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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북구 역사 따라가기, 후삼국부터 구한말까지


울산은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와 매우 가까웠던 덕에 일찍부터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다. 통일신라시기에는 수도 근방의 항구로서 현재의 인천항과 같은 위상을 지녔다. 또한 조선시대에도 일본과 상대적으로 거리가 가까워 대마도주의 요청으로 개항한 삼포 중 하나인 염포가 울산에 있기도 했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울산에서 시대별 역사를 만나본다. 

                    
                

고려 귀족이 소유했던 바위, 곽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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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지마을에서 곽암을 찾기가 쉽지 않다면 이 안내판을 기점으로 해 눈을 크게 떠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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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좋은 미역은 왕실로 납품되는 귀물이었다. 울산 박씨 종가가 이 지역에서 누렸던 특수한 지위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신라라는 천 년 거목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각 지방에서는 군사력과 지배력을 갖춘 호족들이 슬금슬금 일어나고 있었다. 울산에 살던 박윤웅도 이들 중 하나였다. 이미 계변성의 성주로 군림하던 그였지만 자기가 왕이 되겠다며 결단을 내리지는 않았다. 그가 선택한 것은 신흥 국가의 공신이 되는 것이었다. 후백제와 고려 사이에서 고민하다 고려의 신하로 들어간 것이다. 1937년 간행된 ‘흥려승람’ 에는 박윤웅이 고려 태조가 나라를 세울 때 공을 세워 흥려백에 봉해졌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그에게 포상의 의미로 내린 미역바위가 현재 북구 구유동 판지 마을에서 만나는 곽암이다. 판지 마을 바닷속 자연암인 곽암은 ‘양반돌’ 또는 ‘박윤웅돌’로 불리기도 한다. 본디 고려시대에 하사할 때는 미역들이 자라는 12개의 돌섬들을 모두 함께 하사했다고 한다. 그 당시에도 울산이 질 좋은 미역을 생산하기로 유명했으니 이는 실로 커다란 포상이었던 셈이다. 그러다가 지금 바위 하나만 남게 된 것은 조선 영조 때다. 균역법을 시행하면서 줄어들게 되는 재원을 보충하기 위해 모든 어장을 국가에 소속시키면서 미역바위도 국가에게 귀속된 것이다. 그러나 이후 3년 동안 미역이 흉작이 들자 어민들의 건의를 들어 그중 한 바위를 다시 울산 박씨에게 준 것이 지금까지도 울산 박씨 종가가 곽암을 소유하게 된 이야기라고 한다. 바위에는 '윤웅(允雄)'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박윤웅의 공훈과 뜻을 기려서 어사 박문수가 새긴 것이다.

 

호국의 도량, ‘신흥사 구 대웅전’

울산시 북구 대안동 신흥사 구 대웅전 건물은 본래 건흥사의 대웅전으로 635년에 명랑 조사가 처음 건립했다. 절의 기록에 의하면, 678년에 승병 100여 명이 이 절에 머물면서 무술을 닦았다고 한다. 이런 유래가 있어서일까, 이 절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 활동과 관련이 깊다. 건흥사는 울산 지역에서 승군 동원 기록이 있는 유일한 사찰로 울산지역 승병 활동의 거점이 되었다.
 
울산이 왜군에게 함락되자 의병들은 기박산성에 진을 쳤다. 이 절의 스님 지운은 승병 100여 명을 이끌고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절의 양식 300여 석을 군량미로 내기도 했다고 한다. 정유재란 때에 이 절이 불탄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병마절도사 이급이 1646년에 절을 다시 세워 신흥사라고 했다. 이 건물은 1998년 새로이 대웅전을 지으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 놓은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단층 팔작집이다. 조선후기 건축의 일반적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특히 내부 천정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반자는 높은 예술성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북구 송정동 ‘박상진 의사 생가’

 

사랑채, 안채 등을 갖춘 박의사의 생가. 너른 농촌마을인 송정마을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규모다.

울산시 북구 송정동 고헌 박상진 의가 생가는 독립운동가 박상진 의사가 살았던 집이다. 대지주였던 박 의사는 모든 재산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하여 집안은 몰락하였고, 집도 남의 손에 넘어갔으나 2002년 울산시가 사들여 2007년 복원 정비 사업을 완료하였다. 생가는 사랑채, 안채 등 모두 6동의 건물로 이루어진 기와집으로, 전체적으로 볼 때 'ㅂ'자형 구조를 가진 조선 후기 양반 살림집이다.
 
1902년 허위 선생에게 한학을 배운 박 의사는 양정의숙에 진학, 법률과 경제를 전공하고 1910년 판사 시험에 합격하여 평양 법원에 발령되었으나 사퇴했다. 그 후 독립 운동에 투신하여 1915년 조선 국권 회복단과 대한 광복회 결성에 앞장섰다. 박상진 의사는 만주에서 독립군을 양성하여 무력으로 독립을 달성할 목적으로 대한 광복회 총사령을 맡아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1921년 형 집행으로 38살의 나이에 생을 마감하였으며, 1963년 건국 훈장 독립장으로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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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광복회총사령을 맡아 독립운동을 하신 박상진 의사의 생가를 볼 수 있는 울산시 북구 송정동! 
임진왜란 때 직접 승병을 이끌고 전쟁에 참여한 지운 스님이 계신 신흥사가 있는 울산 북구로 출발~!

트래블투데이 편집국

발행2015년 09월 07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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