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과거를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가 각광을 받으면서, 다양한 역사 관련서적이 몇 주 째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하지만 직접 보고 만질 수 없기에 추상적으로만 접할 수 밖에 없다면 역사는 쉬이 따분해지기 십상이다. 따라서 옛 역사의 생생한 현장은 필히 역사 공부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교재라고도 할 수 있으며, 이는 그리스와 로마 역사의 돌로 만든 유적이 수많은 관광객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실물 역사 교재가 우리나라에도 많이 남아있는데, 제주도 서귀포시의 성읍민속마을은 특히나 보존 상태가 좋아, 옛 제주 사람들의 생활 속 숨결을 느껴볼 수 있는 장소이다.
성읍민속마을의 내력
성읍민속마을은 옛 제주 정의현의 도읍지로 행정, 군사, 교육의 중심지였다. 본래 제주는 지금의 제주시인 섬 북쪽의 제주목과 섬 남서쪽의 대정현, 섬 남동쪽의 정의현 이렇게 3개의 행정 구역을 분리되었으나, 일제 강점기인 1914년에 대정현과 정의현이 남제주군으로 통합되면서 정의현의 중심지였던 이곳은 자연스레 쇠락했다. 그 덕분에 개발이 더뎌 정의현의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게 됐고, 지금의 성읍민속마을이 있기까지 역시나 역사는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남아있어 귀한 성읍민속마을은 현재 마을 전체가 국가민속문화재 제188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제주 마을의 대부분은 해안가에 위치해 있지만, 정의현은 바다에서 8 킬로미터 떨어진 제주 내에서의 내륙에 위치해 있다. 정의현은 읍의 수도인 읍치가 본래 성산일출봉에서 가까운 고성리에 있었으나 세종 5년 (1423년) 동서간에 왕래가 편리한 현재의 내륙으로 옮겨졌다. 이는 오늘날 세종특별자치시와 같은 일종의 계획 신도시인 셈인데, 몇 백년 전 과거인 세종 시기에도 현대와 같은 정책이 펼쳐졌다는 데에 놀라울 따름이다.
탐방의 시작. 시크한 하루방과 역사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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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지혜가 서려 있는 현장을 제대로 관람하려면 해설사를 통해 이곳 역사에 대해 좀 더 깊이 다가갈 수 있다. 외국어 해설도 가능하며 별도의 예약은 필요없고, 남문 앞에서 제주 전통 의상인 갈옷 차림의 해설사를 찾아가면 된다. 해설사와 함께 성읍민속마을은 주출입문인 남문에서부터 관람을 시작한다. 맨먼저 ㄱ자 형태의 옹성과 성문을 지키는 하루방이 눈길을 끄는데, 제주에서 만나는 하루방은 우리에게 익숙할 수도 있으나 이곳의 하루방은 생김이 다르다. 그동안 실컷 봤던 하르방과 달리 시크한 표정과 의도한 손짓에서 저절로 친근감이 생긴다.
세대차이 극복 방법. 고평오 고택
남문을 통과하면 바로 고평오 고택을 만나게 된다. 18세기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택은 안거리와 밖거리 이를 연결하는 모커리 등으로 구성된 제주 민가의 전형을 보여준다. 안채·바깥채와 같은 뜻인 안거리와 밖거리는 거주공간과 부엌이 각각 있는 독립된 한 채의 단독 주택 형태로 지금으로 치면 다가구 주택 또는 단층 펜션과도 같다. 이는 혼인한 아들에게 안거리를 물려주고, 밖거리는 부모가 거주하는 제주 민가의 풍습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안거리와 밖거리는 각각 3칸으로, 정지(부엌), 안방과 고팡(창고)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거리 방에서는 ‘호령창’ 이라고 하는 낮은 쌍여닫이문이 달려 있다. 편히 출입할 수 없을 만큼 낮은 이 호령창은 안거리 방에서 앉아 밖거리와 직접 대화를 할 수 있는 일종의 앉은뱅이 창문이다. 안거리와 밖거리 간의 거리는 약 8미터로 충분히 독립적이지만, 또한 상대방의 얼굴 표정을 보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지척 거리이기도 하기에 이 호령창은 부모세대와 자식세대 간의 소통 창구로 충분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객주집에서 만난 생활의 지혜. 조일훈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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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평오고택을 지나면 몇 걸음 만에 객주집 조일훈고택을 들게 된다. 역시 18세기 말에 세워진 조일훈고택은 안거리, 밖거리, 이를 연결하는 모커리뿐만아니라 창고, 이문간(대문간) 등 총 5채로 구성되어 앞선 고택보다 좀 더 규모가 크다. 객주집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니, 각 건물에 사람이 드나드는 모습이 상상이 되는 듯 하며, 안거리와 밖거리에는 풍채(차양)가 마련되어 있어, 한여름의 더위와 습기를 피하기 위한 남부지방 가옥의 필수적인 특징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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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거리 부엌 앞에는 물허벅(물항아리)을 얹을 수 있는 선반인 ‘물팡’이란 공간이 마련돼 있다. 또한, 안거리 더 안 쪽에는 동백나무에서 수액을 받을 수 있도록 항아리가 구비되어 있어, 물이 귀한 섬에서의 생활 속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돌 3개로 간단하게 구성된 조리 아궁이와 별도로 난방을 위한 보조아궁이가 따로 있는 것을 봤을 때, 예전에도 제주의 겨울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육지보다 춥지 않았다는 짐작을 한다. 실제 제주도에는 난방이 안 되는 구식 주택이 아직도 제법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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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인분을 효과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기발한 발명품인 축사와 통시 겸용 시설에는 마치 흑돼지의 꿀꿀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통시라 불리는 이 화장실은 육지와는 달리 안거리 건물에 바로 붙어 있다. 이로 인해 제주에서는 통시를 활용해 인분을 보다 효과적으로 처리했음을 미루어 짐작해본다.
제주 성읍민속마을은, 인공적으로 조성된 표선의 제주민속촌과 달리, 지금도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마을입니다. 덕분에 입장료 없이 편하게 관람이 가능하지만, 주민의 생활공간에 너무 침범하지 않는 매너는 필수입니다. ^^
글 트래블투데이 지역 주재기자 강태운
발행2018년 08월 29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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