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왕 장보고의 위업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이 있다. 바로 '청해진'이다. 청해진은 통일신라 흥덕왕 때 장보고 장군이 지금의 완도군에 세운 진(鎭)이다. 이후 가리포에 성을 쌓아 항만을 보수한 그는 청해진을 중심으로 서남해안의 해상권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중계무역의 거점이 되기도 했던 청해진의 흔적이 완도군에 여전히 남아 있다.
청해진이 있던 섬, 장도
완도군 장도에 남아 있는 청해진 유적 전경.
완도 본섬 장좌리 앞바다. 작은 섬 하나가 오롯이 떠 있다. 일명 '장군섬'이라 불리는 '장도'다. 마을에서 장도까지의 거리는 200m가 채 되지 않는다. 완도 본섬에서 장도까지 가는 길은 하루에 두 차례 물이 빠지는데, 이때는 바닥이 완전히 드러나기 때문에 걸어서도 갈 수 있다. 다만 다시 바닷물이 들어오면 완전한 섬이 되므로 물때를 잘 맞춰 가야 한다. 최근에는 목교가 놓여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되었다. 장도 너머로는 고금도와 신지도가 보이고, 그 뒤로는 더 멀리 있는 약산도까지 조망할 수 있다. 언뜻 보기에는 주위의 다른 섬들과 별다를 것 없어 보이지만, 장도에는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통일신라시대 때의 청해진이 있었던 자리라는 점이다. 장도의 청해진 유적은 현재 사적 제308호로 지정되어 있다.
장보고의 흔적을 좇아, 청해진 유적 한 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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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본섬에서 청해진 유적으로 가는 목교.2
청해진 유적에서 바라본 완도 풍경.장보고가 청해진대사로 임명된 것은 신라 흥덕왕 3년인 828년의 일. 일찍이 걸출한 실력과 인품으로 무령군소장에 올랐던 장보고는 신라인들이 중국에 노비로 잡혀간 일에 분노하여, 왕에게 청해(현 완도)에 군영을 설치할 것을 건의한다. 이후 1만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온 장보고는 청해에서 군사적 해상권은 물론 해상무역의 패권도 장악하기에 이른다. 이후 장보고는 중국과 일본 사이의 중계무역을 유도하며, 신라가 해상교역을 주도하는 데 커다란 공헌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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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 유적의 두 번째 출입문인 내성문 전경.2
청해진 유적에 남아 있는 굴립주 풍경.완도 청해진 유적에서는 1991년부터 2001년까지 시행된 발굴조사를 통하여 수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토성 자리를 비롯한 건물 터가 여럿 확인되었고, 통일신라시대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당초문과 연화문, 철제 칼과 항아리들이 대거 발견됐다. 또 당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화려한 기와와 석촉석렬, 우물 등 다양한 유적들이 장도를 중심으로 발견되었다. 바닷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목책의 흔적도 그 중 하나다. 청해진 유적은 대부분 터나 흔적만 남아 있어 대단한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서남해안을 장악했던 청해진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 있는 유적지다. 청해진 유적에는 이 밖에도 청해진성, 와당편, 토기편, 사당, 법화사지터 등이 남아 있다.
해상왕 장보고가 서남해안을 장악할 수 있었던 이유, 청해진! 통일신라시대 당시의 위용을 느껴보고 싶다면, 완도 청해진 유적을 찾아 보세요.
글 트래블투데이 심성자 취재기자
발행2022년 11월 18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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