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모재 옆에 세워진 묘비
한국인의 밥상에 흔히 오르는 까만 김. 입맛이 없을 때 바삭바삭한 김만 있으면 쌀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기도 한다. 반질반질하고 까만 김은 어떤 재료를 넣어 돌돌 말아도 서로 어우러지게 만든다. 또한 별다른 조리 없이도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것도 김의 특징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김을 먹게 되었을까? 우리나라 최초의 김 양식지인 광양 김 시식지에서 김의 역사를 알아보자.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김 시식지
전라남도 광양시는 우리나라 최초로 김 양식을 시작한 곳이라는 역사가 있다. 원래 김 양식지는 광양 태인도에 있었는데 바다를 메우고 광양제철소가 생기며 자취를 잃게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김 양식지 모습이 사라진 것이 아쉽다. 현재는 김 시식지 건물만이 옛 흔적을 간직하며 최초 김 양식지임을 기념하고 있다. 이곳은 전라남도 기념물 제113호로 지정되어 전라남도의 보호를 받고 있다.
해은문을 지나면 영모재가 보인다. 영모재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김을 양식한 김여익을 기리고자 세워졌다. 영모재 안에는 최초의 김 양식지임을 입증하는 기록이 비문, 등초로 남아 보관되어 있다. 이 비문은 1714년 당시 광양의 현감이었던 허담이 지은 묘표이며, 그 내용에 적힌 시식해의 우발해의(始殖海衣 又發海衣)란 글을 통해 이곳에서 김을 처음 양식했고 김 양식법을 창안하였음을 알 수 있다.
영모재 오른편으로는 역사관이 있고, 왼편으로는 기념비와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영모재 왼편의 계단으로 올라가면 유물전시관이 있다. 흔히 먹던 음식의 족보를 찾아가는 기분이 든다. 김의 역사에 대해 알게 되면 한 장의 김도 다시 보며 감사히 먹는 재미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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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전시관 안에는 전통 김 양식 도구 32종 53점과 사진, 미니어처 등이 전시되어 있어 그 당시의 김 만드는 과정을 알 수 있었다. 과거에는 김 한 장 만드는 것이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으며 널찍한 김발에 김을 말리면 김이 떨어지며 타닥타닥하는 소리가 났다고 한다. 요즘은 이런 풍경을 쉽게 볼 수 없다는 게 아쉽다. 유물전시관에 전시된 전통 김 양식 도구와 김 양식을 하는 사진들을 보며 이런 아쉬움을 달래본다. 유물전시관 뒤편으로는 김여익 공의 위패 등이 있는 인호사가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김 양식을 시도한 김여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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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익은 1606년 전남 영암군 서호면에서 김식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켰으나 조정이 항복하자 고향으로 돌아가 조상을 볼 면목이 없어 1640년부터 태인도에 살기 시작했다. 김여익은 바다에 떠다니던 나무에 해초가 걸리는 걸 보고 착안해 김 양식을 시도했다고 한다.
김은 바다 깊은 곳에 사는 해초인데, 한국,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며, 한국, 일본에서 즐겨 먹는다고 한다. 한국의 연안에서는 10월 무렵에 나타나기 시작하여 겨울에서 봄에 번식하고, 여름에는 보이지 않는다. 김은 이전에는 그냥 버리거나 가축 먹이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현재 우리의 밥상에 올라오는 김은 김여익이 태안도에 살던 1640년에서 1660년경에 만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는 일본이 세계 최초의 김 양식 발상지라고 주장하고 있는 겐로쿠 시대(1688~1703)보다 훨씬 앞선 시기이다.
김여익은 소나무, 밤나무 가지를 이용한 김 양식 방법을 창안, 보급하였다. 김은 바위 등에 이끼와 같이 자란다고 해서 해의, 해태라고 불리기도 했다. 김여익은 또한 해의를 건조하는 방법도 연구하였다. 그 결과 짚을 엮어 만든 김발 위에 해의를 고루 펴서 말린 뒤에 떼어내는 건조 방법을 개발했다. 김여익은 1660년에 생애를 마쳤다.
광양 김은 왕실에 바치는 특산물로 인기가 높았는데, 후에 김여익의 성을 따서 김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해의가 김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왕이 태안도에 사는 김 씨가 만든 것이라 김이라 부르게 했다는 설이 있다. 광양 김은 일제 강점기에 공물로 나갈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현재는 김 시식지 유물관에서 자료로만 접할 수밖에 없다는 게 아쉽다.
광양의 김 역사와 관련된 행사
광양시에서 김 역사와 관련된 행사는 후손들이 지내는 김여익 공 시제와, 용지 큰줄다리기가 있다. 김여익 공 시제는 매년 음력 10월 10일 후손들이 김여익 공을 기리기 위해 지내고 있다. 또한 광양에서는 유일하게 김과 관련된 전통놀이인 용지 큰줄다리기를 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용지 큰줄다리기는 태인동 용지마을에서 300년간 전승되어 온 풍년을 기원하는 전통 놀이이다. 민속놀이로서 풍수지리설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줄다리기 시작 전에 용왕제에서 풍어와 태인도의 주 소득원인 김의 풍작을 기원하는 제례의식을 한다고 한다.
이렇게 광양은 한국 밥상의 단골 메뉴로 등장했던 김의 역사를 보존하고 후대에 전승하려는 노력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조선 시대부터 우리의 입맛을 돋워주었던 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김은 늘 우리의 식탁에서 빠지지 않을 것이고, 현재도 많은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으며, 미래에는 더 많은 사람이 한국의 김 맛에 매료될 것이다.
김의 역사와 관련된 행사가 있다는 것이 참 흥미롭습니다. 또한 광양 김 시식지를 방문하고 나니, 밥상에서 마주한 김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되네요.
글 트래블투데이 지역 주재기자 이한별
발행2017년 08월 17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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