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제주도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어왔다. 돌, 바람, 여자가 많다는데서 붙여진 이름 삼다(三多)도, 섬나라라는 뜻의 탐라(眈羅)가 유래되어, 조선 시대 고종 때에 이르러 비로소 바다 건너 큰 고을이란 뜻의 제주(濟州)란 이름이 붙여졌다. 지금은 유네스코 3관왕과 세계 7대 자연경관 지역 선정에 따라 세계인이 찾는 여행지인 제주는 최근 옛 4.3 사건의 아픈 상처마저도 치유를 통해 제주 평화 도시로 도약하고 있고, 이러한 변모 속에서도 서귀포시의 ‘성읍민속마을’에는 아직도 옛 모습 그대로의 고을과 전통가옥 등의 제주다운 면모가 남아있어 수많은 여행객의 발길을 이어지고 있다.
타임머신 타고 떠나는 정의현 도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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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읍민속마을은 서귀포시 표선면에 있는 중산간 마을이다. 기록에는 우도와 가까운 성산읍 고성리에 설치된 ‘정의현청’이 조선조 세종 5년(1423년)에 이곳으로 옮겨진 후, 500여 년간 현청 소재지이자 유서 깊은 마을로써 국가 민속 문화재 제188호로 지정되었다. 마을을 둘러싼 성곽을 따라 발길을 옮겨가면 고증을 거쳐 새로이 축조된 남문 초입의 돌하루방을 만날 수 있고, 바람 많은 제주를 상징하는 굵은 새끼줄을 지붕에 동여맨 옛 모습의 초가집과 높게 쌓은 돌담, 올레길을 사이에 두고 성읍리 주민이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다. 또한 이곳에서는 제주 전통 화장실인 통시와 제주의 대문 역할을 하던 정낭의 정주목(나무를 걸치는 돌기둥) 등 다양한 제주 전통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제주의 속살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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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을 지나 돌계단을 걸어 올라 성벽루에 기대어보면 영주산에서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바로 눈 앞에 펼쳐진 마을 풍경은 한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500년 전 과거로 여행을 떠난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고평오 고택을 시작으로 대장간 집, 객주집을 지나 마을 중앙에 이르면 정의현 객사가 보이고, 예전 태풍으로 훼손되었던 옛 군청 일민헌은 말끔히 복원되어 본래 이름인 근민헌의 모습을 되찾았다. 또한 근민헌 뒤편에는 천연기념물 제161호인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500년 옛 도읍을 상징하듯 마을의 서낭나무로 우뚝 서 있다. 현재 느티나무는 천 년의 수령, 팽나무는 600년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 정확한 연대를 아는 사람은 없으나 마을주민에 따르면 예전에는 느티나무에 싹이 트는 방향으로 한 해 농사의 풍작과 흉작을 점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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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민헌을 지나면 마을 무속신앙의 기도처이자 고을 관청 안에 있다 하여 이름 붙여진 관청 할망(안할망)이란 신당을 볼 수 있는데, 근민헌 서쪽의 가장 오래된 팽나무를 신목으로 삼아 기왓장 위 비녀, 구슬 등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 한다. 서문쪽에 위치한 고택을 지나면 세종 5년에 창건해 본래 진사리 현 서문 밖에 있다 헌종 15년에 정의읍성 서문 옆 지금의 자리로 옮겨진 정의향교가 있다. 정의향교는 보통의 향교가 남쪽으로 건축된 것과 달리 동쪽을 향해 지어졌으며, 대성전, 명륜당 등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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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멍 놀멍 여유있게 둘러볼 수 있는 정의읍성은 성읍민속마을을 둘러싼 옛 진사성으로 둘레 1,200m, 높이 3m로, 세종 5년 나흘 만에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유구한 세월 동안 비바람과 민란으로부터 굳건히 백성을 보호해주던 성벽은 허물어지고 철거었으며, 현재는 일부 남은 성벽과 남·서문이 복원되어 화려했던 옛 정의현의 모습을 되찾아 가는 중이다.
특히 매년 10월이면 남문 앞 광장에서는 검질메기(김메기), 마당질(도리깨질), 남방애(절구)찧기 등 다양한 전통 체험과 놀이 한마당이 열려 정의현청이 있었던 성읍민속마을에서 서귀포구까지의 거리에서 유래한 ‘서귀포칠십리길’ 골목 골목이 축제 분위기로 들썩인다.
성읍마을 전통 가옥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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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전통 초가 390여 채가 남아 있는 성읍민속마을에는 지금도 실제 주민이 살고 있는 막은골집, 긴올레집, 퐁낭집, 아득골집 등 건물 형태와 쓰임새가 각기 다른 고택 여러채가 전통 민박집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에 시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색다른 숙박을 경험하기 위한 트래블피플의 발길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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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여러 가옥 중 고창환 고택은 예전 여인숙으로 사용했던 곳으로 특이하게도 문 바깥의 사람과 잠깐 이야기를 나눌 때 사용하는 호령창이 오른쪽 문에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부엌 앞에는 물구덕을 내려놓는 물팡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고평오 고택은 가장 전형적이고 평범한 제주 민가의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는데, 예전에는 정의고을 면사무소 관원 숙소로 이용한 곳이다. 또한 길 건너에는 ‘남문통’이라는 우물의 흔적이 남아있으며, 이 물은 고을 원님만 마셨다 해서 ‘원님물’, 이후 관원들만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제주의 상징, 돌하르방
구멍이 숭숭한 돌, 제주하면 떠오르는 상징 현무암으로 만든 돌하르방은 툭 튀어나온 둥근 두 눈, 굳게 다문 입, 벙거지를 쓰고 구부정한 자세로 두 손으로는 불룩한 배를 쓰다듬고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돌하르방은 제주도의 옛 삼다라는 지명을 뜻하는 가장 특징적인 상징물로 정의읍성 남문과 서문 앞에 각기 다른 형태의 돌하르방 4기가, 동문 자리에도 4기의 돌하르방이 남아 성문을 지키고 있다.
이곳에서는 돌하르방을 ‘벅수머리’ 또는 ‘무성목’으로 불렀으며, 제주목에서는 ‘우성목’으로 불렸다. 성문 밖에 세워졌다는 것은 성문 출입을 제한하는 문지기 역할과 성의 안쪽과 바깥쪽을 나누는 경계표시 기능 등으로 해석된다. 특히 이곳을 포함해 제주의 돌하르방은 임신부가 돌하르방의 코를 갈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미신 때문에 코 주변이 깨져 나간 것을 더러 볼 수 있어 씁쓸한 마음이 생긴다. 이로인해 제주에서는 현재 남아 있는 돌하르방 47기를 각별한 관리 중에 있다.
타임머신 타고 떠나는 500년 전 정의현 도읍지, 성읍마을을 찾아 초가집과 통시, 정낭 등 사라져가는 제주의 속살을 만나러 혼저 옵서예!
글 트래블투데이 지역 주재기자 안중열
발행2018년 08월 30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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