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송정고택의 아름다움
집안의 재력은 주인어른의 성품과 덕행 혹은 안주인의 살뜰함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로 인해 곡식창고는 늘 차고 넘치며 넓은 뜰은 주인어른의 호탕한 웃음만큼이나 넓다. 허나 당대 내로라하는 부잣집이라고 해서 어떤 부(富)의 풍성함을 한눈에 담기는 어렵다. 선비의 검소함에 티내지 않은 겸손함을 바탕으로 한 작은 요소요소가 눈에 띄는 곳, 바로 송정고택이다.
송정고택은 경북 청송군 파천면 덕천민속마을에 있다. 지방 유형문화재로, 조선 영조 때 만석의 부를 누린 심처대의 7대손 송소 심호택의 둘째 아들 송정 심상광이 살았던 곳으로 송소고택과는 담으로 이어져 있다. 송소고택을 지은 후 얼마 후 만들어진 송정고택은 ㅁ자의 형으로 조선시대 전형적인 상류층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송정(松庭)은 심호택의 둘째아들 심상광의 호로 송소고택은 큰집 송정고택은 작은 집 정도가 된다. 심호택의 네 명의 아들 중에서 송정 심상광은 도산서원 및 병산서원의 원장을 했을 정도로 학문이 뛰어났다. 또한 청송향교의 전교를 2회에 걸쳐 맡았던 뛰어난 유학자로 현재까지 매년 유생들의 송정학계가 열리고 있다.
덕천마을은 청송 심 씨 집성촌으로 송소, 송정 고택을 비롯해 조선 시대 건축물이 잘 보존된 곳이다. 청송 심 씨는 조선 시대 세종대왕의 왕비인 소헌왕후를 비롯해 왕비 4명, 부마 4명, 장승 13명을 배출한 조선 최고 명문가다. 청송 심 씨의 본향인 청송의 고택 송소고택(松韶古宅·중요민속문화재 제250호)은 조선 영조 때의 만석꾼 심처대의 7대손인 심호택 선생이 1880년경 13년에 걸쳐 지은 99칸짜리 집이다. 송소 심호택(松韶 沈琥澤)이 지은 집이라 하여 송소고택(松韶古宅)이다.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 있어서 ‘덕천동 심부자댁’으로도 불린다.
심호택은 조선 영조 때의 만석지기 재력가였던 심처대(沈處大)의 7대손이다. 1880년(고종17) 조상의 본거지인 덕천리로 옮기면서 집을 짓는데 그 집이 바로 송소고택이다. 13년에 걸쳐 지어졌고 규모는 99칸이었다. 청송심씨는 1960년대까지 9대에 걸쳐 만석꾼이었다. 광복 이전까지만 해도 청송에서 대구까지 가려면 심부자 땅을 밟지 않고는 못 간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다. 12대 만석꾼인 경주 최 부자와 더불어 영남의 대부호로 명성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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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넷 두었던 선생은 또다시 7년에 걸쳐 30칸짜리 집 3채를 인근에 지었으니 총 20년에 걸쳐 200여 칸에 이르는 4채의 고택을 지은 셈이다. 하지만 6·25전쟁 당시 마을이 불에 타 현재는 송소고택과 송정고택(松庭古宅)만이 남아 있어 아쉽기만 하다. 송정고택의 뒷산에 조금만 오르면 덕천마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데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송정고택 사랑채 옆에는 군불을 지필 때 쓰는 장작이 쌓여 있는데 그마저도 여유로움을 더해준다. 덕천마을에는 독립운동가 이범석 장군과 조병옥, 고종황제 아들인 의친왕이 묵었다고 하니 이 고택의 후손들은 자부심이 대단할 것이다. 송소고택의 별당과 쪽문을 사이에 두고 연결된 송정고택은 넓은 마당이 한눈에 들어오는 집이다.
