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기적’을 부르는 50여 년 세월, 한강의 많은 섬들은 근현대화를 거치면서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아니, 대부분 사라져갔다. 육지화 되어 여의도(汝矣島)처럼 그 이름이 무색케 된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개발논리에 파괴되고 버려지다시피 한 한강의 대표적인 밤섬은 자연의 힘으로 다시 살아난 진짜 ‘한강의 기적’을 보여준 섬이다. 현재 ‘작은 해금강’의 옛 모습을 다시 되찾은 밤섬은 각종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는 서울의 유일무이한 ‘생태계의 보고’이자 영등포의 자랑거리로 새롭게 떠올랐다.
서울시 개발에 필요한 모래,흙을 위해 크게 훼손됐던 밤섬이 자연회복력으로 자연생태보전지역이 되었다.
풍류가 있던 ‘작은 해금강’
와우산에서 바라본 모습이 밤알을 닮았다 해서 이름 붙여진 ‘밤섬’은 고려시대에는 귀양지였고 조선시대에는 뽕나무를 재배하면서 배를 만드는 조그마한 강마을이었다. 뛰어난 풍경 때문에 '작은 해금강'이라고도 불리기도 했다. <대동지지>에는 ‘섬 전체가 수십 리의 모래로 돼 있으며, 주민들은 부유하고 매우 번창한 편’이라고 적고 있다. 과거 자유롭고 아름다웠던 이곳 밤섬이 지금처럼 ‘무인도’는 분명 아니었다. 작정하고 한강에서 배를 타고 가더라도 일반인이 출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배에서 내리는 자체가 금지되어 있는데, 이는 현재 ‘자연생태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일반인의 출입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강대교를 지날 때 ‘윗 밤섬’이 보이고, 마포구 당인동에서는 ‘아랫 밤섬’을 볼 수 있다. 그러면서 비록 먼발치이지만, 멸종위기종인 흰꼬리수리와 천연기념물인 원앙 등 9700여 개체의 조류가 날아드는 모습도 종종 포착된다. 이처럼 총 2개 섬으로 나뉘어 있는 밤섬은 한때 10여 개의 작은 섬으로까지 갈래갈래 나뉜 적도 있었다.
개발논리에 무참히 짓밟혔지만…
매년 봄 벚꽃구경을 나서는 상춘객들로 북적이는 여의도 윤중로 제방은 바로 이 밤섬을 폭파해 얻은 돌과 흙으로 쌓았다. 그렇다. 정부가 ‘한강개발 3개년계획’ 중 주요 추진사항으로 포함된 ‘여의도의 도시화’를 시작한 1968년, 한강의 물을 잘 흐르게 하고 토사를 여의도 둑에 쌓을 석재로 이용하고자 이곳 밤섬을 무참히 폭파시켰다. 400여 명의 밤섬 주민들을 와우산 기슭으로 이주하던 폭파 직전까지도 주민들은 밤섬이 아스라이 사라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통곡했다. 1960~70년대 개발논리에 사람도 자연도 문명도 꺾이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한때 밤섬은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처했었다.
밤섬을 바라보며 걷는 길의 곳곳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자연의 섭리가 밤섬에 불러온 ‘기적’
그렇게 도심 개발의 희생양을 자처했던 밤섬은 현재 수백 종의 생물이 서식하는 도심 속 생태 낙원으로 탈바꿈해 있다. 그러면서 겨울철새의 안식처이자 생태학 연구의 보고로 주목받고 있다. 약 35년이라는 세월, 대체 이곳엔 어떤 일이 있었을까? 폭파 당시 섬의 태반이 깎여져 나간 자리(5만7000㎡) 한강의 퇴적물들이 점차 쌓이기 시작했고 나무와 풀이 우거져 동식물들이 찾아들었다. 강에 실려 내려온 버드나무 씨앗들이 스스로 싹을 틔워내 자라났고, 겨울철새 민물가마우지도 이곳을 발견한 뒤 수시로 날아들었다. 현재 밤섬은 27만3503㎡의 대지를 형성하고 있다.
밤섬, 세계가 인정하는 생태계의 보고
이처럼 한강 물길이 ‘기적’을 만들어낸 그 긴 세월만큼 사람의 손길은 닿지 않았던 이곳 밤섬에는 현재 각종 희귀식물들도 서식하고 있음이 속속 포착됐다. 5월이면 밤섬은 오색딱따구리, 파랑새 등과 여름철새인 개개비, 해오라기 등 많은 새들의 짝짓기와 산란으로 장관을 이룬다. 낙지다리와 서울시 보호종인 긴병꽃풀이 발견되는가 하면 멸종위기 어류인 황복도 서식하고 있다. 이 밖에도 수리부엉이, 황오리, 물총새 등 49종의 조류와 두우쟁이, 동사리, 납지리 등 39종의 어류, 또 엉겅퀴, 부들 등 138종의 식물이 보고되고 있는 한강의 밤섬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도심 속 생태계의 보고이자 철새의 낙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러면서 밤섬은 ‘새 서식지로서 중요한 습지보호에 관한 협약’에 따라 람사르 습지로 지정(2012.6)되기도 했다.
한강의 장구한 삶 속에서 생겨난 많은 섬들이 있었다. 하지만 불과 50년 사이 사라지거나 잠실과 뚝섬, 여의도, 난지도처럼 혹은 그 이름이 무색하게 육지가 된 섬들도 허다하다. 반면 최근까지 생겨난 인위적으로 만든 인공 섬들은 그보다 더 무수하다. 그렇게 잘 살아보겠다고 ‘한강의 기적’을 이어오는 사이, 밤섬은 조용히 진정한 ‘한강의 기적’을 보여주며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글 트래블투데이 편집국
발행2014년 11월 11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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