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그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으레 어느 지방이나 그곳의 산에 가면 대부분 유명한 절이 있다는데,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들러보자는 심정으로 절을 찍고만 왔던 적이 있는지. 대부분 자연과 잘 어우러진 사찰의 모습이나 조용한 분위기를 잠시 즐기고 내려오곤 할 것이다. 그러나 화엄사는 그냥 그렇게 지나가버리기엔 아까운 곳이다. 보물로 가득 차 있는 그곳. 화엄사에 어떤 보물이 숨겨져 있는지 구석구석 찾아보았다.
화엄사는 어떤 곳일까?
천년의 사찰 화엄사는 지리산 최대의 사찰로, 지리산의 남쪽 기슭 구례군에 위치하고 있다. 구례군에서 성삼재까지 도로가 뚫리기 전까지는 이곳 구례군 화엄사에 시작해서 산청군 대원사까지 가는 것이 대표적인 지리산 종주 코스였으며, '화대종주' 라 불렀다. 화엄사 위에는 지리산의 3대 주봉 중의 하나인 노고단의 남쪽에 자리 잡고 있고 그 앞으로는 섬진강이 흐르고 있어, 풍수지리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여기는 명당이라며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선입견을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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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화엄사의 초입 일주문 현판에는 ‘지산엄이화사 (知山嚴異華寺)’ 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그렇게 읽는 사람은 없다. 모두들 글씨 순서와는 다르게 ‘지리산화엄사’ 라고 읽는다. 지리산에 왔고 화엄사에 왔기에, 글씨 순서가 다르게 씌어져 있어도 지리산 화엄사라고 읽는 것이다. 이곳 일주문을 통과하면서부터는 글씨 순서와 같은 속계의 선입견을 깨버리라는 의미가 아닐까? 이 현판은 임진왜란 직후 화엄사를 재창건할 선조의 아들 (인조임금의 숙부이며 광해군의 이복동생인 의창군)이 써서 내려보낸 것이다. 이를 통해 나라의 보살핌을 받는 절이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대리석으로 된 유물이나 유적을 본 기억이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는 대리석으로 된 보물이 하나 있다. 조선 시대 우리나라 중남부 전체를 휩쓴 임진왜란 당시, 화엄사를 포함한 전국의 거의 모든 절이 불에 타버렸다. 화엄사 역시 그 이후에 1660년대에 재창건되었다. 화엄사를 재창건한 스님(벽암)을 기리기 위한 비석(벽암국일도대선사사비)은 일주문을 지나면 바로 보인다. 비석의 아래와 윗부분은 화강암으로 되어 있는데, 중간에 있는 비석 부분은 대리석으로 되어 있어서 맨질맨질하다. 중국의 대리석을 수입해 와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만큼 화엄사 재창건의 업적이 대단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벽암국일도대선사사비 밑은 거북 모양의 상상의 동물이 떠받치고 있는데 발가락은 물론, 휘감긴 꼬리까지 살아 움직일 듯 생생하다.
빗나감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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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절은 제1문, 제2문, 제3문을 지나서 본 경내로 지나가는 것이 보통이다. 이 세 개의 문은 보통 일직선을 이루기에 마련이다. 유독 화엄사는 제3문이 빗나가 있어서 시야를 막지 않고 열린 배치를 하고 있다. 이는 부족한 듯 넘치는 듯한, 모자란 듯 넘치는 듯한 화엄사상의 구현이라 한다. 이렇게 빗나가 있으면서 뒤에 있는 화엄사 본 경내 건물들이 살짝 보여서 오히려 그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무장식의 보물 보제루 (普濟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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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제 3문을 지나면 본격 화엄사의 건물인 보제루를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보통 사찰은 이러한 초입의 건물을 2층 누각으로 만들고, 그 건물 밑기둥 옆으로 지나가게 하는데, 화엄사의 보제루는 낮게 만들고 그 옆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이는 제3문의 빗나감의 연속선에 있다. 보제루는 장식도 없고 단청도 없는 수수한 건물로, 절제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보제루의 단순미는 이 뒤에 바로 만나게 되는 보물 종합 세트의 화려함에서 오는 감동을 증폭시킨다. 보제루 건물의 기둥 기초는 어떠한 가공도 하지 않은 채 그냥 통 바위 위로 올라가 있다. 또한 그 기둥 밑단과 바위 사이에는 종이 한 장을 끼울 빈틈조차 찾아볼 수 없이 단단하게 몇백 년을 버텨오고 있다.
