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근교에 위치한 경기도 광주시는 예로부터 수도의 영향을 많이 받아 온 곳이었다. 도공들이 왕실에서 쓸 자기를 굽던 곳도, 장군이 전장을 떠나 도성으로 돌아가는 길목도 바로 이곳이었다. 때문에 광주시에는 옛 이야기와 얽힌 재미있는 여행지들이 많으며, 오늘은 그 중 두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두 곳 모두 돌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광주시로의 여행을 더욱 흥미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쌍령동 ‘무명도공의 비’ 로 만나는 광주의 역사,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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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도공의 비는 옛 도공의 업적을 기린다.광주시는 예로부터 도자로 유명했던 지역이었으며, 광주시에서 만든 도자는 왕실 진상품이었기에 '왕실 도자의 고장'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조선백자 중에서도 왕실 어기만을 제작하던 곳이 바로 광주 일원의 관요이다. 사옹원의 분원을 비롯하여 조선 시대 중앙관요가 밀집된 광주시 일대의 가마터는 조선백자 연구의 핵심이 되는 곳이며 조선백자발달의 자취를 생생하게 남기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이름을 남기지 못한 도공들의 숱한 노력이 있었기에 광주시가 왕실 도자의 고장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이니, 이에 이름 석 자 대신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를 비롯한 작품들을 남기고 간 옛 도공들의 유업을 추모하는 ‘무명도공의 비’가 1977년 광주시 쌍령동에 세워졌다.
비석은 쌍령동의 육교 옆 즈음에 위치해 있다. 눈에 띄는 곳은 아니나, 제법 규모 있는 비석에 오석까지 갖추고 있으니 도자문화를 사랑한다면 찾아가 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오석에는 달 항아리를 안고 있는 이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옛 도공들 또한 저리 소박한 모습으로 도자를 빚었을까 상상해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신립장군 전설이 얽힌 ‘곤지암’
400년 수령의 향나무가 자라고 있는 곤지암에는 신립장군에 관한 이야기가 얽혀있다.
곤지암리 곤지암 인근에는 신립 장군 묘소가 있다. 이 지역이 곤지암으로 불리게 된 것은 신립장군과 곤지암에 얽힌 전설 때문이다. 말을 타고 묘소 앞을 지나면 말발굽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아 말에서 내려 걸어 다니는 불편을 겪었다 한다. 그러던 중 이름 모를 장군이 묘소 앞을 지나다 이 바위를 핀잔하자, 벼락이 바위를 내리쳐 두 쪽으로 갈라지고 옆에는 큰 연못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후로 행인이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었으며, 이때부터 곤지암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바위는 원래 주변에 연못이 형성되어 소하천과 연결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복개되어 학교와 주택가로 변경되어 있다. 바위는 두 개로 약간 떨어져 있으며, 큰 바위가 높이 3.6m, 작은 바위가 높이 2m로 석질은 화강암이다. 바위 위쪽에는 광주시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약 400년의 향나무가 자라고 있어 신비로움을 더한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를 남기고 간 옛 도공들의 유업을 추모하는 무명도공의 비, 그리고 신립장군의 전설이 얽힌 곤지암! 신비로운 전설이 얽혀있는 곤지암을 찾아 광주시에서의 여행이 즐거울 것 같아요~
글 트래블투데이 편집국
발행2014년 11월 11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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