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 / 낯선 친구 만나면 /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 천안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찔름거리며 가는 길 / 신을 벗으면 /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 가도 가도 천 리 길, 전라도 길’이라는 구절로 끝나는 이 시는 소록도 나환자 요양원을 향하며 나환자로서의 비애를 담은 시이자 우리에게는 ‘나병 시인’으로 더 잘 알려진 한하운 시인의 ‘전라도 길-소록도로 가는 길에’이다.
나환자들의 눈물로 얼룩졌던 소록도
섬의 모양이 마치 어린 사슴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 ‘소록도’, 소록도의 풍광은 사진이나 글로는 다 나타내기가 어려울 정도로 기막히도록 멋진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소록도의 아름다운 한 켠에는 수많은 나환자의 눈물과 희생이 얼룩져 있다. 1916년 ‘자혜의원’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소록도 병원은 한때 6,000여 명에 달했던 나환자들을 데려다 섬 가꾸기 작업에 동원했다. 섬 가운데 벽돌 공장을 세우고, 예배당, 회관, 치료실 등의 각종 건물 50여 동을 지었으며 진도나 완도, 대만 등지에서 관상수와 바위들을 옮겨오는 등의 대대적인 공사 작업을 벌였다. 이미 온몸을 으스러지게 하는 병으로 힘들어했던 환자들은 강제노역을 이기지 못해 바다에 뛰어들어 도망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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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6,000평에 이르는 국립소록도병원 중앙공원은 4대 원장 슈호가 있던 1933년~1942년 사이에 대부분의 조성 작업이 이루어졌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공원 조성을 위해 완도에서 옮겨다 놓은 커다란 바위에는 ‘바위를 메도 죽고 놓아도 죽는 바위’라는 별명이 있었다고 한다. 즉, 바위를 옮기느라 목도(무거운 물건이나 돌덩이를 나를 때 밧줄을 어깨에 메거나 또는 그 일에 쓰는 나무 몽둥이)를 메면 허리가 부러져 죽고, 목도를 놓으면 맞아서 죽는다는 뜻이다. 신체 건강한 보통의 사람들도 하기 힘든 노역을 다 망가져 가는 몸으로 일해야 했던 환자들의 마음이 어떠했을 거라고는 감히 상상도 하기 어렵다.
결국, 자신의 동상까지 세워 공원을 완성한 슈호는 1942년, 손가락이 모두 떨어져 없어진 한 환자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주운 쇳조각을 갈아 칼을 만들어 자신의 팔뚝에 붕대로 동여맨 뒤 슈호를 찌른 당시의 사건은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 속 이야기가 허구가 아닌 진실이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제는 아름다운 기억만 가득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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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섬이지만 울울창창 소나무들과 하이얀 모래사장에 넘실대는 바닷가에 둘러싸인 소록도는 아름다운 자연경관 뿐 아니라 과거 나병 환자들의 아픔을 알 수 있는 볼거리들이 조성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나병 환자들의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생활자료관과 당시 나환자들의 인권을 무시한 채 강제로 감금했던 감금실, 나병 환자들의 가족이 한 달에 한 번 유일하게 만날 수 있는 곳이나 일정 거리에서 눈으로만 안부를 확인해야만 했던 수탄장 등 그들의 아픈 과거를 두 눈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이 짜릿하다.
아직도 수백여 명의 나환자들과, 의료진, 자원봉사자들이 살아가는 생활공간인 소록도는 분명 여느 관광지처럼 화려하거나 요란한 분위기는 아니다. 하지만 섬 하나가 푸르른 산림과 바다로 이루어져 있어 정밀하고도 세심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제 소록도는 나환자들만의 고통스러운 공간, 격리되어야만 하는 외딴 섬이 아니라 누구나가 찾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소록대교 개통으로 녹동항과도 5분 거리에 위치해 있으니 참고하자.
더 이상은 아프지 않았으면, 이제는 아름답고 행복한 기억들로만 채워져야 할 작은 섬, 소록도, 그 곳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 먹먹해지는 것은 왜일까요.
글 트래블투데이 심성자 취재기자
발행2021년 09월 21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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