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화려한 계절이다. 너른 들판은 1년간 수고한 사람들에게 노란 황금빛 물결로 화답한다. 농부가 됐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든 노란 황금 들판을 보는 것만큼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는 것이 또 있을까. 그뿐인가. 예쁘게 옷을 빼입은 산들이 그렇다. 빨갛게, 노랗게. 물론 언제나 푸르름을 간직한 나무들도 가을산의 정취를 더해준다. 사람들은 봄에 서둘러 꽃구경을 떠나는 것처럼 가을이 되면 너도나도 단풍과 낙엽을 보러 가을산을 찾는 것으로 가을산의 패션쇼에 응답한다.
화려하지 않은 고백, 수다사
하지만 가을이 어디 화려함만 가진 계절일까.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도 하고, 낭만과 고독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화려한 단풍옷을 입은 가을의 속내는 어딘지 모르게 고즈넉하다. 이제 곧 추워질 테고, 이제 곧 1년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품은 가을은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다. 한 가지 매력만 있는 사람에게는 곧 그 매력을 보는 대신 지루함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만약 가을이 화려함이나 고즈넉함, 둘 중 한 가지 매력만 가지고 있다면 아마 가을이 지금처럼 매력적인 계절은 아니지 않을까.
화려함과 고즈넉함. 그 상반된 매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좋은 여행지가 있다. 경북 구미시의 수다사. 한글 이름으로만 보면 코미디 프로그램을 떠올릴 수도 있는 곳이지만 이곳의 역사와 이름은 그렇게 가볍지 않다. 수다사는 9세기에 창건된 절로 무려 1,2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처음 이름은 통일신라 문성왕 때 진감국사(眞鑑國師)였던 혜소가 연꽃을 보고 연화사라 이름했고 고려 중기에는 성암사,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이끌었던 사명대사 유정이 절을 중창한 뒤 현재의 이름인 수다사로 이름 지었다. 수다사(水多寺)의 이름에는 ‘관음보살의 감로수가 넘쳐 흐르는 복된 절집’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수다사의 보물? 수다사가 보물!
수다사는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보물급 문화재가 많은 절이다. 전각 가운데 명부전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39호 지정된 바 있다. 명부전 안에는 영조 때(1771년) 그려진 탱화 지옥도가 있는데 보존 상태가 거의 완벽해서 조선 후기 불교 문화의 높은 수준을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또 대웅전 안에 있는 수다사건륭37년명동종 역시 영조 때(1772년)에 제작된 것으로 이것 역시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3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뿐 아니라 대웅전 안에 있는 목조 아미타여래좌상은 얼핏 보면 금으로 된 불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무로 만든 불상임을 알 수 있다. 이것 역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34호로 지정되어 있다. 끝으로 국가 보물로 지정된 보물 제1638호 구미수다사 영산회상도가 있다. 영조 7년(1731년)에 그려진 이 후불탱화는 가운데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작았다가 커지며 작아지는 구도로 짜여있어 자연스럽게 중앙의 석가모니불에게로 시선이 쏠리게 된다. 균형미와 조화가 잘 이루어진 작품이다.
많은 볼거리가 있지만 사실 수다사는 아쉬움이 남는다. 숙종 30년(1704년)에 큰 화재가 나서 현존하는 건물만 남고 모두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다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아쉬움을 달랜다. 우선 수다사가 있는 연악산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산이 아니다 보니 자연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다사에 새로 지은 조형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1,000년을 훌쩍 넘은 고찰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풍경인 양 자연과의 조화로움 때문에도 수다사의 아름다움은 배가된다. 더구나 수다사는 가을에 노란 은행으로 깊이 물들어 가을의 깊은 정취를 느끼기에 제격이다. 때로 뉴스나 방송의 아름다운 풍경 소개에 수다사가 종종 방송되는 이유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깊어가는 가을, 조용한 절집 여행으로 낭만을 즐기는 건 어때요? 천년고찰 수다사에서 가을의 두 얼굴, 만나고 싶지 않으세요?
글 트래블투데이 이수민 취재기자
발행2023년 11월 02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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