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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산의 겨울, 이야기를 따라 걷는 트레킹


첫인상은 중요하다. 첫인상이 좋아야 호감이 가고 좀 더 알고 싶어진다. 여행지도 그렇다. 첫인상이 좋아야 또 가고 싶어진다. 강천산은 여름에 다녀오고 나서 또 가고 싶은 여행지가 되었다. 풍경에 반했던 강천산. 이번엔 그곳의 내면이 궁금했다. 숨어있는 이야기를 만나러 겨울의 강천산을 다시 찾았다.

                    
                

강천사에서 만난 설씨부인의 이야기

겨울에도 아름다운 병풍폭포.

강천산 군립공원을 6개월 만에 다시 왔다. ‘강천산 군립공원 방문을 환영합니다’ 문구가 반갑게 느껴졌다. 여름의 생기 넘치는 풍경은 아니지만 오히려 소탈한 얼굴을 보는 것 같아서 좋았다. 겨울이라서 맨발 트레킹은 할 수 없었다. 눈이 녹지 않은 곳이 더러 있었다. 눈이 녹은 길은 질퍽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향한 곳은 강천사다. 지난번 강천산의 풍경에 반해 이곳을 제대로 못 본 아쉬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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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웠던 에메랄드 빛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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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를 새끼줄에 엮은 모양이 재밌는 송음교.

강천사는 겉으로 볼 때 규모는 작다. 그러나 그 역사는 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성여왕 1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고려 시대 때는 열두 개의 암자를 거느린 큰 절이기도 했다. 조선 시대로 넘어와 성종 13년에 설씨부인의 시주를 얻어 다시 지어졌다. 문화해설사를 통해 설씨부인에 대해 좀 더 들을 수 있었다. 
 

마음이 절로 경건해지는 강천사.

그 당시 강천산에서 수행 중이던 약비라는 스님이 절을 중건하기 위해 설씨부인을 찾았다고 한다. 전날 밤 그녀의 꿈에 어머니가 나타나서 다음 날 어떤 이가 찾아와 도움을 청해오면 무엇이든지 들어주라고 했다고 한다. 설씨부인은 자신의 재물로도 충분히 절을 중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좋은 일을 혼자 하는 것보단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것이 좋겠다며 권선문첩을 완성한다. 이것은 16폭의 문첩으로 14폭은 어떻게 선을 실행할 것인가에 관해 쓴 글이고, 2폭은 사찰이 중건되었을 때의 모습을 담고 있다. 마을 사람들에게 이를 보여주면 많이 도와줄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십시일반 모아 강천사를 중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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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시일반 마음을 모아 중건한 강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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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장류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권선문첩 영인본.

현재 이 권선문첩은 보물 제728호다. 설씨부인은 신사임당보다 앞선 여류 문인이라고 한다. 슬하에 자식이 없어 그 업적을 잇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강천산 다음으로 찾아간 순창 장류박물관에서 권선문첩을 볼 수 있었다. 영인본이었지만 그녀의 섬세한 필적과 선한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만약 그녀를 닮은 자녀가 있었다면 현재 오만원권의 주인공이 그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슬며시 해본다. 

 

모과나무 보고 세 번 놀란 이유  

겨울의 모과나무.

모과를 보고 세 번 놀란다는 말이 있다. 처음엔 못생겨서 놀라고, 다음은 향이 좋아 놀라고, 마지막은 맛이 없어 놀란다. 반전매력이 숨어있는 과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강천산은 이런 모과와도 인연이 깊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모과나무가 바로 이 강천사를 지나는 산길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게도, '모과를 보고 세 번 놀란다'는 옛말처럼 필자 또한 강천산의 모과나무를 보고 세 번 놀랐다. 처음으로 필자를 놀라게 했던 것은 명성에 비해 볼품없는 모습. 겨울이라서 가지만 무성한 모과나무의 모습은 찬찬히 들여다보아야 그 아름다움과 나무가 품은 세월을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다. 다음으로 놀란 것은 이 모과나무의 나이 때문이었다. 강천산 모과나무의 수령은 무려 300살 즈음. 높이는 약 20m, 둘레는 3.1m이니 300여 년에 달하는 세월 동안 꾸준하게 제 몸을 키워 온 셈이다. 마지막으로 놀란 건 이 오래된 모과나무가 지금도 살아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하니 첫인상과는 또 다른 묘한 감상을 주었다.

지금도 강천산의 풍경과 어우러져 사는 이 나무를 처음에 누가 심었을까 궁금했다. 문헌 등에 정확히 남아 있는 내용은 아니나, 당시 강천사 스님이 심은 것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다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현재 강천사 모과나무는 전라북도 기념물 제97호다. 다시 모과나무를 올려다보았다. 문득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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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인 바위라고도 하는 거라시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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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의 충절을 읽을 수 있는 삼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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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다시 한번 건너보고 싶은 구름다리.

여름은 풍경을 따라 걷는 트레킹이었다면, 겨울은 이야기를 따라 걷는 트레킹이었다. 걸인들이 동냥을 받아 강천사 스님에게 시주하고 복을 빌었다는 설이 전해지는 거라시 바위. 과거 억울하게 폐위된 신씨를 복위시키고자 죽음을 각오하고 상소를 올린 세 사람의 충절을 느낄 수 있는 삼인대까지 걸어가는 곳곳에 이야기가 있었다. 사람으로 치면 진국이다. 겉모습뿐 아니라 속도 꽉 찼다. 봄날에 세 번째 만남을 기약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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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투데이 지역 주재기자 고기은

발행2019년 01월 09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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