보물 천지 화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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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제루를 오른쪽으로 돌아오면서 잠시 걸음을 멈추는 것이 좋다. 아니 그렇게 해야 한다. 잠시 멈춰서 화엄사 큰 마당을 올려다보면,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뭔가 알 수 없는 화려함이 느끼게 될 것이다. 이 한 장면 안에는 보물이 4점, 국보 2점이 한꺼번에 보인다. 이렇게 국보와 보물을 한눈에 보는 것만으로도 화엄사 탐방의 목적은 다 이룬 셈이다. 보제루에서 보이는 오른쪽 건물은 보물 제299호인 대웅전이며, 그 앞에는 보물 제132호인 동오층석탑, 보물 제133호인 서오층석탑이 쌍둥이 마냥 웅장하게 서 있다. 왼쪽 건물은 국보 제67호인 각황전이며, 그 앞에는 국보 제12호인 석등과 보물 제300호인 원통전전 사자탑이 그야말로 한눈에 보인다.
이외에도 국보 4점. 보물 8점으로 총 12점의 국보 보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 이곳이 바로 화엄사이며, 그중 6점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곳이 보제루 옆 자리이다. 그야말로 명당 중의 명당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여기 화엄사 마당에서 대웅전까지 보고 나면 화엄사 구경은 끝이 난다. 그러나 진짜 보물은 대웅전 뒤에 또 있다. 대웅전 뒤로 동백나무 단지를 지나면, 조릿대 산책로를 지나서 구층암에 갈 수 있다. 여기서부터는 경내에 가득 차 있던 관광객도 사라지고 나만의 호젓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보물찾기의 막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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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층암으로 올라가는 길옆으로는 지리산 화엄계곡물이 소리쳐 흐르고 있다. 계곡 옆 구층암의 기와지붕은 모과나무 두 그루로 되어 지지되고 있는데, 이 모과나무 기둥 하나는 바로 서 있고, 하나는 뒤집어져 있다. 또한, 구층암 바로 옆 천불전 계단 옆에는 산 모과나무가 싱싱하게 살아 있다. 구층암 마당에 서면 죽은 모과나무와 산 모과나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모과나무의 삶과 뒤집혀진 죽음이 묘하게 꼬인 이 공간은 차를 마시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봄이 되면 죽로 야생차 만들기 체험을 할 수도 있다.
구층암 옆 천불전의 처마 밑 단청 속에는 화엄사의 또 하나의 보물이 숨겨져 있다. 양쪽 처마 밑에는 우리네 설화 속 짝꿍으로 쓰이는 두 무리 동물이 그 주인공이다. 처마 밑 단청 속에서 거북이를 업고 있는 토끼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곳 화엄사를 재창건한 몇백 년 전에도 토끼의 간을 구하러 뭍으로 올라온 거북이의 설화는 있었나 보다.
이제 화엄사 보물찾기는 끝이 났다. 그러나 관광객으로 득실대고 있는 화엄사 경내로 다시금 내려갈 생각은 엄두도 나질 않는다. 구층암에서 화엄계곡 쪽으로 내려와 나무다리를 건너면 계곡을 따라서 내려오는 조릿대 산책로를 만난다. 이 길을 따라 호젓하게 내려오면서 오늘 화엄사에서 발견함 보물들을 마음속에 간직해 본다. 이 길은 지리산 종주 산행 길의 시작점이며, 계곡과 숲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피톤치드, 음이온, 산소, 햇빛으로 인해 면역력이 높아지는 치유의 숲길이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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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트래블투데이 지역 주재기자 강태운
발행2019년 01월 28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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