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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운동의 태동, 광주 동구


매년 4월 19일이 되면 생각나는 이름, 민주화운동. 1960년 이날, 이승만 정부의 3·15 부정선거에 반발해 일어난 학생과 시민 항거는 나아가 오늘의 사회를 만들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4·19 혁명에 나타난 국민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염원과 희생정신은 점차 민주의식의 고취로 이어져, 이후 1980년 5·18민주화 운동, 1987년 6월 항쟁까지 이어진 것으로 본다. 국민주권을 이룩하려 기꺼이 목숨까지 바쳤던 그 상황이 지금은 실감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만은 그날의 희생을 기리는 마음으로 민주화 운동의 태동이 일어났던 곳들을 찾아가보자.

                    
                

광주 동구는 4·19 혁명의 발상지이자 5·18민주화운동의 최초 발포지, 최후 항전지로 이곳에는 많은 희생 영령의 혼이 잠들어 있다. 지금도 당시의 흔적을 품고 있는 곳들이 의미를 남기고 있다. 이 일대를 걷다 보면 절로 숙연해지고 당시 피를 흘리며 쓰러져간 시민군을 떠올리게 되는 것도 그 까닭일 것이다.

 

광주 민주화운동의 긍지를 가진 장소들

  • 광주고등학교 앞은 5.18뿐 아니라 4.19민주혁명 발상지가 됐던 곳으로 그 기념비가 남아있다. 

우선 5·18민주화운동은 광주시민과 전라남도민이 하나 되어 전두환 보안 사령관과 12·12 사태를 주도한 신군부 세력의 퇴진을 요청하고 계엄령 철폐를 요구하며 전개한 운동이다.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열흘 동안 시민군은 계엄군에 맞서 항쟁했고 많은 희생자를 냈다. 하지만 그들의 피는 절대 헛되지 않았다. 이는 우리나라의 민주화 과정에 있어 가장 큰 사건이라 할 수 있으며 한국의 사회 운동과 지식인 중심의 반독재 민주화운동이 민중운동으로 변화하는 계기가 됐으니 말이다. 만약 그들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지금 우리는 확연히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또한, 시민이 스스로 참여해 자치를 이룬 이례적인 민주화 운동이자, 이를 통해 신군부의 폭력성을 전 세계에 고발할 수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고 대통령 대행체제가 되는 등 당시 정국은 매우 불안했다. 혼란을 틈타 전두환과 노태우를 중심으로 신군부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무력으로 군부와 정치권을 장악했다. 게다가 비상계엄령을 선포, 군사 통치를 진행하기에 이르렀다. 민주헌정을 정지하고 민주정치 지도자들을 투옥하는 등 온갖 횡포를 일삼아 국민의 불만이 극에 달한 것이다. 전국적으로 저항과 시위가 일어났는데 이때 광주 전남대 학생과 비상계엄군 간 충돌이 일어난다. 계엄군은 무력으로 이들을 제압했고 급기야 총격으로 사망자까지 나오게 된다. 그리고 군인들은 민간인까지 닥치는 대로 체포, 학살해 시민들은 이를 보고 격분한다. 마침내 광주 시민과 전라남도민이 중심이 되어 이들의 과잉진압에 항쟁했고 이것이 민주화 운동의 시작이다. 계엄군은 2만 5천 명에 달하는 군인에 탱크까지 동원하는 등 시민군을 무참히 학살했다. 

 

5·18 최초 발포지 – 광주 고교 앞(사적 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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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운동 당시 집회가 열렸던 광주 YMCA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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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광주 YMCA의 맞은편이 옛터다. 

광주 고교 앞은 4·19혁명 당시 학생들이 최초로 시위를 시작한 곳이자, 5·18 최초 발포지로 그 의의가 큰 곳이다. 5·18민주화운동 때는 계엄군이 비무장 시민을 향해 발포하였으니 학살이 시작된 곳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발포 사실이 알려진 후 시민은 계엄군의 과잉진압에 격분하였고 거센 투쟁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을 꼽자면 3가지를 들 수 있다. 그 중 첫 번째는 주 YMCA이다. 사적 5-4호로 지정된 주 UMCA는 5·18민주화운동 항쟁 지도부가 집회를 열고 회의를 하던 곳이다. 계엄군의 무력 진압에 대항하기 위해 시민군에게 총기 훈련을 하기도 하였으며 60년대 이후 군사 정권에 저항하는 반독재·반유신운동의 거점이었다.

두 번째는 광주 YMCA 옛터이다. 사적 6호로 지정된 이곳은 광주 여성운동의 산실이다. 민주시민 회보를 제작하여 민주화 운동 소식을 전국에 전했으며 민주 인사들은 시민의 희생을 막고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회의를 했다. 계엄군에게는 눈에 가시와도 같은 곳으로 최후의 항전 과정에서 많은 시민군이 이곳에서 희생되기도 했다.
 

민주화의 발상지로 통하는 구 전남도청 자리에 근사하게 들어선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마지막으로는 사적 5-1호로 지정된 구 전남도청이다. 이곳에서는 5·18민주화 운동의 본부였던 곳으로 항쟁 초기 이곳에서 시민은 군부의 탄압과 부정에 대해서 항의하고 의견을 나누었다. 계엄군은 이곳을 주요 표적으로 삼았고 시민군은 최후까지 항전하였다.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의 무력진압에 맞서 싸운 많은 시민군이 산화한 장소다. 

 

그 날의 자취를 따르는 시내버스를 타고

광주에는 독특한 버스가 있다. 겉으론 별다르지 않아 보여도, 그 번호를 눈여겨보면 곧 알게 된다. 광주의 419번, 518번 버스가 그것으로 민주화 운동의 산실인 광주의 지역적 특성상 그 뜻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419 버스는 진원지인 광주고교를 거쳐 전남대 등 4·19 혁명의 주 무대를 달린다. 518버스 역시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된 구 전남도청과 5·18기념공원 등을 거친다. 공휴일로 지정되지는 않아도 매년 그날의 뜻과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는 만큼, 광주의 뜻깊은 버스를 타고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낸다면, 오늘을 누릴 자격이 있는 민주시민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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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운동이 시작된 곳을 찾아 광주 동구로! 4·19 혁명의 발상지이자, 5.18 민주화운동의 최초 발포지인 광주고교부터 역사적 거점을 따라가며 희생정신을 되새겨보아요.

트래블투데이 박선영 취재기자

발행2021년 05월 18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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