송정고택은 한옥 터가 무려 3천 평에 이른다. 집터의 크기도 어마어마해 이 고택의 부유함을 알 수 있지만 많은 물자가 드나드는 것을 상징하는 솟을대문의 크기는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넓은 마당이 하나 있는데 이곳은 안이 아니라 바깥마당이다. 오른쪽으로는 송소고택과 연결되는 쪽문이 있다. 왼쪽으로는 우물과 소나무 숲으로 이어지는 산책로가 있다. 사립문이 보이는 쪽으로 한참을 걸어야 송정고택의 대문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본채와 안마당이 보인다. 이 집은 'ㅁ'자 구조의 한옥으로 사랑채와 책방, 중간에 대청마루가 있고 심상광이 사용하던 책방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송정고택의 안채는 정면 2칸 측면 1칸의 안방과 대청마루 및 정면, 측면 1칸의 상방으로 되어 있다. 사랑채는 정면 2칸, 측면 1칸의 사랑방과 정면 1칸, 측면 2칸의 책방과 대청마루로 연결되어 있는데 별도로 정면, 측면 1칸의 안대문방과 큰대문방으로 구성된 집이다. 송정고택은 전형적인 한옥인 장작 온돌방과 넓은 마당, 정원과 텃밭이 어우러져 있다.
송정고택에는 국악을 알리기 위한 체험 프로그램이 열린다. 판소리 민요 배우기, 퓨전 국악 고택 음악회 등이 각각 매년 3번 정도씩 개최된다. 이 중에서 퓨전 국악 고택 음악회는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큰 행사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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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소고택과 나란히 한 송정고택. 불편함이야 하루쯤이면 그만이리라는 마음으로 머문 하루는 생각보다 멋지게 물들어 있다. 온돌방의 기운인지 달빛을 받은 한옥이 그 세월의 무게를 손님들에게 쏟아내는 것인지 새벽이 다 밝지 않았음에도 개운하게 눈이 뜨인다. 그리고는 하나같이 ‘잘 잤다’라고 한다. 어떠한 추억과 이야기가 흐를지는 몰라도 송정고택에서의 하루는 참(眞)멋이 그득하다.
*주변 관광지
주산지
주산지는 1721년 조선조 숙종 때 만들어진 작은 인공저수지다. 하지만 심한 가뭄에도 물이 말라 없어진 적이 없다고 한다. 특히 저수지에 자생하는 왕버들나무 20여 그루와 주변의 울창한 수림은 몽환적이면서 아늑한 분위기를 사계절 내내 만들어 낸다.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란 영화의 촬영지로 현실 세계가 아닌 착각을 일으킬 만큼 아름답다.
달기약수탕
달기약수탕에는 하탕, 중탕, 상탕, 신탕 등 10여 개의 약수터가 있다. 조선 철종 때 금부도사를 지낸 권성하가 낙향해 자리 잡고 살면서 바위틈에서 솟아오르는 약물을 발견하면서 알려졌다. 달기약수탕은 사계절 나오는 양이 일정하고 겨울에도 얼지 않으며 색깔과 냄새가 없다. 약수의 맛은 설탕을 제거한 사이다 맛이며 위장병, 신경통, 빈혈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회마을
마을 주민들이 기와집과 초가집의 옛 한옥을 여전히 생활공간으로 이용하고 있어 한옥의 과거 현재 미래 모습을 모두 살필 수 있는, 그야말로 한옥을 대표하는 마을로 꼽힌다. 하회(河回)’라는 이름은 마을 주위를 감싸 안고 흐르는 낙동강의 모습이 ‘회(回)’자와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졌다. 2010년 8월 경주의 양동마을과 함께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트래블스테이] 송소고택
화려함과 옛것의 고즈넉한 멋을 자랑하는 청송군의 대표 고택 송소고택! 남다른 규모! 남다른 건축 양식! 99칸의 위용을 자랑하는 조선시대 최상류층의 주택 송소고택에서는 남다르게 럭셔리한 한옥체험이 가능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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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트래블투데이 심성자 취재기자
발행2018년 06월 08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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