읍성 북문에서 약 9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유배문화체험촌에는 조선 시대의 유배 문화에 대한 여러 전시물들과 유배된 사람들이 거주했던 가옥들이 재현되어 있다. 특히 장기를 거쳐 간 유배인 중 가장 유명했던 우암 송시열과 다산 정약용의 유배 생활에 대한 전시물을 통해, 그동안 피상적으로 이해했던 조선의 유배 문화가 지역 사회에 어떤 파급력을 갖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외적으로부터 고장을 지켰던 장기읍성! 자랑스러운 장기읍성은 역사적으로나 보존성이나 어디 하나 빼놓을 곳이 없는 곳이네요~! 특히 장기 유문화 체험촌은 볼거리도 다양하고 독특한 역사의 흔적도 선사해 줌으로써 매력이 많은 장소입니다 ~!
글 트래블투데이 지역 주재기자 이재호
발행2020년 04월 19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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