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의령은 조선 시대 임진왜란 당시 최초로 의병이 일어났던 고장이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직접 실천으로 옮겨 나라를 지켜냈던 그들을 기억하는 곳이 있다. 바로 의령천을 앞으로 두고, 남산에 깊이 안겨 쉬고 있는 ‘충익사’가 그것이다. 1972년 주민들의 성금으로 의병탑을 건립한 것에 이어 1978년 국가 차원의 정화사업을 진행한 지금, 충익사는 의병들의 넋을 기리고 주민들에게 휴식을 주는 의령의 명소가 되어 있다.
그들을 기록한 곳, 충의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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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을 일으켰던 곽재우, 그리고 그와 함께했던 17명의 위패가 봉인되어 있는 곳이다. 9동의 건물이 어울려 그들의 나라사랑을 기리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그들을 위해 향을 피우곤 한다. 충익사를 구성하고 있는 건물들은 각각 독특한 모습과 함께 문화제, 기념물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충의각은 충의문 왼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다포팔작식 목조건물이다. 이곳이 바로 곽재우 장군과 17장령의 증직명, 관향 등을 적어 둔 명판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어느 한 곳에도 쇠못을 사용하지 않고, 우리 전통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목조건물 충의각은 공포와 장식이 특이한 것이 특징이다. 충의각 옆에는 큰 모과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 모과나무는 8.5m에 이르는 크기로 자란 만큼, 그 역사가 최소한 300년은 거슬러 올라간다고. 측정 방식에 따라서는 500년이 넘는다는 결과도 있으니 경상남도 지방 기념물로 등록된 것이 이상하지 않다. 실제로는 가래면 수성리 입구 계곡에서 자라던 당산목이었던 것이 망우당 곽재우 장군 유적지 정화사업 시 충익사로 옮겨심어졌다고 한다.
의지의 굳건함을 엿보다, 충익사의 면면
충익사 내에 굳건히 서 있는 이 탑은 영혼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의령탑’이다. 27m에 이르는 높이 속에 둥근 백색 환이 18개가 끼워져 있는데, 이것에도 의미가 있다. 바로 곽재우 장군과 17장령을 뜻하는 것이다. 게다가 양쪽의 기둥이 횃불을 상징하고 있으니, 의지가 불처럼 뜨겁게 타올랐던 그때를 기억하게 된다. 의병제가 열릴 때면, 의병교와 의병탑에는 화려한 불빛이 번진다. 까만 밤하늘과 산을 배경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의병탑의 모습에서는 아직도 나라를 사랑하는 그들의 의지가 남아있음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충익사당에는 충의각에서 보관하고 있는 18명을 비롯한 수많은 무명의 의병들의 위패를 봉인하고 있다. 나라를 위해 힘썼던 수많은 이들이 함께 잠들어 있는 곳이다. 2013년 11월. 충익사당 앞, 소나무 한그루에서 우담바라가 피어났다. 천년에 한 번 핀다는 우담바라가 이곳 충의사에서 발견된 것은 처음이 아니라고 하니, 이곳에 신비한 기운이 있다고 믿는 이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사당 앞에 선 소나무 한 그루에 피어난 우담바라는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조상들의 선물이 아닐까 하는 평가도 내려지고 있다.
또한 기념관에는 의병에 관한 유적, 유적지 사진 등이 소장되어있다. 무엇보다도 망우당 유물이 전시되어 있으며, 이는 보물 제671호라고 한다. 의병이 일어났던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곽재우 장군의 5폭의 전적도 의병창의도, 전암진승첩도 등이 소장되어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가마도, 전투도 등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그림들은 임진왜란의 아픔과 의병들의 의지가 담겨있다.
임진왜란 당시 최초로 의병이 일어났던 곳이 궁금하다면 의령군! 나라를 지켜냈던 인물들의 위패가 있는 의령 충익사로 떠나보세요~
글 트래블투데이 박선영 취재기자
발행2020년 04월 20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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